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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찰괘검(季札掛劍)
계찰이 검을 걸어 놓다는 뜻으로, 신의를 중시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季 : 계절 계(子/5)
札 : 편지 찰(木/1)
掛 : 걸 괘(扌/8)
劍 : 칼 검(刂/13)
(유의어)
계찰계검(季札繫劍)
계포일낙(季布一諾)
일락천금(一諾千金)
출전 : 사기(史記) 오태백세가편(吳太伯世家篇)
약속을 지키는 최상의 방법은 결코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다. 약속은 그만큼 지키기 어렵다는 나폴레옹의 말이다.
약속을 했으면 마음속으로만 했더라도 지켜야 한다는 성어가 계찰괘검(季札掛劍)이다. 꽤 고지식하게 들리겠지만 약속을 했다고 해서 죽음까지 무릅쓰는 미생지신(尾生之信)까지는 아니다.
계찰은 사람 이름이다. 흔히 사용하는 고사성어의 25%가 실려 있다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이 이야기도 나온다.
기원전 770년~403년, 춘추시대(春秋時代) 남방에 인접한 라이벌 오월(吳越) 중에서 오나라 왕 수몽(壽夢)의 넷째 아들이 계찰이다.
형들도 다들 인품이 괜찮았지만 막내인 계찰이 가장 훌륭하고 재능도 뛰어났다. 왕이 병이 들어 왕위를 계찰에게 물려주려고 했을 때 형들이 찬성해도 정작 본인이 장자가 계승해야 한다며 사양할 정도였다.
장남, 차남에 이어 왕이 된 셋째 형이 왕위를 맡으라고 했을 때도 부귀영화는 귓가에 스치는 가을바람 같은 것이라며 역시 거절한 것이 추풍과이(秋風過耳)의 고사다.
계찰이 이웃나라로 사신을 떠났을 때였다. 서(徐)나라에 들렀을 때 왕이 계찰의 보검을 보고 매우 갖고 싶어 했지만 차마 말을 못했다.
계찰은 왕의 마음을 알고서도 자신의 임무가 끝나지 않아 귀국 길에 선물하리라 생각하고 서나라를 떠났다. 각 나라 방문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방문해 보니 서왕은 이미 죽고 없었다.
하는 수없이 계찰은 서왕 집을 찾아가 나무에 보검을 풀어 걸어놓고 떠났다.
於是乃解其寶劍 繫之徐君家樹而去.
어시내해기보검 계지서군가수이거.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죽었는데 왜 보검을 주느냐고 종자가 물었을 때 계찰은 처음 마음속으로 주기로 결정했는데 죽었다고 해서 어찌 뜻을 바꿀 수 있겠느냐고 답했다.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에 전한다. 繫(계)는 이을 계이다. 계찰계검(季札繫劍)으로도 통용된다.
오늘날 남발되는 약속과 너무나 다르다. 마음속으로 한 약속까지 지키라는 사람은 없지만 정치인들의 공약은 외고 펴고 알린 사항이라 지켜야 한다.
우리는 크건 작건 간에 약속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이 약속이라는 것이 처음 마음처럼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사람을 평가하는 아주 중요한 척도가 되기도 한다.
R.W.서비스의 "해 놓은 약속은 미지불의 부채이다." 카네기의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한번 약속한 일은 상대방이 감탄할 정도로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강조한 명언들이다.
그러나 에머슨은 "누구나 약속하기는 쉽다. 그 약속을 이행하기가 어려울 뿐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약속을 지키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음을 간파했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오죽했으면 "약속을 지키는 최상의 방법은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겠는가.
⏹ 계찰괘검(季札掛劍)
계찰괘검(季札掛劍)이란 계찰이 검을 걸어 놓다는 뜻으로, 신의(信義)를 중히 여긴다는 말이다.
오(吳)나라 계찰이 상국(上國)으로 사신 가는 길에 서국(徐國)을 들르게 되었는데, 그 나라의 임금이 계찰의 칼을 매우 부러워했다.
계찰은 칼을 주기로 마음속으로 작정하고 사신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서국을 들렀으나 임금은 이미 죽은 뒤였다. 계찰은 마음속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임금의 묘에 칼을 걸어 놓고 왔다는 데서 유래한다.
사기(史記) 오태백세가편(吳太伯世家篇)에 보인다. 오나라 왕 수몽(壽夢)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막내 아들이 계찰이다. 계찰은 그 형제들 가운데 가장 현명하고 재능이 있어서 수몽은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였고 백성들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계찰은 왕위는 장자가 이어야 한다며 가족을 떠나 산촌에 살면서 밭을 갈며 살아 거절의 뜻을 분명히 했다.
계찰의 형들 역시 계찰의 높은 인격과 굳은 절개를 칭찬하며 차례로 집권하여 왕위가 그에게까지 이르도록 하려고 하였다.
계찰은 자신이 왕위에 오를 순서가 되었지만, 이때도 받지 않아서 왕은 계찰을 연릉(延陵)으로 봉후(封侯)했다. 그 후로부터 계찰을 연릉의 계자(季子)라 불렸다.
계찰이 처음 사신으로 길을 떠났을 때, 오나라의 북쪽으로 가는 도중에 서(徐)나라에 들러 서왕(徐王)을 알현하게 되었다. 서왕은 평소 계찰의 보검을 갖고 싶었으나 감히 말하지 않았다.
계찰 역시 속으로는 서왕이 자신의 보검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사신으로 중원 각 나라를 돌아다녀야 하였기 때문에 바치지 않았다.
각 나라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서나라에 도착해 보니 서왕은 이미 죽고 없었다. 이에 계찰은 보검을 풀어 서왕 집의 나무에 걸어놓고 떠났다.
於是乃解其寶劍繫之徐君家樹而去. 어시내해기보검계지서군가수이거.
그의 종자(從子)가 물었다. “서왕은 이미 죽었는데 또 누구에게 주는 것입니까?” 라고 하자, 계찰이 말하기를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처음에 마음속으로 그에게 주기로 결정하였는데, 그가 죽었다고 해서 내가 어찌 나의 뜻을 바꿀 수 있겠는가?” 라고 하였다.
계찰계검(季札繫劍)은 이 글을 요약한 말이며, 중국의 유서인 몽구(蒙求)의 표제어에는 계찰괘검(季札掛劍)으로 적고 있다.
태사공(太史公) 사마천(司馬遷)은 계찰의 인물됨을 평가하여, “연릉계자(延陵季子)의 어질고 덕성스런 마음과 도의(道義)의 끝없는 경치를 앙모한다. 조그마한 흔적을 보면 곧 사물의 깨끗함과 혼탁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어찌 그를 견문이 넓고 학식이 풍부한 군자가 아니라고 하겠는가.”라고 했다.
이때부터 계찰괘검은 계찰이 칼을 걸어 놓았다는 뜻으로, 신의를 중하게 여긴다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예로부터 군자는 신의를 목숨보다 중요시 여겨왔다.
노(魯)나라 때 미생(尾生)은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기다리다가 개울물에 떠 내려갔다. 조(趙)나라 때는 인상여(面相如)와 염파(廉頗) 장군이 서로 신의를 지켜 문경지교(制類之交)라는 고사를 파생시켰다.
이처럼 신의를 바탕으로 한 일화는 매우 많다. 신의는 목숨처럼 지킬 일이다. 그래야 서로의 마음에 믿음이라는 사랑의 씨앗이 싹트고 이 사회는 밝아질 것이다.
마음으로 한 약속도 지킨다. 철썩 같이 다짐한 약속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참으로 어려운 행동이다. 계찰만큼은 못하더라도 입 밖에 낸 약속은 지키는 것이 사회생활의 기본이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말은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법률생활의 기본원칙인 로마법언이 되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약속을 못 지킬 수도 있다. 그러나 피치 못할 사정의 변경이 있어야 하고 최소한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
더구나 만인을 상대로 하는 정치인은 더욱 그러해야 한다. 그러나 미안해 하기는커녕 오히려 뻔뻔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신라의 화랑들은 신의를 지키는 것을 목숨으로 했다. 사다함이 무관랑과 생사지교를 맺었는데 무관랑이 죽자 사다함은 슬피 울다가 7일 만에 자신도 죽었다.
중국 전국시대의 위문후는 오늘날 공원관리소장에 해당하는 우인(虞人)에게 모월 모일 모시에 행차하겠노라고 약속하였다.
그날 비는 오고 대신들과 벌린 주연이 한참 무르익었으나, 문후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교외로 나갔다. 비가 오니 연기 통보하자는 신하들의 반대를 무릎 쓰고 일개 공무원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위(魏)나라에 천하의 인재가 모여들고 부국강병을 이룬 것은 당연지사다.
선진국 국민은 약속을 중하게 여긴다.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있는 사회가 된 다음에 비로소 국민화합과 국가발전을 논할 수 있지 않을까?
▶️ 季(계절 계)는 ❶회의문자로 禾(화)는 벼, 보리 따위의 곡식, 子(자)는 아이의 의미로, 季(계)는 벼 따위가 늦되다, 키가 작다, 젊다의 뜻이 있다. 형제(兄弟)를 나이의 차례로 伯(백), 仲(중), 叔(숙), 季(계)라 한다. 또 계절(季節)을 이른 쪽에서 孟(맹), 仲(중), 季(계)로 나눈다. ❷회의문자로 季자는 ‘계절’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季자는 禾(벼 화)자와 子(아들 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子자는 포대기에 싸여있는 어린아이를 그린 것이다. 季자는 이렇게 ‘아이’를 그린 子자에 禾자를 결합한 것으로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어린 벼를 뜻했었다. 그러나 후에 ‘계절’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본래의 의미는 더는 쓰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季(계)는 성(姓)의 하나로 ①계절(季節) ②끝, 마지막 ③막내 ④철(석 달) ⑤말년(末年), 말세(末世) ⑥젊다, 어리다 ⑦쇠미(衰微)해지다(쇠잔하고 미약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한 해를 날씨에 따라 나눈 그 한 철을 계절(季節), 1년에 네 번 정기적으로 철마다 간행함을 계간(季刊), 계간으로 펴내는 회보 따위를 계보(季報), 상대자를 높이어 그의 아우를 이르는 말을 계씨(季氏), 사내 동생을 계방(季方), 아버지의 막내 아우로 막내 삼촌을 계부(季父), 계부의 아내를 계모(季母), 맨 끝으로 난 아들로 막내 아들을 계자(季子), 맨 나중에 낳은 딸로 막내 딸을 계녀(季女), 아우의 아내로 제수를 계수(季嫂), 새끼 손가락이나 새끼 발가락을 계지(季指), 손아래 누이의 남편을 이르는 말을 계매(季妹), 일년 가운데 마지막 달을 계월(季月), 어떤 시대나 세기를 셋으로 나누었을 때 맨 끝 무렵을 계엽(季葉), 겨울의 계절로 겨울철을 동계(冬季), 여름의 계절로 여름철을 하계(夏季), 많은 동생들을 군계(群季), 한 철의 반이나 한 해의 반을 반계(半季), 나이가 젊고 세상 물정에 어두움을 혼계(昏季), 계포가 한 번 한 약속이라는 뜻으로 초나라의 계포는 한 번 승낙한 일이면 꼭 실행하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음에서 비롯하여 틀림없이 승낙함을 뜻함을 계포일낙(季布一諾), 계찰이 검을 걸어 놓다는 뜻으로 신의를 중히 여김을 계찰괘검(季札掛劍), 계씨와 맹씨 사이에 해당하는 대우를 하라는 뜻으로 상대편을 보아서 적절하게 접대하라는 말을 계맹지간(季孟之間), 형제의 차례를 나타내는 말을 백중숙계(伯仲叔季) 등에 쓰인다.
▶️ 札(편지 찰/뽑을 찰)은 형성문자로 扎(찰)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나무 목(木; 나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乙(을→찰)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札(찰)은 ①편지(便紙) ②패, 조각 ③공문서(公文書) ④미늘(빠지지 않게 만든 작은 갈고리) ⑤돌림병, 전염병(傳染病) ⑥소리의 형용(形容) ⑦뽑다, 뽑아내다 ⑧꺾다 ⑨일찍 죽다, 어려서 죽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대쪽 간(簡)이다. 용례로는 간략하게 기록하는 일 또는 기록하는 책을 찰기(札記), 경쟁 입찰 따위에서 권리를 얻는 일을 낙찰(落札), 봉한 문서를 함찰(緘札), 성명이나 소속 등을 적어 달고 다니는 헝겊 또는 종이나 나무쪽을 명찰(名札), 답장으로 오가는 편지를 반찰(返札), 몹시 긴요한 내용의 편지를 긴찰(緊札), 차표나 입장권 따위를 들어가는 어귀에서 조사함을 개찰(改札), 입찰한 결과를 견주어 조사함을 개찰(開札), 기차표나 비행기표 따위를 검사하는 일을 검찰(檢札), 머리를 숙여 보낸 편지라는 뜻으로 상대방이 보낸 편지를 높이어 이르는 말을 부찰(俯札), 짤막한 내용의 편지를 척찰(尺札), 입찰한 사람들 가운데서 알맞은 사람을 골라 뽑아 정함을 낙찰(落札), 계찰이 검을 걸어 놓다는 뜻으로 신의를 중히 여김을 계찰괘검(季札掛劍) 등에 쓰인다.
▶️ 掛(걸 괘)는 ❶형성문자로 挂(괘)는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재방변(扌=手; 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卦(괘)로 이루어졌다. 손으로 건다는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掛자는 ‘걸다’나 ‘매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掛자는 卦(걸 괘)자와 手(손 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卦자는 흙과 점괘를 함께 그린 것으로 ‘점괘’나 ‘걸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걸다’라는 뜻을 가진 卦자에 手자가 더해진 掛자는 손으로 무언가를 건다는 뜻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掛자가 ‘나누다’나 ‘구분하다’라는 뜻으로 쓰였던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또 이전에는 挂(걸 괘)자가 ‘걸다’라는 뜻으로 쓰였었지만, 후에 掛자가 뜻을 대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설문해자의 해석이 모두 맞는 것은 아니니 참고만 하는 편이 좋다. 그래서 掛(괘)는 ①걸다, 매달다 ②입다, 걸치다 ③나누다, 구분하다 ④도모(圖謀)하다, 꾀하다 ⑤등록(登錄)하다 ⑥건너다, 통과하다 ⑦(마음이)끌리다 ⑧옷, 의상,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달 현(懸)이다. 용례로는 기둥이나 벽에 걸 수 있게 된 거울을 괘경(掛鏡), 마음에 두고 잊지 않음을 괘념(掛念), 걸어놓고 보는 학습용의 그림이나 지도를 괘도(掛圖), 걸어 놓는 시계를 괘종(掛鐘), 이름을 숨기고 게시하는 글을 괘서(掛書), 마음에 두고 잊지 아니함을 괘심(掛心), 걸어놓고 보는 일력이나 달력을 괘력(掛歷), 갓을 벗어 건다는 뜻으로 관직을 버리고 사퇴하는 것을 괘관(掛冠), 망할 조짐을 망괘(亡掛), 여러가지를 한데 모아 걸어 놓음을 총괘(叢掛), 끈으로 묶어서 매닮을 조괘(弔掛), 계찰이 검을 걸어 놓다는 뜻으로 신의를 중히 여김을 계찰괘검(季札掛劍), 허유가 나뭇가지에 표주박을 걸었다가 시끄러워서 떼어버렸다는 뜻으로 속세를 떠나 청렴하게 살아가는 모양을 허유괘표(許由掛瓢), 소의 뿔에 책을 걸어 놓는다는 뜻으로 소를 타고 독서함을 이르는 말을 우각괘서(牛角掛書), 함께 말할 가치가 없음을 부족괘치(不足掛齒), 짧은 실 한 토막도 걸리지 않는다는 촌사불괘(寸絲不掛), 약을 걸어 놓는다는 뜻으로 약국이 영업함을 일컫는 괘약(掛藥) 등에 쓰인다.
▶️ 劍(칼 검)은 ❶형성문자로 剣(검)의 본자(本字), 劔(검)과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선칼도방(刂=刀; 칼, 베다, 자르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뾰족하다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僉(첨, 검)으로 이루어졌다. 끝이 날카롭게 뾰족한 칼의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劍자는 ‘칼’이나 ‘베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劍자는 僉(다 첨)자와 刀(칼 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僉자는 많은 사람이 밖에 나와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모두 다’나 ‘남김없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런데 금문에서는 金(쇠 금)자가 들어간 鐱(가래 첨)자가 ‘칼’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소전에서는 이것이 칼과 관계된 글자임을 뜻하기 위해 刀자로 바뀌면서 지금의 劍자가 만들어졌다. 사실 劍자는 칼 중에서도 ‘양날 검’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劍자에 ‘모두 다’라는 뜻을 가진 僉자가 쓰인 것도 양쪽에 날이 있는 검을 뜻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한(漢)나라 때부터는 이 둘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지금은 큰 구분 없이 ‘칼’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劍(검)은 (1)무기로서의 긴 칼 (2)군인들이 사용하던 긴 칼의 뜻으로 ①칼, ②검법(劍法; 칼을 쓰는 법), ③찌르다 ④베다 ⑤죽이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칼 도(刀)이다. 용례로는 검술에 뛰어난 사람을 검선(劍仙), 검술이 있는 협객을 검협(劍俠), 검술에 조예가 뛰어난 사람을 검객(劍客), 검술을 닦은 사람을 검가(劍家), 칼을 잘 쓰는 수법을 검술(劍術), 검술로 몸과 마음을 단련하여 인격의 수양을 도모하는 일을 검도(劍道), 검술에 능통한 사람을 검사(劍士), 허리에 띠게 만든 긴 칼을 장검(長劍), 짧은 칼을 단검(短劍), 보배로운 칼을 보검(寶劍), 총 끝에 대검을 꽂음을 착검(着劍), 이름난 훌륭한 칼을 명검(名劍), 찌를 듯이 날카로운 말을 설검(舌劍), 오줌을 검사함을 요검(腰劍), 뱃속에 칼을 품는다는 뜻으로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품고 있음을 이르는 말을 복검(腹劍), 불효하고 불경하고 무자비한 사람이 떨어진다고 하는 지옥을 검림지옥(劍林地獄), 바람이 칼자루 끝에 있는 작은 구멍을 스쳐가는 미세한 소리라는 검수일혈(劍首一吷)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