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867〉
■ 감초 甘草 (김명수, 1945~)
어느 건재약방 천장마다
황지봉투 속에 매달린 감초여
어느 약탕관, 약봉다리 속에도
빠지지 않고 들어 있는 감초여
오만한 노란색의 얼굴로
건방지게 들어 있는 감초 토막이여
단맛 하나로
오직 달콤한 맛 한가지로
이 세상 온갖 인간들의 병치레에
군림만 하려드는 감초여
'약방에 감초'라는 말이
사실은 비웃음인 줄 모르는 감초여
'약방에 감초'라는 말이
너를 칭송하는 말인 줄만 아는 감초여
네가 없어도, 네가 없어도
사실은 너끈하게
약봉다리가 약봉다리인 감초여
언제까지나
어느 약방 파리똥 앉은 천장마다
매달리려만 드는 감초여, 감초 토막이여.
- 1980년 시집 <월식> (민음사)
*건강을 자신하던 사람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신체의 기능이 저하되고 몸에 이상 신호가 감지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법칙입니다. 이는 곧 노화현상일 것이며, 이럴 때면 병원보다 한의원에 가서 원기회복용 한약재를 처방받아 복용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필수적으로 포함되는 감초는. ‘약방의 감초’라는 속담에서 짐작되듯 한약의 거의 모든 조제약에 가미되는 약초입니다. 이는 쓴맛이 강한 한약재를 단맛으로 중화시키는 역할 외에도 자체적으로도 감초가 해독작용이 뛰어나 독성을 중화시키고 소화 흡수를 증진시키는 효능이 있기 때문이라 하는군요.
이 詩는 '감초'의 특징, 즉 모든 약재에 포함되지만 혼자만으로는 효능이 부족한 약초라는 사실에 기반하여, 그와 같은 내실 없는 인간의 모습을 냉소적인 자세로 비판하고 있는 특이한 작품입니다.
시인은 처음에 한약방에서 흔하게 볼 수 있고 어느 약재든지 포함됨으로서 다소 오만하게 보이는 감초의 모습을 시니컬하게 바라봅니다. 그러면서 '약방에 감초'라는 관습적 표현이 사실은 칭찬보다는 부정적 측면을 부각하는 것임을 지적하며, 한약에는 감초가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비웃습니다.
나아가 의인화된 감초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며 모든 일에 참견하고 군림하려 드는 감초와 같은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우리에게 우회적으로 알려주고 있군요.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