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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적,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안중근이었다. 그래서 내 생애 안중근 전기를 꼭 쓰고 말리라는 생각에 안중근의 모든 기록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다가 풀리지 않는 몇가지 행적들을 발견했고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내린 놀라운 결론. ‘밀정 안중근’
1. 안중근의 부친과 안중근은 동학주도자들을 토벌하여 재산을 축적했고, 스스로도 주둔한 일본군에게 칭찬을 받았다고 자서전에 적었다.
2. 회령전투에서 다른 독립군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만국공법을 핑계로 포로들을 석방시켜 주었다. 그것이 독립군들이 초토화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3. 안중근이 이토히로부미를 암살할 당시 함께한 이들을 보면 더욱 의심스럽다. 같이 회령전투에 참여한 우덕순은 일본군에게 잡혔지만, ‘형무소에서 탈출했다’고 갑자기 나타났다. 우덕순은 아직도 ‘밀정’이었다고 의심을 받고 있고, 실제로 밀정이었다는 일본측의 증언도 있었다. 왜 수많은 동지들을 두고 우덕순을 선택했는가?
4. 우덕순과 함께 참여한 팀원 조도선은 세탁소 주인이었다. 수많은 활동가를 두고 세탁소 주인과 거사를 논의한 것도 의문이다. 그리고 이후 조도선의 행적도 뚜렷한 것이 없다.
5. 당시 최신기종인 브라우닝 자동소총을 구한 것도 의심스럽다. 최재형이 구해주었다손 치더라도 익숙치 않은 권총을 선택한 것도 의외다. 그리고 아무리 명사수라도 한발의 실수도 없이 이토오히로부미를 관통한 것은 믿기 힘들다. 그리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있는데, 검안서에도 나와있듯이 이토오히로부미의 측면으로 총알이 관통했다. 상식적으로 사람의 측면에서 가슴을 관통하게 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어떤 암살범이라도 확실하게 사살하기 위해서는 정면을 볼 때 쏘거나 머리쪽을 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오른쪽 팔을 관통하고 다시 몸통을 관통하는 쪽으로 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사격이다. 거기에 총알은 약 30도 가량 상부에서 아래쪽으로 관통했는데, 그렇다면 안중근의 키가 2미터가 넘는 장신이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아니면 파워레인저처럼 공중제비를 하며 날아올라 쐈든가.
6. 그가 스스로 밝혔듯이 암살 지령을 받았다는 김두성의 정체를 어느 누구도 모른다. 최재형이라고도, 고종이라고도 하는데 이또한 의문스럽다. 본인이 대한민국 의군중장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스스로 결정할만한 위치에 있었고, 사형선고에도 의연했는데 단지 명령에 따랐다고 핑계를 댈만한 사유가 있겠는가?
7. 왜 그를 어떤 절차도 없이 하얼빈에서 뤼순으로 데려갔는가? 러시아는 왜 자신의 지역에서 일어난 범죄 사건을 아무 조건도 없이 일본에게 안중근을 넘겨주었는가? 뤼순은 당시 일본군의 거점지역이었다.
8. 뤼순에 가면 일본이 안중근을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안중근은 알려진 바와 달리 뤼순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은 적이 없다. 자신이 대한의군 중장이라고 했다면 그 조직을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써서 고문을 해야 했는데, 일본은 너무 점잖았다. 그는 여기서, 감옥에서 안응칠 역사도 쓰고 동양평화론도 썼다.
9. 왜 안중근의 유해는 몰래 처리했는가? 사형수의 시신은 가족에 양도되는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통례였다. 일본은 시신마저 감춰야할 의도가 있었는가?
10. 안중근은 암살 이유 중에 이토오히로부미가 천왕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11. 이토오히로부미가 죽고나자 그 이듬해 한일합방이 되었다. 일본의 강경파들은 이토오히로부미의 친한정책을 매우 싫어했다. 그렇다면 안중근의 암살은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가? 암살직후 바로 한일합방이 된 것은 지나친 우연인가?
12. 그가 독립군으로 투신한 동기도 의심스럽다. 이전까지의 행적에 독립을 위한 큰 행보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직접 쓴 자신의 행적에는, 조정관리가 자신의 교회 신도 아내를 빼앗은 것을 보고 이런 나라가 빨리 망했으면 좋겠다고 매우 분노하고 개탄했다.
13. 안중근이 독립군이 되기 직전 진남포에 있을 때, 사업을 했다고 하지만 무슨 돈이 갑자기 생겨 삼흥학교 돈의학교 등 학교를 두 개나 설립할 수 있었을까 의문스럽다.
이외에도 ‘안중근 밀정론’은 수십 수백가지의 증거들을 더 댈 수가 있었다. 그리고 너무 아귀가 짝짝 맞아들어갔다. 지금까지 불투명했던 그의 행적들, 이해가 안되는 행적들이 모두 술술 설명되었다. 그리고 잘 하면 베스트셀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스스로 이 음모이론을 포기한 것은, 더 깊이, 더 자세히 탐구하면서 보게 된 그의 인품과 열정, 그리고 법정 기록과 같은 객관적인 기록들이었다. 온몸을 바쳐 조선의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던 그는 대한민국의 가장 위대한 인물임에 틀림없었다. 그의 총알은 군국주의를 온몸으로 막아내는 방패였지, 전혀 공격의 수단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 의도한 바와 정반대로 ‘예수, 료마, 안중근’이라는 책을 죽기 전에 꼭 쓰고 말리라는 결심을 했다. 세 사람은 공히 30대 초반 같은, 혹은 비슷한 나이에 죽었다. 한 사람은 안중근이 그렇게도 막아내려 애썼던 일본 번영의 시작점을 만들었고, 한 사람은 안중근의 마지막 길에 동행하여 영원히 함께하고 있는 분이다. 첫 문장도 써 놓았다. 비극의 시작은 료마였고, 비극의 끝은 예수였다.(그러니 혹시 앞에 쓴 밀정론 모티브들을 보고 이와 비슷한 음모론을 만들려는 개수엑이가 없었으면 좋겠다)
어제는 온몸을 맞은 듯이 아팠다. 그리고 너무나 황당하고 어이없어 눈물이 났다.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입에서 실실 욕이 나오기도 했다. 내 평생에 가장 가까운 친구.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친구. 나와 함께 인생의 바닥을 함께 거쳐온 친구. 그와 나는 서울역 철거건물에서 함께 지냈고, 신정동 옥탑방에서 아침이면 꽁꽁 언 얼음을 깨고 세수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가 파산했을 때, 나는 주저없이 대구로 내려갔고, 그는 주저없이 나를 데리고 노무현 봉하마을에 데려갔다. 우리는 부엉이 바위 위해서 이렇게 약속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반칙하지 말고 떳떳하게 살자고, 어떤 일이 있어도 억압에 굴하지 말고 자신을 지키자고.
그러던 그가 갑자기 부정선거론을 들고 나타났다. 나는 비상계엄을 선포할 때의 윤석열을 보는 듯 믿기지 않았다. 얼마 뒤 지인들이 내게 문자와 톡을 보내왔다. 내가 항상 자랑스러워하던 친구였기에 내게 ‘뭐라도 말해야하는 것 아닌가’했다. 그래서 나는 하루종일을 고민했다. 그와 절교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고집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설득할 수도 없었다. 나는 고민과 고민과 고민 끝에 그에게 톡을 보냈다. 그 음모론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를 장문으로 보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때까지 ‘자발적인 거리두기’를 하자고 했다. 그도 그 어떤 것도 우리의 관계를 바꿀수 없다고 했고, 그렇게 하자고 했다.
음모론에 빠지는 것 자체는 나쁜일이 아니다. 누구든 그럴 수 있다. 나도 한때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음모론에 빠진 적도 있었다. 타블로의 학력위조를 의심하기도 했다. 음모론은 오히려 무료한 삶에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음모론은 사실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음모론은 권력자에 대한 유쾌한 풍자가 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모든 문학은 음모론에 빚져있다.
그런데 음모론에 빠졌더라도 항상 견지해야할 것이 있다. 첫째는 음모론에 명확한 증거가 있는가? 선관위의 비리가 많다고 해서 그게 부정선거의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그간 가장 많은 비리는 아마도 군납과 관련된 것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김정은의 특수부대원이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법적 권한이 없는 조사를 거부했다고 부정선거라고 해서도 안된다. 옆집 아저씨가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우리집 침대를 들춰보갰다고 해서 내가 거절을 한다고 내가 범인이라고 단정해서는 안된다. 서버를 까지 않는 것이 범인이라고 하는데, 선관위에서도 압수수색을 한다면 응하겠다고 했다. 수개표를 해야한다고 하지만, 전자투표가 조작되는 명확한 증거가 나온다면 수개표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개표함을 옮기지도 말고, 그 어떤 네트워크를 사용해서도 안된다고 한다면, 그건 그냥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라는 자기 주장밖에 안된다. 그리고 실제로도 현재 선거는 수개표를 병행하고 있다.
두 번째는 음모론을 전파하려는 의도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에게도 톡으로 보냈지만, 윤석열은 대통령의 자리에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선관위가 절대권력을 가지고 관련업체와 참관인과 네트워크 회사를 매수하고, 심지어는 관외선거를 조작하기 위해 우체국도 매수해야만 하는데, 그럴 힘이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대통령이라면 아마도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대통령도 말단 공수부대원들조차 통제가 안되는데, 선관위가 이렇게 치밀하게 모든 과정들을 장악한다?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다. 대통령이 선관위가 무서워서, 야당이 무서워서 조사 지시를 못할까? 차라리 ‘명태균 폭로를 막기위해 비상계엄을 했다’는 음모론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어보인다.
윤석열은 자신이 궁지에 물리면, 혹은 뜻대로 안되면 언제나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지탄의 대상을 찾았다. 이른바 ‘관동우물’ 전략인데, 지금까지 이 전략이 100% 성공했다. 조국을 건드릴 때 시작은 위장이혼 문제였는데, 별 성과가 없자 사모펀드로, 그것도 별 효과가 없자 고대 입학으로, 카이스트로, 단국대 인턴으로, 그러다가 지방대 표창장까지 물고 늘어졌다. 이재명을 전방위적으로 물고 늘어지는 것도 비슷한 방식이다. 그렇게 되어서 사회적 지탄을 받을때까지 물고늘어지면서 자신의 미숙함과 야만성을 감추는 것이 본능처럼 내재되어 있다. 지난 해 ‘수능은 교과서에서 내야한다’라는 주정뱅이 임금님 교시를 냈다가, 웃음거리가 되니까 킬러문제로, 사교육 카르텔로 확대되었다. 이 와중에 나는 2,3년에 한번 받을까말까 한 특별점검을 일주일 간격으로 받았다. 그리고 세 번이나 소환을 받았다. 교육청 직원이 나보고 어이가 없어하며 ‘나도 시키니까 하는거다’라고 말했다. 나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킬러문제를 없애겠다고 그렇게 법석을 떨어서 나온 결론이 ‘역대 가장 어려웠던 수능영어’였다. 학생들이 농담으로 킬러는 가고 어쎄씬이 등장했다고 비아냥댔다. 사교육카르텔은 오히려 공교육 교사들의 비리 적발로 끝났다. 어디 이뿐인가? 의대와 의사와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할 문제를, 일단 질러봤다가 의사들이 세게 나오니까 의사들의 비윤리성으로 방향을 몰고 갔다. 무슨 문제든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식이다. 이제 다시 어처구니 없는 내란을 덮을 표적을 찾았다. 부정선거 음모론으로 득을 보는 이는 누구인가? 증거가 있든 없든 자신에게 유리해질 것들이면 무조건 잡고 늘어진다. 자신이 압수수색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검찰보다 위에 있으면서 마치 부정선거 때문에 쓰러진 순교자 가면을 쓴다. 부모가 옆집 식구들 살인을 하고 자식에게 ‘너 먹여살리려고 사람 죽였다’고 감동적이지만 찌질한 부모 변명을 늘어놓는다. 멍청한 자식들은 효심에 ‘우리부모 죄없다’고 부르짖는 꼴이다.
이 긴 글을 몇 번이고 썼다가 지웠다. 혹시나 그 친구가 상처를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괴물같은 내란범이 계속 음모론을 재생산해내고, 또 그것을 확장하는 인간들이 많아지고, 특히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이들이 그렇게 생산을 해낸다면, 대한민국은 미래없는 내전상태가 될 것이 뻔하다. 논리없는 음모론이 확산되면 그 결과는 논리없는 폭력만이 남게 될 것이다. 그 친구도 음모론의 전달자이자 숙주일 뿐이다. 누구든 음모론에 빠질 수 있다. 나도 음모론에 앞장설 수 있다. 이때는 그 숙주를 때려잡기 보다는 바이러스를 죽여야 한다. 탄핵과 징벌이라는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코로나때처럼 나는 가슴아프게 그와 거리두기를 할 수밖에 없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