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과 권력의 양면성
오래전 지인 이야기다. 부동산을 팔고 현금 1억 원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강도를 당할까, 잃어버릴까, 주변 모두가 의심스럽고 불안했다고 한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독점하고 있으면 불안하다. 권력을 찬탈당할까, 주변 사람들을 항시 경계하고 불신한다. 조선의 왕들 중 의심 증세가 심각해 엽기적 행각을 일삼은 왕도 있다. 맏며느리 강빈을 권력 찬탈자로 의심하고 그녀는 물론이고 그 일족과 손자까지 죽인 인조다.
인조의 의심은 병자호란 당시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끌려갔던 강빈이 큰 재물을 가지고 돌아오면서 극에 달했다. 실록은 이를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다. “강빈은 심양에서 돌아온 뒤로 의기양양했다. (중략) 이는 자신을 후원하는 파당이 크게 성하고,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일 터이다. 귀국할 때 많은 금과 비단을 싣고 왔으니 이를 뿌린다면 무슨 짓인들 못 하겠는가.” 그 후 강빈의 어머니와 오빠, 남동생이 처형됐다. 소현세자와 강빈의 세 아들(인조의 손자)마저 제주도에 유배됐다가 죽었다. 인조는 심양에서 돌아온 소현세자가 갑작스럽게 죽자 “밤에 잠자리를 삼가지 않은 소치”라며 강빈을 책망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사이가 처음부터 나빴던 것은 아니다. 강빈이 소현세자와 함께 심양에 볼모로 잡혀갈 때만 해도 인조는 인정 많은 시아버지였다. 강빈의 생리(월경)불순 증상이 심해지자 손수 건칠과 백부자 등 약재를 구해 보내기도 했다. 건칠은 옻을 말린 한약재로, 맵고 더운 성질 때문에 차갑게 응결되거나 막힌 것을 녹이고 뚫는 데 쓰였다. 옻은 잎이 떨어지는 가을부터 겨울까지 가지 끝이 빨갛다. 붉은 것은 불처럼 뜨거운 성질을 가진다. 옻닭을 고아 먹으면 속이 찬 사람도 배 속 냉기가 사라지면서 설사가 멈춘다. 성(性) 능력이 약한 사람도 뜨거운 양기가 솟는다. 보양식에 옻이 많이 들어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옻은 그 맵고 따뜻한 기운으로 끈적이는 피가 차갑게 응결해 생긴 자궁의 어혈을 녹여 배출시킨다. 한의학은 생리가 막히거나 늦어지는 가장 큰 원인을 혈액의 궁전인 자궁이 차가워져 피가 엉기기 때문으로 본다. 옻은 한기(寒氣)가 일으킨 생리불순을 정상으로 회복시킬 뿐 아니라 산후풍이나 관절이 굳어 생긴 저림 증상의 완화에도 좋다. 옻은 나무의 액이다. 껍질에서 주로 채취하지만, 옻나무 가지 끝에서 아래 뿌리까지 모든 부분에 끈적이는 액이 있다. 끈적이는 성질은 풀이나 본드처럼 이어주는 성질을 가지므로 근육이 파열되거나 뼈가 부러진 데 쓰면 신기할 정도의 치료 효능을 발휘한다.
하지만 옻을 먹고 두드러기 등 피부 알레르기가 생길 수 있다. 이는 게장을 바르면 사라진다. 옻의 양기를 게의 음기가 중화시키기 때문이다. 게는 달(月)처럼 차가운 음기를 가지고 있는데, 실제 배 속 부분은 달의 크기에 따라 커졌다 줄었다 한다. 심지어 게를 갖다 대면 옻은 물처럼 변해 다시 응결하지 못한다.
우리 역사에 옻이 처음 등장한 것은 낙랑고분의 칠반명문(漆盤銘文)이다. 우리 옻 품질의 우수성이 당나라에까지 알려져 수출했다고 한다. ‘신라칠’이라는 말이 만들어질 정도. 중국은 인공을 가해 네 가지 색을 만들어 썼지만, 우리 칠공예는 검은색 위주였다. ‘칠흑 같은 밤’이라는 말도 거기서 유래했다. 옻은 잘 쓰면 약이 되지만 잘못 쓰면 두드러기를 일으키는 독이 된다. 권력도 민중의 삶을 바꾸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며느리와 손자를 죽이는 악마가 된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