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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미중 패권 경쟁’의 시대가 도래했다. 2018년 미중 무역 분쟁에서 시작된 미국과 중국은 무역을 넘어서 패권의 범주에서 부딪히고 있다. 지난 5월 20일 발표된 G7 공동성명에서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들은 타이완과 티베트, 신장 지역을 모두 언급하며 “어떠한 힘이나 강압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1)
이에 중국도 즉각적으로 나섰다. 중국은 이번 G7을 주최한 주중 일본 대사를 초치하고 “타이완 문제는 중국의 핵심이익 중 핵심이며, 이들 지역에 대한 외부 세력의 간섭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반발했다. 또한 사이버 보안 위험을 이유로 미국 마이크론사의 반도체 구매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무역과 투자를 중심으로 긴밀히 협력 중
하지만 양국은 경쟁을 하면서도 긴밀한 물밑 협력을 전개하고 있다. 일례로, 양국의 교역액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22년 양국의 교역액은 전년동기대비 5% 증가한 6,906억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갱신했는데, 이는 미중 무역분쟁이 시작된 2018년의 교역액을 뛰어넘는 수치다. 미국은 중국의 최대 수출대상국이자 4대 수입대상국이며, 중국도 미국의 3대 수출대상국이자, 최대 수입 대상국이다.
경제학에서 상대적인 비교우위 차이로 무역이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양국의 후생이 모두 증가한다고 가정했을 경우, 무역 활성화는 양국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할 수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교수도 한 나라가 원하는 물건을 수입함으로써 국민의 생활 수준이 향상된다 설명했다. 이처럼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관계 속에서도 서로의 필요에 의해 미중 간 무역은 늘어났다.
투자 측면에서도 양국의 디커플링은 보이지 않는다. 2021년 미중 무역분쟁과 COVID-19의 여파로 제조업의 탈중국 논란이 거셌으나 중국의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액은 1,810억 달러로 전년동기대비 21% 증가했다. 2022년에도 미국의 대중국 견제와 압박이 거셌으나 중국의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액은 전년보다 증가한 1,891억 달러를 기록했다. 2016년 이후, 6년 연속 중국 시장을 향한 해외자본의 러브콜로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액은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전 세계적으로 탈중국의 목소리가 높았으나 세계 자본은 오히려 중국에 대한 투자를 확대했다. 대부분의 대중국 해외직접투자가 홍콩, 싱가포르 등 조세회피처를 통한 투자이다. 이 때문에 2021년 UN 산하 무역개발협의회(UNCTAD)는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미국 자본의 대중국 투자 비중이 가장 높을 것으로 추정했다.
중국의 미국 투자도 활발하다. 미국 정부는 자국 첨단기술 기업에 대한 중국 자본의 투자를 제한하고 있지만, 2021년 중국의 해외직접투자 중 미국의 비중이 가장 크다. 중국의 최대 투자 지역은 미국이며 그 다음으로는 호주이다. 중국의 대미 투자 비중은 호주의 2배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무역과 투자 측면에서 바라 본 양국의 관계는 매우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양국은 정치적으로는 패권 경쟁의 양상을 보이지만, 기업을 중심으로 경제적으로는 매우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최근 미국 정치 및 기업가들도 미중 협력 강조
최근 미국 정치권에서도 이 같은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 4월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한 강연에서 최근 미국의 정책은 “과도한 중국 의존으로 발생하는 리스크를 줄이려는 시도이지, 중국과의 디커플링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도 “중국 경제와의 디커플링은 큰 재앙이 될 수 있다”며 중국과의 관계 유지를 강조했다.
여기에 7월 18일에는 중국의 오랜 친구 키신저 전 장관이 중국을 깜짝 방문했다. 미중 화해 및 수교의 주인공인 헨리 키신저의 올해 나이는 100세다. 그는 시진핑 주석과 국방장관 등을 면담한 후 “미중이 소통을 강화하고 양국 관계에 긍정적 성과를 창출해 세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존 케리 미국 기후변화 특사도 최근 중국을 방문해 리창 국무원 총리 등 고위급 인사들은 잇따라 만나고 돌아갔다.
미국 경제계에서도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금년 상반기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0)가 중국을 방문해 중국 사업의 중요성과 향후 계획을 논의했다. 가장 미국스러운 기업 포드는 중국 업체(CATL)와 자동차 배터리 합작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반도체기업 최초로 시가총액 1조 달러 클럽에 가입한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는 “미국의 대중국 첨단 반도체 수출 규제가 오히려 중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기업들도 중국 시장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미중 양자 택일’을 회피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중국의 리오프닝이 본격화되자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프랑스, 독일, 스페인 지도자도 중국과 경제적 협력에 대해 논의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위안화 사용을 공식화하며 석유 대금을 위안화로 결제하기 시작했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도 중국과 무역 시 위안화를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6월 14일 중국을 방문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미중 양국 간의 민간협력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는 ‘제로 코로나’ 정책 이후 것은 3년여 만에 시진핑 주석이 외국 기업인을 만난 것이다. 지난 2016년 빌 게이츠는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과 베이징시 정부, 칭화대가 함께 설립한 글로벌의약품연구개발센터(GHDDI)에서 향후 5,000만 달러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글로벌 보건을 위한 미중 민간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중국 시장의 성장 가능성과 한국 경제
모든 중국인을 대상으로 바늘 하나만 팔아도 14억 개를 팔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세계 최대 규모의 시장이 우리 바로 옆에 있다. 향후 중국이 보수적으로 연평균 3%씩 성장한다고 가정해도 24년 뒤면 경제 규모가 현재의 2배 수준이 될 것이다. IMF와 골드만 삭스는 각각 2028년과 2035년 중국이 GDP 규모에서 미국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로서는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는 시장이다.
문제는 우리의 입장이다. 최근 한국의 외교 정책이 균형을 잃고 있다는 의견이 다수 제기되고 있다. 오슬로 국립대학의 한국 전문가 박노자 교수는 최근의 이러한 대외 정책 방향에 대해 ‘아쉽다’라고 표현했다. 한국의 국익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타이완 문제는 남북한 문제처럼 국제문제”라고 언급하며 중국 정부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이는 한국 역대 정부가 ‘안미경중(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 속에서 균형외교를 유지하던 태도와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향후 30년간 미중 패권 경쟁을 상수로 두었을 때, 우리는 최대한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잡은 물고기에 밥 안 준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만약 어느 한 쪽으로 확실히 기운다면 더 이상 양쪽으로부터 실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글로벌 패권 경쟁 – 경제, 국제규범, 기술혁신
그렇다면 향후 미국과 중국은 어떤 방식으로 경쟁과 협력을 지속할까? 과거 영국과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부상한 과정을 살펴 보면, 크게 3가지 요인으로 구분해 분석할 수 있다. 우선 하드파워로 대표되는 경제 규모다. 경제력은 국방 능력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높은 구매력을 통해 다른 국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이는 중국이 곧 미국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높다.
두번째는 소프트파워로 대표되는 국제규범 창출 및 재편 능력이다. 미국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브레턴우즈 체제와 UN 창설을 주도하며 세계 패권국가로 부상했으며, 현재까지도 UN 안보리 상임이사국, IMF 및 세계은행의 최대 지분율 등을 바탕으로 세계 정치경제 질서를 이끌고 있다.
중국도 일대일로 구상을 발표하고 상하이협력기구,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등을 설립하며 국제규범 재편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소프트파워는 명품 브랜드와 같이 시간과 신뢰가 결합되어 만들어지기 때문에 장기간 미국의 우위가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마지막 남은 글로벌 패권 경쟁의 핵심 요소는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가 결합된 기술혁신 분야다. 영국과 미국은 각각 1, 2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며 세계 최강대국으로 올라섰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중국도 2015년 ‘중국제조 2025’를 발표하며 반도체, AI, 전기차 등 최첨단 분야에서 미국의 기술력 추격을 선언했지만, 오히려 ‘미중 무역 분쟁’이라는 역풍을 맞았다.
또한 최근 미국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부품인 반도체에 대한 대중국 견제에 집중하고 있다. 작년 10월에는 첨단 반도체 장비의 대중국 수출을 금지했으며, 최근에는 네덜란드와 일본을 동참시켰다. 이로 인해 중국 반도체 산업은 실질적인 타격을 입었으며, 기술 격차를 단기간에 좁히기는 매우 어려울 전망이다.
여기에 한국이 맞물려 있다. 미국은 반도체 지원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을 통해 한국을 비롯한 제3국과 중국의 연결고리를 끊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반도체 지원법의 경우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할 경우 대규모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조건으로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국가와 반도체 기업의 제조 능력 확대를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즉 현재 중국 내 생산 공장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설비 증설을 금지하고 있다. 이는 설비 유지 보수 및 업그레이드가 필수적인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장기적으로 중국 설비의 폐쇄 및 해외이전을 강요하는 장치다.
한편 중국도 경제적 수단을 통해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타이완 발언’을 기점으로 사드 사태 이후 완화 중이던 경제 제재를 다시 강화하는 모양새다. 최근 한국 가수의 중국 방송 출연이 전격 취소 되었으며, 한국에 대한 단체관광 비자를 불허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은 안보를 미끼로 경제적으로 양쪽에서 치이고 있다.
제3국가들과 공동의 목소리로 실리적 균형외교 지향해야
평택을 보면 우리의 복잡한 지경학적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평택에는 중국으로 향하는 한국의 최대 수출 품목 반도체 공장이 자리잡고 있는 동시에 중국을 겨냥하고 있는 주한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경제와 군사력을 중심으로 대치하고 있는 미중 패권 경쟁이 한반도 서해에서 펼쳐지고 있다. 만약 중국이 타이완을 무력 침공하고 미군이 참전한다면 평택과 사드기지가 위치한 성주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
우리도 이제는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한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나 최근 주목받고 있는 ‘2인자의 불안감’2) 등의 분석은 양국의 무력 충돌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만약 두 국가가 충돌한다면 한반도에도 막대한 피해가 돌아올 수 있다.
우리와 유사한 입장의 국가들도 많이 있다. EU와 ASEAN 등도 양국으로부터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한국은 이들과 함께 공동의 목소리를 내어 미중 패권 경쟁이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을 낮춰야 한다. G2를 제외한 제3세계의 연대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과거 베스트팔렌 조약과 UN 등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국제규범이였지만, 인류 역사에서 세계 평화 유지에 막대한 공헌을 했다.
미국과 중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우리의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실타래와 같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 국제환경에서 한국은 기회와 위협의 선택지를 명민하게 저울질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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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 글은 2023년 6월 21일 인천일보에 실린 “급변하는 국제 정세… 균형 있는 실리외교 펼쳐야”를 수정, 보완한 기고문입니다.
2) 할 브랜즈, 마이클 베클리 교수는 패권 경쟁에서 충돌이 발생하는 원인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아니라, 2인자가 성장이 정체될 때 불안감을 느끼고 무리한 충돌을 일으킨다고 분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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