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국지 [列國誌] 672
■ 2부 장강의 영웅들 (328)
제10권 오월춘추
제 41장 춘추(春秋), 덧없는 사라짐이여 (4)
먼동이 틀 무렵 부차(夫差)는 겨우 전투 상황을 살펴볼 수 있었다.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사방 어느 곳이고 보이는 거라곤 월(越)나라 군사뿐이 아닌가.
오(吳)나라 군사는 이미 반 이상이 죽은 것이었다.
부차(夫差)는 자신도 모르게 병차의 말머리를 북쪽으로 돌렸다.
장수와 군사들도 일제히 달아나기 시작했다.
부차는 입택(笠澤)이란 곳까지 달아나서야 겨우 패잔병을 수습했다.
무엇보다도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었다.부차(夫差)는 장수 서문소를 불러 명했다.
"적병이 이 곳까지 추격할 리는 만무하다. 우선 밥을 지어 기운을 차리도록 하자."
서문소(胥門巢)가 고개를 저으며 간(諫)했다."어쩐지 이 곳은 살기가 흉흉합니다.
적병이 매복해 있을지 모르니, 서둘러 오성으로 들어가는 것이 낫겠습니다."
"너는 어찌 그리도 겁이 많으냐! 그러기에 간밤의 싸움에서 패한 것이 아니냐.
잔소리 말고 밥부터 지어라."
부차의 꾸짖음에 서문소(胥門巢)는 군사들에게 밥을 지을 것을 명했다.
그때였다.주변을 살피던 한 초병이 급히 달려와 보고했다.
"서쪽 언덕 뒤편에서 한 무리의 적병이 이 곳을 향해 돌진해 오고 있습니다."
그랬다.입택 근처의 언덕 뒤에 숨어 있다가 오군(吳軍)을 발견하고 공격해온 군대는
월나라 장수 주무여(疇無餘)가 이끄는 별동대였다.
그는 범려의 지시를 받고 진작에 그 곳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부차(夫差)는 황급히 배고픔도 잊고 서둘러 병차에 올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왕이 이러하니 그 밑의 장수들과 군사들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월군 장수 주무여(疇無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뒤쫓아가 오군을 유린했다.
그바람에 오나라 장수 서문소(胥門巢)와 공자 고조(姑曹)가 전사했다.
오왕 부차(夫差)는 더 이상 싸울 마음을 잃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 오성 안으로 들어갔다.
성문을 닫아걸고 일체 싸움에 응하지 않았다.
마침내 월왕 구천(句踐)은 횡산을 경유하여 오성으로 진격해 들어갔다.횡산 밑으로
계곡물이 하나 흐르는데, 월군이 이 계곡을 건너갔다 하여 월래계(越來溪)라는 이름이 붙었다.
싸움의 대세는 이미 판가름이 났다.
남은 것은 오성을 함락하고 부차(夫差)를 사로잡는 일뿐이었다.
구천(句踐)은 오성 교외에 이르러 영채를 세우고 겹겹이 오성을 에워쌌다.
그러나 일찍이 경험했듯 오성은 견고하기 그지 없었다.
오자서가 중원성들의 장점만을 모아 축조했기 때문이었다.
이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구천(句踐)은 조급하게 성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는 장기전에 대비하여 서문(胥門)밖 교외에 또 하나의 성을 쌓았다. 오로지 오성을
공격하기 위한 성이었다. 구천은 그 성의 이름을 월성(越城)이라 명명했다.
월왕 구천(句踐)은 범려, 문종, 주무여 등을 불러놓고 오성을 공략할 일을 의논했다.
"그대들도 알다시피 오성(吳城)은 퍽 견고하오. 웬만한 방법으로는 깨뜨릴 수 없소.
계책이 있는 사람은 말해보시오."이번 싸움에 공이 큰 주무여(疇無餘)가 대답했다.
"단시일 내에 오성을 공략하는 방법으로는 딱 한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화공(火攻)입니다.
바람이 몹시 부는 날 오성 안팎으로 불화살을 쏘아 날리면 오성은 삽시간에 불바다가 될 것이며,
그리 되면 제아무리 부차라 하더라도 항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구천(句踐)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절묘한 계책이오. 이제야 우리가 오성(吳城)을 깨뜨릴 수 있겠구려."
그때였다.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범려(范蠡)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안 됩니다. 왕께서는 화공을 쓰지 마십시오.""안 되다니? 그대에게 더 좋은 계책이라도 있소?"
"없습니다. 분명 화공(火攻)을 쓰면 우리는 쉽게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이라는 것은
한 번 일어나면 모든 것을 태워버립니다. 무고한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이 일시에 잿더미가
될 것은 어찌 생각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오성을 폐허로 만들고 돌아갈 것이라면 화공(火攻)을 써도 그만이겠지만,
왕께서는 지금 오(吳)나라를 멸망시키고 이 나라를 다스리려 하십니다. 백성들의 원성을 사고
어찌 그들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다른 것은 몰라도 화공만은 안 됩니다."
범려의 말에 구천(句踐)은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아름답도다, 범려의 말이여!
그대가 아니었더라면 과인은 수많은 백성들로부터 원망을 들을 뻔하였소."
그 무렵.오성(吳城) 안은 분위기가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백성과 군사들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고,
조정 신하들은 어떻게 하면 성밖으로 빠져나가 목숨을 부지할 것인가만 궁리했다.
재상 백비 또한 집 안에 틀어박힌 채 조정에는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오왕 부차(夫差)는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결국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음인가.'
좌우를 둘러보았다.왕손락(王孫駱)이 한 귀퉁이에 서 있었다.부차(夫差)는 힘없이 그를 불러 말했다.
"그대가 나를 대신해서 구천에게로 가 항복을 청해보시오."
왕손락(王孫駱)은 눈물을 뿌리며 성밖으로 나갔다.
관례대로 윗옷을 벗고 등에는 관을 매었다. 월성 앞에 이르러서는 무릎 걸음으로 기어갔다.
왕손락(王孫駱)은 구천 앞에 이르러 부차의 말을 전했다.- 고신(孤臣) 부차는
지난날 회계(會稽) 땅에서 월왕께 큰 죄를 지었습니다. 엎드려 청하노니 우리 오(吳)나라의
항복을 받아주시고, 지난날 제가 월왕께 저지른 죄와 똑같은 벌을 내려주십시오.
그러면 신(臣) 부차(夫差)는 죽을때까지 왕께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 바치겠습니다.
살려만 준다면 개나 말과 같은 수고로움을 다하겠다는 맹세였다.
왕손락을 굽어보는 월왕 구천(句踐)의 눈에 측은한 기색이 감돌았다.
자신이 겪었던 지난날의 굴욕을 떠올리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적막의 시간이 점점 흐르며 구천(句踐)의 눈빛은 점차 부드러워졌다.항복을 수락할 뜻이 분명했다.
그때였다.재상 범려(范蠡)가 얼른 앞을 가로막으며 엄숙한 어조로 간(諫)했다.
"지난날 회계산(會稽山)의 일은 하늘이 월(越)나라를 오나라에 주시려 했던 선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오(吳)나라는 하늘의 뜻을 거역하고 항복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오늘의 일은 하늘이 오(吳)나라를 월나라에 주시려고 하는 축복입니다."
"우리는 오늘과 같은 날이 오기를 20년 가까이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기다려왔습니다.
이제 하늘의 선물을 눈앞에 두고 어찌 그것을 거절하려 하십니까.
왕께서 오늘 하늘이 내린 선물을 거절하시고 항복을 수락하신다면 언젠가는 또다시
부차(夫差)의 노예가 될 거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범려의 이 같은 말에 월왕 구천(句踐)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조금 전과는 딴판으로 냉랭한 눈빛으로 왕손락을 쏘아보았다.
"그대는 돌아가 부차에게 전하라. 나는 오(吳)나라의 항복을 받아들이지 않겠다.
오성을 점령하고 종묘사직(宗廟社稷)을 멸할 때까지 공격을 늦추지 않으리라!"
왕손락(王孫駱)은 울며 돌아갔다.부차(夫差)는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졌음을 알았다.
자신도 모르게 통렬히 외쳐댔다."오자서여, 오자서여! 내가 그대의 말을 듣지 않다가
기어코 이런 꼴을 당하게 되었구려.
그대는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지하에서 통쾌히 웃고만 있을 것인가."
673편에 계속
열국지 [列國誌] 673
■ 2부 장강의 영웅들 (329)
제10권 오월춘추
제 41장 춘추(春秋), 덧없는 사라짐이여 (5)
다음날부터 월(越)나라 군사는 오성(吳城)을 총공격하기 시작했다.북소리가 울리고 함성이 일었다.
범려(范蠡)와 문종(文種)은 집중적으로 남문을 공략했다.낮이고 밤이고 공격을 퍼부었다.
오나라 군사들은 이제 싸울 힘도 없었다.공격을 가한 지 3일째 되는 날 밤,
마침내 남문이 일부 부서졌다.범려(范蠡)와 문종이 앞장서서 성안으로 돌입하려 할때였다.
별안간 하늘에서 날카로운 빛이 쏟아지며 남문 위를 환하게 비쳤다.
그 빛덩어리는 차츰 하나의 형상으로 바뀌어갔다."앗...............!"
월(越)나라 군사들 사이에 경악의 외침 소리가 일었다.모두들 그 자리에 멈춰섰다.
보라! 남문 위 허공에 한 사람의 머리가 둥실 떠 있는 것이 아닌가.그것은 다름 아닌 오자서의 얼굴이었다.
밤하늘에 떠 있는 오자서(伍子胥)의 얼굴 크기는 병차 바퀴만 했다.
"이럴 수가!............"범려(范蠡)를 비롯한 월나라 군사들은 자기 눈을 의심했다.
한순간 오자서(伍子胥)의 두 눈에서 번갯불이 번쩍 일었다.
흐트러진 머리칼과 수염이 일시에 꼿꼿하게 곤두섰다. 오자서의 두 눈에서 발하는 광채는10리 밖까지
비추었다.그 광경을 보고 월군(越軍)이 어쩔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별안간 폭풍이 몰아쳐왔다.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며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진동했다.
모래가 온 천지를 뒤덮고 급기야는 돌멩이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월(越)나라 군사 중에는 바람에 날아가거나 돌멩이에 맞아 죽은 자가 속출했다.
강변에 매어둔 배들도 닻줄이 끊어져 강 한가운데로 떠내려갔다.
범려(范蠡)와 문종(文種)은 당황함을 감출 수 없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월왕 구천(句踐)이 달려와 초조하게 외쳤다.
"이게 무슨 조화인가. 오자서(伍子胥)는 죽어서도 오(吳)나라를 지키려 함인가."
"잠시 기다려보십시오. 신이 오자서를 설득해보겠습니다."범려(范蠡)와 문종(文種)은 입술을
깨물며 결심했다.옷을 벗어던지고 반벌거숭이가 된 채 쏟아지는 빗발 속으로 걸어나갔다.
그러고는 오성 남문을 향해 꿇어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오자서여, 오자서여. 그대는 부차(夫差)의 포악함을 잊으셨는가? 그대의 죽음을 잊으셨는가.
그대의 유언을 잊으셨는가?"얼마 후, 바람과 비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제야 월군(越軍)은 진정했다.범려(范蠡)와 문종(文種)은 군막으로 돌아가 쓰러지듯 자리에 누웠다.
그 날 밤이었다.범려는 꿈을 꾸었다.
오자서(伍子胥)가 하얀 옷을 입고 하얀 말이 모는 하얀 수레를 타고 달려왔다.
얼굴은 살아 있을 때와 다름없이 웅장하고 비범했다.오자서가 수레를 멈추고 우렁찬 음성으로 말했다.
- 나는 너희 월(越)나라가 쳐들어올 줄 알고 있었다.그래서 죽을 때 동문에 나의 머리를 매달아달라고
유언했다. 월나라가 오(吳)나라로 쳐들어오는 것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오왕 부차(夫差)는 나의 머리를 동문에 내걸지 않고 남문에 내걸었다.
- 아아, 오(吳)나라에 대한 충성을 어찌 하루아침에 버릴 수가 있겠는가. 나는 오성을 지키기 위해
비바람을 일으켰다.하지만 오나라가 멸망하는 것은 이미 하늘의 뜻이다.
내 어찌 하늘의 뜻을 막을 수 있으리오. 너희가 오성(吳城)으로 들어가려거든 동문을 통하라.
내 월(越)나라를 위해 동문의 길을 열어놓으리라!범려(范蠡)는 꿈에서 깨어났다.
그때 마침 문종(文種)이 달려왔다."이상한 꿈을 꾸었소."문종은 꿈 내용을 들려주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범려의 꿈과 똑같았다. 두 사람은 동시에 같은 꿈을 꾼 것이다.
범려(范蠡)와 문종(文種)은 월왕 구천에게로 달려갔다.
꿈 이야기를 들은 구천(句踐)이 기뻐하며 지시했다."오늘부터는 동문을 공격하시오!"
월군은 물길을 따라 동문으로 이동했다.그들의 전함이 동쪽 사문(蛇門)과 장문(匠門) 가까이
다가갔을 때였다.별안간 태호의 물이 끓듯 넘쳐흐르더니 동쪽으로 들이닥쳤다.
그 물살은 여간 세차고 흉흉한 게 아니었다.
급류는 사문(蛇門)과 장문(匠門) 사이의 모퉁이에 가서 세게 부닥쳤다.
그 바람에 성벽 일부가 무너지며 큰 구멍이 생겨났다. 밀어닥치는 물살을 따라
아름다운 물고기들이 무수히 성안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있었다.범려(范蠡)가 뱃전에
서서 소리쳤다."이것은 오자서(伍子胥)가 우리를 위해 길을 열어주시는 것이다."
월나라 군사들은 일제히 그 뚫어진 성의 구멍으로 뛰어들어갔다.
이로써 오성(吳城)은 월나라 군사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월군(越軍)이 오성 안으로 들어갔을 때였다.한 대신이 달려나와 그들을 맞이했다.
오나라 재상 백비였다.그는 비굴한 웃음을 감추지 않으며 범려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항복하오. 내가 그대를 왕궁으로 안내하겠소."범려(范蠡)와 문종(文種)이 백비의 안내를 받아
왕궁을 들이쳤을 때는 부차(夫差)는 이미 오성을 빠져나간 뒤였다.범려가 군사들을 향해 외쳤다.
"오왕(吳王)을 뒤쫓아라!"
그 시각, 부차(夫差)는 왕손락과 아들 셋을 데리고 서쪽 문을 빠져나가 양산(陽山)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굶주림과 갈증으로 기진맥진했다.
눈앞이 가물거리고 현기증이 일었다.왕손락(王孫駱)과 아들 셋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졌다.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음식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밭으로 들어가 생낟알을 훔쳐 오왕 부차(夫差)에게 바쳤다.
부차(夫差)는 워낙 배가 고팠던지라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마구 씹어먹었다.
겨우 허기를 면한 부차는 땅바닥에 엎드려 흐르는 시냇물을 마신 후 물었다.
"내가 지금 먹은 것이 무엇이냐?""익히지 않은 곡식 알갱이입니다."
문득 부차(夫差)가 탄식했다."지난날 점복가인 공손성(公孫聖)이 내 꿈을 해몽하며 말하기를
'싸움에 패하여 도망다니며 화식(火食)을 못할 것입니다.'라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을 두고
하는 말일 줄이야!"왕손락(王孫駱)이 부차를 위로했다."지난 날을 얘기해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지금은 오로지 몸 숨길 곳을 찾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지난날 나의 요사한 꿈이 이제야 맞았으니 내가 죽을 날도 머지않은 모양이다.
몸을 숨긴들 어디로 숨길 것이며, 숨었다 한들 무엇을 할 것인가?"
절망에 빠진 부차(夫差)는 도망치기를 그만두고 그냥 양산에 머물기로 했다.
다시 왕손락을 돌아보며 물었다."내가 공손성(公孫聖)을 죽이고 그 시체를 양산에다
버리라고 했는데, 그 혼령이 아직 이 곳에 있을까?""왕께서 친히 한 번 불러보십시오.
있으면 대답을 할 것입니다."부차(夫差)는 사방을 둘러보며 크게 소리쳤다.
"공손성아!"- 공손성아........!메아리였다.
그러나 부차의 귀에는 그것이 공손성의 음성으로 들렸다.
다시 외쳐 불렀다.
"공손성아!"- 공손성아............!"
"공손성아!"- 공손성아............!"
세 번 불렀으나 세 번 다 메아리가 되어 산골짜기에 울려퍼졌다.
부차(夫差)는 무서움이 일었다.그때 동편 길에서 한 무리의 군사가 나타났다.
월왕 구천(句踐)이 친히 이끄는 정예 군사들이었다.
그들은 부차(夫差)가 숨어 있는 산골짜기를 겹겹이 에워쌌다.
부차는 거듭 눈물을 흘리며 통탄했다."내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지 않고 구천을 살려주었기 때문에
하늘이 나를 미워하시고 오늘 우리 오(吳)나라를 버리려 하심이로다!"왕손락(王孫駱)이 말했다.
"신이 다시 한 번 가서 월왕에게 간곡히 사정해보겠습니다."부차(夫差)의 눈에 한줄기 빛이 감돌았다.
"가서 말하시오. 한 번만 용서해주면 대대손손 월(越)나라를 섬기며 살아가겠다고."
왕손락(王孫駱)은 산을 내려가 월군 진영으로 갔다.범려가 나와 그를 맞았다.
그러나 범려(范蠡)는 왕손락의 말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자신의 말만 일방적으로 들려주었다.
"부차(夫差)는 여섯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충신 오자서(伍子胥)를 죽였으니 그 죄가 하나요,
바른말을 한 공손성(公孫聖)을 죽였으니 그 죄가 둘이요, 간신 백비의 말만 들었으니 그 죄가 셋이요,
동맹국 제(齊)나라를 아무런 이유도 없이 쳤으니 그 죄가 넷이요."
"또한 우리 월(越)나라를 쳤으니 그 죄가 다섯이요, 아버지의 원수를 갚지 않고
우리 왕을 용서했으니 그 잘못이 여섯이다.그런데도 어찌 살기를 바라는가.
지난날 하늘은 우리 월나라를 오나라에 주었건만 부차(夫差)는 받지 않았다.
이제는 하늘이 오(吳)나라를 우리에게 주셨도다. 어찌 받지 않을 것인가!"
왕손락(王孫駱)은 살아날 수 없음을 알고 눈물을 뿌리며 돌아갔다.
구천(句踐)이 범려를 불러 물었다.
"경(卿)은 저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면서 어찌하여 부차를 잡아죽이지 않는 것이오?"
범려(范蠡)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신하 된 자로서 다른 나라 왕을 함부로 죽일 수는 없습니다. 왕께서 친히 죽음을 명하십시오."
범려의 말뜻을 알아들은 구천(句踐)은 주무여를 불러 보검을 내리며 명했다.
"가서 부차의 목을 끊어오라."
주무여(疇無餘)는 보검을 받아들고 부차가 숨어 있는 산골짜기에 다가가 외쳤다.
"이 세상에 만세를 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은 죽게 마련입니다.
오왕(吳王)께서는 어찌 꼭 우리 월왕의 칼을 받아야만 하겠습니까?"
주무여(疇無餘) 역시 신하 된 자이다.비록 패망한 오왕이지만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이기가
께름칙했다.마지막으로 자결할 기회를 준 것이다.
골짜기를 울려퍼지는 주무여의 외침 소리를 들은 부차(夫差)는 멍한 시선으로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올려다보았다.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이윽고 왕손락(王孫駱)을 돌아보며 말했다."내가 저승으로 가면 무슨 낯으로 오자서를 볼 것인가.
나는 그것이 두려울 뿐이다. 내가 죽으면 너는 나의 얼굴을 비단으로 세 겹 싸다오."
유언을 마치자 부차(夫差)는 허리에 차고 있던 보광검(步光劍)을 뽑아 자기 목을 세차게 찔렀다.
이토록 초라하고 비참한 죽음이 있을까.왕손락(王孫駱)은 자신의 옷을 벗어 오왕 부차의 얼굴을
칭칭 감았다. 그리고는 가죽띠를 풀어 나뭇가지에 매고 자신의 목을 걸었다.
이로써 오(吳)나라는 중원에 모습을 드러낸 지 1백여 년 만에 다시금 그 흔적을 감추고 말았다.
BC 473년, 오왕 부차 23년 11월의 일이었다.
월왕구천(句踐)은 부차를 왕에 대한 예로써 양산에다 장사 지내주었다.
그리고 부차의 아들 셋을 거두어 용미산(龍尾山)에 가서 살게 했다.
아들 삼형제가 살던 용미산 밑 마을을 후세 사람들은 오산리(吳山里)라고 부르고 있다.
674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