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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드리겠습니다"
동네 곳곳에 쩡쩡 울려퍼지는 이장님의 투박한 목소리. 스튜디오는 이장님 사랑방, 수신기는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 나무 위 확성기. 지금도 시골 일부 마을에 남아있는 '동네 방송'입니다.
그런 '동네 방송'이 지금 도회지에서 부활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신도시 서현역 인근 상가빌딩 11층. 100평방미터(30여평) 남짓한 공간에 스튜디오 2
개를 갖춘 방송국이 있습니다. 소출력방송 'FM분당(90.7MHz)' 방송국입니다. 외국에서는 커뮤니티 라디오
(공동체 방송)'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1월 28일 오후 4시 40분.
중년으로 보이는 신사가 소파가 앉아 연필로 무언가를 쓰고 있었습니다. 1990년대 거의 매일 TV뉴스에
나와 '도쿄에서 정용석입니다'로 화면에서 사라지던 정용석 특파원. 그는 1968년 통신사 기자로 출발해 한
국방송 KBS에서 기자로 특파원으로 해설위원으로 31년간 브라운관을 누빈 언론인입니다.
벌써 60대 중반에 접어든 그는 지금 기자도 특파원도 아닌 '동네 방송' FM분당을 이끄는 대표로 변신해
'제2의 방송 인생'을 즐기고 있습니다.
현재 FM분당에서 상근하는 직원은 정 대표와 직원 2명 등 3명 뿐입니다. 정 대표는 이날 자신이 직접 진
행하는 오후 5시 생방송 '차 한잔 합시다' 프로그램의 초청인사와 함께 방송원고를 직접 다듬고 있었던 것
이죠. 방송 섭외와 원고작성에서 진행까지 PD, 작가, 앵커 '1인3역'을 맡은 것이죠. 정 대표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한 시간짜리 생방송을 맡고 있습니다.
생방송에 앞서 그는 방송에 처음 나오는 출연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더 많은 신경을 기
울였습니다.
오후 4시 58분 출연자를 데리고 스튜디오에 들어간 그는 자리를 잡고 이어폰을 낀 후 입을 크게 벌려가
며 목소리 조절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의 자리 앞에는 컴퓨터 모니터와 함께 방송장비가 설치되어 있었습
니다.
오후 5시 정각.
그는 마이크를 당겨 "FM분당 정용석입니다. 차 한잔 합시다"로 생방송 토크 쇼를 이끌어가기 시작했습니
다. 이날 초대 손님은 성남시 재난안전관리과장. 민방위 훈련에 대한 각종 정보를 제공하기 만든 자리였습
니다. 방송시간은 1시간이었지만 30분을 조금 넘기자 나올 내용은 다 나와버렸습니다. 더 이상 묻고 답할
정보가 떨어진 것이죠. 중간 음악을 넣은 정용석 앵커는 초대 손님과 함께 스튜디오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는 긴장한 출연자에게 "내가 진행하는대로 그저 편안하게 따라오면 된다"며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음악이 끝나자 다시 마이크를 잡은 정 대표는 현재 성남시의 한적한 마을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출연
자의 살아가는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습니다. 가볍게 묻고 편안하게 응대하고 방송은 화기애애하게 흘러갔
습니다.
그 순간 정용석 앵커는 질문 아닌 부탁을 했습니다. "이 자리(방송)에서 아버님께 평소 못했던 이야기와
인사 말씀을 올리는 어떻겠습니까"
잠시 당황한 출연자는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말을 이어갔습니다. "평소 아버님께 잘해드리는 게 없어 미
안합니다"며 말을 이어가던 출연자는 마지막에 "아버님, 사랑합니다"고 목청을 높였습니다. 스튜디오 밖에
서 라디오를 듣고 사람들이 갑자기 숙연해졌습니다.
방송 경력 30여년의 베테랑이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일까요. 그런 측면도 많지만 기자가 보기에는 '동네
방송'이 제공할 수 있는 묘미였습니다.
오후 5시 58분.
처음 긴장한 모습으로 스튜디오에 들어갔던 출연자는 웃는 얼굴로 걸어나왔습니다.
정용석 대표의 '차 한잔 합시다' 생방송이 진행되는 그 시각 옆 스튜디오에서는 여성진행자가 이어폰을
끼고 열심히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밤에 방송할 내용을 사전에 녹음하고 있었던 것이죠.
출력 1W로 반경 5km가 가시청권인 FM분당은 매일 오전 7시부터 자정까지 하루 17시간 방송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생방송과 녹음 비율은 8:2로 진행자 대부분은 성남시에 사는 주부 등 자원봉사자들이라고 합니
다. 방송 내용은 성남시와 분당구 등 실생활과 관련이 깊은 정보가 많습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보는 시
시콜콜한 것까지 전하고 있습니다. '동네 방송'이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에서는 정식 명칭이 '소출력 FM방송'인 공동체 라디오 방송은 2004년 11월 16일 경기도 FM분
당과 함께 서울 관악, 마포, 대구 성서 등 모두 8곳이 시범사업자로 선정되었습니다.
당시 KBS 라디오 '생방송, 열린 아침 정용석입니다’를 4년째 진행하던 정용석 해설위원은 'FM분당방송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FM분당의 산파역을 맡았고 뒤에 대표가 되었습니다. FM분당은 이듬해 2005년 4월
4일 첫 시범방송을 거쳐 5월 1일부터 정규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상업광고가 금지된 공동체 라디오 방송의 재원은 중앙정부와 성남시의 지원금 일부와 지역민들의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죠.
정용석 대표는 소출력 FM방송 8개 시범사업자들의 모임인 한국커뮤니티라디오방송협의회 회장으로 공
동체 라디오 방송의 제2 도약에도 각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