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반대를 외치며 길거리를 가득 매운 노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한 손엔 태극기, 다른 한 손엔 미국 국기인 성조기를 들고 흔들고 있다. 200개가 넘는 수많은 나라들 가운데 왜 하필이면 성조기를? 미국 국기라면 좌파들이 일찍부터 미친 개맹키로 게거품을 물고 달려들어 찢어발기고 불로 태웠던, 소위 그들이 말하는 제국주의의 상징이 아니었던가? 노인들이 뭔 억하심정이 있어 이 나라 좌파 나부랭이들을 놀리려고 하는 건 아닐 터이고, 미국에 새삼 아양 떨 일도 짜달 없는 시국에 말이지...
내가 보기에 노인들이 미국 국기를 열심히 흔드는 이유를 굳이 찾아 보자면, -무식한 내가 말하자니 쪼매 쑥스러운 기분은 들지만- 문화인류학(cultural anthropology)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을 듯한데...말하자면, 문화 인류학에서 다루는 '화물 숭배(cargo cult)' 현상을 이해하면 길거리의 노인들이 성조기를 흔드는 알 수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라는 거다.
노인들의 성조기에 뭔 뜬금 없는 화물 숭배라니...19세기 후반부터 피지섬을 비롯한 남태평양의 멜라네시아 제도에 사는 원주민들이 믿었던 화물 숭배는 죽은 조상들이 자기들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가져다 줄 것이란 기대감이 거의 종교적인 자리를 차지한 문화 양식이었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이들의 근거없는 믿음을 미국의 물리학자 파인만(Richard Feynman)이 '화물 숭배(cargo cult)'라고 명명한 이래 널리 통용되어 왔으며,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번역, 출판되어 많이 읽혀져 온 마빈 해리스(Marvin Harris)의『문화의 수수께끼』란 책에도 비교적 재미있게 서술되어 있기는 한데...하지만 정통 문화인류학자들은 '화물 숭배'란 용어의 사용을 꺼리는데, 그 용어가 원주민들의 문화적 생활양식을 대표하는 게 아니라는 이유라는구만.
19세기 후반 미국이나 영국 등 열강들은 남태평양에 있는 식민지에 있는 자국민들에게 항공기를 이용하여 생필품들을 공급해 왔는데, 어느 날 엄청난 크기의 화물이 원주민 마을에 쿵 하는 굉음과 함께 떨어졌다지 뭔가? 원주민들이 좌고우면(左顧右眄)하면서 살금살금 다가가 뚜껑을 열어보니 음식물, 생필품, 옷가지, 생활도구 등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는 게 아닌가. 긍까 원주민들은 '하! 이건 우리 조상님들이 하늘에서 갖고 와 우리들에게 떨어뜨려 주고 가신 거다.' 라고 믿을 수밖에...
그로부터 원주민 사회에서는 하얀 천을 나무 꼭대기에 걸어두고 화물이 제대로 자기들을 찾아오길 기원하고, 점쟁이는 어느 날짜에 화물이 올 것이라 예언하고, 무당은 굿으로 언능 화물을 갖다 주길 빌고, 또 주민들은 힘을 모아 화물기가 착륙할 수 있는 활주로(?)를 새로 마련하는 등 그야말로 화물 숭배는 광신도들(cult)의 행위에 다름아니었다네. 심지어는 존 포럼(John Forum)라는 가상의 이름-아마도 백인인 영국 군인으로 생각되는-을 가진 사람이 화물을 가져다 준다고 믿어 그를 숭배하는 사당을 짓고 수시로 제를 올리고 화물 배송을 빌었다는데...지금도 멜라네시아 제도에 존 포럼을 기리는 사당이 곳곳에 있다니 믿거나 말거나...
우리네 어른들이 성조기를 드는 것은 바로 이와같이 멜라네시아 제도의 원주민들이 화물 숭배를 한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해방 후 남한에 들어온 미국은 우리 민족이 당면한 모든 문제의 해결사였덴 데다, 결정적으로 6.25전쟁으로 나라가 공산주의화 될 결정적인 순간에 미국이 개입하여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주었으니, 이에 비하면 남태평양 제도의 원주민들이 손을 비비며 숭배하는 화물 정도는 잽도 안 되는 것이다. 해서리 우리의 노인들은 오늘도 차가운 바람 몰아치는 길거리에 나가서 한 손에 태극기를, 다른 한 손에 성조기를 들고 흔드는 것이다.
게다가 조선시대에 청나라에 공물(貢物)을 갖다 바치면 황제가 시혜(施惠)의 성격으로 내려주는 물건들을 받아들고 감지덕지(感之德之)했던 데 비해, 미국인들이 베풀어준 갖가지 혜택은 평등관계라는 관점에서 호혜적 공여(供與)의 성격이 보다 강하였다고 볼 때, 지금의 노인들이 미국이란 나라에 대하여 갖는 긍정적인 이미지는 대단하다 할 것이리라. 해서리 그들 노인들은 자유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도와준 미국에 대하여 당연한 심정에서 과거의 지원에 대한 고마움과 미래의 지원을 바라는 마음에 성조기를 들고 흔드는 게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