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부인의 미소
유기섭
그 은은한 미소. 삼척 임원항 언덕배기에서 푸르름이 넘실대는 동해의 바다를 두루 살피며 앉아있다. 단아한 좌상을 보고 있으면 수려한 미모의 여인이라기보다는 위용을 풍기는 조용하지만 강인한 여인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여의주를 문 용의 등에 올라탄 부인의 모습은 1,300여년이 지난 오늘날 보아도 늠름하고 의젓하다. 해당 자치단체에서 부인에 대한 고증과 상상을 동원하여 세운 조각상이라 고하여도 뿜어져 나오는 자태는 인자한 우리의 어머니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옛날 설화를 바탕으로 전개된 부인에 대한 이야기지만 시대적 간극과 배경을 생각하면 파격적이다. 우선 수로부인 조각상의 규모가 대단하다. 지금까지의 예를 보아도 이보다 큰 조각상은 찾아보기 힘들다. 수로부인이 타고 있는 용은 실제로 살아서 용트림하는 듯한 역동적인 모습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형 조각상으로는 미국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을 들 수 있는데 나는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조국의 어머니상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시공의 차이는 있지만 키이우의 조국의 어머니상과 임원항 수로부인 조각상에서 느낀 어머니상의 간절함은 차이가 없었다.
수로부인을 배경인물로 한 가사도 빼놓을 수 없다. 삼국유사에 실려서 전해내려오고 있는 ‘헌화가’와 ‘해가’가 바로 그것이다. 신라 성덕왕(702년∼737년)때 순정공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는 길에 부인인 수로부인이 천길이나 되는 높은 벼랑 위에 핀 철쭉꽃을 갖고 싶어 했다. 모든 사람들이 난색을 표하였으나, 소를 몰고 가던 노인이 꽃을 꺾어주면서 수로부인에게 ‘헌화가’를 지어 바쳤다. 또한 수로부인이 임해정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용이 나타나 수로부인을 바다 속으로 끌고 갔다. 그때 한 노옹이 순정공에게, 근처 백성을 모아 노래 부르게 하고 막대기로 언덕을 치면 부인이 나올 것이다. 라고 하여 그대로 하였더니 수로부인이 나왔다.
수로부인은 헌화가와 해가의 형성 배경을 설명해주는 설화 속의 인물로 보는가 하면 실존인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고 한다. ‘붉은 바위 가에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 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벼랑에 핀 철쭉을 수로부인에게 꺾어주는 노인의 정체가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니 의문이 남는다. 해가와 관련해서 바다의 용이 수로부인을 바다 속으로 끌고가는 사건에서 용이 수로부인의 미모와 수려함에 반하여 시샘을 하여 바다로 끌고 간 것일까.
수로는 용모와 자색이 매우 뛰어나 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번 신물에게 붙들려갔다. 이에 여러 사람이 해가를 부르며 수로부인을 찾았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남의 부녀를 빼앗아간 죄가 얼마나 큰가 네가 만약 거역하고 내놓지 않으면 그물로 잡아 구워먹으리라.’ 공이 부인에게 바다 속의 일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칠보궁전에 음식은 달고 부드러우며 향기롭고 깨끗하여 인간의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부인의 옷에서는 이상한 향기가 풍겼는데 이 세상에서는 맡아보지 못한 것이었다.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하지만 그 후의 이야기는 우리의 상상 속에서 살아날 것이라고 여겨진다.
수로부인의 조각상이 세워진 곳이 바로 수로부인 설화의 배경이 되는 곳이라는데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앞이 탁 트이고 동해의 푸름이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는 곳이어서 더욱 그렇다. 날씨가 청명할 때는 멀리 동해의 울릉도도 조망할 수 있을 만큼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육안으로 보려면 3대에 걸쳐 덕을 쌓아야만 보인다고 하니 그때가 언제일는지. 그렇다고 조바심 낼 수는 없다. 수로부인은 천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지 않는가.
수로부인의 은은한 미소 속에는 어떤 비밀이 감춰져 있을까. 1,300여년 전 일이라 감히 상상에 머물 것이지만 굳이 사연을 캐어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의 잔잔한 미소 가운데는 세월의 무수한 흐름 속에서도 바다를 향하여 미소 지으며 변하지 않는 마음이 영원히 자리할 것이라고 믿고 싶다.
(문학서초 27호 게재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