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界는 苦海요, 四生은 火宅이라! 예천 산골의 회룡대를 오르는 길목인 長安寺에서 이른바 三界火宅이라는 말을 들으니 일순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다. 불난 집에 사는 인생의 괴로움이 무엇인가.
산다는 것이 괴로움의 연속일진대 道를 찾아 용맹 정진은 못하더라도 부러 입에 맞는 음식을 탐하고 몸에 걸칠 산뜻한 날개를 찾아 도는 것은 웃기는 일이 아닌가......그저 맛난 음식 한 접시에 혹하고 한 잔 술에 취하는 중생의 모습은 불에 타 죽을 줄 모르면서 불을 좇는 불나비와 다름이 없을 터인데 그런 줄 알게 되면서도 헛된 것을 찾아 헤매는 것이 또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
차가 풍기의 인삼 시장을 들르기 전 봉황산 浮石寺로 향하며 소수서원이 있는 순흥을 지난다. 순흥이라......세조의 동생 금성대군이 순흥 부사와 함께 단종 복위를 꾀하였다 하여 엄청난 피바람이 불었던 곳이 아닌가.......죄 없는 백성까지 모조리 죽여 피가 내를 이루어 십리를 흘렀다 하고 흐른 피가 그친 마을 이름이 피끝이 마을이라고 했나.
몇 번 다녀간 부석사는 무량수전을 비롯해 국보로 지정된 불교 문화재도 5점이나 있는 고찰이고 전 문화재청장의 말처럼 한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절집중의 하나라 한다. 조계산 선암사의 절집과 비슷한 분위기이다. 가람의 배치와 그 상징하는 바에 문외한인 사람의 눈에도 조화와 절제를 담은 느긋하고 여유로운 절집의 운치를 느낄 수 있는가.
한바탕 소나기에 씻긴 절 입구의 오솔길에 은행나무잎을 뒤척이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가을 철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 떨어질 쌓일 때이면 가을빛에 물든 가을의 우수가 떨어져 쌓이는 곳이다.
천왕문에서 돌계단을 서너 개 골라 디뎌 오르는 절집 마당에 主殿인 무량수전이 있고 그 앞에 이 절을 찾은 시인 묵객들의 감상과 방명이 붙어 있는 安養樓가 있다. 김삿갓도 시 한수를 이곳에 남겼다.
고려의 공민왕이 무량수전의 편액을 썼듯이 오래전 이 절을 찾은 이승만 대통령이 감동에 젖어 안양루에 부석사란 현판을 친필로 선사했다 하던가.
안양이 불교적 유토피아인 피안의 세계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안양루에서 굽어보는 아담한 절집 풍경과 멀리 도도히 흘러가는 小白의 세계는 감동 그 자체이다. 소백산 줄기들을 좌청룡, 우백호 삼아 첩첩으로 펼쳐지는 구름 걸린 그윽한 산중의 풍경은 마음의 평온을 주기에 충분하다.
대간 산행시 선달산에서 이 절의 뒷산인 봉황산을 내려다 보고 단숨에 달려가고 싶었던 곳이 아닌가. 마침 비가 그치고 반짝하는 햇빛 사이로 여섯 분의 부처가 안양루 처마 밑을 찾아 계시니 반갑고 신기하다. 빛과 무량수전의 노란 단청 색깔이 빚어내는 조화이다.
국보인 통일 신라 때의 앞 마당의 석등에 無明을 밝히는 시늉을 하고 무량수전 부처께 삼배를 올린다. 언덕 뒤의 오솔길을 따라 祖師堂에 올라 의상대사와 善妙 낭자의 전설을 떠올려 보며 절을 떠난다. 큰 돌이 어찌해서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나.......
평화롭게 보이는 이 절도 현 정부와는 대립과 갈등 관계에 있는지 여기 저기 가람과 관련된 정책을 적극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부석사 오솔길에 마련된 좌판 시장에서 제철 과일과 맛보고 싶은 채소 몇 가지 사서 배낭에 넣는다. 벌써 퍼랭이 사과(아오리)가 나왔고 자두도 미끈하게 빠진 것과 뽀얀 분이 묻어 나오고 살이 핏빛인 것이 광주리에 그득하고 인삼이 아니더라도 껍질을 벗겨낸 더덕은 냄새가 더욱 향긋하다. 구수하게 쪄낸 옥수수는 그 차진 맛에 여름철 간식으로 아주 제격이다.
시장은 크든 작든 언제나 삶의 한 단면이 주는 활력이 있어 좋다. 작은 금액을 두고 싱갱이를 벌이는 소리도 들려오고 우수리를 깎고 덤을 더 얻으려는 아줌마들의 알뜰 정신에 사방이 조금 소란스럽다. 채소나 제철 과일의 파치는 의례 덤으로 얻거나 공짜로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노점상의 물건 값을 깎지 말라는 추기경의 말씀을 잊고 사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저 좌판의 주인이 삶을 죄여오는 절망 속에서도 한가닥 희망을 살리기 위해 저 자리에 힘겹게 앉아 여러 표정을 지으며 손님과 흥정을 하는지 누가 어떻게 알 수 있으랴.
적은 돈이나마 물건 값을 깎아 한 때의 심리적 만족을 느끼는 저 아줌마도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말 못할 고민이 크지 않다고 누가 장담을 하겠는가. 혹시 저 좌판의 아주머니는 병든 남편의 병원비, 아이들의 등록금 때문에 더 악착스럽게 벌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인생이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면 시장 구석의 좌판에 얼마 되지 않는 물건이라도 쟁여 놓고 허리가 휘게 앉아서 이 손님, 저 손님 겪어 봐야 하고 봉지 쌀에 십구공탄 연탄 한 장 사고 허드레 반찬 값이라도 절약해서 한 때의 어려움을 겪고 넘어서야 하는 것이 아닌가.
탐스럽게 익은 제철 과일을 먹고 싶어도 꾹 참고 바라만 보아야 하고 장국에 밥 한 술 말아 훌훌 들이키며 탁주 한 모금 마시려도 여러 눈치가 보인다면 이 얼마나 잔인한 현실인가......쓸데 없는 상상이 밀려 든다.
오늘 풍기 시장에서 인삼 파치라도 몇 뿌리 얻어 먹을 수 있겠는가.....
어릴 적 고향이 알게 모르게 인삼 산지로 유명한 곳이었고 지금은 아예 인삼을 지역 대표 산물로 내세우고 있는데 인삼 조합장 아들이 같은 반 친구이었기에 해마다 인삼을 수확할 때면 실바늘 굵기의 미삼 정도는 실컷 씹어 먹은 기억이 난다.
날로 먹는 씁쓰레하고 달보드레한 인삼의 맛이 그 때 각인 되었는데 커서는 누군가의 보시로 굵은 인삼 뿌리를 접할 기회가 꽤 있었지만 몸이 뜨겁다는 이유로 자주 먹지는 못하였고 그저 인삼주를 담가 한 두 잔 마셔보는 정도였나. 룸싸롱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안주가 꿀에 찍어 먹는 인삼 이었던가.....
상인들의 제품 설명을 들은체 만체하고 먼저 읍내를 둘러본다. 대간 산행 때가 아니더라도 풍기는 여러 번 온 곳이라 우선 특선 점심으로 소백산 한우 불고기와 냉면을 찾아 한 때의 호사를 즐겨보려 하는데 식당이 증축을 하는지 휴업중이다.
실망의 기색이 역력한 崔씨부인을 달래며 점심 삼아 인삼 몇 뿌리 튀기고 부추에 미삼을 넣은 인삼전을 부치게 하여 시원한 인삼 막걸리 몇 잔 들이키니 빈속에 알딸딸한 기분이 금세 찾아온다.
조금 부족하다 싶은 식사량을 이 지방 특산인 생강 도넛으로 해결을 한다. 향긋한 생강과 인삼의 맛과 함께 쫄깃하게 씹히는 괜찮은 맛에 집식구들을 생각해 포장도 해야 하나......
거리를 거닐다 보니 이 지역이 인조견의 특산지이다. 옷으로 만들면 시원하고 호사스럽게 보이는 옷감이 인조견이 아닌가......목재 부스러기와 나뭇잎으로 만든 펄프에서 비스코스 실을 뽑아낸 것을 수입을 해서 원단을 만들고 디자인과 화려한 나염으로 무늬를 넣어 옷을 만드는 공장이 이곳에 여러 곳 있다는 이야기이다. 오래 전 유행하다가 흘러간 옷감 같기도 한데 다시 유행의 물결을 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어쨌든 비단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니 닿는 느낌이 부드러울 것이 아닌가.
般若珠 부인의 용맹 정진을 위한 절옷으로 아래, 위 옷을 고르라 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화사한 색과 무늬, 수수한 색의 옷을 각각 골라 즉석에서 시원하게 갈아 입는다. 옷이 날개인가.
이제 인삼을 살 차례이다. 고만고만한 여러 가게에서 고만고만한 인삼을 쌓아 놓고 호객을 하니 어느 집에 들어가서 흥정을 해야할 지 어리둥절하다.
인삼의 거래량은 한 채(750g)가 기본이다. 인삼을 사려면 6년근을 사는 것이 좋겠지만 튀겨 먹을 요량으로 파치 비슷한 것을 사니 싼 가격에 많은 양을 살 수가 있다. 튀김 옷을 아주 얇게 입혀 튀기는 것이 요령이다. 누구에게 선물할 것이 아니지만 양가의 부모님들에게 조금 미안한 노릇인가.....인삼을 넉넉하게 사지 못한 분풀이 삼아 마를 사 본다. 5kg에 일만 오천원이라니 중국산이라도 믿어지지 않는 가격인데 품질도 싱싱하고 맛도 훌륭하니 당분간 아침 거리 걱정은 덜은 기분이다. 중국산이면 돈을 받지 않겠다는 시골 아주머니의 말을 당연히 믿는다.
돌아오는 길에 예천에 들러 회룡포에 들른다. 낙동강 지류의 물굽이가 꿈틀거리는 용처럼 180도로 꺾여 마을을 감싸고 흐른다 하여 회룡포라 부른다는데 이 회룡포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산길을 조금 걸어 회룡대라는 정자에 올라야 한다.
과연 굽어 보는 강의 물줄기가 너른 들판과 둘러싼 산들과 어울려 명승지인데 가만히 보니 물에 갇힌 마을의 뒷산을 넘으면 낙동강의 세 물줄기가 합해지는 삼강 나루터이다.
삼강 주막으로 잘 알려진 곳이 아닌가......작년 봄쯤인가 예천 출신의 모 국회의원 후보를 마음 속이라도 응원하기 위해 모씨를 따라 달려갔다가 복원된 삼강 주막집에 잠시 들러 여러 잔으로 거나하게 회포를 풀었던 곳이다.
당시 예천 쇠고기가 입에 살살 녹았었고 어쩌다 들르던 술맛 좋다던 예천 읍내에는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코를 흐뭇하게 하였던가......모든 것이 무상이고 인생이 무상이다.
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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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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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절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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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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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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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으로 만든 부처, 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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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루에서 바라본 소백산 줄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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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풍을 하는 무량 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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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화: 의상 대사의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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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 튀김과 부침개, 들기름에 지져내 부침개 맛이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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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인삼 도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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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 풍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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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 풍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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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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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대 솔숲길)
첫댓글 감칠맛 나는 글과 그림을 즐~감~합니다... 곧 8월이 되면... 재배된 인삼이 인삼시장에 나오는 성수기가 시작되고... 인삼의 傳統시장들 (금산, 풍기, 강화 등)이 成市를 이루게 되지요... 9월말쯤 土山行을 금산의 진악산으로 잡고, 더불어 금산의 인삼재래시장에 가보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