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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최고봉인 아콩카구아(6,962m)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고
산! 항상 그곳에 있다.
산에 오르기 위하여 나는 쉼 없이 1990년 12월 1일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산에 올랐다.
앞산도 오르고, 뒷산도 오르고, 낮은 산도 오르고, 높은 산도 오르고,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도 오르고, 말레시아 키나발루도 오르고, 일본의 북알프스도 오르고, 아프리카의 최고봉인 켈로만자로도 오르고, 히말리야 칼라파트라도 오르고, 또 중국 쓰구낭산도 황산도 화산도 여기저기 몇 곳도 오르고 오르다 보니 이번에 남미의 최고봉인 아콩카구아(6,962m)에 오르겠다고 머나먼 남미 아르헨티나 멘도사까지 비행기를 여섯 번이나 타고 비행시간 36여시간, 부산에서 17,800여km를 떨어진 아콩카구아 정상을 향하여 큰 걸음을 성큼 놓아보았다.
그러나 아콩카구아 정상( Aconcagua Summit )의 길은 여태 걸어온 등반길과는 달리 일반적인 트래커 수준으로는 오를 수 없는 준비 된 산 꾼만이 오를 수 있는 산이었다. 정상에 오르기 위하여 매년 3,500여명이 아콩카구아 정상도전에 나서지만은 겨우 30% 정도만이 정상에 오르는 곳이라고 한다.
난 남미 대륙 최고봉 아콩카구아(6,962m)에 오르기 위하여 간다.
어느 날 다음 카페 종점산방 홈페이지에서 한줄 메모장에 LA의 친구로부터 이런 “추춘득”메모를 접하고는 ‘그래 이것이다. 가자 ! 새 세상에 새로운 충족을 위한 발산의 곳을 찾아서 떠나자.’ 마음을 정하고, 평생을 함께 하는 평생지기인 옆지기에게 ‘어떻게 갔다. 오겠노라’고 이야기를 한다?? 걱정!! 걱정이 따불로 걱정이다. 히말리야 원정 때도 허락을 하면서 “이제는 끝이다. 또 가겠다면 보따리를 싸서 나가라.” 했는데 ㅎㅎㅎ 어떻게 해,
조용한 밤을 지내고 정말 조용히 경상도 놈이 감정을 죽이고 “저기 LA친구가 남미에 파타고니아쪽 아콩카구아 산에 가자고 초청이 왔는데?” 하고는 정말 조용히 운을 띄웠는데 옆지기님 말씀이 “기어코 간다 말이요!” 순간 속으로 ‘야~호’ 환호를 부르며 흥분된 마음을 최대한 진정 시키면서 “응 그래, LA친구가 초대를 해서....” 입에서는 궁색한 변명을 환호는 속으로는 ㅎㅎㅎ 넘 쉽게 허락에.... 탱큐 탱큐!! 와 우~~~
친구에게 메일로 옆지기님의 허락이 났다고 소식을 전하니 친구 왈 “허락 한번 시원하네”
그렇게 시작된 아콩카구아의 산행 길 준비가 시작된다.
LA 친구(탱큐 추사장 : 고마움의 표시로 이루게 부르기 했다.)는 아르헨티나 현지 가이드사와 계획서 및 준비물 안내서등 제반서류 메일주고 받으며 현지 가이드 비용 및 출발일시를 정하고, 난 항공권 예약하려고 인터넷에서 부산-LA 찾아보았지만 예약매진 1월중에는 미주쪽 항공권이 모두 매진되어 자석이 없다고 한다. ‘우찌 이런 일이....’ 인천에서 출발 역시, 없다 없어. ‘허허 큰일이네!!’
항공권이 모두가 어디로....??? ‘아~하 그래군아 !! 어학연수생 땜시! 방학 중이라 영어의 열풍 그곳을 찾아서 미주로 미주로....’
미주로 가는 전 항공사의 항공권이 매진이라면 도대체 방학기간에 미주로 가는 좌석이 몇 좌석이나 될까?? 글쎄이다.
이것을 볼 때 난 이렇게 생각을 하고 싶다. ‘대한민국 정말 잘 사는 나라가 되었구나.’ 하고, 모두여행사에 전화를 해서 LA를 가는데 ‘한 장’하고 부탁을 했더니 북경을 경유하는 차이나항공에 자석이 있다고 하기에 ‘감사’하고는 1월 3일 출발 2월 1일 도착 왕복권을 거금으로 구매했고, 친구는 현지 가이드사와 1월 8일 아르헨티나 멘도사공항에서부터 산행일정이 시작되는 계약을 한다.
1월 8일 아르헨티나에 도착
호텔에 짐을 풀고 현지 가이드 3명과 영국인 2명 맥시코인 1명 추사장 그리고 나, 정상에는 오르지 않고 아콩카구아 남벽 프라자 프란시아 베이스 캠프(plaza francia 4,250m)까지 트래킹을 신청한 캐나다인 부부 2명과 총 10명이 한 팀이다.
멤버 중 멕시코 출신인 후안(Juan)은 1963년생으로 190m의 건강한 체격의 산꾼이다. 이번이 아콩카구아 정상 길에서 세 번째 도전이라고 한다. 첫 번째는 고산병으로 두 번째는 기후변화로 실패하고 세 번째 도전이라고 한다. 세 번째 셈미트(summit)에서 성공한다.
그런 아콩카구아이지만 나에게는 즐거운 고생 길이였고, 자신만만의 나의 산행 길에 큰 경험의 길이였으며, 또한 산행의 기본이 안 된 나의 현재 산행수준은 위킹 수준인 진정한 산악인으로써 기본이 안 된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나는 ‘아~~~’ 하고 새롭게 산을 정리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아콩카구아에 오르기 위하여 전진캠프인 콘푸렌시아(Confluencia 3,300m)에서 LA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재미산악회 회원 9명을 만나서 정상을 향한 그들의 준비된 정열의 산행의 자세는 너무 진지하다.
재미팀은 2007년 3월부터 아콩카구아에 오르기 위하여 준비했고, LA근교 4,500m고지에서의 야영 고산적응훈련과 매주 정기적인 산행 및 매일 조기등반등으로 20kg이상의 배낭지고 땀 흘리며 근력운동 등, 주말이면 이중화에 20kg무게의 배낭에 10시간이상의 산행 길을 9개월 이상 강훈련을 했다는 그들의 이야기에 나는 처음에는 ‘그렇게 까지 나 !’하고 어~하 했다.
난, 가벼운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우리나라 1대간 9정맥을 가볍게 뒷동산을 산책을 다녀오듯이 뛰고 싶을 때 뛰고, 걷고 싶을 때 걸었다. 그리고는 1대간 9정맥을 종주했다고 자랑한다. 글구는 “산 ! 갈 곳은 많고, 갈 길은 멀고, 시간은 없고, 그래 ! 쉼 없이 가보자”는 나의 등반의 슬로건처럼 즐기는 산행의 길이 전부였다.
여름에는 물싸움, 겨울에는 옷 싸움이라고 겨울에는 추위에 떨지 않기 위하여 배낭에 이것저것 챙기다보니 10kg를 넘는 배낭을 메고 산행을 나설 수는 있지만은 보통 때는 배낭의 무게를 줄여야한다면서 10kg이하의 배낭으로 가볍게 산행한 나는, 아콩카구아의 정상 길에서는 60리터 배낭에는 텐트, 침낭, 메트리스등등, 20kg이상의 개인장비와 또 플라스틱 등산화(이중화)에 12발 아이젠을 포함 무게는 5kg쯤 완전무장한 정상도전의 오름의 길은 정말 생소하고 배낭의 무거운 무게 중압감에 짓눌리고, 이중화를 처음 착용하고 걸어보니 중심잡기도 힘들고 걸음은 오리걸음처럼 기우뚱 거리며 ‘걸음이 왜 이래 ! 힘들어! 힘들어!’ 그냥 등산화가 아니다.
이중화는 기능성에 맞는 이중화를 구입하여 신어서 편해 질 때까지 자기를 것으로 만들어야 하며, 자기 것으로 만들기까지는 발 아픔의 수고가 얼마나 대단한데, 이런 준비가 안 된 내가 아콩카구아에 오르겠다고 베이스 캠프에 오른 것만으로도 산에 대한 오만의 극치이다.
솔직히 아콩카구아에는 약7,000m급 고산이라 전문 등반자들이 오르는 곳이라 내가 오른다는 단어는 없었다.
2009년에 히말리야 임자체(6,189m)에 오르는 것으로 내 생애 최고의 봉에 오른다고만 생각하고 있는데, 탱큐 추사장의 초청에 그만 나의 현실을 잊고 [그래! 쉼없이 가보자]는 나의 등반 슬로건에 딱 맞다. 파타고니아도 못 갔는데, 그래 가자!.
준비도 상식도 없이 무조건 오르면 된다는 가다가 못가면 하산하면 되지. 허허 참참!!
그런데, 남미 대륙 최고봉 아콩카구아 정상(Aconcagua summit 6,962m)은 어떤 산일까??
인터넷 검색하니 “[특파원 르포] 아콩카구아” 한아무개 차장의 산행기가 이였다.
첫 시작부터 아콩카구아를 함께 오르던 친구를 잃고 ‘황량한 호르코네스(Rlo horcones)계곡을 하산하면서 며칠 전까지 두 눈을 마주하며 얘기를 나누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볼 수 없다니....’죽음의 슬픈 사연은 1998년도 1월에 등반 때 [실종 1주일 뒤 윈드 트래버스(6,500~6,600m)촛대바위 아래 흙 사면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와 2006년도 재도전 등반 때 [ 정상 부근의 바위지대에서 탈진 동사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비보가 날아왔다.]등 2명씩이나 죽었다는 산행기를 접하고 나니, 나 역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 날 수가 없었다.
왜? 산행기 초반부터 죽음으로 시작한 산행기가 필해야 했는지 모르겠다. 자기 쪽에서 본다면 재도전에 나서면서 옛 동료의 죽음의 비통함을 앞서서 이겠지만, 아무튼, 처음 아콩카구아를 알기 위하여 본 산행기가 사람의 기를 죽이는 산행기이였다.
[특파원 르포]아콩카구아 산행기는 삭제가 되어야 한다. 이런 어두운 글은 도전자들에게 정신적인 부담이 되고 정상을 향하는 이들에게 힘겨운 짐만 줄 뿐이다.
즐거운 정상을 향한 힘찬 희망의 글이어야 하는데 말이야.
남미 대륙 최고봉 아콩카구아 (Aconcagua 6,962m)는 잉카 문명권의 공용어인 ‘개추아’말로서 힌 수호신(파수꾼)을 뜻한다.
아르헨티나 멘도사주 Las Heras 현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구 좌표상으로는 서경 59-69도, 남위 32-39도에 위치한다. 우리나라의 정반대쪽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또 멘도사를 중심으로 포도농장들은 남미의 포도주 원산지이며, 와인의 고장이다.
아콩카구아 접근은 멘도사에서 약 170km에 위치하고 철저하게 보호 관리되고 있는 아메리카 대륙의 최고봉이다. 우리나라와 FTA을 체결한 칠레의 국경과 불과 5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멘도사 시민들이 여름 바캉스를 국경을 넘어 태평양의 바다 칠레로 간다.
멘도사에서 전초기지인 페니텐태스(2,700m)까지 170km, 이동 도로를 따라 안데스산맥의 거대한 산군의 파노라마는 정상을 향해 등반하는 이들만의 선물이다.
Aconcagua을 오르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소정의 입산료를 아르헨티나 정부 사무소에 아르헨티나 1,500패소 (미화322불)을 내야 입산할 수 있다.
아콩카구아 등반루트는 프라자 드 뮬라스(베이스 캠프)에서 출발하는 4개 루트가 있지만은 대부분 노말 루트로 오른다.
정상(Summit)등반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고소적응과 날씨인데 특히 백풍 일명 “아콩카구아 옹바람”은 등반의 성패를 좌우하기에 충분한 영향을 미친다.
태양의 여신 Febo가 웃어주고, 바람의 신 Eolo가 잠들어 있기를 바라는 기도로 시작하는 아콩카구아 등반은 바람과 악천후를 대비한 훈련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정상에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은 분명 아니다.
1월 11일 등반 첫날 [ 라구나 호루콘스(2,900m) - 콘푸렌시아(3,300m) ]
드디어 11일 페니텐태스 스키 리조트호텔에서 아콩카구아 공원 입구 라구나 호르콘스까지 차로 이동해서 입산신고를 마치고 첫걸음의 팀의 기념촬영하고 정상을 향하여 등반이 시작된다. 출발 첫걸음이 설레고 기대감으로 가볍게 흥분이 된다.
2007년 4월의 히말라야 등반 때 크나큰 경험인 건조한 모래바람으로 인한 감기와 지나친 자신감으로 인한 고소증세 유발 등 경험 삼아 첫걸음부터 ‘난 영원한 후미야’ 여유를 가지고 후미에서 천천히 한걸음 두 걸음 충분히 물을 마시며 여유의 걸음으로 콘푸렌시아(3,300m)캠프에 도착하다.
캠프에 La를 중심으로 미국에 살고 계시는 재미산악회 멤버들 9명이 프라자 프란시아 고소적응 등반을 갔다는 소식에 반갑다. 그들이 누구이며 어떤 분들인가 궁금하다. 그들이 적응등반 후 캠프에 돌아오자 부산에서 혼자 왔다고 인사를 드리고 우리 팀의 9명이 의사소통을 영어만 통하니 영어가 짧은 내 입엔 거미줄쳐놓고 그동안 설움 많이 받았다 이제야 우리말을 열어보니 정말 살 것 같다고 하니 다들 박장대소다. 정말 오래 만에 말문을 열고 대화를 나누니 즐거웠다.
1월 12일 등반 둘째날 [ 콘푸렌시아(3,300m) - 프라자 프란시아(4,100m) ]
남벽의 베이스 캠프인 Plaza Frencia(4,100m)는 노말 루트로 오르는 도중에 오른편 계곡을 따라 8km쯤을 5~6시간 오르면 남벽 바로 밑에 위치해 있다.
아콩카구아 남벽은 폭 7km 수직고도 3,000m에 이르는 거대한 벽이다.
에베레스트 14좌를 최초 완등한 이태리의 메스너가 오른 봉우리 중 어느 곳이 가장 어려웠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에베레스트 남서벽, 안나푸르나 남벽, 그리고 아콩카구아 남벽이라고 술회한 바 있다.
고소적응과 안데스산맥이 만들어낸 험준한 살아 있는 대자연의 웅장함은 취해 경사도가 원만히 700m의 고도를 편안한 마음으로 등반을 마치고 오랜 만에 깊은 잠속으로 들어갈 수 있던 하루였다.
1월 13일 등반 셋째날 [ 콘푸렌시아(3,300m) - 프라자 드 뮬라스(4,365m) ]
베이스 캠프 (프라자 드 뮬라스=Plaza de Mulas)을 오르기 위하여 따가운 햇살을 피하기 등반을 일찍 나선다. 식사후 7시30분에 황량한 호르코네스(Rlo horcones)계곡을 따라 오르면서 정말 막막해 보이는 강 같은 계곡 길에 등반자들의 짐을 나려는 뮬라( mula : 고산에서 생활이 가능한 노쇠와 말을 말한다.)무리들 속에 컨디션이 좋아 멕시코인 후안을 따라 선두에서 조금 빠르다는 걸음으로 점심 때 까지 오르고 점심 식사 후부터는 쉼 없이 편히 베이스 캠프에 도착하니 3시 55분이다. 8시간 25분 만에 도착했다.
뜨거운 햇살 밑의 텐트 안은 찜통이라 몸 식힌다고 옷을 가볍게 하고 편히 쉬고는 오후부터 고소증세로 머리가 아프며 몸 움직임도 싫고 가만히 누어있어 보지만은 두통과 구토증세로 타이레놀 2알을 복용했는데도 무반응이다.
저녁식사를 탱큐 추사장이 나를 위해 누룽지라면을 끓여 와서 김치와 맛있게 먹고 잠을 제대로 잠을 잤다.
1월 14일 등반 넷째날 [ 프라자 드 뮬라스(4,365m) - 고소적응 휴식일 ]
고소에 시달린 탓으로 비몽사몽 깊게 잠들지 못하고 눈을 감고 이 생각, 저 생각, 왜 고소가 생길까? 그래! 그래, 아~ ~두가지 실수를 했네!! 어제 등반길에서 첫째로 고도가 높이다 보면 고소증세가 심해지는데 호르코네스 계곡을 오르면서 영원한 후미가 아니고 선두에서 빠른 걸음으로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고소증세를 유발시켰고 두 번째는 고도가 높은 곳에서 어떠한 경우라도 체온을 보존해야 하는데 텐트 안의 더위를 참지 못하고 벗어버린 옷. 이 체온저하 현상으로 혈중산소포화도를 낮추게 하는.... 바보 같은 이런 실수를....
일어나니 고소증세가 심해 타이레놀 2알 복용하고 아침은 먹는둥 마는둥 억지로 몇 숟가락 먹었니, 탱큐 추사장이 걱정스럽게 고소의 적응하려면 염소 띠가 되어 아무 것이나 잘 먹어야 한다고 하지만이 것이 그렇게 말대로 될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은 아콩카구아 국립공원 사무소에서 등반 객들의 안전을 위하여 건강검진을 실시하는데 혈중산소포화도와 혈압을 체크해서 정상컨디션은 체크되면 입산이 허가되고 그러하지 못하면 2~3일 동안에 베이스 캠프에서 쉬면서 정상컨디션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못 할 때는 하산을 명 한다. 긴급사항은 헬기로 긴급사항이 아니면 뮬라(노쇠 말)로 하산을 명한다. 관리의 책임자가 입장을 통제하며, 규칙위반자를 처벌, 추방 할 권한을 갖는다고 한다.
코오롱소속의 고미영 팀 5명을 아콩카구아 등반을 취재하기 위하여 파견 된 모방송사의 취재팀이 건강 체크에서 여러 명이 통과를 못해 헬기로 후송되고, 또한 6대륙 최고봉에 오르고 있는 수원쪽팀 5명중 3명이 헬기로 후송되었다고 한다.
고미영씨는 2011년까지 세계최초 여성산악인으로 에베레스트 14좌를 완등을 기획하고 있는 한국의 자랑스러운 여성산악인이다. 아콩카구아 전초기지인 페니텐태스 스키 리조트호텔 레스트랑에서 고미영팀 5명을 우연스럽게 만났다. 고미영씨와의 나의 인연은 작년 여름 코오롱등산학교 설악산 암벽교육에 참가하면서 만난 인연이 있다. 5명 중 고미영씨외 1명이 정상에 올랐다한다.
한필석님의 산행기에 “남미의 최고봉 아콩카구아의 여러 루트 가운데 북면 노멀 루트는 분명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루트는 아니다. 평균치의 체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좋은 리더(가이드)와 함께 단계를 밟아가면서 고소적응 과정을 거친 다음 좋은 날씨만 만난다면 정상에 설 수 있는 산이다. 하지만 너무 얕잡보거나 무모하다 싶을 만큼 몰아붙이면 화를 부를 수밖에 없다”고했다. 그렇다. 악천후의 날씨만 아니면 정상에 오를 수 곳이 아콩카구아 정상 이였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에 지구의 반대편에 아콩카구아가 있다. 36시간의 비행시간과 실지적인 12시간 시차, 안데스산맥은 어느 고산보다 고소의 증세가 심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건조한 날씨, 눈 녹인 물로 식수로 사용하기에 미네랄 부족 현상등 여러 가지 원인 될 수 요인도 있지만은 문제가 되는 것은 여행의 일정이 너무 타이트해서 시차가 극복이 안 된 상태에서 무리한 일정으로 산에 오르다 보니 베이스 캠프에서 건강검진에 체크 당하고 또 통과를 해도 캠프2 캠프3에서 고산병으로 하산을 할 수 밖에 없다.
꼭 오르고 싶다면 보통여행(등반일정포함)의 일정이 22일간인데 3일간 일정을 더하여 25일간으로 해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멘도사를 기점으로 레프팅하고 시내도 쇼핑을 하면서 아르헨티나 최고의 안심 스테이크와 남미의 최고의 멘도사 와인을 즐기면서 여정의 피로를 풀며, 시차적응과 고소적응 프로그램을 마련한다면 날씨가 나쁘지만 않다면 셈미트(Smmit)성공률 90%이상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본다.
건강검진 통과 탱큐 ^^*
여기까지는 좋은데 아침을 먹고 나니 속이 부글부글에 구토증세에 만사가 귀찮다.
텐트에서 있는 인상 없는 인상 그리며 화장실을 몇 번씩이나 가고 또 욱 ~~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 한번하고 어제의 콘푸렌시아에서 베이스 캠프까지 오르면서의 걸음걸이를 후회는 이미 늦었다. 탱큐 추사장이 가볍게 움직이면서 산책이라도 한다면 나아진다고 하기에 호텔까지 1km도 안 되는 거리를 소걸음으로 한시간씩이나 투자하니 속이 편해지고 고소증세도 나아졌다. 저녁을 먹는데 첫술부터 아니다. 억지로 꾸역꾸역 도저히 안 넘어간다.
우리팀 6명이 걱정스럽다고 kwon Ok! 어때하고 격려를 하지만은 난 Oh no! 다.
그들은 잘도 먹는다. ‘그래 잘 쳐먹어라!’ ㅎㅎㅎ
1월 15일 등반 다섯째날 [ 프라자 드 뮬라스(4,365m) - 보네데(Bodete 5,004m) ]
비아그라 덕분인지 컨디션이 좋다.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비아그라가 고소증세에 도움이 된다고 하기에 반알을 복용했는데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아침 식사를 간단히 먹는데 위에서 받아 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오늘은 보네데(5,004m) 약 7시간 등반으로 고소적응 하는 날이다. 이미 고소병으로 한방 맞아서 정신을 못 차려고 있는 중이라 후미에서 아주 아주 천천히 오른다. 영국의 말틴(61세)이 나 보다는 힘들어 하고 있다.
5,005m의 보네데 정상까지의 등반길은 작은 자갈과 모랫길로 경사도 높고 한발 오르면 한발 미끄러지는 아콩카구아 정상에 오르는 코스와 비슷해 예행연습등반이라고 한다. 고소증세를 못 느낄 정도로 컨디션이 좋고 설사와 구토증세도 보이지 않아 탱큐이다.
캠프로 돌아와 컨디션 좋아 내일은 프라자 카나다(Plaza Canada) C1(베이스 캠프 1)갔다가 오는 날이다. 내일도 오늘 같이 컨디션이 계속 되 길을 밤사이 빌어본다.
1월 16일 등반 여섯째날 [ 프라자 드 뮬라스(4,365m) - 프라자 카나다(5,043m) ]
프라자 카나다(5,043m) C1에 고소적응과 정상공격을 위한 장비를 올려놓는 날이다.
산에 오르고 나서 잠을 1~2시간정도 푹 깊은 잘 수 있다면 정말 잘 잔 것이고 보통 고소 때문에 그냥 비몽사몽간에 눈만 감고 내가자고 있나? 그냥 눈만 감고 있나?? ‘좀 자자!!’하면서 밤을 보내다 보면 아침이 밝아온다. 밤을 이렇게 보내고 등반길에 나선다.
어제 보네데(5,004m)에 오르면서 이중화를 체험을 해서야 했는데 컨디션에 문제가 있어 오늘은 신어서 적응하고 능력도 검토해야 3kg이상의 이중화는 과연 무겁고 기우뚱의 오리걸음에 장난이 아니다. 반 발자국 반 발짝으로 시작한 걸음이 C1에 올라서 샌드위치 린치를 먹는 맛도 없고, 임 맛도 없고, 그럼 고소증세에 의한 반응이지만 겨우 반만 먹고 과자를 몇 개 먹어보지만은 결코 점심을 대용 될 수는 없다.
고산에서 등반에 소비되는 에너지는 8,000칼로리 정도이라고 한다. 하루를 잘 먹었을때 3,500칼로리 못 먹고 빌빌 할 때는 과연 에너지를 얼마를 일까??
하산하여 저녁메뉴가 스테이크다. 모두 좋아 하면서 맛있게 먹고 추가로 더 먹는다. 나 뿐만 아니라 팀 모두가 올만의 즐거운 식사 시간이었다.
1월 17일 등반 일곱째날 [ 프라자 드 뮬라스(4,365m) - 고소적응 휴식일(두번째) ]
이젠 시차도 적응되었고 고소증세도 호전되어 정말 편히 잠을 잘 잤다. 건조한 날씨라 목말라서 몇 번이나 일어나 물을 보충하곤 했는데 두 번밖에 일어나지 않고 잤다니 다행이다. 베이스 캠프에서 두 번째 휴식하는 날로 고소와 체력회복을 위한 쉬는 날이다.
재미팀의 한영세 총무님과 소니아 하 약사님 함께 베이스 캠프호텔 레스토랑에서 산에서의 외식으로 햄버거 스테이크 먹으며 미국이야기, 우리나라의 발전상, 등반에 관한 이야기등등 많은 서로의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하 약사님은 47년생으로 2007년 9월에 아콩카구아에 오르기는 해야 하는데 한달 이상 걸리는 등반길이라 경영 중인 약국이 걸림 돌이 되어 어떻게 하냐? 고심 끝에 약국을 처분하고 참여를 했다고 하시고, 그 친동생인 써니 리는 나와 동갑인데 심리학박사로 정신과병원 근무 중에 여행길에 나서면 환자와 상담에 대한 책임을 다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병원을 그만두고 대학에서 근무하면서 학생들과의 정신적 상담을 하다가 등반과 여행을 하기 위하여 의사 직을 그만두고 이곳 아콩카구아 정상에 오르기 위하여 왔다고 한다. 대단해 우리로써는 좀....
한국시간으로 새벽 6시30분쯤에 베이스 캠프의 위성통신으로 옆지기랑 지연와 통화를 했다. 무뚝뚝한 마누라 감정의 표현이 전혀 안되니....ㅋㅋㅋ 사랑해 마누라!! 돌아가면 더욱 잘해 줄게. 사랑해 ^ ^ *
1월 18일 등반 팔일째날 [ 프라자 드 뮬라스(4,365m) - 프라자 카나다(5,043m) ]
여태까지는 7일 동안은 정상을 오르기 위한 시차적응 고소적응등 등반준비 기간이었다.
고소와 시차가 적응이 되었는지 기분 좋게 일어나 C1에 오르기 위한 배낭에 침낭, 메트리스등등 분주하게 챙겨서 오전에 11시 출발을 한다. 오늘은 절대적으로 소걸음이 아니고 거북이걸음으로 오린다. 마음에 굳게 맹세에 맹세하고 후미에서 천천히 오르는데 선두에 선 가이드 역시 거북이걸음이다. 그 거북이걸음 속에서도 영국의 말틴은 후미에 쳐진다.
1990년 12월 1일부터 시작 된 첫 산행 후 20kg이상의 배낭의 무게는 매어본적도 없고 경험이 전무한 나로서는 크나큰 부담되지만 거북이걸음에서는 별 무게감을 느끼지 못해 다행이다. 가볍게 C1에 오르니 오후 2시에 도착하여 점심먹고 주변을 가볍게 산책을 하라고 하지만은 만사가 귀찮다. 가벼운 고소증세가 보여 타이레놀 2알을 복용하고 텐트 속으로 가볍게 잔다고 잤는데 꿀맛 같은 잠이었다.
저녁은 가이드인 율리시시가 만든 햄버거인데 탱큐 추사장(51년생)과 나는 겨우 하나밖에 못 먹겠는데 맥시코인 후안(63년생) 영국인 말틴(48년생)과 벤자민(79년생) 2개씩이나 먹는데 그래 먹어야 정상에 오를 수가 있는데 겨우 겨우 먹는 흉내만 내니 걱정된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어 죽은 덧이 잠들어야 하는데 낮잠 때문인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정상에 오른다는 기대감과 미지의 C2, C3, Smmit, 매일 맞이할 캠프들.... 이 생각들 저 생각들 12시가 넘어서도 비몽사몽이면 그래도 순간, 순간 그 속에 짧은 잠이라도 자지만은 말동말동 정신은 어찌하리!!
작은 딸 천방지축이 3가지의 약속을 하자며 첫째 아프지 않기. 둘째 건강하기, 셋째 살아오기,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고 무뢰한 시간에 보아라고 박영석의 산행기책을 모두 읽고 그것도 모지라 하약사님 주신 시집을 보면서 잠을 청하여보지만은 가슴이 답답하여지고 잠을 도저히 청할 수가 없다. 점점 심장에 쪼여오는 진통이 심하여 밤 4시쯤에 잠귀신 같이 너무도 잘자는 탱큐 추사장을 깨워서 가슴이 쪼여오면서 잠을 도저히 못 이루겠다고 하니 팀 가이드 율리시스와 상의를 하자고 한다. 율리시스와서 혈중 산소포화도를 체크하니 기준치보다 낮게 나와 물을 지금부터 2리터 이상을 마시라고 한다. OK OK 알았슈
물을 마시며 억지라도 잠을 청하여보지만은 시간이 흐를 수로 이제는 추워와 가슴의 진통으로 몸부림은 한 순간도 가만히 누어있을 수가 없다.
나는 이렇게 몸부림치고 심장압박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데 탱큐 추사장은 잡식성의 근성, 대단해! 맛있게 쿨쿨 자는 다시 깨우기 미안하지만은 어쩔 수가 없다.
가슴을 쪼이는 현상의 고산병이 발생한 것이다.
율리가 다시 혈중 산소포화도를 체크하니 처음보다 더 내려가 율리가 하산을 결정한다.
하산 길의 나의 마음은 ‘이제 살았다’.
그리고 천방지축의 딸 지연이와의 약속을 지키게 되었다.
준비도 안 된 아콩카구아의 등반은 정말 무모했었다.
산! 항상 그곳에 있다.
첫댓글 권대장님 수고했습니다! 그리고 자랑스럽습니다!
그곳에, 미지의 세계에 도전했고 그것을 실행한 것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었습니다. 그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형님 산에 대한 열정 정말대단합니다 저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지네요 정상칠입니다
태고의 모습으로 우뚝 서있는 Aconcagua !!, 세찬 바람도, 성난 구름도, 짙은 안개도, 따사한 햇살도, 모두 감싸고 품는 우리의 어머니 !! 그 어머니의 품 속에서 만난 형제들... Kwon, Jason, Martin, Ben, Juan,Ulises,Aime... 따뜻한 어머니의 품이 그리워... 또 다른 방랑이 시작된다 . 산 ! 항상 그 곳에 있다. 우리의 어머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