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을 실천하는 맛집을 취재하러 왔다고 하니까 손사래를 쳤다. 해운대소문난삼계탕 진말순(67·여) 대표는 "나눔을 큰 규모로 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신문에 나가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얼굴이 화끈거린다"고 했다. 남에게 알리지 않고 묵묵히 나눔을 실천해온 그로서는 당연한 감정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는 "이 인터뷰를 앞으로 나눔을 더 잘하라는 채찍질로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했다.
■조용한 나눔을 펼치다
진 대표가 나눔에 눈을 뜨게 된 계기는 1999년 부산일보에 난 기사였다. 기사는 부산 기장군 무료급식소를 찾는 결식노인들의 소식을 담고 있었다. 27평에 불과한 좁은 급식소에는 매일 80~100여 명의 노인이 찾아왔다. 하지만 급식활동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이 크게 줄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무료급식소 운영난 본보 보도 계기
매월 닭 200마리 7년간 기부 이어
독거노인 200분 매달 삼계탕 대접
각종 단체 후원으로 17년째 선행
가업 잇기 위해 팔 걷어붙인 아들
"나눔 못 이으면 더 야단치실 걸요^^"
"무료급식소에서 제공되는 음식이 밥과 국, 3가지 정도의 반찬이 전부란 내용을 보고 마음이 아팠어요. 무료급식소도 예산이 빠듯해 고기반찬을 마련하기가 어려웠던 거죠. 이곳에 닭을 제공해 어르신들이 조금이나마 고기반찬을 드셨으면 하는 마음이 컸죠."
진 대표는 이때부터 2006년까지 7년 동안 매달 닭 200마리를 기장군 무료급식소에 전했다. 나눔을 시작했던 1999년 당시 닭 한 마리 가격은 8천 원. 매달 160만 원의 닭을 전한 셈이다. 그는 조용히 나눔을 실천했다. 그는 기장군 무료급식소에 가지 않았다. 대신 자원봉사자들이 매달 가게로 와서 닭을 가져갔다.
그의 '얼굴 없는 선행'은 5년이 지나서야 주변에 알려졌다. 기장의 한 신문에 그의 선행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진 대표는 스크랩한 기사 내용을 잠시 보여줬다. 스크랩한 기사도 가게의 한구석에 숨겨 놓았다고 한다.
■나눔의 다양화
진 대표의 나눔은 이어졌다. 기장군 무료급식소에 7년간 닭을 후원한 뒤 나눔의 대상 지역을 해운대로 옮겼다. 지인이 가게의 터전인 해운대에서 나눔을 펼칠 것을 권유했기 때문이다.
진 대표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중 1, 2동과 우 1, 2동에 거주하는 독거노인 200명에게 매달 삼계탕을 식사로 대접했다. 이때도 자신을 부각하지 않았다. 식사하러 온 노인들은 진 대표가 동사무소에서 돈을 받고 음식을 제공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진 대표는 2009년부터는 삼계탕을 직접 제공하는 방식에서 벗어났다. 삼계탕 판매 수익의 일부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매달 전달하는 방식을 택했다. 물론 어버이날이나 명절에는 중 1동의 독거노인을 초청해 삼계탕을 여전히 대접한다.
10여 년 전부터 유니세프 후원에도 참여하고 있다.
■3대로 이어진 '나눔 DNA'
진 대표는 경북 청도에서 9남매 중 여덟 번째로 태어났다. 진 대표는 어린 시절 대구에서 살았다. 진 대표의 친정집은 땅도 많이 가진 비교적 부유한 가정이었다.
"친정어머니께서 이웃에게 많이 베푸셨어요. 형편이 어렵거나 배고픈 이웃에게 쌀이나 음식을 자주 나눠주셨죠. 어머니가 이웃을 배려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모습을 어릴 때부터 많이 보고 자랐죠."
진 대표가 자연스럽게 '나눔의 DNA'를 지닌 이유였다.
진 대표는 아들인 김형준(41) 대표와 공동으로 해운대소문난삼계탕을 운영하고 있다. 부산대 기계공학과 석사 출신인 김 대표는 2003년부터 2010년 말까지 일본 오사카의 한 제조업체에서 일했다.
하지만 "1남 2녀 중 외아들인 네가 가업을 물려받으라"는 부모님의 요청을 받고 2011년 1월 부산으로 돌아왔다.
"부모님이 점점 나이가 드시면서 힘에 부치시는 것 같더라고요. 아버지처럼 해운대 토박이인 제가 고향에서 부모님이 일궈놓으신 부분을 이어가야겠다고 결심했죠. 동경대 출신도 가업을 이어받는 일본의 문화를 경험한 것도 결심하는데 영향을 미쳤어요."
김 대표도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나눔을 보고 자랐다. 그에게도 '나눔의 DNA'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해운대소문난삼계탕이 2013년부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정기적인 후원을 하게 된 것도 김 대표의 결정이었다. 김 대표는 지인을 통해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알게 됐다. 해운대소문난삼계탕은 초록나눔가게로 선정된 상태다. 초록나눔가게는 수익의 일정액을 나눔에 기부하는 착한 가게다.
"어려움에 부닥친 아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후원에 참여하게 됐죠."
김 대표는 어머니의 나눔 철학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어머니께서 늘 이렇게 말씀하세요. 우리가 이렇게 먹고사는 것은 다 손님들 덕분이라고. 손님들로부터 받은 돈 일부를 배고픈 이웃들에게 나눠 드려야 한다고 강조하시죠. 앞으로 제가 어머니의 나눔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면 야단맞을 것 같아요."
후덕한 인상의 어머니와 아들은 인터뷰를 마치자 삼계탕을 손님들에게 날랐다. 삼계탕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김이 우리 사회를 훈훈하게 만드는 온기로 느껴졌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2부 '부산 맛 기업의 사회 환원'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합니다.
※ 나눔 참여 문의: 어린이재단 부산지역본부 051-505-31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