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19. < 익산 나바위 성당 –논산 강경구락부 –관촉사 –션샤인랜드>
봄을 앞둔 날씨라 햇살이 고즈넉이 내리고 정적은 경건함을 더하는 전북 익산 나바위 성당 십자가의 길을 걷는다.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에 간간이 찾아드는 사람들의 여유로움을 보면서 오래전부터 오고 싶었던 곳이기에 마치 익숙한 동산처럼 망금정에 오르니 눈이 부시다. 나바위는 한국의 첫 사제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가 되어 조국에 입국하며 첫발을 디딘 축복의 땅으로 ‘첫 마음의 성지’ 로 불리고 있다. 행정구역이 충남 논산과 전북 익산의 경계에 맞닿아 있어서 오늘 여행은 논산에 위치한 션샤인랜드를 목적지로 두었으나 오래전부터 찾고 싶었던 곳이기에 나름 알뜰한 여행을 계획하여 나바위 성당을 경유하고자 찾아온 것이다. 어느 지역을 찾더라도 꼼꼼하게 살펴보고 공부하지 않으면 볼만한 곳을 가까운 거리에 두고 돌아와 다시 찾는 일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이처럼 여러 곳을 무리 없이 둘러볼 수 있도록 경유지를 설정해서 와보니 시간과 거리를 절약할 수 있어서 좋다. 나바위 성당은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에 있으며 ‘화산리’라는 지명은 지금 성당을 담고 있는 산이 절경이어서 송시열이 지어준 화산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성당 이름도 산 이름을 따라 화산성당이라고 불러 오다가 완주군 화산면과 혼동을 피하고자 1989년부터 ‘나바위성당’으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 미리 인터넷에 검색해서 보았던 것과 다름없이 나바위 성당은 국내 천주교의 성지답게 그에 따른 볼거리를 갖추고 있었다. 또한 가톨릭신자들 뿐 아니라 주변경관이 수려해서 많은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다는데 잠잠하던 풍경에 하나 둘 나타나는 사람들을 지나치며 피정의 집 뒤편에서 시작하여 착지점을 지나는 십자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성당의 미사시간은 이미 지난 듯하여 더욱 조용하고 정갈한 분위기와 나바위성지 망금정에서 내려다 보이는 금강이 있어 발길 닿는 곳마다 참으로 예뻤다. 이곳 정취와 분위기는 반나절 쯤 생각 없이 늘어져 놀다오고 싶은 마음으로 참 은혜로운 곳이어서 그냥 머물렀다 지나기에는 아쉬움이 많아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우리는 나바위성당에서 약 4km쯤 떨어진 강경구락부 근대화거리로 향했다. 강경구락부는 강경근대역사문화거리에 위치한 곳으로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건축물을 볼 수 있는 레트로한 복합공간으로 알고 찾아왔다. 일본어로 클럽을 구락부라고 불렀다고 하니 과거 이곳이 유흥가였지 않나 생각해 본다. 그래서인지 근대 시대에 번창했던 강경사인들이 당시 즐기던 근대 서구식 사교시설과 오락시설인 커피하우스 호텔 등을 옛 모습으로 재현해 놓은 곳인데 붉은 벽돌의 구 한일은행 건물과 옛 모습 그대로 재현된 강경호텔과 카페 커피하우스를 볼 수 있었다. 카페는 실제로 운영 중이었으며 야외에 청년들이 차를 마시는 모습이 유일하게 움직이는 풍경이었다. 구락부 안에는 예전에 돈가스가 유명한 곳이 있다기에 우리가족의 최애음식이라 방문해 볼 계획이었으나 지금은 새로운 이름 <반주>라는 이름으로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개업 축하 화분이 줄줄이 놓여있고 역시 문은 닫혀 있었다. 마침 가까운 곳에 수제 돈가스 집이 있어 푸짐한 점심을 만족하게 맛볼 수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주변 골목을 걷다보니 생각하지 못했던 젓갈시장이 적잖은 규모로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강경에 대하여 알지 못했던 정보를 다녀와서 찾아보니 서해 젓갈 일번지로 꼽히는 곳이 바로 강경이었다. 강경 포구는 조선 시대 후기 서해를 누비던 어선들이 금강 물길을 통해 이곳까지 들어와 서해 수산물을 풀어 파시(바다 위에서 열리는 생선 시장)를 형성하며 일찍이 ‘수산물 핫플’이었단다. 강경의 짧은 거리를 지나면서 드럼통에 담겨 따스한 봄볕을 쬐고 있는 짭조름하고 짠내 나는 젓갈류를 지나치자니 어쩐지 마음 한편이 몽글몽글해진다. 어릴 적 이런저런 젓갈들을 많이 먹고 자랐던 추억의 한 자락이 따라온 탓일 것이다. 강경은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무역의 허브이면서 장마당이 펼쳐지던 곳이었다니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의 풍경이 이곳에 펼쳐져 있었으리라. 어느 날 이 거리를 구석구석 꼼꼼히 걸어 다니다 보면 여행의 제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 산책처럼 편안한 걸음을 뒤로 하고 일정을 살펴보니 약간의 여유가 있어 이곳에서 얼마 되지 않은 관촉사를 들러보기로 하였다. 관촉사는 육군(논산) 훈련소가 있는 논산의 은진면 넓은 들판을 굽어보고 있는 도량이다. 사실 육군훈련소를 지나면서는 문득 가슴이 아련해지면서 아픈 추억까지 떠올랐다. 동생이 군입대하여 면회를 왔던 기억으로도 그냥 짠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곳을 조금만 지나면 관촉사가 있다. 관촉사에는 가장 큰 불상인 은진미륵이라고도 부르는 국보 제323호 '석조미륵보살입상'이 있는 절이다. 관촉사를 오는 관광객 중 대부분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보러 올 정도로 웅장한 볼거리를 자랑하는 사찰로 관촉사라는 이름보다 은진미륵이 있는 절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잠시 들러 가는 마음으로 왔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관촉사의 풍경과 저 멀리 논산시의 시골 풍경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한번쯤 목적을 두고 다녀와도 좋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그동안 많은 사찰을 들러보았지만 그냥저냥 지나치다가 관촉사의 윤장대를 보면서 그 의미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윤장대는 불교 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윤장대를 한번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이라고 하니 미리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한편 우리나라에 희유한 불상이라 여겨지는 은진미륵과 윤장대에 관한 상식을 얻은 것만으로도 관촉사를 경유했던 이번 여행에 의미를 두고 다시 논산의 션샤인랜드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미스터 션샤인>은 tv에서 2018년 7월 7일부터 2018년 9월30일까지 방영된 주말드라마이며 1900년부터 1907년까지 대한제국시대 의병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우선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인 선샤인랜드를 다녀온 이번 여행을 마치고 오자마자 유투브를 통해<미스터션샤인>을 몰아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벌써 영화의 배경음악으로도 충분히 여행중의 기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한편 논산 선샤인랜드는 개화기 촬영 세트장인 선샤인스튜디오와 한국전쟁 직후의 풍경을 재현한 1950스튜디오 등 실내에서 사격과 가상현실(VR) 체험을 즐기며 훈련소 추억을 자녀와 공유하는 밀리터리체험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총면적 약 2만㎡에 이르는 선샤인스튜디오는 1900년대 초반 한성(서울)을 재현했다. 한성전기 사옥을 비롯한 근대 서양식 건물과 기와집, 초가집, 일본식 가옥에 1899년 운행을 시작한 전차까지 어우러져 120여년 전 모습을 그대로 구현했다 이곳에서 tvN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대부분을 촬영했다고 한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자 논산 선샤인랜드 또한 한류 관광지로 떠올랐다는데 국내 최초 민관합작 드라마 테마파크라는 것이다. 극 중 ‘글로리 호텔’로 들어가면 카페 ‘가배정’은 지금도 영업 중이라서 그냥 출발하기 아쉬워 차도 마시고 고급진 단맛도 함께 담아왔다. 또한 디즈니 드라마 세계 1위를 기록했던 ‘파친코’도 이곳에서 촬영했다는 사실도 다녀와서 알게 되었다. 유료로 지정된 촬영현장을 건너다보면서 망설였건만 들어와보길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입구 바닥에 써있는 문구까지 컨셉이 확실함을 보여주는 매력과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는 디테일들이 살아있어서 미스터 션샤인을 정말 즐겁게 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가볼만 하다는 생각이다. 비록 영화보다 먼저 촬영지를 찾아서 다소 아쉬운 부분은 있었지만 다시 역사를 찾아보고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나는 일류였다. 함께 동행해준 아들은 새록새록 생각난 듯 끈임 없이 흐르는 음악과 곳곳마다 되짚어보며 다시 젖어드는 모양새였다. 사람마다 시간을 보내는 법을 면밀히 지켜보면 그 사람의 성향을 알 수가 있다. 새로운 경험을 취함으로써 선한 일을 할 수도 있고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깨닫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평소 걷는 것을 무척 싫어하고 사람 욕심이 많았던 나에게 여행을 시작하면서 나를 향하는 자아실현의 과정과 그 길에서 만나는 인생경험에 깊은 맛을 알았다. 결국 삶은 관념과 공식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과 이해로 살아가야 하는 축제 같은 의미라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조건에 더욱 깊이 혹은 더욱 의미 있는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결국 여행으로 인한 나의 변화된 삶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여럿이 뭉치거나 어우러져야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깨닫게 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