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하세요...
얼마전 구리 권 황준보 권 남자부장님께서 저의 어머니(정경자 44년 생) 글을 다음카폐 "한국SGI" 올려주셔서
전국적으로 SGI회원 여러분들의 기원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서울 경희대에 재학중이고 나이는 27입니다...
제가 5살 때부터 어머니께서 기관지천식에 걸렸고 어머니께서 22년 정도 병마의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제 기역 속엔 어머니의 건강한 모습이 없습니다...
기관지천식으로 인해 합병증으로 폐에 만성 폐 질환이 왔고...
폐가 20%정도만 살아있고 나머진 죽은 상태이고...
폐 영향으로 심장도 20%만 남고 나머진 죽은 상태였습니다...
그로 인해 평상시 숨쉬는 것이 사우나에서 숨 쉴 때처럼 힘들어했고...
몸이 나빠지면 군대에서 화생방 훈련 할 때 숨쉬는 것처럼... 고통스러워 보였습니다...
어머닌 오랜 세월동안 신심 했지만 묘법을 믿으면서 병이 완쾌되지 못 했던 건...
신, 행, 학을 열심히 하지 않았던 거 같습니다... 물론 몸이 아프니까 힘들었겠죠...
전 11년 가까이 신심을 했지만 제 몸이 편하다 보니 신, 행, 학을 열심히 하지 않았고...
군대 갔다와서는 제목 또한 열심히 하지 않았습니다... 이 얼마나 불효자식 입니까...
아버지가 엄해서 그런지 제가 신심 하는 것을 아버지한테 비밀로 한 것도 바람직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어머니와 전 본존님에 대한 강한 믿음만으로 살아왔습니다...
아버진 이북에서 태어났고 어린 나이에 형제들과 6.25때 남한으로 피난 내려와 일찍이 부모님을 잃고 부모님 제사를 절에서 반세기동안 모셔 왔습니다...
강력한 신자는 아니지만 반세기 동안 절에 부모님을 모셔서 그런지 나름대로 애착을 갖고있습니다...
5월 20일 경희의료원 응급실로 입원하던 날 담당의료진이 피검사 후 산소가20%고 나머진 이산화탄소라 이 환자가 언제 죽을지 모르니 인공호흡기를 입에 넣자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알겠지만 일반 사람들도 뇌시경검사 할 때 힘들어하는데...
이미 폐와 심장이 각각20%인 어머니가 감당하기란 어려울 꺼라 생각이 들어 저와 어머니는 강력히 반대했지만...
어쩔 수 없는 아버지의 동의로 인공호흡기를 입에 넣기로 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병원에 의료진들이 환자동요에 상관없이 강하게 치료한다는 것을...
팔, 다리를 끈으로 감고 건장한 남자들이 어머니 몸을 잡고 강제로 입에다가 인공호흡기를 넣는 것을...
물론 의료진들의 의학적 판단으로 내린 결정이긴 하지만...
그때 들리던 어머니의 숨 넘어가는 소리...
말못하고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입에서 피와 침이 섞여서 나오는 거...
전 주위 시선에 상관없이 어머니 옆에서 무릎 끊고 앉아 벽을 보며 울면서 제목을 시작했습니다...
그동안에 어머니를 위해 열심히 활동하지 못했던 것 정말 후회하며 대어본존님께 살려달라고 간절히 제목 했습니다...
결국 어머니께선 심장마비가 왔고... 심장마비가 왔다는 것은 운명하셨다는 것이었고...
전 계속해서 제목을 하면서 어머니 손 과 발을 만지며 한없이 울었습니다...
이미 기계의 치수는 일직선을 그리며 사망한 상태였고 의료진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기계대신 손으로 수작업을 했습니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선명하고... 한숨이 나옵니다...
그러다 묘하게 어머니 숨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하여...
3층 내과 중환자실로 운반되어 심장전문 의사(강흥선, 김진혁)에게 치료를 받았습니다...
내과 중환자실 에서도 치료도중 2번이나 심근경색(심장마비)이 왔고 어머니는 3번 죽었다 깨어났다 하는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전 옆에 화장실에 들어가서 울면서 제목을 하였고 아버진 어쩔줄을 몰라 했습니다...
한 10분쯤 지났나 담담의사(김진혁)가 오더니... 이 환자는 이미 폐와 심장이 20%남았고 의식 차리기도 힘들고 회복도 몇 개월이 걸릴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어머니는 실신상태였고 폐와 십장도 약물에 의해 움직였고 호흡도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여 100% 숨쉬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과중환자실은 일반병실과는 달리 보호자도 하루에 정해진 시간 오전 11시30분~12시 오후 7시~ 7시30분까지만 면회가 허락이 되고
환자의 보호는 담당의사 간호원이 대. 소변까지 받아주고 있어서 그런지 하루에 병원비만 35만원이었습니다...
활동을 하지 않은 상태였고...
연락을 하여 제목을 부탁드리고 싶지만 권도 없고 소속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회관에 연락을 하기로 했습니다...
학교가 경희대라서 수업 끝나고 집에 갈 때 가끔 학교에서 가까운 중량회관에 가서 제목을 해서 인사를 했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114에 걸어서 중량회관을 물어본다는 것이 동대문 회관으로 연락을 하게 되었고...
114를 통해 다시 어머니가 속해있는 구리회관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 제 어머니를 위해 한번씩만이라도 기념해 주세요 제발 부탁합니다 "
울면서 부탁했던 거 아직도 기역 합니다...
그리고 전 중량회관에 가서 어머니사실을 보고하고 지하실에서 혼자 제목 하게 해달라고 하여 제목을 시작했습니다...
그 날 저녁과 다음날 저녁에 아버지와 같이 밤샘 제목을 하였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제목을 한다고 생각하니 더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중량회관 구리회관 동대문회관에서 창제실에 어머니이름을 붙이고 회원 님들이 제목을 해주기 시작하였고...
구리권 황준보 부장님이 인터넷 "한국SGI" 카폐에 있는 "기원 부탁드려요...."에 글을 올려서 전국적으로 어머니를 기원해 주셨습니다... 많은 분들의 격려의 문자 메세지 감사합니다...
약물로 움직이던 폐와 심장이 묘하게 안정권에 들어서고 약물 없이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담담 의사가 인공호흡기를 입에 넣고 보름이 되면 입안 성대에 무리가 가서 평생 말을 못할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물론 본인 호흡이 살아나서 자연히 인공호흡기를 빼내면 문제없지만
그렇지 못하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한다면 목에 기관지절개수술 을 하여 입에서 목으로 인공호흡기를 넣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전 제목으로 도전했습니다... 어머니 스스로 호흡이 살아나고...
절대 기관지절개수술을 하지 못하게...
묘하게 어머니 호흡이 조금씩 살아났고...
호흡이 살아나다 보니 어머니 호흡과 인공호흡기 호흡이 마찰이 나서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것 또한 제목으로 묘하게 마찰이 없었고...
전 어머니 호흡이 담당의료진이 놀랄 정도로 살아나기를 제목 했습니다...
정말 제목대로 담당의료진이 놀랄 정도로 호흡이 살아났고...
그 날 간호원이 담당의사도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호흡은 어머니 50% 인공호흡기 50%...
담담 의사 는 자신 있다면서 내일 5월30일 아침에 인공호흡기를 빼자고 했습니다...
전 " 이제 어머니 살았다 "고 안심했습니다... 정말 듣고 싶었던 의사의 말이었습니다...
그 날(29일) 오후 면회를 가기 전에 아버지 친구들이 오셔서 아버지에게 수고한다면서 술을 먹였습니다...
아버지가 술 먹고 면회를 가려는 모습이 정말 미웠고...
결국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원질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30일 오전에 인공호흡기를 빼다가 어머니께서 1분도 버티지 못하고...
다시 입에 인공호흡기를 입에 넣어야 했습니다...
정말 뼈아픈 일 이었습니다...
원질의 무서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어머니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 오셨고... 전 다시 울면서 제목을 시작하였고...
묘하게 하루만에 어머니 호흡이 살아났고... 전보다 훨씬 호흡이 살아나고...
어머니가 70% 인공호흡기가 30%로 유지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담당의사였습니다... 한번 실패해서 그런지 인공호흡기를 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담회, 회합, 10시간 제목회, 경희대SGI동아리모임, 일본인SGI 레인보우모임 등등...
나름대로 여기저기 다니면서 저의 어머니 소식과 기원을 부탁했습니다...
저와 친한 일본 SOKA 대학에서 온 사모토 마리씨를 통해 이케다선생님을 만나려고도 했습니다...
한국의 여상락이사님도 만나려고 했습니다...
이케다 회장님도 여상락 이사님도 절차가 있기에 만나 뵙기 힘들 다는 것 을 알고...
이케다 선생님께 2번에 걸쳐 편지를 썼습니다...
어머니는 견디기 힘든 치료와 한달 가까이 끈으로 감겨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엉덩이에 욕창이 생겨나고... 하루 하루를 고통 속에서 사셨습니다...
언젠가 어머니와 같은 중환자 실에 입원해 있는 전영자님이 위독해져서 당담의사 와 가족들이 고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면회가 끝나고 전영자님 가족들 옆에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담당의사가 오래 버티기 힘들다며 이젠 편하게 보내주지 않겠냐고 했던 거 같았습니다...
슬픔에 빠져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가족들에게 묘법을 알리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미 어떠한 상황이라도 본존님을 확신하고 있다고 생각했었고 지금이야말로 말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유사시가 되니 정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고... 자신감도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말도 못 전했고 전영자님은 다음날쯤에 운명 하셨습니다...
어머니도 몸이 안 좋아지셨고...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절복을 결심하고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지만 정말 바보취급 당했습니다... 대성인님은 목숨을 걸고 광포를 하셨습니다... 바보취급은 두렵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선 2002년 6월 25일 14시32분 운명하셨습니다...
전 그 순 간을 기역 합니다...
25일 오전 담담 의료진 의로부터 3번에 걸쳐 올라와서 마지막으로 보라고 한 것...
그때 어머니는 맥박만 띄고 운명 직전 같았습니다...
3번째 올라갔을 땐 담당의사(김진혁)가 이젠 편하게 보내드리자며 인공호흡기를 빼자고 했던거...
그때 아버지와 전안된다 명대로 살게 나두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려와 어머니가 있는 입원실 창문을 보며...
제 일생 최대의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계속해서 어머니의 완쾌를 기원해야 하나...
아니면 이제부터 추선공양을 드려야 하나...
완쾌를 기원하자니 어머니가 고통스러워 보이고...
추선공양 또한 말도 안 되는 것이었고...
그렇게 한 10~20분 가까이 망설이다가 어머니께서 운명 하셨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묘법으로 주위 모든 사람들이 제천선신이 되어 무사이 3일장을 치루었고...
병원 영안실에선 하기 힘들다는 근행, 제목, 추선공양도 할수 있었고...
SGI불교식 으로 제사도 치뤘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는 초목성불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는 벽제에서 무사이 화장하여...
용미리 서울 시립왕릉식 납골묘에 모시는 공덕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몇 번 의 사랑을 해왔습니다...
그때마다 사랑하는 여자들과 이루어지지 않아 많이 아파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사랑과 운명을 생각하니...
그때의 아픔, 고통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청개구리처럼 어머니가 하라는 데로 하게되고...
집에 있을 땐 어머니 생각이 정말 간절히 납니다...
여러분 지금 아버지 어머니께 가서 허리, 팔, 다리 주물러 주고 사랑한다고 말해보세요...
저를 믿고 같이 기원해 주신...
경희대 부백 교수님, 구리권 손근석 권장님,
구리권 황준보 권남자부장님, 중량권 양명준 권남자부장님,
중량권 지역장님 과 사모님, 구리권 관리인님, 사모토 마리씨,
중량권 SGI회원여러분, 구리권 SGI회원여러분, 동대문권 SGI회원여러분, 경희대SGI회원여러분, 대학부SGI회원여러분,인터넷을 통해 기원해준 전국의 SGI회원여러분, 일본인SGI회원 레인보우 여러분...
그리고 전국, 전 세계 SGI회원여러분과 이케다 선생님...
어머니 소원대로 일가화락하여 본존님을 집에 모시고...
광선유포의 1인자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서에 " 부모에게 효도하라 란 설사 어버이가 사물을 기역 하지 못하더라도 나쁘게 말하더라도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좋지 못한 얼굴을 보이지 않고 어버이의 말씀에 일분도 틀리지 않고 어버이에게 좋은 것 을 드리려고 생각하고 하다 못해 드릴 일이 없으면 하루에 두 세 번 웃는 얼굴로 대하라 함이니라 " (어서 15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