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주거건축의 백미, 나주 남파고택
한옥은 그 집안의 정신과 기품이 묻어있다고 하는데 그걸 제도로 증명해준 집이 바로 나주 시내의 남파고택. 조선의 한옥에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편리함을 더해 퓨전형태를 띄고 있다.
동학농민전쟁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겪으면서도 오늘날까지 피해 하나 없이 보존 된 것은 기적에 가깝다. 건축 자체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지금도 매일 조왕신을 모시며 지성을 바치고 큰 제사까지 지내며 전통을 이어가고 있어 생활사 연구에도 생생한 자료가 된다.
이렇게 큰 집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주들녘에 땅을 가지고 있지만 콩과 팥을 수확한 재산을 불렸다고 한다. 수확해서 값이 오르면 장에 내다팔고 값이 떨어지면 장을 만들고 팥죽을 만들어서 5~6대조에 재산을 늘렸다고 한다.
동남쪽을 향한 대문부터 예사치 않다. 늘 문이 열려 있는데 해뜨기 전에 대문을 열어 양기를 받아들이고 저녁 전에 닫아서 음기를 막는 단다. 문칸 채는 머슴이 거처했던 장소, 소를 키우는 마굿간이 붙어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헛담이 있고 돌아 들어가면 다부진 안채가 자리하고 있다. 9칸, 그 크기만도 50여 평에 이른다. 1910년 6대조 남파 박재규가 장흥군수를 지낸 후 장흥관아의 건물을 본 따 지었다고 한다.
아직까지 온돌을 사용하고 있으며 연기는 바닥을 따라 담 위의 굴뚝으로 빠져나간다. 연통이 지나가는 마당의 바닥은 잔디가 누렇게 변색되어 있다.
가장 눈여겨 볼 것은 정재(부엌). 무려 13평. 그 집에 얼마나 부자임은 부엌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하는데 나무광, 곡식광, 식량광, 조미료 광 등이 딸려 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조항신. 지금도 종부께서 5시 반이면 물을 갈고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며 기도한단다. 이런 정신이 고택을 유지한 버팀목이 아닐까 싶다.
다시 부엌 밖을 나가면 뒤쪽에 1884년 남파 박재규가 지었다는 초가삼간집이 보인다. 큰방과 마루, 작은 방이 있고 부엌엔 디딜방아가 있어 매일 방아를 찧어 밥을 해먹었다고 하는데 햇반을 상상해 본다. 큰 방은 작은 창문이 걸려 있다. 이 봉창은 밖에서 보면 문 ‘門’의 형태로 주인장이 가장 아끼는 방이다. 부부금실을 위한 방이란다.
장독대에 40여 개의 크고 작은 항아리가 가득. 양지바른 곳에 햇볕을 쬐고 있다. 고추장, 간장, 된장. 김치. 장, 소금, 젓갈 등이 담겨 있는데 지하에 묻은 장독은 여름철 김치와 단무지를 담아 두었다고 한다. 100년 넘은 씨간장도 볼 수 있다.
요즘은 김치냉장고가 3대가 있어 여름항아리가 제 역할을 잃은 것이 못내 아쉽다.
남파고택에 가장 이채로운 것을 뽑으라면 고택의 안채 뒤편에 자리한 석조. 폭 2미터는 족히 될 것 같은데 금성산에서 돌을 깎아 집으로 가져온 것이다. 너무 커서 대문까지 헐 정도로 귀한 보물이다. 가족들이 단명하고 병에 들자 이를 금성산의 강한 기운 때문이라 여기고 그것을 누르기 위해 이곳에 수조를 만든 것이다.
다른 수조와 다른 것은 배수구가 없다는 것. 그래서 비가 오면 물이 고이는 수량을 보고 수해에 대해 대비했다고 한다. 요즘은 어린 손자들의 물놀이 장으로 사용한다고 하니 선조의 멋진 선물이 아닐까 싶다.
안채에 들어가면 소풍갈 때 사용한 도시락과 찬합을 볼 수 있다. 해주, 통영반과 함께 최고로 치는 나주반을 볼 수 있다. 외다리 소반에 정성 가득한 반찬들을 상상해본다. 엄청난 크기의 뒤주도 볼 수 있다. 너무 커 발판에 올라 쇠바가지로 쌀을 펐다고 한다. 쌀이 바닥에 이르면 들어가서 퍼 올렸다고 한다. 떡판, 물통 등 그야말로 생활사 박물관이다.
안채에 비해 작지만 아늑한 사랑채. 벽장을 열면 보물이 가득. 진귀한 책으로 가득. 일제 강점기 때 출간한 야구 규칙에 관한 책도 볼 수 있다. 선친이 YMCA야구단 단원이었다고 한다. 방 한 칸은 다실. 차향이 가득해. 앉아 있기만 해도 나른하다.
일제 강점기 광주학생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나주역사건의 주인공인 박준채와 박기옥이 이 집에 살면서 광주로 통학했다고 한다.
현재 남파고택의 주인은 박경중 선생, 고택의 내력과 한옥의 예스러움을 차분하게 설명해주신다. 호남 양반가의 고택과 아름다운 가풍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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