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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학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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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스크랩 (55) 666     (계13:16-14:1)
praysir 추천 0 조회 6 18.08.02 23:3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55) 666

 

 

(계13:16-14:1)

16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 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륙이니라

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우리는 지난주까지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땅에서 올라 온 짐승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를 공부했습니다. 용이라고도 하고, 옛 뱀이라고도 하고, 마귀라고도 하는 사단이 그 죽은 것 같았다가 다시 살아난, 예수 그리스도를 흉내 내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에게 권세를 주어서 세상을 핍박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의 세력을 추종하게 만드는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엄청난 능력과 기적과 이적을 가지고 세상과 성도들까지도 미혹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거짓 선지자, 적그리스도, 가짜 목사, 가짜 선지자로 우리 예배당 안에 이미 들어와 있음도 확인했지요.

 

그러나 그들의 모습은 뿔 달린 마귀의 모습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와 있다는 것이 성경의 경고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우리가 궁금해 하는 666이 등장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666에 대해서 궁금해 하고 계시고 또 잘못된 확신 속에서 괜한 두려움에 떨고들 계십니다. 오늘 정신 똑 바로 차리시고 잘 들으세요. 그래서 진짜 우리가 두려워해야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좀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먼저 16절, 17절을 보세요.

 

(계13:16-17)

16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 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그 땅에서 올라 온 짐승이 모든 자들에게 오른 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합니다. 그런데 그 표는 짐승의 이름이며 그 이름의 수라고 합니다.

그러면 먼저 성경에서 이 표를 받는 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보겠습니다.

당시 고대 사회에서는 군인들과 노예들 그리고 신전 봉사자들에게 표를 찍었습니다.

그 표는 ‘소유’와 ‘보호’의 의미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신전에서 우상을 섬기던 신전 제사장들 손에 찍힌 표는 그가 그 우상에게 속해 있다는 의미였고, 노예의 손이나 이마에 찍혔던 표는 그 노예가 어떤 주인의 소유였는가를 말해주는 표였습니다.

요한은 당시 사람들이 척 알아들을 수 있는 그 “표“의 개념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 표를 받은 자들은 그 표를 준 자의 소유라는 당시 사람들의 심상을 가져다 인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도 어떤 표를 받습니다.

 

(계14:1)

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역시 14만 4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이마에 짐승의 이름이 아닌,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받습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받는 표나 짐승의 표를 ‘이름’이라고 할까요? 성경에서 ‘이름’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바로 그 존재의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행4:12)

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여기서 다른 이와 다른 이름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이름’하면 그 당사자 자신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열국의 아비’ ‘야곱’‘속이는 자’ ‘모세’‘건져낼 자’ ‘예수’‘구원자’ 이렇게 성경에서 이름이 의미하는 바는 그 당사자 자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14만4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을 새기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을 새겨 넣으셨다는 말이 되지요?

구원받은 여러분 안에 누가 계십니까? 성령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성령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그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이름을 받는 것입니다.

그럼 짐승의 이름이 새겨졌다는 것은 무슨 뜻이 됩니까? 사단 자신이 세상 사람들에게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의 주인은 사단입니다. 그들은 모두 그 사단의 사주를 받고 거기에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그게 짐승의 이름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16절에 보시면 그 짐승의 이름이 모든 자에게 새겨져 있다고 나오죠?

이 땅에 오고 오는 모든 자들에게 그 짐승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말입니다. 그 모든 자에는 여러분도 들어갑니다. 원래는 구원받은 여러분도 짐승의 표를 받으신 분들입니다. 조금 얼떨떨  하시겠지만 이게 바로 로마서 5장과 고린도 전서 15장의 내용인 것입니다.

 

(고전15:22)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아담과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은 사단의 미혹에 넘어가서 타락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죽어야 합니다. 그 모든 이들은 짐승의 표, 사단의 이름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최초의 살인자인 아담의 장남 가인에게 바로 그 표를 주십니다.

 

(창4:15)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여기에 보면 타락한 인간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가인이 하나님으로부터 표를 받습니다.

가인은 분명 저주받은 죄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무슨 표를 주신 것일까요?

저주의 표를 주신 것입니다. 이 표는 가인뿐만 아니라 아담 안에 들어 있는 모든 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저주의 표입니다. 그 표를 받은 모든 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한 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그 표를 주시고 ‘세상이 너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 세상과 가인이 한 편이라는 표가 주어졌기 때문에 가인은 세상으로부터 적대시 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짐승의 이름,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들은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께 영원히 저주를 받게 되는 그 사단과 그 사단의 세력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담 안에서 이 저주받은 땅에 태어나는 모든 자들은 전부 그 짐승의 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의 어떤 한 무리를 하나님께서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집어 넣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받아야 할 그 짐승의 표를 그 예수에게 새겨버렸습니다. 그게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그 예수는 그 짐승의 표를 받고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 안에 들어있던 자들을 하나님께서 이제 ‘예수’로 보아주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안경을 쓰시고 그들을 보시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 여겨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이제 짐승의 표를 받은 죄인들은 없어지고 예수의 이름을 받은 자들만 보이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크리스티아노스)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하나님의 이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바로 이 이야기입니다.

 

(엡1:3-13)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 이야기가 바로 하나님의 이름, 예수의 이름, 하나님의 표를 받은 자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구별된 사람들을 ‘구별된 자들’‘성도’라고 부르시며 그들을 이 땅에서 사망으로부터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겔9:3-6)

3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4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5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 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6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전부 죽어야 하는데 그 하나님의 표를 받은 사람들만 살아나는 것입니다. 살아나는 것 뿐 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딸로 삼아주십니다.

 

(계22:3)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보세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히 살게 될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켜 ‘그 이마에 어린양과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진 자’라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표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제 아셨죠? 

그럼 그 짐승의 표, 짐승의 이름이 왜 666인가? 성경에서 찾아보자고요.

 

6이라는 숫자는 창세기에서 등장한 숫자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6일 동안 창조하셨죠?

그러나 그 6일 동안의 창조는 7일 째의 안식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7일 째 하나님께서 안식을 하셨다는 것은 완성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6이라는 숫자는 완성되지 못한 ‘미완성, 아직 부족한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당시 고대 시대에서는 완성과 안식의 숫자 7과 삼위 일체 하나님의 3을 이용해서 하나님을 표기할 때 777로 표기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13장을 공부하면서 보았지만, 용과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정확하게 무엇을 parody하고 있었습니까? 성부하나님과 성자 예수 님, 그리고 성령하나님, 삼위 일체 하나님을 그대로 흉내 내고 있었지요? 그래서 하나님을 그대로 흉내는 내되 하나님의 능력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가짜 세력을 가리켜 666이라고 표기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의 재앙과 나팔 재앙을 공부했지요? 그 인의 재앙, 나팔 재앙에서 여섯 번째 까지는 전부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전부 저주와 심판의 내용이었지요? 그렇지만 일곱 번째에서는 항상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환상으로 끝이 나는 것을 여러분이 기억하실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6이라는 숫자와 7이라는 숫자가 일관성 있게 대조되고 있습니다. 666은 이렇게 요한 계시록 전체에 깔려있는 일관된 상징을 배경으로 한 숫자인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오늘 본문에서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이 몇 개의 부류로 나누어져 있습니까?

 

(계13:16)

16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요한은 의도적으로 6이라는 숫자에 맞춰서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을 나누어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느부갓네살이 만든 금 신상의 높이가 60규빗이고 폭이 6규빗 이었습니다. 짐승의 세력 바벨론, 바사, 헬라, 로마를 상징하던 그 신상이 왜 60규빗, 6규빗인지 아시겠지요?

좀 더 확실한 근거를 대 드리지요.

 

(왕상10:14-20)

14      솔로몬의 세입금의 중수가 육백 육십 륙 금 달란트요

15      그 외에 또 상고와 무역하는 객상과 아라비아 왕들과 나라의 방백들에게서도 가져온지라

16      솔로몬 왕이 쳐서 늘인 금으로 큰 방패 이백을 만들었으니 매 방패에 든 금이 육백 세겔이며

17      또 쳐서 늘인 금으로 작은 방패 삼백을 만들었으니 매 방패에 든 금이 삼 마네라 왕이 이것들을 레바논 나무 궁에 두었더라

18      왕이 또 상아로 큰 보좌를 만들고 정금으로 입혔으니

19      그 보좌에는 여섯 층계가 있고 보좌 뒤에 둥근 머리가 있고 앉는 자리 양편에는 팔걸이가 있고 팔걸이 곁에는 사자가 하나씩 섰으며

20      또 열 두 사자가 있어 그 여섯 층계 좌 우편에 섰으니 아무 나라에도 이같이 만든 것이 없었더라

26      솔로몬이 병거와 마병을 모으매 병거가 일천 사백이요 마병이 일만 이천이라 병거성에도 두고 예루살렘 왕에게도 두었으며

(왕상11:3-4)

3        왕은 후비가(후궁) 칠백 인이요 빈장이(첩) 삼백 인이라 왕비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켰더라

4        솔로몬의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니

 

이 구절들은 지금 솔로몬의 타락을 지적하는 구절입니다. 원래 이스라엘의 왕은 은과 금을 많이 가지면 안 됩니다. 그리고 말과 병거를 많이 두면 안 됩니다. 그리고 아내를 많이 두면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신17:16-17)

16      왕 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말을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17      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이 미혹되게 말 것이며 은 금을 자기를 위하여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왜 이런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까? 이스라엘의 진짜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그 나라 왕의 세상 적인 힘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에 의존하고 의뢰하며 순종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당시 왕들이 힘으로 소유하고 있었던 은과 금, 그리고 말과 마병, 그리고 첩들을 못 갖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모두 다 어겼습니다. 우리가 읽었던 열왕기 상 10장이 바로 그 솔로몬의 타락을 묘사하는 첫 부분인 것입니다. 그 솔로몬의 타락이 무엇으로부터 시작됩니까? 6백 6십 6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666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고 은과 금과 말과 마병과 첩들로 자기의 힘을 과시하는 죄를 범한 것처럼 하나님이 아닌 이 땅의 힘과 보물을 추구하여 거기서 평안을 얻게 만드는 우리가 반드시 경계해야 할 그 악한 세력과 기관과 방법들 전부를 가리켜 666이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그러한 세상 적인 세계관을 버리지 못하고 살고 계시다면 여러분은 짐승의 표를 받으신 분들일지 모르는 것입니다. 섣불리 구원의 확신을 이야기하지 마세요. 우리가 지난 시간에 보았던 마태복음에 나오는 가짜들은 전부 자기들이 진짜인줄 알고 죽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수천 년 동안 오로지 인간을 속이는 것만 연구한 엄청난 힘을 소유한 사단이 여러분의 대적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살아야 하는 인간들을 미혹해서 자기의 이름을 위해 살도록 부추기는 세력입니다. 바벨탑을 쌓았던 그 죄인들의 목적이 뭐였습니까?

 

(창11:4)

4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보세요. 그 짐승의 세력은 자기의 배와 자기의 이름을 위해 하나님까지도 이용을 하게 만드는 자들인 것입니다. 우주의 중심에 ‘나’를 올려놓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도 힘 있는 하나님을 잘 달래서 여러분의 명예와 이름을 높이고 자랑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예배당 안에서 바벨탑을 쌓고 계신 것입니다. 그 분들이 바로 예배당 안에 있는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777이 아닌 666의 세력이 하나님의 흉내를 비슷하게 내면서 수많은 가짜 교회들을 이 땅에 만들어내고 있고, 또 올바른 교회 안에서도 그런 거짓 가르침을 퍼뜨려서 사람들을 이간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놈들에게 속아서 그 길이 맞는 줄 알고 끝까지 올곧게 좇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전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게마트리아 계산법을 사용해서 ‘666은 네로다’라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여러분도 들어보셨죠? 당시 헬라어나 히브리어, 라틴어는 숫자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알파벳을 숫자로 풀어내는 것을 게마트리아 계산법이라고 합니다.

nero가 라틴어로는 neron 이 됩니다. 라틴어의 n이 50이고 e가 6이고 r이 500입니다. 그리고 o가 60이고 n이 다시 50 그래서 이것을 다 더하면 6백6십6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성경이 기록될 당시는 헬라어가 공용어였지 라틴어가 공용어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더 우스운 것은 이 게마트리아 계산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처음에 헬라어로 숫자 계산을 해서 안 맞으면 히브리어로 바꾸어서 계산합니다. 그래도 안 맞으면 라틴어로 바꾸어서 계산을 하고 그래도 안 맞으면 영어로 바꿉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가 원하는 숫자를 만들어 내고 맙니다. 그 사람들에게 가면 어떤 이름도 666으로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건 억지입니다.

 

이런 주장도 있습니다. 여러분 유명했던 ‘오멘’이라는 영화에서 거기에 등장하는 어떤 사람의 이마에 진짜 666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하도 그런 영화를 많이 봐 가지고 그 666이 ‘바코드다, 앞으로 나오게 될 전자 신분증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으신 분들이지요? 서로 한번 보세요. 누구 이마에 그 하나님의 인이 새겨져 있습니까? 분명 성경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표가 그 이마에 새겨져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여러분 이마에 그 표가 없어요? 그건 상징이란 말입니다.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들이 이마와 손에 표를 받는다는 것은, 당시 고대 사회에서는 이마는 지성과 이성을 상징하는 것이고 손은 행동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은 안과 밖이 모두 타락을 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진짜 이마와 손목에 그 바코드가 찍힌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정말 그 666이 바코드나 전자 신분증이라면 초대 교회 성도들이 이 요한 계시록을 읽고 어떻게 그렇게 감격의 눈물을 흘렸겠습니까?

이 요한 계시록의 최초의 수신자는 초대교회 성도들입니다. 그 분들이 바코드가 뭔지 알았을까요? 그 분들이 무슨 전자 신분증에 대해서 알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분들은 인도자가 이 요한 계시록을 죽 읽어주면 감동과 위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 부분은 미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부분이라고 우기기도 합니다.

여러분, 성경은 창세기 1장 1절부터 요한계시록 22장 21절까지 전부, 시공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되는 책입니다. 어떤 부분도 우리와 관계없는 부분은 없습니다. 어디서 그런 무식한 소설 같은 이야기를 배워 가지고 사람들을 혼란하게 만드는지 모르겠어요.

 

그 666이 ‘바코드다, 전자 신분증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한국 장로교회와 신학교들이 이단으로 규정한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그런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에 속고 계십니까?

도대체 그 666이 바코드라고 우기는 사람들은 어디 소속입니까? 기독교인들 맞아요?  

여러분, 이 LA에도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헌금이나 뜯어내고 공포 분위기 조성하는 종교기관과 목회자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여러분이 마켓이나 기독교 서점 앞에 가시면 그런 책자나 테잎을 많이 보실 거예요.

그런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들이 정말 그렇게 자신 있으면 공개토론 한번 합시다. 우리 많은 사람들 모아놓고 그 앞에서 성경 책 한 권만 갖고, 정말 성경이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공개토론 한번 합시다. 무슨 역사책 같은 것 가져오지 말고 성경책만 갖고 오세요. 뒤에서 수군대지 말고 공개적으로 한번 밝혀보자고요.

 

그 666이 바코드나 전자 신분증을 말하는 것이라면 왜 18절에서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이 있는 자만이 그 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하겠습니까? 그 666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신 하나님의 백성들만이 알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도 그 바코드만 안 받으면 괜찮은 건가요? 아니면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도 그 바코드를 받게 되면 구원이 취소됩니까? 이건 기독교의 가장 기본 적인 교리인 성도의 견인 교리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 아닙니까? 666, 짐승의 표라는 것은 그렇게 여러분들 눈에 보이는 어떤 형태나 모양으로 설명이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13장의 666과 대조하여 나오는 14장 1절의 14만 4천이 구약의 하나님의 교회 열두 지파와 신약의 교회 열두 사도, 그리고 거기에 허다한 무리를 상징하는 1,000을 곱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징하는 것처럼 666도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을 흉내 내서 성도들을 미혹하는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악한 세력을 총칭하여 상징하는 숫자인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요약해 드리겠습니다. 마귀의 세력은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비슷하게 parody하고 있습니다. 용, 옛 뱀, 마귀, 사단에게 그 권세와 힘을 받아 세상을 핍박하고 미혹하는 존재가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이고 그 힘의 원리를 추구하게 하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의 세력을 추종하게 하고 따라가게 만드는, 거짓 선지자들과 그들의 가르침과 철학이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이며 그들에게 미혹 당하여 하나님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 말고 이 땅의 힘과 보물 같은 것으로 자신의 행복과 만족의 근거를 삼으려하는 모든 자들을 666,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8절에서 그 666이 ‘사람의 수다’ 라고도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잘 먹고 잘 살게 된다. 만사형통이다. 모든 병이 다 낫는다. 삼박자 축복. 자기들의 배와 자기들의 이름을 위한 기독교를 가르치는 자들 전부 다 666의 표를 받은 자들입니다. 정신 차리세요. 오히려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한 하나님의 표를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땅에서 손해를 보며 살게 됩니다.

그러니까 17절에 그 짐승의 표를 받지 못한 자들은 ‘이 땅에서 매매를 하지 못 하더라’라고 나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도 그리스도인들은 상인들의 조합인 길드 조직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길드 조직에 가입을 하면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경제적으로 매매를 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똑같이 세상에서 그런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세금 꼬박 꼬박 내고 원리 원칙대로 장사 해보세요. 무슨 이익이 남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매매를 못하게 된다.’ 라고 기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오히려 이 세상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환난과 핍박에 던져지게 되는 것이 기독교지, 예수 그리스도를 이용해서 자기의 이익을 얻어내는 무당종교가 아닙니다.

패치 아담스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명작 중의 하나입니다. 실존 인물인 미국의 의사 헌터 아담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그 헌터 아담스는 불행한 가정환경을 비관하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서 스스로 정신 병원에 입원합니다. 거기서 헌터 아담스는 진정한 의사는 단순한 의료행위로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치료하는 것이라는 진리를 터득합니다.

병은 나아도 또 걸리고 결국 사람은 모두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의사는 단순히 사람의 생명을 연장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인생의 질을 높이는 데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어 가는 췌장암 환자에게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과 친해지는 법을 가르쳐 주려고 애를 씁니다. 의료행위로 그들의 병을 치료함과 동시에 이 패치 아담스는 그 병 속에서도 행복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인간 치료’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 패치 아담스와 함께 했던 사람들은 편안하고 행복하게 죽어갑니다.

그게 바로 목회자와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병이 낫고 여러분이 잘 살게 되는 것,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병은 나았는데 여전히 죽음 뒤의 세상이 두렵고, 부자는 되었는데 여전히 참 행복을 알지 못하는 그런 마취제를 투여하는 것이 목회자가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병은 여전한데, 여전히 가난한데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고 가난 앞에서도 하나님만으로 행복한 진짜 치료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 목회자 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몇 개입니까? 4개

‘패치 아담스’에서는 4개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을 idiot ‘바보’라고 합니다.

왜 사람들은 꼭 그 문제만을 바라보느냐는 것입니다. 그 너머를 바라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그 문제가 네 개인지 다섯 개인지 별로 개의치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문제를 바라보지 마시고 그 너머의 소망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문제도 이겨내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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