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 칠 노인의 유작
한 말 숙
1991년에 17년 동안 살던 가옥을 부수고 신축을 했는데, 건물 벽을 벽돌이나 석재를 쓰지 말고 백색 칠을 하자고 설계를 맡은 건축가가 제안을 해서, 공기 나쁜 서울에서 하얀 집을 어떻게 깨끗하게 유지할까 싶어서 나는 반대했다. 그러나 건축가는 베니스나, 지중해의 흰 집들도 먼 데서 보면 깨끗해 보여도 가까이서 보면 그렇지도 않아요. 그리고 더러워진 흰 벽도 매력이 있습니다. 늘 깨끗하게 유지하시려면 4,5 년 만에 한번 다시 칠하면 됩니다고 했다. 우리 내외는 점점 그의 말에 빨려 들어가며, 우리가 본 베니스의 하얀 집들이며, 유럽 숲 속의 아름다웠던 하얀 벽에 빨간 지붕, 파란 지붕의 집들을 상기하면서, “좋습니다. 한번 하얀 집에서 살아 보지요!” 해서 드디어 안 밖이 하얀 집을 지었다. 샛 하얀 벽에 빨간 지붕의 우리 집은 과연 아름다웠다. 게다가 건축비가 30평짜리 아파트 보다 싸게 먹혔으니까 웬 떡이냐!하며 좋아 헸다.
우리 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위치를 자세히 가르쳐 줄 필요도 없었다고들 했다. 한 눈에 우리 집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 것이 이 동내에서는 유일한 하얀 집 덕이었다. 지중해변가의 별장 같다느니,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는 누군가의 수필에 나오는 집 같다, 당신네 집다웠다...등등. 찾아오는 사람마다 찬양 일색이었다.
그런데 2년이 지나니까 길 쪽의 집 뒤 벽과 담이 더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4, 5년 만에 한번 칠하면 된다고 했는데 2년 만에 벌써 칠을 해야 하니 큰 일 났어.” 하며 나는 떠들어대었으나, 남편은 아직 멀었어하며 내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하기는 집안은 신축 때와 다름없이 천정이며 벽이 새 하얗고, 외벽도 동, 남, 서의 3면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건축가는 차가 많이 다니는 집의 북 쪽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3년이 지나니까 북 쪽 벽은 군데군데에 회색 얼룩이 지기 시작하고, 꽤 긴 하얀 담은 더 심했다. 건축가는 좀 더러워져도 매력이 있다고 했으나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4, 5년만이 아니라 2년이나 앞당긴 3년 만에 다시 칠하기로 하고 페인트 가게와 의논을 했더니 담과 벽은 수성, 난간은 금속성의 칠을 하는데 그 값이 뜻밖이었다. 놀라는 나에게 가게의 사장은 “건평을 생각하셔야지요. 제가 최하로 견적을 내 본 거예요.” 하며 되레 나를 이상한 사람 보듯이 했다. 다른 가게의 사장을 불러서 견적을 내 보라고 했더니 그 사장은 먼저 사장 보다 훨씬 더 비싸게 불렀다. 이유는 칠한 위에 덧칠을 하는 것이 아니고 먼저 것을 벗겨 내고 칠을 하니까 인건비가 더 든다는 것이다.
“아, 이런 집에서 사시려면 그 정도는 각오 하셔야지요. 저 아래 온통 유리로 된 집 있지요? 그 집은 두 달에 한 번씩 유리를 닦아야 하는데 인건비만 매번 삼백만원이 든답니다. 지금이니까 그렇지요. 앞으로는 인건비가 점점 더 오를 거니까 돈 마아니(많이) 나갈 겁니다.” 하고 가 버렸다. 두 달에 한번 씩 유리를 닦는 데에만 삼백만원? 맙소사! 수도세는 또 얼마나 나갈까? 남의 집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는 그 유리 집이 꽤 큰 위안이 되는 것이었다.
칠 가게 몇 군데를 더 알아보다가, 가장 싼 가게에 일을 맡겼다. 여섯 명이 닷새 동안 걸려서 작업을 했는데, 집이 신축 때처럼 하얗고 아름다워져서 기분은 좋았으나, 일하는 사람들에게 아침에는 커피 한잔에 빵 하나씩, 점심 대접, 오후 세시쯤에는 새참이라고 해서 맥주에다 돼지고기 구이 서비스, 그리고 얼음물을 온종일 제공 하고 보니까 칠 값의 10프로나 예산 외의 돈이 나갔다. 일하는 사람들은 칠 냄새가 독해서 술을 마셔야 덜 어지럽다고 했다. 칠하지 않는 나도 온 종일 어지러우니까 직접 칠하는 사람들은 오죽하랴 싶었다. 서비스하는 아줌마와 나의 수고도 예사 일이 아니었다.
그 후로는 3년마다 한번 씩 새 칠을 하는데, 나이 들어가는 아줌마가 힘이 들어서 서비스는 못하겠다고 했다. 아줌마의 기세는 아예 우리 집에 사표를 내겠다고 말할 것 같아서, 칠을 못할망정 아줌마를 놓쳐서는 안 되겠기에 사장과 의논해서 다섯 번째 칠 할 때부터는 먹고 마시는 것은 일체 “노 탓치” 하겠다고 잘라 말했다.
금년에는 그 동안 덧칠만 한 탓에 크랙이 흉하게 나타나서, 칠 가게가 아니라 전문회사에 맡겼다. 신축한지 어언 20년이 되었으니까 재건축을 할 각오였다. 그간에 칠하느라고 들어 간 돈을 생각하면 억울하지만 아파트 값과는 비교도 안 되니까 잊어버리기로 했다.
일이 시작 되자 외벽을 계단식으로 발판을 두르고 7, 8명이 순서 있게 일을 진행 하는데 어느 큰 건물의 리모델링을 하는 모양새였다. 건장한 젊은이들 중에 한 사람만이 노인이었다. 75세라고 하는데 허리가 약간 굽었으나 얼굴에 굵은 주름은 없었다. 젊었을 때는 잘 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것 같았다. 입은 옷도 깨끗하고 백발이 섞긴 머리도 깔끔하게 손질 되어 있었다. 막일을 할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 노인은 가장 손이 가는 일층 거실 베란다의 칠을 맡고 있었다. 지하층에 있는 작은 마당이 보이도록 폭 약 일 미터의 베란다는 시멘트 바닥이 아니고 세로 9센치 가로 3센치 깊이 4센티의 네모진 구멍이 천 백 개가 있는 쇠 부치였다. 꼬부리고 앉아서 아래만 보고 섬세하게 칠을 해야 하니까 가장 힘 드는 일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쉬운 것을 하게하고 노인에게 힘 드는 일을 시키는 것에 울분 같은 것이 치밀어서 감독자에게 항의했더니, 노인이니까 높은 발판 위에 올라가라 할 수 없고, 그 사람이 꼼꼼하게 일을 잘해서 시켰다고 했다. 노인도 자기는 잔 손 가는 일이 재미있다고 해서 나도 더 이상 간섭 하지 않았으나, 그 노인에게만은 냉커피며 얼음물을 대접했다.
노인은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서 중학교를 중퇴하고부터 칠일을 했다한다. 어쩐지 붓 놀리는 손이 전문가다웠다. 저 붓으로 페인트 칠 대신 화폭에 그림을 그렸다면 대단한 화백이 되었을지도 모를 것을.... “할아버지, 가끔 일어나셔서 허리 운동을 하세요.”하는 내 말에 “점심 때 어차피 일어나야 할 텐데요, 뭘” 하며 노인은 한눈도 팔지 않았다. “자식 놈들이 일 그만 하라고 잡고 늘어지는데, 육신이 멀쩡한데 어떻게 놀며 밥을 먹습니까?” 나는 그 말에 노인을 다시 보았다. 내가 받은 명함에는 강남에서 칠 가게를 갖고 있는 사장이었다. 일을 하지 않아도 충분한 재력은 있을 것이었다. 게다가 아들 하나는 은행원, 하나는 큰 업체의 홍보 팀장이고, 딸은 내외가 다 초등학교의 교사라 했다. 놀며 밥을 먹을 수 없다는 확실한 인생관이 있는 사람이니까 그만한 성공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자녀들을 참 잘 기르셨네요.” 하니까 “무식한 놈이 뭘 잘 길렀겠습니까. 그냥 이런 말은 몇 번 해 주었지요. 일해서 밥 먹어라. 절대로 세치 혀 놀려서 사람 속일 생각 마라. 절대로 도박하지 마라.” 나는 그의 말에 또 한 번 놀라며 되도록 그의 가게를 선전해 줘야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노인의 일은 이틀 걸려서 끝났다. 이틀째 올 때에 나에게 따끈따끈한 인절미 한 판을 건네주며 떡집 앞을 지나는데 하도 맛있게 보여서 사왔노라고 했다. “제가 대접해야 하는데 거꾸로 됐어요.” 나는 당황했으나 고맙게 받았다. 해질 무렵 노인은 일이 끝났으니까 간다고 인사를 하며 또 칠할 데가 있으면 불러 달라고 했다, “그럼요.” 하고 나는 약속 하듯이 말했다.
열흘 쯤 지났을까? 마침 내 친구가 한옥을 사서 리모델링을 한다고 하기에 그를 소개하려고 전화를 했더니 “최 사장님요? 돌아가셨어요.” 나는 펄쩍 뛰다시피 놀라며 “예? 며칠 전에 우리 집 일을 하셨는데?” “2, 3일 감기 몸살 앓으시다가 급성 폐렴으로 갑자기...” 나는 알았어요, 알았어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저 힘든 일을 안 했었다면 그 사람은 죽지 않았을지도 몰라’ 나는 왠지 죄책감이 들어서 그의 페인트 인생의 마지막 작품을 새삼 가까이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드려다 보았다. ‘일 해서 밥 먹어라. 절대로 세치 혀 놀려서 남 속이지 마라. 절대로 도박하지 마라.’ 그의 말들이 새 하얗게 칠해진 아름다운 베란다의 구석구석까지 아로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참 위대한 사람을 만났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