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의 한 병실. 주순자(63)씨는 말기 위암 환자를 돌보고 있다. 그녀는 ‘호스피스’ 자원 봉사자다. 잠깐 복도로 나온 그녀는 “환자를 부축해 소변을 누이는데 갑자기 대변이 막 흘러나와 그걸 닦아주느라 좀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분은 목에 호스를 뚫어 넣어서 말을 못해 눈짓과 입술 시늉으로 ‘고맙다’고 표시한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거리에서 지나쳐도 눈에 띄지 않을 그런 중년 주부였다. 위암에 걸린 모친을 간호하다가, 다른 환자들의 고통을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호스피스 봉사를 한 지 7년째다.
“어떤 환자의 몸에서는 고름 썩는 냄새가 납니다. 똥오줌을 손으로 만지고, 쏟아내는 각혈을 경황없이 대야로 받아낸 적도 있었지요. 수술을 받고 나온 환자의 목에서 가래가 쉼없이 그렁그렁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걸 한 번도 더럽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더럽고 귀찮지 않나요?”라고 묻자, 그녀는 “어휴, 당연히 제가 할 일인데”라고 답변했다. 어째서 당연한 일이라고 여길까. 그녀의 논리는 “가래가 많이 나오면 그분이 시원해지니까, 오히려 가슴을 두드려 더 나오게 해드려요”라는 것이었다.
“저는 잘 배우지도, 아주 넉넉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제가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기쁩니다. 남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건강을 주신 데 대해 정말 감사해야지요.”
비슷한 시각, 다른 병실에서는 임파선 암에 걸린 한 젊은 여인이 마스크를 쓴 채 누워있다. 서른다섯 살에 발병한 뒤로 재발을 거듭했다. 침대 곁에서, 호스피스 김정옥(64)씨는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함께 바라보고 있다.
“저는 살림만 하던 주부였지요. 어느날 교회에서 ‘말로만 사랑을 하지 말라’는 설교를 듣고, 가만히 저를 돌아볼 시간이 있었지요. 이제 남은 삶을 집안에서 보낸다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호스피스 봉사를 신청했죠. 남편은 내심 ‘좀 하다 말겠지’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호스피스 봉사는 3년째를 맞고 있다.
“매주 목요일마다 환자를 만나러 옵니다. 이 하루로 인해 일 주일이 의미를 갖게 됩니다. 사망 선고를 받은 환자에게 사랑과 평안, 위로를 줄 수 있는 능력이 제게 있을까요? 환자가 저를 받아들여준 것일 뿐입니다. 헤어질 때면 우리는 ‘또 봐요’라고 웃고 손을 흔듭니다. 그러나 다음 주에도 살아있는 이 환자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어요. 만나면 헤어질 수밖에 없는 게 사는 이치니까요.”
이 병원 안에서만 현재 100여명의 호스피스 자원봉사자가 활동하고 있다. 6개월 안에 죽음이 예정된 환자들이 대상이다. 호스피스 팀장인 이경옥(54) 간호사는 “일반 환자의 경우는 치료해서 퇴원시키는 게 목적이지만 호스피스를 받는 환자는 아름다운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므로 환자에 대한 접근법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 병원에서 만난 호스피스 봉사자 안세훈(69)씨는 쿠웨이트 대사, 시드니 총영사 등을 지냈다. 그러나 퇴직한 뒤 95년 간암에 걸려 수술을 받았다. 그는 “다시 살아난 보답으로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 봉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3년 전부터 80여명의 호스피스 환자를 돌봤다.
“우리가 돌보는 이들은 목숨이 길어야 2~3개월 남은 말기암 환자들입니다. 세상을 저주하는 환자들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자신이 곧 죽게 되는데 여유가 남아있을 리 없지요. 친해지는 데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럴 경우 저는 상의를 걷어올려 제가 받았던 수술의 흔적을 보여주지요. 같은 아픔을 겪었다는 것을 알면 태도가 누그러집니다.”
그가 과천의 집에서 병원까지 지하철로 왕래하는 데만 세 시간이 걸린다. 환자의 썩은 부위를 씻어주고 머리를 감겨주기도 한다. 대수술을 받은 노년(老年)의 그로서는 체력이 부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저 세상으로 간 환자들을 떠올리면, 내 손이 아쉬운 사람을 안 도와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봉사를 통해 제가 환자에게 준 것보다는 제가 받은 게 훨씬 더 많습니다. 환자들은 임종 직전이면 누구나 과거를 뉘우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제 마음이 정화됩니다.”
그는 “언젠가 봉사를 할 수 없고 죽을 때가 되면 시신을 병원에 기증하겠다”고 말했다. 이미 아내와 자녀들에게 시신을 기증하겠다는 유서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방연숙(48)씨는 일 주일에 한 번은 병원에서, 다른 한 번은 임종 환자의 집을 찾아가 봉사한다. 집으로 가면 환자에게 약을 먹여주고 마사지를 해주고, 설거지와 집안 청소도 한다. 처음에는 남편이 “당신이 무슨 파출부냐”라고 말렸지만, 이제 자랑스러워한다고 했다. 햇수로 11년째가 됐다.
“모든 환자가 저를 반가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환자는 집에 세 번이나 찾아갔지만 돌아누워 말문을 열지 않았지요. 저는 묵묵히 제가 해야할 일을 하고 돌아왔어요. 네 번째 찾아가자 그 환자는 미안한 마음이 있었나 봅니다. 그 동안 가슴에 담아뒀던 말들을 제게 폭포수처럼 쏟아내면서 엉엉 울었습니다.”
낮 12시반쯤, 호스피스 환자를 돌보던 이종매(69)씨가 병실에서 나왔다. 마르고 주름 많은 할머니다. 누군가가 “저 분은 소아과 의사 출신인데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귀띔해줬다. 그녀에게 과거 경력을 물으니, “그런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손사래를 쳤다.
“남이 볼 때 교만을 떠는 것처럼 비쳐요. 제가 자랑하려고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닌데. 과거에 내가 무엇을 했느냐가 무슨 소용이 있어요. 지금 내가 얼마나 봉사하고 도움을 주느냐에 대해서만 얘기해요.”
그녀는 금요일에는 상담 봉사, 토요일에는 중·고교를 돌며 숲 생태계에 관한 무보수 강사로 활동해왔다. 호스피스 봉사를 하게 된 것은 재작년부터다. 그녀는 “하늘로부터 받은 건강을 버려두는 것이 아까워 더 봉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호스피스를 하기 전에는 ‘누가 죽었다’는 말을 들으면 그냥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돌보던 첫 환자의 죽음을 겪었지요. 슬픔으로 밥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며칠간 다른 일을 하다가도 그 환자와의 추억이 떠오르면 울곤 했지요.
대부분 환자들은 자신의 죽음을 아는 순간 부정(否定)하고 절망하고 분노합니다. 이들이 괴로워할 때 저도 괴롭습니다. 저는 환자에게 ‘사람은 언젠가는 여기를 떠나야 한다. 죽음은 무서워할 것이 아니다’고 말해줍니다. 그러면서 내게 주어진 생명의 시간이 얼마나 고귀하며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2002.11.29) chosun.com
◆호스피스가 되려면/ 기본교육 30시간 받으면 누구나 가능
호스피스 자원봉사자가 되려면 가까운 호스피스 기관에 신청하면 된다. 자원봉사 활동을 위한 소정의 기본 교육이 필요하다. 기관마다 자체적으로 호스피스 지원자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교육 내용은 호스피스의 개념, 죽음에 대한 강의, 신체적 증상에 대한 대처방안 등으로 약 30시간쯤 걸린다.
호스피스는 중세기에 아픈 사람과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숙박소를 제공하고 필요한 간호를 해주는 데서 비롯됐다. 국내에서는 지난 65년 강원도 강릉의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들이 갈바리 의원에서 처음 호스피스 간호를 시작했다. 지난 91년 한국호스피스협회(02-364-7893)가 창립됐다. 현재 활동하는 호스피스 자원봉사자의 수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대략 2만명쯤으로 추정된다.
=====================================
『세상을 변화시키는 인터넷①』
(≫≪) 미군 희생 여중생들의 죽음을 애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