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49 : 14-23
할아버지가 되고 보니 손자 손녀가 보고 싶어 언제 오나 기다립니다. 기다리던 손자 손녀가 왔을 때 반가이 맞이하며 얼른 손녀를 안아주고 ‘할아버지는 네가 보고 싶었는데 너도 할아버지가 보고 싶었지?’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럼 손녀가 ‘나도 할아버지가 보고 싶었어요’라고 말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습니다. 손녀가 조금 주저하더니만 ‘생각이 나지 않아서 할아버지 생각을 못했어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 말이 사실이겠구나 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할아버지 집에 오니까 할아버지가 생각이 난 것이지 할아버지를 떠나면 할아버지가 아니라도 엄마도 아빠도 있고 오빠고 있고 친구들이 많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생각나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손자 손녀가 그리워지고 보고 싶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일은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다 있을 것입니다. 손자 손녀 여러분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잊고 지내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여러분을 잊지 않고 기다리신다는 것을 알고 이제부터 자주 문안 전화라도 하고 찾아보기를 부탁합니다.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면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그러다 주일이 되면 성전에 와서야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성도들 여러분을 잊지 않고 있다가 여러분이 주일날 성전에 오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시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반가워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는 너를 보고 싶었는데 너는 하나님이 보고 싶지 않더냐?’라고 묻습니다. 그럼 여러분은 무어라고 대답 하겠습니까? ‘예, 우리도 하나님이 보고 싶었습니다.’ 라고 대답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보고 싶었다고 대답한다면 그것은 입에 발린 소리에 불과합니다. 우리도 솔직하게 ‘생각이 나지 않아서 하나님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을 할 것입니다.
손자 손녀가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언제 생각 하겠습니까? 자신과 함께 놀아 줄 사람이 없을 때, 엄마도 아빠도 꾸짖고 나무랄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생각할 것입니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을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멀리 계시고 도와주지 않기 때문에 할아버지 할머니도 나를 잊으셨다고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 14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하나님을 잊은 것뿐 아니라 아예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택한 백성으로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 데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게 된 것입니다. 포로생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옛날처럼 살고 싶었지만 돌아 갈 수가 없었습니다. 백성들은 울부짖으며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고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고 말했습니다(14). 그때 하나님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5).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의 사랑 중에 가장 강한 어머니의 사랑으로 비유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젖을 먹여 키운 아이를 잊지 못합니다. TV를 통해 보았습니다. 10대의 한 소녀가 밤중에 혼자 길을 가다가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그로 인해 몇 달이 지나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았습니다. 많은 고민을 하다가 ‘미혼모 출산을 돕는 기관’을 찾아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버리지 않고 키웁니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어머니가 되겠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낳고 젖을 먹여 키운 아이를 버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어머니의 사랑이라 하지만 자신이 낳은 아이를 버리는 부모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라는 말씀에서 자기가 낳은 자녀라도 버리는 부모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인간의 가장 강한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
북극에 수만 마리의 펭긴이 사는 것을 방송을 통해 보았습니다. 번식기가 되면 수만 마리의 펭긴들은 알을 까서 새끼를 키웁니다. 같은 시기에 부화된 새끼들은 똑 같습니다. 어미가 자기 새끼를 어떻게 아는가를 연구한 결과 소리로 자기 새끼를 인식한답니다. 어미는 새끼를 먹여 키우기 위해 뒤뚱거리며 언덕을 굴러 떨어져 바다에 들어가 고기를 잡아다 먹여 새끼를 키웁니다. 그런데 어미가 고기 잡으러 간 동안 새끼는 어리 저리 다니다 길을 잃고 고아가 되었습니다. 춥고 배고파 다른 어미의 품으로 파고 들어 가면 쫓아내고 쪼아 죽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는 동안 어미는 새끼를 찾아다닙니다. 소리를 크게 내어 울며 새끼를 찾아다닙니다. 그러다 이리 저리 쫓겨 다니는 새끼를 찾았을 때 품에 앉아 주고 돌보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미는 자기 새끼를 압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새끼가 아닌 것은 아무리 배고파 울어도 돌보아주지 않을 뿐 아니라 쫓아 죽이기기까지 하지만, 자기 새끼는 품에 앉아주고 최선을 다해 돌보아 주며 키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 모든 사람을 다 잊지 않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만을 잊지 않고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언약 맺은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잊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시고 돌보아 주십니다. 그러나 택함 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선택 받은 백성 된 나와 여러분을 하나님은 잊지 않고 끝까지 돌보아 주시는 것을 진심으로 감사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과 언약 맺은 백성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나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의 손에 붙여 포로로 잡혀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성은 무너지고 하나님의 성전은 불탔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섬기므로 당하는 불행입니다.
포로 생활은 괴로움과 고통이였습니다. 헐벗고 굶주리고 짓밟히는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의 원인을 자신들의 잘못에서 찾지 않고 하나님이 버리시고 주께서 잊으셨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고 하였습니다(14). 이렇게 말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5).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어려움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때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고 나를 잊으셨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고 잊으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내가 하나님을 잊었다는 것을 모르고, 하나님이 나를 버리고 잊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거나 잊으신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고 잊으신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버렸고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백성을 결코 버리거나 잊지 않으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16)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놓았다고 하셨습니다. 손바닥은 몸에서 가장 눈에 잘 뛰는 곳입니다. 발바닥에 새겼다면 잘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손바닥은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에게 손바닥이 있고 발바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손바닥에 새겼다는 말씀은 그만큼 잊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손바닥에 지워지지 않도록 새겼다고 하셨습니다. 손바닥에 먹물로 썼다면 잘 지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치 문신을 새기듯이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겼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하나님을 잊고 버리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이처럼 손바닥에 새기기까지 해서 잊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 할머님이 우리 집에 계시다가 삼촌이 결혼해서 진주에 사실 때 삼촌집에 가셔서 몇 달 계셨습니다. 내가 13살 때 처음으로 진주 삼촌 집에 가서 할머니를 뵈었습니다. 할머니는 저를 반가워하시며 푼돈을 모아두었다가 제게 주는 것입니다. 몇 달 동안 손자를 잊지 않고 기다리며 언젠가 만나면 주려고 푼돈을 모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잊지 않으신 것만 아니라 때가 되면 주시고자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지금도 하나님은 성도 여러분을 잊지 않으실 뿐 아니라 여러분에게 주실 복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려고 준비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먼저 회복해 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다’(16)는 말씀은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벽을 회복하실 것을 암시해 주는 말씀입니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주민이 많아 좁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9). 바벨론의 침략으로 예루살렘 성벽이 무어지고 폐허가 되어 사람이 살 수 없었던 예루살렘을 회복하여 많은 주민이 모여 살 수 있도록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에게도 회복하여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실패하고 빼앗긴 모든 것을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므로 빼앗긴 모든 것을 다시 찾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워주실 것입니다. 다시는 넘어지지 않게 튼튼하게 다시 회복 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자들을 떠나게 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라”(19)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포로로 잡아가고 성벽에 불을 질렀던 자들은 다 떠나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괴롭히던 악한 자들을 떠나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을 손해 보게 하고 빼앗고 때렸던 자들을 떠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흩어졌던 자녀들이 모여들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신부처럼 몸에 장식을 하고 모여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8). 자식들은 거처가 좁으니 넓혀서 거주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20). 심한 고통 중에 빠져 있는 백성들에게 회복의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자녀들로 인하여 축복을 누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포로로 끌려가므로 자녀들을 잃었고 외로워 졌지만 고난 중에 낳은 자녀들로 인하여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을 누가 양육하였는고 ... 이들이 어디서 생겼는고’하며 자녀들로 인하여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4절에 “용사가 빼앗은 것을 어떻게 도로 빼앗으며 승리자에게 사로잡힌 자를 어떻게 건져낼 수 있으랴” 고 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낙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5절에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두려운 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니 이는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네 자녀를 내가 구원할 것임이라”. 용사에게 빼앗긴 것도 다시 빼앗아 줄 것이며 우리를 대적하는 대적들을 하나님께서 대적하여 자녀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3절에 왕들이 양부가 되고 왕비들이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는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나라가 이스라엘을 돕게 될 것과 이스라엘의 복음 아래 무릎을 굻게 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이러한 축복을 받으므로 하나님을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23).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잊지 않을 뿐 아니라 때가 되면 그동안 빼앗긴 모든 것을 다시 찾아 주시며 자녀들로 통해 기쁨이 충만한 복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는 자는 더 이상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잊지 마시고 하나님을 바라는 자가 되어 하나님이 회복 시켜주시는 복을 받아 누릴 수 있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