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 지팡이
작년 여름, 독일방문 중에 선물을 하나 얻었습니다. 복흠교회 김대천 형제님이 주신 물건입니다. 그는 교인 중에서 가장 늦게 까지 광부생활을 한 분입니다. 태백에 석탄박물관을 세울 때에, 독일을 방문한 관계자들이 그를 만나 인터뷰한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감동을 받아 그의 작업복과 광산화를 독일 광부를 대표해 새 박물관에 전시할 만큼 전형적인 광부였습니다. 그가 준 선물은 독일광산의 심벌이 조각된 조립용 지팡이입니다. 지팡이 손잡이를 장식한 작은 쇳덩이가 묵직하게 느껴집니다. 고마운 마음이 느껴져, 가만히 서재에 모셔두었습니다.
그 분은 내게 자신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을 나누었지만, 아마 누구에게나 필요한 물건이었습니다. 종종 만져보면 지금은 장식용이어도 곧 의지할 나이가 다가오고 있음을 기억하라고 일깨워 줍니다. 어쩌면 더 열심히 걷고, 멀리 바라보고 가라는 의미이기도 할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지팡이는 나그네에게 신체의 일부 구실을 합니다. 지팡이는 몸의 균형을 잡아주고,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필수적인 수단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지팡이는 하나님께만 의지한다는 심벌과 같습니다. 특히 목자에게 가장 적절한 도구입니다. 목자의 지팡이는 양들은 물론 그 자신에게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비유적으로 상징합니다. 비록 소박한 나무 막대기라도 다양한 용도를 위해 고안됩니다. 보통 양떼를 몰아가는 지휘용이면서, 종종 들짐승을 물리치기 위해 휘두르기도 하며, 점치는 일로도 쓰였습니다. 장대 끝이 둥글게 구부러진 갈구리 모양이어서 지팡이를 이용해 팔의 길이를 늘여 곁길로 빠지는 양을 붙잡기도 하고, 양이 바위 틈 사이에 빠졌을 때에 건져낼 수도 있습니다.
지팡이는 교회 전통에서 순례자를 상징합니다. 유명한 성 야고보의 산티아고 순례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심벌은 지팡이와 호리박이라고 합니다. 지팡이는 나그네 신세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데, 한마디로 고달픈 삶을 느끼게 합니다. 무엇보다 지팡이는 하나님의 은총에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임을 깨닫게 합니다. 출애굽의 밤, 사람들은 유월 저녁을 먹을 때에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지팡이는 광범위한 의미를 담아냈습니다. 지팡이는 통치자의 권위와 의전용 명예를 상징해 왔습니다. 이를 ‘규’와 ‘홀’로 불렀습니다. 권위, 지휘, 돌봄, 자비, 심판 등을 상징적으로 함축합니다. 야곱은 아들들을 축복하면서 오직 유다에게만 지팡이 축복을 합니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창 49:10). 결국 넷째 아들 유다가 조상의 정통성을 이어 받은 것입니다.
교회의 전통에서 사도의 지팡이 역시 교권의 계승자에게 이어집니다. 가톨릭 교황의 지팡이(Baculus)는 그 머리 부분을 수난 당하신 예수 고상(苦像)으로 장식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인이라는 뜻입니다. 일반 주교의 지팡이는 윗부분이 원형으로 구부러져 있는데 목자의 지팡이를 본 딴 것을 사용합니다. 지팡이를 손에 쥐었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명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교회의 역사에는 유명한 지팡이들이 존재합니다. 성 베네딕도는 서방 수도생활의 아버지로,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그가 만든 베네딕도 수도규칙은 수도회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치며 오늘까지 모범으로 전해집니다. 특히 베네딕도가 붙잡고 있는 지팡이는 교사의 권위를 상징합니다.
또한 ‘지팡이 십자가’는 성 안스가르의 심벌입니다. 지팡이 머리 부분을 둥글게 구부려 그 안에 그리스 형 십자가를 담은 것입니다. 그는 스웨덴, 유틀란트, 슐레스비히 등 당시 세상의 끝인 유럽의 최북단 지역에 복음을 전하여서, ‘북부의 사도’(Apostel des Nordens) 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양식과 배낭, 전대의 돈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지팡이’임을 강조하셨습니다(막 6:8).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술지팡이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주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지팡이를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쓸모에 맞도록 비록 가시나무와 같은 사람도 좋은 지팡이로 다듬으십니다. 내 삶 속에서 먼 길을 의식하며, 그 목표를 바라보는 사람일수록 더욱 주님의 지팡이를 붙잡아야 할 것입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