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네요. 또 새로운 한해의 시작입니다. 시작은 언제나 가슴을 부풀게 만듭니다. 나는 새해가 되면 언제나 산을 생각합니다. 대학교 다닐 때는 12월31일에 팔공산에 올라 염불암 뒤에 있는 토굴에 천막을 치고 멀리 불빛이 아늑한 대구 시내의 전경을 바라보면서 새해를 기다렸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정월 초하루 아침 일찍 일어나면 멀리 동해에서 솟아오르는 아침 해를 그것도 새해의 첫 해를 바라보면서 한껏 소리쳤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1982년 네팔에 첫발을 디딘 이래 오늘에 이르기 까지 무슨 복이 터졌는지 매년 네팔을 갈 수가 있었습니다. 빼놓지 않고 항상 보는 것이 있다면 나가르고트나 사랑곳 또는 푼힐에서 바라보는 히말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입니다. 그것도 음력으로 정월 초하루의 태양을. 생각해 보면 해는 늘 아침에 뜨고 있었고 그 태양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이 태양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제가끔 의미를 부여하면서 따로 따로 감격해 합니다. 물론 나도 매년 다른 느낌을 만끽하면서 솟아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올해도 나는 (사)가족아카데미아 네팔캠프팀과 함께 1월27일 10일간 네팔을 방문합니다. 일정에는 나가르고트와 사랑곳의 해돋이를 보는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으니 날만 흐리지 않는다면 새해의 태양도 역시 네팔에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새해 첫날 일출을 나가르고트에서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내 친구 시인 조순애 선생의 히말이란 시가 떠오릅니다. 히말 1(나는 오늘사 만났네)을 보면 조 선생이 네팔의 히말라야를 첫 대면한 만남의 감격을 가슴 깊은 곳에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사 만났네 -히말. 1 조 순 애 나는 오늘 거짓말을 못 하겠네 거짓 웃음 거짓 증언으로 내 몸에 옷을 입힐 수 없네 함부로 소리칠 수도 고개를 돌리지도 못 하겠네 나는 오늘사 만났네 헤픈 맹세 따위도 의미를 잃고 다만 우리의 만남을 인정할 뿐이네 조 시인도 아마 히말라야에서 불끈 솟아오르는 아침의 신비스런 태양을 마주한 감격을 충격처럼 느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나는 오늘사 만났네]란 시어의 뒤엔 오랜 기다림의 흔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오늘사란 말이 그런 의미를 나에게 전해 줍니다. 나는 히말라야를 보기 위해 어린시절부터 동경했습니다. 그리고 인내로서 기다렸습니다. 고등학교 때입니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6.25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러 휴전협상을 통해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었던 사회적으로 암울한 때였습니다. 학교 교사는 군인들에 의해 병영으로 사용되고 우리들은 산비탈이나 공공기관의 강당 등을 빌려 수업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던 때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아픈 상처도 지닌 그런 시기입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아침 조회는 매일 했습니다. 전교생을 운동장에 빽빽하게 세워 두고 교장선생님의 훈시가 이어집니다. “여러분들도 장차 어른이 되거든 힐라리경 처럼 히말라야를 오르는 패기를 갖고 세계적인 인물이 되어야한다” 1953년5월29일에 에드먼드 힐라리경이 영국등반대로 참여하여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에서 제일 높은 에베레스트 정상에 등정했던 것을 훈시하신 것입니다. 교장선생님이 특별히 산을 좋아하신 것도 아닌데 이런 훈시를 하신 것은 당시의 암울했던 사회적 분위기를 일신해 볼 뜻이 담겼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나는 이 훈시를 들으면서 힐라리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나도 어른이 되면.... 하는 막연한 동경과 그리움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런 그리움이 1982년 한국산악회의 마칼루 학술원정대의 학술요원으로 참여 하게 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지나 놓고 보니 참 긴 세월입니다. 24년을 한결같이 히말라야 앞에 설 수 있었다는 것은 복에 겨운 일입니다. 오늘사 얻었던 첫 만남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다는 것도 행복한 일입니다. 아침 해가 솟을 때 히말라야의 연봉이 높은 순서에 따라 붉게 물들어 가는 광경을 바라보면 누구나 숙연해 집니다. 이 엄숙함 앞에 지금까지 지녔던 인간들의 얄팍한 으시댐 같은 것은 초라해집니다. 조순애 시인의 말처럼 다만 우리들의 만남을 인정할 뿐입니다. 그 인정 말고 무슨 잡다한 수식어가 필요하겠습니까. 네팔의 새해는 세 번이나 맞이합니다. 양력으로 정월 초하루. 음력으로 정원 초하루. 그리고 네팔력으로 정월 초하루. 그러니 네팔사람들은 새해를 세 번이나 맞을 수 있으니 아주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네팔달력인 비크람력은 새해가 대개 4월에 들어 있습니다. 이 신년의 축제로서 비스커 자트라(Biska Jatra)라는 축제가 유명합니다. 이 축제는 4월에 들은 탓으로 봄의 축제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언젠가 내가 박타푸르에 갔을 때 마침 비크람력의 정월 초하루라 이 축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박타푸르의 구왕궁 광장엔 십여 미터나 되는 나무 기둥이 세워져 있고 이 기둥에는 뱀을 상징하는 두개의 깃발이 있었습니다. 이 깃발은 지난해에 쌓였던 나쁜 액운을 나타냄으로서 이를 떨쳐 내고 새해 새로운 좋은 기운을 받는 그런 축제입니다. 네왈족들의 전통적인 풍습입니다. 이 축제의 중심 신은 바이라브 신과 깔리 신입니다. 이들 신은 거대한 산차를 타고 거리를 누비기도 합니다. 바이라브 신의 가면을 쓴 신이 갑자기 나를 향해 격렬한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이 모습이 나를 공격하려는 것인 줄 알고 도망을 친 적도 있습니다. 축복을 피해 달아난 우둔함입니다. 에베레스를 가는 길목인 당보체에서 마니 월과 마니 깃발을 교체하면서 벌리는 라마승들의 축제도 본적이 있습니다. 모두들 전해의 액운을 흘려보내고 새해 새로운 서기를 맞는 축제로 공통적인 상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번 네팔에서의 해돋이는 음력 설날 나가르고트에서 맞이했습니다. 마칼루와 에베레스트 연봉을 붉게 물들이면서 불끈 솟아오르는 아침 해는 경이 그 자체였습니다. 그 에너지는 나의 가녀린 몸속으로도 꿈틀거리면서 스며들었습니다. 모두들 탄성을 질렀지만 나는 벙어리처럼 소리를 잊고 다만 스며드는 에너지를 가슴으로 느끼면서 전율 바로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런 에너지의 전수도 전수지만 히말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습관이 든 것은 나에겐 아주 귀중한 습관이 되었습니다. 젊은 화가 한분을 소개합니다. Nem Bahadur Tamang은 1995년 대학을 나와 2002년까지 고등학교 미술교사를 지낸 적도 있지만 지금은 전업화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청년화가입니다. 그의 그림에서 풍기는 강한 색조는 네팔의 영적인 색갈로 이해를 해도 되겠습니다. 새해 새아침의 해처럼 이 젊은 작가도 새로운 에너지로 네팔의 영적 추구와 표현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네팔에도 이제 많은 젊은 작가들이 새로운 기운으로 새로운 네팔의 화단을 꾸며가고 있다는 것은 퍽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