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어느 날 한낮에
마다바의 '두아르 발라디아‘를 걷고 있었다.
요르단의 마다바 시청 앞 6거리 교차로였다.
이 길은 왕의 대로(Kings way)라고 추정되는 길이며
마다바에서 모세기념교회가 있는 느보산으로 가는 교차로이기도 하다.
그 시청 길 건너엔 내가 방문하고자 하는 마다바 연합교회(잘릴 목사)가 있다.
암만에서 대중교통인 버스를 타고 다니며 그 교회 마당의 벽화를 그리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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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한국어로 “아~버~지~~!”하고 부르는 묵직한 소리에 귀가 번쩍했다.
재차 “아~버~지!” 하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암잣’이 오가는 자동차 사이를 비집고 달려왔다.
그리곤 끌어안고 이쪽저쪽 볼에 번갈아가며 입을 맞춘다. 아랍식 인사다.
친밀도가 높아질수록 이쪽저쪽 볼키스 횟수가 많아진다.
말하자면 ‘암잣’과 나는 그새 친한 사이가 된 것일까?
아랍인들의 특질이 친절과 인내라는 건 이미 말한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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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바의 ‘암잣(Amjad Hamarne)’은 기독교 가문 사람이고
결혼 10년을 넘긴 그의 아내는 아르메니안 기독교인이다.
김SK 목사가 개설한 Success Center의 가까운 이웃에 살고 있었는데
그가 센터엘 자주 드나들었으므로 자연스럽게 교제하게 되었다.
난 그 센터의 울타리 벽에 ‘마다바 부흥’을 주제로
"나사로야 나오라" "달리다굼" '방주에서 나오는 노아 일행' 등 벽화를 그리고 있던 때였다.
나는 암잣의 초대를 받아 그의 집을 드나들며 그의 기타연주를 감상하거나,
그 부인이 정성껏 타주는 샤이(차)나 까흐와(커피) 마시는 걸 좋아했다.
김SK 목사가 마다바 부흥교회를 개척하고 예배드릴 때에도 만날 수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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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잣하마르네는 전통적인 기독교 가문으로 카락지역에서 살고 있었다.
카락지역의 기독교인들은 늘어나는 무슬림과의 갈등으로 살기가 버거워지자
당국의 권유에 따라 당시 허허벌판이었던 마다바로 집단이주를 하게 되었다.
교회를 세울 때는 반드시 옛날에 교회가 있던 터에만 건축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비잔틴시대의 교회 터를 발굴하게 되었다고 했고 그 과정에서
마다바 지도교회바닥의 모자이크지도가 발굴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지도는 중동에서 가장 오래된 지도로 알려져 있으며
이 지도를 근거로 예루살렘의 막시무스카르도를 발굴 확인하기도 했다.
하여 마다바는 기독교도시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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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에 카락지역에 살던 3명의 조부 중 2명은 마다바로 이주했고
예루살렘으로 이주해 간 막내조부는 무슬림과 결혼하면서 무슬림으로 개종했다.
그는 자기 집 옥상에 꾸미고 있는 휴게실 벽에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청했다.
김 목사의 현지인 목회에 동역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결국 ‘예수그리스도의 목자상(牧者像)’을 모사(模寫)해 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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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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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를 그리는 같은 시기에 ‘아라파트’(팔레스타인인 32세)란 젊은이가
암잣네 옥상의 물탱크(cistern)를 손질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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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귀한 요르단은 대부분 일주일에 하루만 수돗물을 공급한다.
그래서 집집마다 옥상에 1톤 용량의 물탱크를 하나 혹은 여러 개를 설치해놓고 산다.
물 받는 날은 안팎으로 대청소를 하고, 모았던 빨래를 한꺼번에 하거나
메마른 화단에 물을 흠뻑 주는 날이 된다. 만약 급수(給水) 전에 물이 바닥나면
사설 물장수에게서 비싸게 사서 써야한다.
아라파트는 같은 집에서 일하면서 내가 기독교인임을 알게 되자
매우 기쁜 듯 다가와 말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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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담벼락을 마주하고 벽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사람을 외롭게도 하지만,
사람을 만나는 좋은 통로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잠시 흥분한 듯 자신도 예수를 믿는 사람(a real christian)이라고 했다.
이슬람을 법으로 강제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무슬림신분으로 살고 있긴 하지만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후에 같은 그리스도인을 만났으니 반가운 건 당연하다.
선교사가 파송되기 이전부터 주님은 친히 사역을 하고 계셨음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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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파트는 요단강 서안(西岸) 어딘가가 고향이라 했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이 요단강서안을 차지하고 요단강이 새로운 국경선이 되자
고향으로 건너가지 못한 채 요르단에서 살고 있는 이산가족의 하나인 셈이다.
그는 마다바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갈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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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영어를 할 줄 알았고 자신이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를
허스키한 특이한 어조로 열심히 이야기했다.
자동차사고로 중상을 입어 사경을 헤메고 있을 때 비몽사몽간에 예수님을 만났단다.
밝고 빛난 옷을 입은 예수님이 피묻은 손으로 상처난 곳을 쓰다듬더라는 것이다.
그 후 매우 빠르게 회복했단다. “예수님의 은혜로 살아났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그는 흉하게 일그러진 상처들을 보여주면서 “이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은 제도로 묶어놓아도 결국 구원 얻는다는 증표일까?
‘암잣’은 아라파트의 성품이 진실하고 성실하여 형제처럼 여긴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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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버지라 부르며 친근감을 표시했던 그 암잣은
지금쯤 다른 사역자를 만나 자별한 교제를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암잣.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가?"
-관-
덧글:
* http://cafe.daum.net/atidlee 에서 퍼옴
* 그리스정교회에서는 성직자를 'Father'라고 부른다.
첫댓글 성지 순례 때 요르단 암만 가 봤어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으신 겁니다.
가고 싶다고 다 갈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