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에게 있어 최고 가치인
‘진충보국’(盡忠報國),
‘위국헌신’(爲國獻身),
‘임전무퇴’(臨戰無退)의 덕목을 행동으로 실천함으로써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기꺼이 바친 선배 전우들을
우리는 ‘참군인’이라고 한다.
이렇게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산화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 국립현충원이다.
국립현충원의 현충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현충탑이 있다.
우리가 지나치기 쉽지만 그 현충탑 안에는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 당시 전사자 중 시신을 찾지 못한
10만4000여 명의 호국용사와 시신은 찾았으나 이름을 알 수 없는
6200여 무명용사의 유해가 봉안된 위패봉안관이 있다.
이와 같이 국립현충원 현충탑에는 우리 전우들이 참군인으로 잠들어 있다.
▲ 온몸을 던져 부하 사랑
지난 2월18일 육군 제35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불의의 수류탄 폭발 사고로 순직한 고(故) 김범수(金範洙·학군40기)대위는
부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던져 살신성인의 모습을 보여준
‘참군인’이었다.
그는 수류탄 투척 훈련장에서 한 훈련병이 안전핀을 뽑고
안전 클립이 분리됐으나 던지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수류탄을 든 훈련병을 끌어안으면서 폭발 사고를 자신의 몸으로 막아
훈련병과 함께 산화함으로써 함께 훈련을 받고 있던 많은 장병을 구했다.
특히 김대위의 시신은 양손이 절단되고
복부에 심한 손상을 입었다는 것에서 그가 다른 장병들을 구하기 위해
폭발하는 수류탄을 자신의 품 안으로 감싸 안았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 주고 있어 주위 사람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이렇게 김대위가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을 몸소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평소 군생활 자세를 보면 더욱 여실히 나타난다.
그의 부하 사랑은 남달라 부하 장병의 생일이 되면
깜짝 파티를 준비하는가 하면 소대원이 감기에 걸렸다 싶으면
직접 약국으로 달려가 약을 구해 먹이는 등
‘가슴이 따뜻한 작은 형’ 역할을 했다.
특히 ‘조교의 전투복에서는 항상 향기가 나야 한다’며
매달 피복 유연제를 구입,
사용하게 하는 등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아
그의 순직은 슬픔을 넘어 비통함으로 소대 장병들의 가슴을 적셔 놓고 있다.
▲ 마지막 순간까지 임무는 완수
2002년 6월29일,
서해 교전 당시 우리 장병들은 생사가 오가는 급박한 위기의 순간에서도
적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조건반사적 전투 행동과 불굴의 투혼으로
임전무퇴의 기상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당시 우리 장병들은 정장을 비롯해 수 명이 전사하고
많은 인원이 부상으로 피를 흘리며 외부와 통신이 두절된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침착하면서도 조건반사적인 전투 행동으로
최후의 순간까지 임무를 완수하려는 자세를 견지했다.
오히려 부상의 고통을 무릅쓰고
자동 조작 기능이 마비된 40㎜포를 수동으로 조작,
북한 경비정을 명중시켜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고도의 정신력과 훈련 수준을 보여 주었다.
특히 고속정 소총수로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권기형 상병은
적의 사격으로 인해 왼손의 다섯 손가락이 잘려 나가
오른손으로만 네 개의 탄창을 갈아 끼우며 선혈이 낭자한 손으로
구조물에 K-2 소총을 지탱한 채 응사를 계속했다.
또 고(故) 조천형·황도현 중사는 부상한 몸으로
최후까지 포탄을 다 쏜 후 함포 방아쇠에서
두 손을 놓지 않은 채 숨을 거뒀다.
뿐만 아니라 부정장 이희완 중위는 정장이 전사하고
다리가 파편으로 찢겨 나가는 심각한 부상 상태에서도 병사들에게
“나보다 정장님을 구하라!”고 고함치면서
나머지 대원들을 독려해 함정에 있는 대부분의 탄약을
적 경비정에 쏟아 부으며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등
끝까지 함정을 지휘하는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이 전쟁의 극한 상황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라는 점이다.
그들은 6·25전쟁도, 베트남 전쟁도 알지 못하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전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생사를 가르는 위기 상황에서
백절불굴의 전투 의지를 가진 군인의 참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무명용사가 진정한 영웅
역사는 유명 인물과 무명 인물이 함께 만들어 간다.
전쟁의 승리에도 명장의 공로와 무명용사들의 숨은 이야기가 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우리 국군은 서울 침공 거점이 되는 문산을 지켜야만 했으나
소구경 바주카포는 소련제 T - 34형 탱크에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러자 우리 선배 전우들은 특공조를 조직하고
어떤 선배 전우는 수류탄을 들고 탱크 밑으로 몸을 던지는가 하면
탱크 뚜껑을 열고 그 안에 수류탄을 집어 넣기도 했으며
수류탄이 떨어지자 화염병을 만들어 적 탱크로 돌진했다.
그리고 특공조로 차출되지 않았지만 계속되는 방어전에 참가,
적군의 진출을 지연시키기 위해 맨손으로 적 탱크와 맞서 싸우며
최선을 다한 무명용사들이 있었다.
비록 적의 남침을 완전히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으나
그들이 단 몇 시간, 아니 단 몇 분일지 모르나
적군의 진출을 지연시킴으로써
미군과 유엔군이 참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주었기 때문에
오늘의 풍요로운 자유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세계의 모든 국가는 전쟁 영웅뿐만 아니라
무명용사에 대해 더욱 예를 갖춰 그 넋을 기리고 있다.
영국은 250년에 걸친 공사 끝에 1503년 완공,
42명의 왕과 여왕의 대관식이 거행되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딕 건축물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중앙에
무명용사 기념비가 있다.
프랑스는 에펠 탑과 함께 파리의 상징이며
제1차 세계대전 승리 축하 퍼레이드,
제2차 세계대전 후 파리 해방 선언 등을
한 역사적인 개선문 중앙 아치 지하에 무명용사의 묘지가 있다.
미국은 남북전쟁부터 걸프 전쟁에 걸친 20만 명의 호국영령이 묻혀 있는
알링턴 국립묘지 중앙에 50t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무명용사의 묘가 있다.
이 외에도 대부분의 국가가 무명용사 묘소나 비석을 그 나라를 대표하는 곳에 조성하고 있으며, 24시간 내내 경호병이나 의장병들이 지키고 있고 그 넋을 기리기 위해 향을 피우거나 불꽃을 태우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정상이 방문해 우방 관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대표적 외교 관례의 하나가 그 나라의 무명용사 묘소를 찾아 헌화하는 것이다.
이는 무명용사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나와 조국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
다른 국가의 원수가 그들에게 헌화한다는 것은
자신과 국가에 대해 최대의 찬사를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국을 사랑하는 우리가 참군인
유사시에는 자신의 생명을 바쳐 국가를 수호하는 것이
참군인으로서의 자세이지만 평시에는 군의 명예를 고양하거나 무기 체계,
전략·전술 등의 업무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고
모범적인 선행을 실천한 장병들을 일컬어 참군인이라 부른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의 참군인이란
‘자신이 군인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즐겁게 병영생활에 임하면서
국가를 사랑하며 부여된 임무를 묵묵히 완수하는 장병 모두’라 할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고 돌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는 그 은혜를 늘 생각해야 하고,
선생님은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고마워해야 하며,
경찰이 밤새 순찰을 도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만
그 일을 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 우리가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으니
고마워해야 한다.
모든 분야에서 모든 사람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한다면 우
리는 걱정 없고 행복하게 생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군복을 입고 조국을 사랑하며
국가 수호를 위해 묵묵히 임무를 완수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참군인으로서 칭송받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따라서 ‘참군인이 되는 길’은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나 자신이, 그리고 보람찬 하루 일과를 끝내고
포근히 잠들어 있는 옆 침상(침대)의 전우가 바로 참군인인 것이다.
‘참 군인이 되는 길’
▲ 긍정적 사고가 참군인의 첩경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형제가 있었다.
같은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은 너무나 다른 삶을 살게 됐는데 형은 걸인으로,
동생은 유명한 대학교수가 됐다.
한 기자가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어떻게 똑같은 환경에서
이렇게 다른 인물이 나오게 됐는지 조사했다.
오랜 조사 끝에 기자는
‘Dream is nowhere.’라고 적힌 조그만 액자 하나를 발견했다.
기자는 이 액자를 기억하느냐고 형제에게 질문을 던졌다.
걸인인 형은
“네, 있었죠. 꿈은 어디에도 없다(Dream is nowhere)라는 액자로
20년 넘게 우리 집 거실에 걸려 있어 저는 늘 그것을 보며 자랐어요”라고
대답했다.
반면에 동생은
“네, 있었죠. 하지만 저는 띄어쓰기를 달리해
‘꿈은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 있다’(Dream is now here).
저는 늘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죠.”
위의 예와 같이 긍정적 사고가 형제의 삶을 바꿔 놓았듯
긍정적 사고가 나의 군대생활을 보람차고 기쁘게 만들 수 있다.
지금까지 짜증나고 귀찮다고 생각했던 군 복무의 많은 것을
생각을 바꿔 즐겁다고 생각할 수 있고
현재의 병영생활과 전우들이 자신에게 은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바로 지금 내가 참군인의 길에 접어드는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 즐거운 마음이 참군인을 만든다
‘어떤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일을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라는 중국 격언이 있다.
싫어하면서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 즐기는 사람은
어떤 일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에 하고 싶고,
그 일을 통해 보다 많은 즐거움을 얻기 위해
자주 열심히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군대생활에 대해 긍정적 사고를 가지고 즐길 수 있어야
세계 최고의 군인이 될 수 있으며 국가 안보를 책임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중국 격언은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제시하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즉 어떤 일을 처음부터 즐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열심히 했기 때문에 잘 알게 되고,
잘 알고 있어 그 일을 즐기는 경우가 더욱 많다는 것이다.
“나는 공부하기 싫어했습니다.
공부하기 위해 책을 보면 잠만 오고,
특히 영어 공부는 단어 암기·문법 등 골치만 아팠습니다.
그러자 성적은 떨어지고 보다 못한 아버지는
영어가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며
얇은 회화 책 한 권을 사다 주시며 무조건 암기하라고 호통쳤습니다.
암기는 쉽지 않았고 몇 번 회초리의 소용돌이가 지나가자 오기가 생겼습니다.
그 책을 거의 암기할 정도가 되자
이런 우리말을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외국인이 있을 법한 고궁과 외국인 교회 등을 찾아
콩글리시와 보디랭귀지로 한 가지의 영어 표현을 알게 됐을 때
그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위의 내용은 한 유명 영어 강사의 고백이다.
처음에는 어렵고 싫었다고 한다.
특히 처음 할 때는 귀찮았지만 열심히 하다 보니 즐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흔히 군생활하면서
“피할 수 없는 것은 즐겨라!”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 말은 즐기는 것만이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파악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즐길 수 없다면 열심히 하자.
열심히 하다 보면 잘 알게 되고,
잘 알게 되면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 참군인은 자신에게 충성한다
참군인은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충성’한다.
왜냐하면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장병만이 전우를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고,
나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자신에 대한 충성’이 부대와 지휘관에 대한 충성이며
나아가 국가에 대한 충성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과 부모형제, 전우와 조국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절대 적개심을 가질 수 없다.
만약 적개심을 갖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증오와 복수심에 지나지 않는다.
증오와 복수심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파멸로 이끌지만
자신에게 충성하고 부모형제와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장 고귀한 생명을 희생해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나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데서부터 부모형제와 전우,
부대와 국가를 사랑해 나가자.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충성을 조국에 대한 충성으로 승화할 수 있도록
묵묵히 부여된 임무를 완수함으로써 진정한 참군인이 되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하자.
♣ 교육 요지 ♣
▲ 참군인 : 진충보국·위국헌신·임전무퇴의 정신 발휘
○ 온몸을 던진 부하 사랑 : 고(故)김범수 대위의 살신성인의 모습
○ 마지막 순간까지 임무완수 : 서해 교전 소총수 권기현 상병
▲ 무명용사가 진정한 영웅 : 맨손으로 북한군의 탱크와 맞선 선배 전우들
▲ 참군인이 되는 길
○ 긍정적 사고가 참군인의 첩경이다
○ 즐거운 마음이 참군인을 만든다
○ 참군인은 자신에게 충성한다
▲ 조국을 사랑하고 임무를 완수하는 우리가 참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