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추억들을 만들었던 꿈같은 '2박3일 휴가' 보내고
힘들고 지친 몸을 추스르며 일상으로 돌아왔다.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오래된 일 같이 느껴지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바빠선 그런가, 추석이 있어 그런가, 무아지경으로 대회를 치러서 그런가,
친구 말마따나 이런 운동 자체가 이해 안 되는 좀 비현실적인행동이라서 그런가.
9월 6일 토요일 새벽 5시.
아직도 짙게 어두운 약속장소에 속속 출전선수와 가족,
같이 갈 자원봉사자가 도착했다.
선 수 : 조규식(농부), 강진수(싸나이), 정동섭(소나무), 하진구(넘보원)
자원봉사단 : 물대포+봉다리, 판때기

가족들 배웅을 뒤로하며 진구차, 물대포님차 2대로 출발!
서진주 IC에서 거제 윤승일선수, 창원 조정현철인을 태우고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진주-(대진고속도로, 79.7km)-> 장수IC -> 전주 -> 익산-> 동군산IC ->
(서해안고속도로)-> 서산시 -> 태안군 ->
원북면 학암포해수욕장 '쌍둥이파도소리' 펜션

지리산, 덕유산 주위에서 비와 졸음을 뚫고,
거리 332Km, 예상시간 5시간 33분 정도의 먼 길이이지만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서해안 학암포해수욕장이란 데를 가볼까 싶기도 하고
첫 대회가 열리는 장소가 어딘가 하는 궁금증으로 별로 먼 길인지도 몰랐다.
내비게이선이 잘못 알려주는 바람에 계획한 코스가 아닌
엉뚱한 데를 돌다가 태안읍 00마트에 들러서 마지막 장을 보고
10시 10분에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 뒤는 바로 해수욕장이었는데 예상했던 개펄과 좁은 바다가 아닌
깨끗하고 넓은 모래사장과 바다가 펼쳐져 가슴이 시원하게 뚫렸다.

숙소에 잠시 짐을 부리고 대회 본부로 가서 등록하고,
부스들 물건들을 구경하다가 11시 경기 설명회에서
수영코스, 사이클 코스, 마라톤 코스 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첫 대회라서 이것저것 부족한 것도 많을 텐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준비한 노력들이 눈에 보인다.

제주도에서 열린 아이언맨대회는 대행회사가 맡아서하는 대회라서
어딘지 모르게 상업적이고, 대회는 주최 측 위주로 진행되고,
선수들은 돈 내고 참석하는 들러리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지만
이번 대회는 운동하는 분들이 준비해서 그런지 좀 더 친근하고 편안해 보인다.

자전거, 장비, 헬멧 등을 검사받아 지정된 장소에 두고
일단 숙소로 가서 판때기가 장만한
김치찌개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감사 감사...

짐 풀기, 장비 점검, 내일 대회 준비물 챙기기 등을 하다가 코스답사를 나섰다.
사이클 코스는 비교적 평지라서 수월할 것 같고,
높은 언덕이 하나있지만 이 정도 언덕 정도는 있어야 자전거 탈 맛이 날 것 같다.
29키로 6바퀴가 지루하지 않을까 미리 걱정되지만
많은 선수들이 같이 달리면 괜찮을 것도 같다.
역시 바람과 높은 기온이 내일 변수가 될 것 같다.
비가 한 번 뿌려주고 바람이 잠잠하면 좋을 텐데..

4바퀴를 돌아야하는 마라톤 코스는 이리저리 들어가고 나오는 데가 많았지만
개인적으로는 빤히 보이는 직선주로를 싫어하기 때문에 마음에 든다.
다시 장비들을 챙기다가 덥고 땀이 나서 바다에 들어가 수영을 하고 나오니
다시 맛있는 저녁식사시간.
기아를 1회부터 초토화시키고 있는 롯데야구 경기를 보며 준비물을 챙기다가
8시경 선수, 자봉 미팅에서 방 배정, 내일 아침 기상시간, 이동, 자봉인원 배치 장소,
대회 후 미리 가는 사람들, 대회 후 남는 사람들, 경비 정산들을 하고
9시에 휴대폰을 모두 끄고 선수들이 자는 방은 소등을 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잠이 올까 싶었지만 피곤했는지,
몸이 알아서 휴식을 취하려고 하는지
이어폰으로 음악 한 곡 채 듣기도 전에 잠에 빠져 들었다.
대회날 9월 7일 새벽 4시 30분.
코고는 소리에 잠을 설치지 않고 달게 잠을 잘 자서인지 깨우는 소리에 쉽게 일어났다.
언제든지 일어나자말자 밥을 먹을 수 있다고 찬새미는 놀리는데, 정성이 듬뿍 담긴 따끈따끈한 상을 보자 군침이 넘어간다. 오늘 하루 연료가 될 밥이라 충분히 충분히 먹었다
.
대회날 아침에 중요하고도 큰일인 화장실 볼일을 시원하게 마치고,
잠시 편하게 누워 쉬다가 물품 챙겨서 아직 날이 밝기도 이른 5시 40분에 숙소를 나섰다.

물품 백 맡기고, 팔다리에 넘버링하고, 자전거 바람 넣고,
화장실 한 번 더 다녀오고 하는 사이에 날은 밝아오고 시간은 벌써 6시 반이다.

이제는 슈터를 입고 수모와 수경을 챙기고 수영 출발 장소로 출발할 시간이다.

곧 많은 선수들이 몸싸움을 하며 수영할
바다는 무심할 정도로 잠잠하게 잠들어있다.
멀리 보이는 부표가 까마득하게 보인다.
처음 대회 나갈 때는 이 시점에 가슴이 뛰고 어떻게 안주할지 걱정했었는데
이제는 편안하게 이 시간을 즐긴다.

7시 03초 수영 출발!

40초 정도 기다리며 선두를 보내고 입수.
처음에는 제법 몸싸움이 심해 얼굴을 얻어맞아 수경이 벗겨지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고 계속 수영했다.
중간에도 간간히 서로 팔다리가 부딪히고 호흡을 몇 번 놓쳤지만
서서히 육지가 가까워지고 발이 땅에 닿았다.
첫 바퀴 47분! 생각보다 너무 느리다.
세가 만발이나 빠진다.

수영연습을 등한시한 게 표시가 난다.
다시 입수 조금 빨리 스트로크를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무리하지는 않았다.
한 바퀴 돌아보았다고 두 번째 바퀴는 좀 짧은 듯도 하다.
3.8키로 수영 공식기록 1시간 36분 07초(7:00:03 7:48:06 8:36:10)

8시 49분 사이클 출발!
바꿈터에서 사이클 복으로 갈아입고 선크림을 바르면서
죽 하나 먹고 하얀 배롱나무가 핀 길을 응원을 뒤로하며 페달을 밟았다.
곧 다가오는 언덕을 끙끙거리며 올라가자 판때기, 물대포, 봉다리의
열성적인 응원이 기다리고 있다.

힘을 얻어 고개를 넘으며 제1보급소에서 음료수를 준비했다.
앞에 가는 선수들을 착착 젖히고 제2보급소에서 다시 음료수를 챙겼다.
스페셜 푸드 보급소를 지나치면 보는데 아직 손님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컨디션 좋고 보급 좋으면 이번 대회에는 스페셜 푸드를 이용 안하고
시간을 벌어볼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한 바퀴에 채 한 시간이 안 걸릴 정도로,
내 수준에서는 좋은 속도로 세 바퀴를 잘 돌았는데 슬슬 힘들다는 신호가 온다.
할 수 없이 스페셜 푸드 보급소에 내려 내 물품 백을 받아 그늘에 앉아보니
백을 열 힘도 없고 어지러워 꼼짝할 수도 없다.
자전거 위에서는 더운 줄 몰랐는데 더위를 단단히 먹은 것 같다.
한참을 앉아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억지로 준비한 죽을 먹어보니
먹을 만해서 억지로 먹고 겨우 정신을 차려 출발했다.
약 30분을 허비한 것 같다.
아직 두 바퀴가 더 남았는데 맞바람이 점점 심해져서 그런지
드레프팅하는 선수들이 많이 보인다.
덥고 힘들지만 주로에서 응원하는 분들에게 힘을 얻어 페달을 밟아본다.

화력발전소 부근에서 안장 고정 볼트가 빠져 달아나
마샬을 몇 분, 메케닉을 몇 분이나 기다렸는데 부품이 없다고 한다.
안장에 앉지 못하고 40킬로를 타야하는데,
같은 부품이 아니라도 대충 맞는 볼트만 있으면
우선 고정은 할 수 있을 것 같아 공구함을 잘 찾아보라고 애원?해서
겨우 안장을 고정 시킬 수 있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잠시 쉬어서 그런지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마지막 남은 한 바퀴, 선수들이 많이 빠져나가서 주로가 좀 한가하고
마음이 급해지지만 더위 먹고 경기를 포기할 지경까지 갔던 걸 상기하면서
마음을 다 잡는다.
6바퀴를 다 돌고 바꿈터로 돌아오는데 마라톤 코스에는
벌써 많은 선수들이 달리고 있다.
182키로 사이클 공식기록 7시간 09분 48초
(8:49:54, 9:22:56, 10:20:54, 11:18:58, 12:20:01, 14:02:24, 15:13:33, 15:59:42)
바꿈터에서 준비하고 있는데
2등 한석주선수가 9시간 3분으로 골인하는 방송이 들린다.
옷 갈아입고 선크림을 바르고 죽을 하나 먹고도 머리가 계속 어지러워
한참을 쉬었다가 16시 18분 51초에 마라톤 출발.
조금 달려보려고 시동을 걸어보았다.
저번 주에 풀코스를 달려본 다리 근육은 달리자고 불끈거리는데
머리가 너무 어지럽고 날씨는 너무 덥고 속이 안 좋아 뛸 수가 없다.
전날 술 많이 마시고 다음날 숙취로 고생하는 딱 그 기분이다.
아무리 시간이 늦어도 완주를 못하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는 걸
작년에 뼈저리게 체험하지 않았던가.
처조카 결혼식에도 못가고 대회에 나왔는데
완주를 못하고 돌아가면 추석날 얼굴을 들 수가 없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걸어서라도 완주하자.
해가 지고 날씨가 시원해져서 몸 상태가 좋아지면 까먹은 시간을 만회하자.
열심히 뛰는 사람들을 구경만 하며 10키로 한 바퀴를 계속 걸었다.
주로에 나오는 죽, 미역국, 과일(포도, 배, 바나나)을 먹고 마셨다.
해가 저물고 두 바퀴째는 좀 뛸 만 한 것 같아 슬슬 뛰었다.
골인지점 앞을 지나가며 골인하러 들어가는 사람들,
마라톤을 끝내는 사람들이 너무 부럽다.
좀 달렸다고 그런지 세 바퀴째는 다시 어지러워진다.
몸은 멀쩡한데 설렁설렁 걷는 게 남이 보면 어떨까 싶어 부끄럽기도 하지만
몸은 멀쩡한데 못 뛰는 나 자신은 더 답답하다.
진주로 빨리 가야하는 사람들에게 걱정하지 말고 먼저가라고 말을 전했다.
마지막 10키로 한 바퀴.
몸 상태가 훨씬 좋아져서 거의 안 쉬고 뛰었다.
늦어도 10시 안에는 들어갈 것 같다.
몸 상태가 좋아져서 앞으로 풀을 한 번 더 뛰어도 될 것 같아
처음에 완주 여부를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감지덕지이지만
한편으로 어이가 없기도 하다.

드디어 골인지점이 가까워진다.
진철 식구들이 나와서 반갑게 맞아주고 재미있는 이벤트를 마련해준다.
드디어 골!인!

마라톤 42.195킬로 공식기록 5시간 33분 57초
전체 기록 14시간 52분 45초
전에는 골인하면 너무 힘들어서 마사지 받고 정맥주사를 맞고
침대에 누워 한참을 쉬었는데
이번에는 아직도 힘이 넘치고 아픈 데도 한 군데도 없어
머리 어지러워 걸었던 게 거짓말 같다.
숙소에서 대충 씻고 숙소 앞 테이블에서 바비큐 파티.
웬만큼 먹고 마시고 쉬고 싶었는데 새벽 2시까지 잡혀 있다가 잠을 잤다.
<바비큐 먹으며 찍은 사진이 어디에...>
3일 째 집에 오는 날.
밤새 30분 간격으로 터지는 '비명소리'에 잠을 설쳤는데
6시쯤 되니 배고프다고 밥 먹으러 가자고 닦달하는 허덕구가 있어
할 수 없이 일어나 밥 먹으러 갔다.

백사장에서 발견한 해파리 대왕.

밥 먹고 숙소에서 다시 쉬다가 짐 챙겨 10시 쯤 출발.
12시 대천 휴게소, 1시 전주 비빔밥집, 4시 출발 장소 도착

5시 드디어 집에 도착.
2박 3일 재미있고도 많은 추억을 남겼던
태안그레이트맨 대회가 드디어 끝이 났다.

그리고 9월 27일 순천만 100킬로 울트라 마라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좋아!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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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부회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피니쉬 사진 아주 잘나왔네요^^
큰놈되고 또
울트라뛰신다고라고라고라고라
단단히 미치셨네....우짤랍니까
.....형수한테 허락은 받으신겨
....암턴 큰놈되신거 추카추카

싸나이님...끝까지 수고...그리고 순천만까지 잘 접수하시길...
건데...와 내눈엔 사진이 안뵈이노??? 특수안경 껴야되나???
추카 추카..포기하지 않고 들어오는 걸 보니 얼매나 방갑던지...ㅋㅋㅋ 그래이트 힘~~~
안가도 갔다 온것 같습니더, 수고 하셨습니다. 이제 다 회복됐지예???
정말 멋있네예...쭈욱 읽어내리니 소름이 쏴아 돋네예.....형님 그라고 순천만 울트라 꼬옥 좋은성적으로 완주바랍니다....완주못하모 일단 오지마이소 고마......꼬옥 완주후에 보이시더.....화이!!!!!!!!!!팅
꿈의 기록 10under을 축하드립니다. 밤 10시 안에 들어오면 아닌가? 푸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