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은 창간 58주년을 맞아 김대중 전대통령과 특별대담을 가졌다. 남북정상회담과 햇볕정책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던 김 전대통령으로부터 시계 제로인 ‘한반도’ 해법을 듣고자 함이었다. 김 전대통령은 한반도 문제 해결의 물꼬인 6자회담의 핵심은 북미관계 개선이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북미 양국의 상호신뢰 회복 노력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정치 현안 등에 대해 언급을 자제해온 김전대통령은 여권이 추진하고 있는 과거사규명 등 개혁작업과 관련해 “국민보다 반발 앞서서 가고 국민이 따라오지 않으면 서서 기다리고 설득해야 한다”며 국민적 합의를 강조했다. 다음은 김 전대통령과 김지영 편집국장의 특별대담 전문.
-경향신문이 6일로 창간 58주년을 맞았습니다.
“아침에 신문을 다 볼 수가 없어서 경향신문만 추려서 기사를 읽어봅니다. 사원 전체가 주인이 돼서 좋은 신문 만드느라 애쓰시는것 같습니다. 뉴스메이커도 상당히 재미있게 만들더군요”
-중국에서 한국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는 등 한류열풍이 상당합니다. 이같은 한국 문화가 지닌 힘의 원천이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요.
“중국에서 하루 저녁에 한국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 약 1억명입니다. 중국은 왜 그런 드라마를 못만드느냐. 내가 볼 때는 우리는 우리가 민주주의를 이룩했습니다. 우리가 싸우고 희생되고 죽고 하면서. 분신자살만 해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했습니까. 그러면서 민주주의를 차지했지요. 반면 중국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일본은 민주주의라 하지만 쟁취한게 아니라 미군정에 의해 주어진 민주주의였고요. 우리 같은 정신적인 탄력, 활력이 나타나질 않는거라고 봅니다.
작년 말 ‘나운규 영화제’에 가서 공로상을 수상했습니다. 왜 나한테 그런걸 주나 하면서 갔는데. 감독협회 대표나 문화부장관 등이 나와서 말하기를, 영화를 만들어도 가위질 하거나 국가보안법으로 잡아넣는 이런게 없어지니까 마음대로 창조가 가능해 상을 주는거라고 하더군요. 문광부 국정보고 받을때, 문화예술은 도와주면 좋지만 간섭하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영화에만 1천6백억원을 도와줬지요. 엄청난 돈을 도와준겁니다. 돈 없어 영화 못만드는 사람들이 영화 만들수 있도록 해줬습니다. 또 하나는 스크린쿼터제 관련해서도 청와대에서 미국 대표를 만나 쿼터제 철폐하는게 옳다, 그러나 사람도 수술할때 수술이 병에 좋아도 건강이 지탱하지 못하면 체력이 필요하지 않느냐, 그런 체력이 길러질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타협해서 스크린쿼터 개방을 연기했습니다. 신상옥씨가 어디에선가 상을 받으면서 ‘이 상은 내가 받을게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이 받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지금 국제적으로도 감독상도 휩쓸고 앞으로 21세기 문화 분야에선 우리가 독보적인 발전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확의 계절인 올 가을에 특히 상념을 많이 하시는 부분이 있으십니까.
“금년 가을에는 남북관계에 있어 대화가 일시적으로 중단됐고 미국에서 북한인권법이 제정된 것이 여러가지 영향을 주고. 6자회담도 안 열리고 해, 비록 잠정적인 상황일 것이라고는 믿지만 그런 분야에 대해 신경 많이 쓰고 있고요. 또 하나는 경제 민생문제가 상당히 어려운 것 같아 걱정이 많습니다”
-내년이 광복 60주년입니다. 일본은 국익외교를 본격적으로 한다고 하고, 중국도 부국강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외교적, 내부적 노력을 해야한다고 보십니까.
“일본과 중국의 예가 있건없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외교가 필요한 나라이고 외교가 운명을 좌우하는 나라입니다. 그건 지도를 보면 즉각 알 수 있습니다. 중국, 러시아, 일본이 딱 붙어 있습니다. 또 미국이 여기 와 있고. 세계에서 4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 조선왕조 말엽때 이미 이 나라들이 우리나라 운명을 결정하는데에 전부 참가했습니다. 일청전쟁, 일러전쟁 등. 역사가 꼭 되풀이 되는건 아니지만 되풀이 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4대국 외교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나라마다 관계를 잘 발전시켜야 하고, 또 4대국을 하나로 묶어서 발전시켜야 합니다. 난 1971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 ‘4대국 한반도 평화보장’을 선거 공약으로 냈었고, 지금의 6자회담이란 것이 거기 4대국에 양국이 합쳐진 것이지요. 이런 점에 있어 국가 장래를 위해서도 4대국과의 외교를 각별히 관심 가져야 합니다”
-미 대선이 11월에 있고 북한 인권법안이 통과되면서 6자회담이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내 생각에 6자회담은 당장에 어떤 성과를 올리기는 커녕 미대선 전에 개최조차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가 물론 당사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하는데 북한과의 관계가 긴장돼 가지고… 탈북자들이 집단으로 입국하고 김일성 10주기 조문 참가 문제 등으로 쉽게 대화하긴 어려운 입장이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결국 6자회담에 참가하는 나라들이 비공식적으로라도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모멘텀을 끊지 말고, 그러면서 미국 대선이 끝나고 나면 누가 당선되든 한반도 문제는 급속히 발전돼 나갈걸로 생각합니다. 그런 준비를 하는게 좋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6자회담 관련국들에게 당부하고 싶은게 있으시다면 어떤 것들이 있겠습니까.
“6자회담이라고 하지만 핵심은 북미관계입니다. 왜냐하면 6자회담에서 논의된 것이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미국은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적 제재를 해제하는게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6자회담에서 미국과 북한은 이런 점에 있어 태도를 아주 분명히 해야한다고 봐요. 미국은 북한이 핵을 완전 포기할 경우 북한을 위해 어떻게 하겠다는걸 손에 쥐어주듯 해줘야되고, 상호 불신이 있기에 그렇게 해야되요. 또 북한은 미국이 많이 속았다고 생각하니까 이번만큼은 틀림없다는걸 보여줘야 합니다. 거기에 중국 등이 큰 역할을 하는데, 우리도 응분의 역할을 하면서 6자회담 관련국들과 협의해서 미국과 북한이 매듭을 풀도록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가 기존처럼 조용한 외교로 처리하는게 맞다고 보십니까.
“북한인권법은 입법한 분들이 설명한대로 북한 인권을 개선하고 탈북자를 도와준다는 면에 있어서, 그런 효과를 위해 북한에 압력도 가하고 탈북자 안전관리도 하는 성과는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양면성이 있습니다. 그런 플러스 요인이 있는 동시에 상당히 마이너스 요인도 있습니다. 첫째 북한이 이 법에 많은 충격을 받고, 북한은 단순히 탈북자가 아니라 북한 체제를 전복할 의도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해 탈북자들을 철저히 막을 겁니다. 그전에는 식량 가지러 간다고 하면 눈감아줬지만 이제는 탈북하기가 쉽지않을 것이고… 둘째, 그렇게 되면 만주나 몽골을 떠도는 약 10만명이 되는 기(旣)탈북자들이 주대상이 되는데, 거기에 NGO 등이 관련해 요즘 말하는 기획입국을, 우리나라로 대량 입국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에 있는 사람들을 이동시키고, 일시적으로 수용시키는 과정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 마찰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런 사람들을 대량으로 받아들이면 북한은 우리가 미국과 짜고 실질적으로 납치해 데려간다며 남북관계를 경색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북한 인권 문제를 본질적으로 생각하면 한국, 미국, 일본에서의 인권이라면 주로 정치적, 사회적 자유를 말하는데 북한에는 그에 앞선 원초적인 인권이 있어요. 굶어 죽게 된 사람들한테는 밥 먹는게 인권이에요. 그런 인권에 최고 기여하는게 우리나라입니다. 매년 비료 20만톤, 식량 40만톤을 지원하고 있고. 북한에 있는 사람들의 또 하나의 원초적 인권은 질병으로부터 생명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말라리아나 폐병이 북한에 참 많습니다. 북한에 약품, 의료기기도 없고 수술할 때도 진통제도 맞지 않고 하는 상태에서 죽어가는 사람한테는 정부 비판할 자유보다 병 고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굶어죽는 사람한테는 정치적 자유보다 먹는게 더 중요하다. 북한의 인권이란 것은 사회적 정치적 인권보다 원초적 인권이 더 중요합니다. 북한을 탈출해나온 사람들의 대부분도 식량을 구하러 나오는거지 북한 독재에 반대해 나오는게 아니에요. 이런 문제를 볼때 북한의 원초적 인권을 제일 도와주고 있는게 한국이지요. 한국 정부가 그동안 한 일이 재평가돼야 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되돌아보시면 햇볕정책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또 이러한 상황에서 햇볕정책이 앞으로 어떻게 적용되는게 좋다고 보시는지요.
“햇볕정책은 한마디로 많은 성과를 올렸다고 볼수 있고, 세계 뿐 아니라 우리 국민들로부터 모두 지지를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그게 연계되야 한다. 첫째로 긴장을 굉장히 완화시켰습니다. 그전엔 판문점에서 총 한방만 터져도 혼란이 있었지만 그런 일이 없어졌다. 또 남북간 적개심이 크게 사라지고 화해 협력의 기운이 일어났습니다. 한국에서 제일 반공이 센 부산이나 대구에 북한 사람들이 왔을 때 그 사람들을 대우해주지 않았습니까. 즉 공산주의는 반대하지만 북한 사람들을 같은 동포로 인식하게 된 것이지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햇볕정책은 근 60년 동안 서로 얼굴 못보던 친척들이 이산가족 상봉을 했습니다. 국민의 정부 전에 약 200명 상봉했지만 지금 1만명 넘습니다. 금강산 관강 갔다온 사람이 74만명입니다. 남북간 민간인 왕래도 우리가 7만명이 북한을 다녀왔고, 북한에서도 4,000명이 남한을 왔다갔어요. 개성공단 건설은 남북간 큰 이득을 가져옵니다. 어떤 연구소가 추계한 걸 보면 앞으로 9년간 우리가 개성공단에서 1천억불을, 북한은 90억불을 이득 본다고 예상했습니다. 양쪽 다 윈윈을 이루는 것입니다. 거기에 철도, 도로가 연결되는데, 철도 연결은 북한에 그치는게 아니라 중국 오지,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유럽, 영국 런던까지 가는 문제이고 일본과는 해저터널도 연결하는 문제라 엄청난 문제인데 그게 이미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볼때, 만일 북미 관계만 좋았으면 훨씬 더 많은 일 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북한이 약속도 안 지키고 자꾸 말썽 부리고 하면 짜증 날 때도 있었지만 인내심으로 참고 했습니다. 북한은 두 가지를 안할수가 없습니다. 하나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고 또 하나가 우리와 관계 개선을 해 우리 덕을 봐야 합니다. 북한이 병적인 자존심에 사로잡혀 하더라도 대범하게 받아들이면서 성의있게 받아들이면 태도가 달라집니다. 내가 6월에 프랑스 OECD회의 가서 기조연설을 했는데, 시라크 대통령이 나한테 편지를 보내왔어요. 거기에 “각하가 재임 중 과감하게 추진한 대북화해정책을 프랑스가 평가하며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린다. 본인은 각하가 취한 길이 현명한 길이었다는 사실이 시간이 흐르면 자명해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썼습니다. 이번 5일 퍼그워시 반핵반전 대회에서도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글을 발표하려고 합니다. 햇볕정책은 되돌릴수 없을 정도로 오고 있습니다. 국민의 최소 60% 이상은 계속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간 성과도 있었고 그외 다른 대안도 없고, 다행히 노무현 정권이 햇볕정책을 계승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많은 성과 기대합니다”
-한반도 정세가 예민하다보니 남북 정상회담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현 정부는 북핵문제의 가닥을 잡은 뒤에 정상회담을 추진한다는 입장인 것 같습니다. 선후(先後)관계가 어떻게 되어야 된다고 보십니까.
“그건 정부 지도자가 판단할 문제인데, 나는 북한 핵문제 해결과 남북간 대화, 정상회담 이런게 병행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그전에 장관회담에서 북한이 논의도 안하려고 하는 핵문제를 끈질기게 따져 평화적 해결에 합의본 바가 있지 않습니까. 언제 하느냐는건 정부가 정할 문제지만 6자회담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도 양국 정상회담을 할수 있는 문제라 생각합니다. 또 내 경험을 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맞대고 앉아서 얘기하는게 얼마나 유용한가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노대통령도 그런 기회를 가진다면 좋은 결실을 가져오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