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시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요1: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현대인들의 하루는 전기(電氣)의 힘으로 시작되고 유지된다 하여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잠자는 것에서부터 활동하는 모든 것이 전기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전기와 현재 우리 생활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가는 정전이 되는 순간 뼈저리게(?) 절실하게 느끼게됩니다. 잠시라도 전기가 중단되면 그 불편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전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130년 전쯤인 1887년입니다. 최초로 전깃불이 켜진 것은 경북궁 안에 있는 집옥재(集玉齋)와 건궁청이었습니다. 집옥재는 고종황제의 서재 겸 외국사신을 접견하는 곳이며, 건궁청은 왕비께서 궁녀들과 거처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왕과 왕비가 거처 두 건물에 이 나라 최초로 문명의 빛이 비췄던 것입니다.
이 땅에 최초로 전기를 가설(架設)한 사람은 미국 에디슨회사의 전기 기술자 ‘월리엄 메케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때의 전기는 겨우 3KW 발전기 두 대뿐이었습니다. 그나마도 발전기 소리가 얼마나 요란스러웠던지 사람들은 이 소리를 가리켜 벼락치는 소리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호롱불이나 촛불만 보고 살았던 당시 사람들에게는 듣도 보도 못한 이 새로운 문명의 이기(利器)는 신기한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밤마다 경북궁 건너편(지금의 소격동) 언덕에는 전깃불을 구경하려고 몰려든 사람으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동네 이름도 ‘관화방’(觀火坊), 즉 불을 구경하는 동네라는 뜻으로 불려질 정도 였습니다.
경북궁에 전기가 들어온 지 36년이 지난 1923년에는 대구(大邱)에 대구전기회사가 설립되었습니다. 이어서 상주(尙州)에는 상주지점이 개설되어 상주 지방에도 전깃불이 들어왔습니다. 지금의 전기와는 비교가 안 되는 보잘것없는 전깃불이었지만 그 당시 시골 사람들에게는 빛의 희소식이자 새로운 빛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런데 전기가 들어간 직후부터 몇 달 동안 계속하여 정전 시고가 일어났습니다. 고장나고 고치기를 수없이 반복하였습니다. 누가 고의적으로 고장내는 것처럼 고치기를 수없이 반복하였습니다. 누가 고의적으로 고장내는 것처럼 매일 수십 호의 가정에서 정전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비록 두꺼비집의 퓨즈(fuse)가 끊어지는 단순 사고였지만 왜 매일 여러 집에서 그런 사고가 일어나는지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급기야는 특별조사반이 평성되어 파견되었습니다. 전문가들이 다각도로 정밀조사를 한 결과 원인이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그 원인은 참으로 어이없는 것이었습니다.
노인 양반들은 소켓 안에 불씨가 있어서 전구가 환하게 밝아지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라이터는 아예 구경하기조차 어렸웠으며 성냥도 귀한 때였으므로 ‘옳지’하고는 쇠로 된 담배대 머리를 소켓 안에 쑤셔 넣어 불을 붙이려 마구잡이로 쑤시다가 전기합선으로 퓨즈가 끊어졌던 것입니다. 그것도 한두 집이 아니고 이집 저집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으므로 전기회사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전기상식계몽반’이라는 것을 급히 만들어 전기에 대해 계몽(啓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담배대를 소켓 안에 집어 넣으면 불이 붙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기에 감전되면 죽습니다.’하고 계몽반이 농촌을 순회하면서 계몽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계몽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동안 심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니 밝아서 좋기야 하지만 담뱃불도 못 붙이는 것을 어디에 쓰겠나? 그리고 뭐라고?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고? 그런 무서운 것을 어떻게 방안에 매달아 둘 수 있겠어”하면서 전기를 쓰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생겨났습니다. 당장 전기를 떼어 가라는 집이 속출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지만 지금으로부터 90년 전에 이땅에서 실제로 벌어진 해프닝(happening)이었습니다. 어둠을 밝혀 주고 갖가지 문화시설을 이용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전기를 전기의 원리(原理)대로 사용하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기껏 담뱃불이 붙지 않는 다고 떼어 가라니, 이 얼마나 무지몽매(無地蒙昧)한 행동입니까?
이런 무지몽매한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도 문명사회(文明社會)든 그렇지 못한 사회를 구별없이 세계(世界) 도처(到處)에서 매일 매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죄로 어둔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드리지 않는 무지함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빛으로 오셨다는 말은 이 세상이 어둡기 때문이었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 이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요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사람들은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그 악함이 빛으로 인하여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어두움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요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자신의 죄악이 드러날 것이 싫어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는 자는 다음과 같은 자(者)입니다. 오래 두면 생명에 위협을 주는 악성(惡性) 종기(腫氣)가 가슴에 돋아난 사람에게 의사가 치료해 주려고 웃옷을 벗으라고 하자 의사에게 보기흉한 종기를 보여 주는 것이 두려워 집으로 돌아가 버리는 사람과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악한 행위와 죄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드러나게 되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죄악입니까?
어두움이 빛을 덮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아무리 감추어도 주님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십니다.
고전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지금은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날이 가까웠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할 때입니다.
롬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사람이 철이 들면 자기 의지로 착하게 살아보겠다고 결심(決心)이나 각오(覺悟)로 자기 수리(修理)를 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자기의 지난날을 반성(反省)하면서 고상한 취미나 종교에 심취(心醉)하는 것으로 자신의 인격을 닦고 쓸고 정리하고(整理)하고 정돈(整頓)하는 소제(掃除)를 하지만 이것은 다 허사(虛事)입니다. 더러운 귀신은 악한 귀신 친구들을 데려와 장구치고 꽹과리치며 축제를 할 뿐입니다.
눅11:24.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25.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26.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참된 심령의 주인은 예수님 뿐입니다. 예수 없는 심령은 허무할 뿐입니다. 예수 없는 심령은 주인 없는 무주공산(無主空山)입니다. 그 마음속에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들이 더욱 악할 뿐입니다.
롬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진리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 분은 빛이십니다. 빛은 단순히 어둠을 밝햐줄뿐암 아니라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를 살게 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악함을 쫓아내신 빛이시며 사망을 쫓아내신 빝이십니다.
담뱃불 때문에 전기를 떼어내려는 어리석음과 같이 껍질에 불과한 썩어질 세상 것들에 대한 미련 때문에 빛 되신 얘수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 감사합니다.
죄로 인하여 어둠 가운데서 소망 없이 살아가던 죄인을 빛으로 오시어 그 어두움을 걷어내어 주신 예수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이 세상 끝날 까지 그 빛 가운데 살아가게해 주옵소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