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도깨비
림동수가 범을 잡았다는 소문은 와룡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한평생 살아도 범을 보지못한 사람들이 범보다 더 무서운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글쎄 왕지평 뒤골안에서 요즘 저녁어둠이 밀려오기 바뿌게 새끼를 잃은 암펌이 쌍불을 켜고 동수네 집을 노려본단다. 얼핏 보기에는 강편하게 생긴 동수가 범을 때려잡았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집 바람벽에 호랑이 가죽이 대문짝같이 걸려있는 게 사실이였다. 밤마다 암펌이 따웅거리는 소리가 마을을 진동해서 사람들이 저녁밥술을 놓기바쁘게 문단속을 하였다. 모두들 이불쓰고 숨도 크게 못쉰다. 어디선가 달려오는 범발자욱 소리에 귀를 도사린다. 당장 눈에서 불곷이 뚝뚝 떨어지는 암펌이 내집 창문에 매달릴것만 같아서 모두들 밤을 하얗게 밝히였다.
평소에는 새벽이면 앞뒤산을 벼락같이 산출귀몰하던 동수도 요새는 낑낑 갑자르며 집을 나서지 않는다. 웬일일가? 새끼를 잃은 암펌을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고 큰소리 빵빵치던 동수가 벌써 기꿘했는가? 동수는 <산귀신>이였다.그가 꼴망태를 메고 산으로 가는 날이면 노루나 멧대지는 못잡아도 하다못해 토끼나 까투리꼬리래도 꼴망태에 넣고야 돌아오는 성미였다. 우리들은 동구밖에서 해넘어 갈때까지 동수만 기다린다. 우리들은 산으로 나무하러 갔다가 돌틈에 서리가 끼여도 신대륙이나 발견한것처럼 제꺽 달려와서 동수에게 알려준다. 이런동굴속에는 오소리 아니면 너구리가 들어있었다. 동수는 동굴입구에다 싸리나무를 끝이 뾰족하게 깍아서 쑤셔넣고 맞은쪽 굴어구지에는 고추가루를 태운다. 지독한 고추냄새 맏고 너구리가 궁둥이를 밀고 나오다가 싸리긁에 엉덩이가 찔려서 비명을 지른다. .. 피가 뚝뚝 떨어지는 너구리를 잡아다가 동수네 집에 한가마 앉혀놓고 먹던 때가 좋았는데...
동수는 말끝마다 <제기랄. 씹팔년>라는 막말을 달고 다닌다. 거친세월에 누구를 욕하는지 콱 뒈져라고 욕해서 모두들 뒤에서는 <뒈질놈이> 라고 불렀다. 동수는 입이 거칠어서 그렇지 알고보면 퍼그나 인자한 사나이였다. 어쩌다 씨받기를 못하는 뚱보마누라를 얻었는지 왜소한 동수에 비하여 두배나 더커서 모르는 사람들은 누님과 사는가고 오해를 하였다. 말끝마다 마누라를 씹팔 년이라고 더럽게 욕하지만 마누라를 발바닥에 털이 나도록 모신단다. 동수는 나이들수록 젊은이들과 친해야 한다면서 우리 또래들과는 특별히 경어를 쓰면서 살갑게 굴었다. 초저녁부터 우리들이 몰려올 줄 알고 화로에다 토시래기감자를 파묻어 놓지않으면 구수한 두병을 전병처럼 얖게썰어서 노랗게 구워놓는다. 범이 담배피우던 옛말을 장밤 엮어대는데 별로 흥취를 못느꼈다. 김일성 장군님의 산출귀몰하며 왜놈을 족친이야기는 열백번도 더해서 암송냈다. 이야기 할때마다 골을 끄떡거리면서도 끝까지 들어주었다. 옛말이 재미있어서 끝까지 들어준게 아니라 구수한 두병냄새와 감자냄새 때문에 끝까지 들어주었던것 같다.
동수네 집에 꿀단지를 파묻었는가? 동수네 집에는 온 마을에서 유일하게 헐망한 라디오 한대가 있었다. 날마다 남조선 메아리방송을 들었다. 방송을 들은 이튼날 산에 가보면 밤새 쌕쌕새기 비행기가 뿌렸다는 삐라들이 쫙 깔려있었다. 울긋불긋한 삐라에는 모주석이 골에다 뱀 꼬랭이를 그려놓고 주은래 골에다 구렝이 꼬랭이를 달아 놓았다. 난포로 큰길을 파귀하고 국가량식창고 벽을 뚥고 량식을 훔치는그림. 톱으로 전봇대를 켜는 그림을 그려놓았다. 이런삐라가 널려있는 산판은 당장 어디선가 락화산을 타고 내려온 특무가 무전기레시바를 쓰고 달려나오는것 같았다.. 우리는 전단지를 동수에게 일러바쳤다. 동수형님이 이런 삐라를 향정부에 바치면 그날 저녁으로 전 와룡촌의 사람들이 한사람같이 떨쳐나서 시위행진을 하였다. 벌건주먹을 휘두르며 미제는 남조선에서 물러가라! 미제는 대만에서 물러가라! 공산당 만세 모주석 만세! 사회주의는 좋다! …시위는 동산에 보름달이 떠오를 때까지 계속되였다.
누구도 산짐승 울음소리를 분간못하는데 동수마누라는 너무들어서 귀신같이 안단다. 도막 나무를 안으려고 앞마당으로 나갔다 들어와서 넙떡귀를 벌름거리며 우리를 들으라고 주의를 상기시킨다. 어디선가 쏴하고 무서운 소리가 들려온다. 이럴때면 우리는 약속이나 한듯 이불속을 파고들어 동수를 쳐다보았다. 동수는 전혀 범이소리를 자장가로 알고있다는듯 안하무인체 하고 라지오에만 신경쓴다. 마누라의 앙달을 듣다못해 도끼를 들고 앞마당에 나서서 서쪽골에 대고 뭐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런데 웬일이요 갑자기 목소리가 모기소리처럼 가늘어 지는게 이상하다. 저 목소리를 들으면 범이 아니라 쥐가 들어도 코웃음 치겠다. 말끝마다 제기랄 씨팔년 오기만 해 보라 껍질을 발라죽인단다.
동수는 사시나무떨듯 부들부들 떠는 마누라를 보고 술안주를 갖추라고 큰소리 치지만 그게 자기의 똥담을 키워주느라고 웨치는 맥빠진 소리라는 것을 나는 빤히 알고있었다. 건가래를 떼며 손을 옆구리에 척 집고 장군이나 된것처럼 오른손에 단화를(단화란 로획한 일본군도를 말함) 휘 두르는 품이 어쩐지 범을잡은 개선장군 같지 않았다. 동수는 왜 자식내를 하지못하는가 암펌이 빤히 보는데서 범새끼를 안고온 동수는 새끼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 없어서 새끼를 낳지못한다고 모두들 수근거렸다. 동수가 범을잡은 후부터 생산대의 호랑이로 불리우던 입삐뚤이 대장도 동수를 마음대로 휘두루지 않았다. 툭하면 아무나 걸고드는 동수는 눈에 보이는게 없었다. 어떻게 되였던지 동수는 <범대장>으로 소문이 난것만 사실이다.
범을잡은 후 펀펀하던 동수마누라가 실없이 앓기 시작하였다.공연히 마누라 때문에 짜증내던 동수가 그 이듬해 봄에 어두운밤에 홍두깨 내밀듯 불쎄루 이사를 간단다. 이사짐을 싸기전날 우리 또래들을 마지막으로 모여놓았다. 언감자떡에다 감주를 받아놓고 대접했다. 안쪽(관내)에 가서 생활이 펴이면 또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겠다고 맹세했다. 그때까지 암펌이 살아있다면 기어코 원쑤를 갑아주겠다고 큰소리 탕탕쳤다.그런데 도대체 누가 누구의 원쑤를 갑겠는지는 두고보아야 할일이다. 나는 동수가 암펌을 무서워서 이사가는 줄을 빤히 알고있었다. 눈물이 글성해서 머리를 절레절레 젖는 우리들을 물끄럼히 바라보던 동수는 낡은라지오를 나에게 넘겨주는 것이였다. 목이 꺽 메는지 꺽꺽거리며 <범대장> 같지않게 어께를 들먹인다. 우리는 동수가 총탄이 울부짖는 항미원조 최전선에나 나가는 것처럼 비애와 슬픔으로 눈시울을 적시였다. 동구밖 백양나무 아레에서 이사짐 수레가 보이지 않을때까지 손저어 바랬다. 동수가 없는 고향에는 무서운 어둠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림도깨비>가 없는 골안에 범이 제나름대로 날뛰며 사람들을 해칠게 불보듯 뻔한 일이였다. 모두들 초저녁부터 문을 꽁꽁 잠그고 죽은듯이 숨어 있었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범바위에서 암법이 이 모든것을 낱낱이 지켜 봤는가 생각박에 동수가 떠난후 범은 더는 행패를 부리지 않았다. 암펌이 울음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동수가 없는 고향은 해마다 스산해지기 시작했다. 작달만한키에 다부지게 생긴 동수가 들려주던 옛말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지만 수호전이나 림꺽정 시대로 되돌아가는 기분이다. 해마다 대채를 따라베워서 산과 물을 다스린다고 난포질해서 범은 물론 노루 토끼꼬리도 보기힘들었다. 행여나 새해는 낳겟지 하고 기다렸건만 가물이 들지않으면 홍수가 터져서 사람들이 뿔뿔히 흩어졌다. 동수가 남겨둔 색낡은라지오는 새것으로 바꾸었지만 들을사람들이 없었다…반세기가 넘도록 동수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무도 모른단다. 동수가 과연 안쪽(흑룡강)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있는지? 지금도 살아있는지? 신문에 광고라도 내고싶다. 70년초에 화룡현 와룡8대에서 살고있던 림동수를 본 사람이 없나요? 세월이 흐를수록 고향을 살맛나게했던 <림도깨비>가 한없이 그립습 니다… …
2009년 5월 4일
19. 내 님의 사랑은 ('7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