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답사를 가려고 집을 나섰는데 빨리 답사가라고 가랑비가 나린다.... 사진찍기엔 좀 힘이든 날이다....그래도 마음 먹었을때 출발하고 다녀와야지 하고 일찍 떠났다....
1.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칠곡의 송림사인데 이 절은 전탑과 명부전의 지옥도가 일품인 곳이다. 사실 명부전의 지옥도는 재작년에 새로 단청을 하면서 그림을 그렸는데 전 그림보단 못하다.
팔공산을 한티재로해서 넘는데 와하...아랫쪽은 비가오고 위는 기온차로 눈으로 변하더니 정상쯤에 가니 진눈깨비로 변하고 마른 가지에는 온통 눈꽃으로 변한 장관을 연출하였다. 앞과 뒤를 쳐다보니 거대한 눈터널을 연상시켜 너무 좋았다......정상에서 군위삼존불로 내려가는 길은 온통 눈으로 뒤덮혀 국도관리를 하는곳에서 제설차를 동원하여 눈을 치우고 그 사이사이를 곡예운전하듯 아주 천천히 아슬아슬하게 내려갔다(대구 사람들 지금 대구에 눈온것을 알고나 있을려나........
2. 군위 한밤마을(대율리)
대율사를 찾아가 용화전에 모셔져있는 대율리 석조여래입상(보물 제988호)을 구경했는데 수인이 아주 독특했다. 마치 자기 젓가슴을 안는듯한 수인이다. 이 절의 스님께서 미륵불로 모신다고 일러준다.
길가의 송림끝에 있는 진동단인데 이것은 마을을 지켜주는 솟대를 변형한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고 진동단의 끝에는 무엇인가 상징적인 것이 올려져 있는데 거북내지는 오리의 머리와 비슷했다.
마을 아주머니께 물어 대청마루와 부림홍씨들의 고택인 상매댁을 구경했는데 여기는 아직 후손들이 살고있어 자세히 살펴 볼수가 없었다(너무 이른 시간이여서...아침 식전).
3. 군위 효령면 불로리에 있는 불로리 마애 보살상인데 길가의 숲사이에 있어 찾기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경북유형문화재 제 265호로 지정되었고 놀이는 240센치미터이고 조각숫법으로 보아 고려시대 보살상으로 보인다.
4. 군위 효령면 장군2리에 있는 속칭 장군당인데 여기는 신라때 3명의 장군의 패를 봉안한 곳이다. 김유신, 소정방, 이숙장군이 백제를 토벌하러 갈때 여기에 기거한적이 있었던것을 기념하여 후대에 세운 사당이다.
효령사가 정식명칭이고 아래에는 청계서원이 있다. 청계서원에서 산위 효령사까지는 계단으로 한참을 올라가야한다.
5. 다음은 군위읍내에 있는 지보사인데 최근 불사로 사찰의 전각을 새로이 갖추었는데 그 사이에 국가보물로 지정된 3층 석탑은 눈에 확 들어왔다. 4면에 문비형식이 새겨져있고 팔부중의 형식이 아주 부드럽게 그리고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었으며 하층 기단석에는 여덟마리의 사자가 각기 다른모습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6. 지보사에서 나오다 입구에 있는 마을인 군위군 효령면 하곡리에 부처가랭이 마을이 있다길래 찾아가니 일반 가정집안에 군위 하곡리 석조여래입상 조그만 전각안에 모셔져있다. 집주인 내외가 미륵님 찾아왔다고 반가이 맞아주시며 안내를 해주셨다. 전각의 문을 여니 수인은 아미타부처님인데 주인은 잘생기고 큰 미륵님이라고 일러준다. 나발 머리와 육계 삼도가 완연하고 눈과 코는 많이 상했지만 입가에 미소는 정말 일품이다. 전각앞에는 고려시대에 만들었을것으로 추정되는 탑의 옥개석이 남아있다.
7. 군위 소보면 위성리에 있는 위성리 3존마애불인데 아직 지정은 되지않았으나 군위군에서 지정 예고판을 붙여놓았다. 얼마전 발굴되어 조사를 하였는데 조성당시(1300년 전후 고려말로 추정)에 채색을 하였다고 한다.
지나면서 초파일쯤에 다는 등을 하나 달아놓았는데 만약 이 등이없었다면 쉬이 찾기 조차 어려웠을 곳이다)
8. 군위 소보면 위성리 경북대학교 사과연구소내에 있는 위성리 석조여래입상인데 도지정유형문화재 제222호인데 불상의 높이는 2.55M, 폭 1.07M, 돌의 두께는 0.32M이고 화염광배가 일품인 그런 약사불이다. 정말 잘생긴 불상이다. 연구소내에 있어 출입이 좀 힘들었지만 그래로 이럴때 필요한 것이 뻥이라는 것이다. 하하 문화재연구팀에서 왔다니 그냥 통과.....
9. 군위 소보면에 있는 법주사(속리산 법주사와는 다른곳....)
이곳에서도 불사는 한창이였다. 이 절은 왕맷돌로 유명한데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큰 맷돌이지싶다. 위에 구멍이 몇개 나있고 위 아래 한조를 위해 조그만 전각을 지었다. 지금은 새로이 보명광전을 지었으나 전에 사용하던 보명광전 앞에는 신라시대 5층탑의 탑신이 남아있다. 엉성하게 짜맞추진해도 탑신에 중건을 했다는 명문이 남아있다. 그리고 배례석은 둥근돌로 갈아 배례석의 무늬가 많이 마멸되어있었다.
새로이 지은 보명광전네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었고 전각의 벽화는 온통 불교의 이야기를 나타내고 있었다.
10. 구미시 도개면 궁기리(도개 중,고등학교 내) 경북도지정 제 120호인 궁기리 석조여래조살좌상 2구인데 그중 한 보살좌상은 연꽃을 손에 든 모습이 너무 사실적이고 화염광배과 일동초무늬가 특징이며 좌대의 옷주름을 보니 상현좌이고 우측 무릎과 대좌의 일부가 깨어져 있었는데 만약 깨어지지 않았다면 유희좌일껄로 추측된다. 그리고 광배의 뒷면에는 불상이 조각되어있다.다른쪽 보상좌상도 앉아있는 모습이 상당히 사실적이다.
11. 상주시 왕산공원내에 있는 복룡동 석불좌상(보물 제119호)인데 찾기가 그리 만만하지는 않았다. 수인은 손부분이 깨어져 있었으나 소매의 위치등으로 추정하여볼때 지권인것으로보여 비로자나불일껄로 보인다. 귀가 굉장히 커서 어깨에 와닿고 나발과 목에 삼도가 완연하며 사실적이고 기상이 넘쳐나는 그런 부처님인데 몸통 아랫부분과 다리 좌대등이 없어 새로이 돌받침을 했으나 뒤로 많이 기울어져있어 안타깝다. 조그만 보호각을 지어 모시고 있는데 너무 답답한 느낌을 주었다.
12. 상주 노음산 남장사인데 보광전에 철불이 모셔져있다. 지권인인데 손이 몸체에 비해 적은 편이였다. 불상의 뒤에 목각탱이 봉안되어있는데 금단장을 해서인지 너무 화려하고 보기에 어려운 목각탱이다.
보광전아래 극락보전은 옛건물의 기단을 말끔히 새로 교체를 했다. 전각 정면의 문에 꽃창살이 아름다웠고 이 절 역시 대규모 불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약 200미터 위로 올라가면 중궁암 가는길 입구에 관음전이 있는데 이곳에는 관음보살과 보물 제923호로 지정된 목각탱이 있는데 보광전의 목각탱보다 생동감이 있고 사실적이다. 이 역시 금단장을 해서 아주 화려해 보였다. 다른절에는 없는 목각탱이 이 남장사엔 두곳이나 있어 목각탱만 보아도 너무 흡족한 답사였다. 나오는 길에 입구의 석장승을 보여 웃음을 지어본다.
13. 남장사의 초입에 있는 상주 자전거박물관에서 여러종류의 자전거를 한번 타보고 그 옛날 우리나라가 일제치하에 있을때 자전거 하나로 민족에 꿈을 심어준 엄복동을 사진과 타던 자전거를 사진으로나마 볼수가 있었다. `비행기는 안창남, 자전거는 엄복동'이였다고 했지....
14. 상주 북장사에 도착했을때 또 다시 진눈개비가 내린다. 진눈개비속에서 복원된 북장사 3층석탑을 감상하고 마지막 답사를 위해 길을 달린다.
15. 상주 함창에 있는 증촌리 용화사인데 이곳에는 최근 3층탑의 부재들을 모아 탑을 복원했다. 복원탑 주위에는 탑신석과 광배조각이 한켠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이곳 용화사는 석불조상과 입상이 있는데 이 모두 국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약사전 전각안에 모셔져있는데 너무 늦게 절에 도착해서 어두워서 자세히 감상할수가 없었다. 카메라 후렛쉬가 잘 터지지않아 사진이 잘 나왔을려나 심히 걱정이 된다....
사실 찾아가는 안내판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길을 찾는데 너무 시간을 소비했다.
이번 답사를 하면서 느낀것중 하나가 상주시는 시라는 격에 비해 안내판의 정비가 너무 되지않았다. 혹시 다음에 상주 답사를 가시는 분이 계시다면 자세한 약도를 사전에 숙지해서 길을 떠나라고 충고를 해주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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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변화시키는 인터넷①』
(≫≪) 미군 희생 여중생들의 죽음을 애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