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 랠리
쉬이익, 쉭
어둠 속의 바람소리는 길지만 나를 추월 하는 은륜의 소리는 명쾌하고, 빠르다.
사방이 칠흑이다.
새벽 4시 산골에 이슬의 찬 기운이 묵직하게 산자락을
감싸고 있는 가운데 100여명의 자전거 군단이 출발을 한다.
“여보세요, 이수윤씨. 저 안스트롱인데 380km 휴전선 랠리에 가고 싶은데”
“음 그래요” 말꼬리가 어찌 흐리고 묵묵하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저도 작년에 비슷한 코스를 한번 달렸는데, 뭐라고...” 뒷말을 흐린다.
“저 지난 주에 100km를 탓는데...”
“함께 저 하고 200km 정도 타보았다면 뭐라고 드릴 말씀이 있을텐데,
암튼지 열심히 하세요...”튜브 바람 빠지는 소리 같다.
바다에는 오징어잡이 배의 피곤한 불빛이 명멸하고,
통일 전망대를 출발한 한 무더기의 자전거 후미등이
마치 은하수가 지상으로 쏟아져 내려온 듯한 반딧불이 마냥
앞 다투어 국도를 행진한다.
한 시간을 달리니 앞선 이들이 손짓을 하며 쉬라고 한다.
아마 시속 30km로 달린 것 같다.
“이성희씨 혹시 이수윤씨 전화번호 좀 ...”
이성희 철인에게 뭘 물으면 항시 이렇게 답한다.
“아, 예” 그 목소리는 언제나 긍정적이다.
“000-000-0000 이네요, 그런데 어쩐 일로?”
번호만 알고 끊었어야 했다.
“제가 380km 휴전선 랠리,,,”
“아, 예. 저도 꼭 가고 싶었는데, 5월 3일 대회 참가로...”
“안스트롱님은 충분히 할 수 있어요, 호호호” 너무 친밀하게 나를 밀어준다.
어느 작가가 ‘여인의 아름다운 목소리에는 독이 묻어 있다’란 말을
까맣게 잊은 채,
“그런가? 나도 할 수 있겠구나....”
이미 산 속 깊이 파묻힌 새벽은 소리 없는 천둥처럼,
푸른색 소나기처럼 순식간에 빛이 쏟아지고,
칠흑 같은 어둠은 보이지 않는 세계로 거두어질 때.
진부령 포도를 따라 힘차게 페달링을 한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빼꼭히 자리한 산들로 휘감겨 무릉도원에서 꿈꾸는 듯하다.
그러나 정상 바로 밑에서 500m는 자전거를 밀고 정상에 들이대야만 했다.
다리는 벌써 후들거린다. 이것은 앞으로의 긴 여정의 빙산의 일각...
첫 다운 힐이다. 속도의 쾌감보다 찬 바람살이 더 무섭다.
예전에 내가 취재하던 황태 덕장 건조대는 다 사라지고,
황태 선전 입간판이 가득하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휑하다.
내 추억은 과거란 시간 속에 소멸되어가고 있고...,
미시령 3거리에서 내설악의 진수를 헤아릴 겨를도 없이
손톱만큼 삐쭉한 황철봉 봉우리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용대리로 향한다.
이제 한 고개 넘었는데 어제의 일이 불현듯이 머리를 스친다.
예정대로 버스는 10시에 출발하였다. 옆에 앉은 고사장님이
“잠이 최고야 자둘려면, 이거 한알 먹어, 수면제야”
수면제를 먹었는데도 잠이 청해지질 않는다.
초등학교 첫 소풍전야 같다.
용대리는 나에게는 전두환 전대통령 백담사 유배(?)시절
달포나 취재하던 곳이라서 특별하다.
엊저녁에 먹은 수면제 덕분에 땅이 꿈을 꾸고 있어
도저히 진행을 할 수 없다. 황태 해장국으로 요기를 한 후 20분쯤 누웠다가
커피를 무려 네 잔이나 마셔본다. 원통으로 가는 내내 땅이 흔들린다.
첫 길맞이 나선 아주머니가 내 흔들고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고
모주꾼으로 여겼는지 말을 거든다.
“아침부터 술 마시고 (자전거) 탈수 있드래요...”
아니, 이렇게 원통할 때가....
북천을 따라려가니 12선녀탕을 굽이친
한계천이 첩첩 산들을 휘돌아 물마다 골골이다.
20km를 조망하니 흘러내려오니,
내설악의 그 신비가 삼형제봉을 끝자락으로 내리치며 가라 앉는다.
“잘있거라 설악산아, 다시보자 한계천아”
나는 마치 정묘호란 때 김상현과 같은 심정으로
원통으로 볼모 되어 떠나고 있다.
군 시절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란 말이 회자되곤 했다.
한국의 오지는 이 근처에 다 모여 있어 나온 말이다.
군사지역이기에 고향으로 갈길 멀어 떠나지 못해
외출 나온 병사들로 온 마을이 왁시글덕시글한데
앞서 나간 라이더 100여명이 흔적도 없다.
길은 갈라지는데 묘미가 있다는데 아무도 보이질 않으니,
용대리에서 한분이 포기하고
버스로 서울로 돌아가는 모습을 목격한 나는
화천 대신 홍천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혼자 가도 되나요”
이성희 철인이 소개한 조동안님에게 한 첫 마디이다.
“...................”
“.....................”
“그럼 저희 일산 MTB팀으로 배속하지요”
딱히 의지할 팀이 없어, 싫고 좋고도 없이
군대에서 군번 받듯이 014란 번호를 배정 받았다.
두 번째 큰 고개가 나타난다,
칠성고개다.
산간 오지 길이어선지 경사도가 15도는 됨직하다.
300m나 올랐을까?
최저단 거어로도 오를 수가 없어.
다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간다. 이젠 꼴찌인 만큼 쉴 수도 없다.
다운 힐에서는 내리 쏘고(나중에 보니 최고 속도 68.9km/h까지 기록됨)
언덕마다 밀고....
두 시간을 쉼 없이 달려가니 겨우 후미를 잡을 수 있었다.
모두 팀으로 도란도란 모여 정담을 나누며 함께 휴식하며 같이 길을 떠난다.
무지 부럽다.
“아저씨 혼자 오셨어요?”
“예”
“그럼 길은 아세요?”
“아니요”
모두들 혀를 차는 듯하다.
나는 청맹과니인 셈이다.
해서 그들이 쉬는 틈을 타 물 한 모금 마시며 재빨리 길의 방향을 묻고
펀치 볼로 향한다.
펀치볼은 양구군 해안면에 위치한 해발400∼500m의 고지대 분지로,
그 주위가 마치 화채그릇 같아 이같이 불리기 시작 했는데
땅의 색깔이 형형색색 이어서 큰 주발에 과일들을 늘어놓은 듯하다.
앞서 펼쳐진 광경을 보니
이번 랠리에 참가자들은 개미가 주발에 난 설탕길을 따라 기어오르는 모습이다.
장장 10km의 구비 없는 언덕길은 해발 1000m의 돌산령까지 가 닿는다.
빛이 꽃이나, 나무나, 산들에 조각되어 떨어지는 풍경을 가르고
자전거로 홀로 행진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면 오금이 저리는 일이다.
그러한 풍치를 고즈넉이 감상할 여유도 없이
후위에 있던 라이더들이 이내 나를 추월한다.
그들은 봄바람같이 가볍게 나의 시각에서 실종된다.
거의 탈진하다시피 한 나는 아무리 열심히 페달을 저어도
헛발질 하듯이 힘이 땅 속으로 가라앉는다.
이윽고 사타구니에 마비가 온다.
해발 600m 표시를 보고 숨 가픈 언덕을 1km쯤 올라가니
도저히 자전거 마저 끌 수 없어,
저 두솔산 만큼은 히치라이딩을 하기로 마음먹고
엄지로 신호를 보내니 내 행색이 무슨 외계인으로 보이나보다.
도무지 차를 세우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하기사 내 아내도 헬멧에 썬그라스를 쓰면 꼭 사마귀 같아 보인다고 했으니...
10대는 지나쳤을까? 이윽고 픽업차 한 대가 선다.
내가 ,
“#...$$,77....##,,,@@....”라고 하니
그 농부왈
“소똥차인데요”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To be continued.( 2편에 계속 )
첫댓글 우~아~ 하~~ 건수형 해내신거지요!!!! 경하드립니다. 절단하지마시고 어여 빨랑 올려주세요!!!
이~러~언 껀수형한테도 밀리는 기부니 드는데....그래두 기분은 조~타.....햄요 화아또!!!!
음~ 역시 비범한데가 있단 말이야... 알까에다~ 너두 좀 배워라~~^^
대단한 의지로 뭉치신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강원도길을 웽만큼 아는데 그 먼길을......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