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성향으로 알려진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노무현 정부는 '선거의, 선거에 의한, 선거를 위한 정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비판했다.
강 교수는 지난 7월 중순 모 지방일간지에 기고한 '승자의 재앙'이라는 칼럼에서 최근 유행하는 '블루오션'을 인용해 "경쟁자와 피 튀기는 싸움을 하는 걸 '레드오션', 그런 싸움 대신에 새로운 가치 창출로 경쟁 없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걸 '블루오션'이라고 부른다"며 "지금 노 정권은 장관 자리마저 내년 지방선거용으로 이용할 정도로 '레드오션'을 위한 한판승부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한국정치의 최대 비극은 '승자의 재앙'이며, 사생결단식 선거로 인해 이긴 후의 상처는 말할 것도 없고 나중에 져야 할 책임이 '재앙'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라며 "특히 노무현 정권의 경우엔 '과도한 꿈'을 남발한 것이 노정권을 늘 전투적인 싸움 전문 정권으로 묶어놓는 족쇄가 돼 버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노 정권 자신도 기꺼이 인정하겠지만, 노 정권은 '올인 정권', 아니 우리말로 '다걸기 정권'이며 싸움에 능하다”며 "문제는 승리 이후다. 노 정권은 선거에서 이기는 데에만 주된 의미를 둘 뿐 이기고 나서 무얼 어떻게 하겠다는 프로그램이 없거나 약하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사실 노무현 정권은 지금까지 '기득권 타파'와 '지배세력 교체'를 위한 피 튀기는 전면전을 전개해 온 게 사실이다.
지난 17일 기자회견과 함께 공식 출범한 소위 '평화재향군인회(평군)' 역시 이 정권의 지배세력 교체 작업과 함께 차기 선거 전략과 무관치 않다. 표씨는 평군 창설과 관련, “정치적 배경은 없다”고 여러차례 주장해 왔다. 그러나 평군 창설에는 표씨와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김성전(예비역 공군중령)씨가 적극 참여하고 있다. 표씨는 청와대 등 정치권과 연관설에 대해 “그쪽(청와대)에서 그런 얘기 있었다면 내게 혼이 나 돌아갔을 것”이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개혁 성향의 정치권이나 반미·친북 성향의 시민 단체가 뒤를 받치고 있을 것이란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주장을 반증이라도 하듯, 20일 평군 사무실 개소식에는 약 40명의 참석자 중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이 귀빈(?)으로 참석해 주목을 받았다. 차기 대권주자 군(群)에 들어있는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화환을 보내 축하했다. 임 의원은 평군을 합법단체로 만들어 주기 위해 '재향군인회법' 개정안을 24일 국회에 상정한 여당의 386 의원이다. 임 의원은 이날 평군 설립이 '복수노조 금지조항'으로 한국노총 이외의 노동조합을 금지했던 시절, 이를 투쟁으로 돌파해 우리 사회의 노동자 권익 향상과 민주화에 기여했던 민주노총의 건설에 비유하며 기쁨을 표현했다고 한 인터넷 매체가 보도했다. 그는 재향군인회의 유사명칭과 복수단체 신설 금지조항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향군법 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히면서, "평군이 군대의 민주화와 민족통일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가 지적했듯이 노무현 정권의 최대 목표는 '정권 재창출'이다. 어느 정권, 어떤 정당이든 집권 또는 재집권을 위해 뛰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자기들과 코드가 맞지 않는 단체라고 해서 권력을 동원해 압박을 가하고 인위적으로 와해시키는 것은 일종의 범죄행위다.
재향군인회는 노 정권과는 코드가 맞지 않은 행동을 해왔다. 그동안 여당이 없애려 했던 국가보안법으로 충돌했고, 정부·여당의 대북정책에도 수시로 대립각을 세웠다. 지난해 10월 서울시청 앞에서는 '국가보안법 수호'를 외치며 군복을 입은 회원 30만 명이 운집했다. 집권세력에게는 두려운 존재이면서 미운 털이 박힌 게 재향군인회다. 한번 모였다하면 수만, 수십만이니 여권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단체를 그대로 놔두고 선거를 치른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사전에 손을 봐 두어야 안심이 될 것이다.
이에따라 그간 수차례 향군에 대한 정치권의 압력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필자가 아는 향군의 한 간부는 지난해 10월 이후 압박의 빈도나 강도가 더 세졌다고 귀뜸해 줬다. 여당의 일부 의원들이 나서서 정부관련 공기업과의 수의계약 문제를 문제 삼았고, 감사원 감사의 사각지대라는 폭로를 통해 향군을 흠집내기도 했다. 친노매체로 알려진 진보성향의 언론들이 이에 합세했다.
필자가 보기에는 표명렬씨가 들고 나온 '평군'도 권력이 향군을 손보는 한 방법이다. 권력의 입장에서 표씨는 향군을 깨는데 호재일 수 있다. 그는 향군의 장성회원이고 육사출신이면서 향군회원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육군 출신이다. 더구나 표씨는 정치성향이 강한 인물이다. 이당 저당 옮겨 다니며 몇차례 출마도 했고 권력에 대한 야심도 큰 사람이다. 집권층과 소위 '코드'도 맞는 인물이다. 이런 사람이 향군을 개혁하겠다고 나서니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이제이(以夷制夷)라고나 할까.
지난달 초 언론에 보도된 바 있지만 '자유총연맹' '새마을' '바르게 살기' 등 보수단체도 이들에게는 정권 재창출의 걸림돌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지자체에서 지원금을 없애거나 줄여야 한다고 여당 의원들이 강력히 주장하고 나섰다. 7월 13일 여당 의원들에 의해 '새마을운동 조직육성법폐지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이유는 연간 187억원의 혈세를 낭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새마을운동이 이렇게 푸대접을 받아도 되는가? 새마을운동은 우리민족의 정신적 자산이요 35년간 축적된 경험과 훈련된 국가기간봉사조직으로서의 사회자본이다. 국제적으로도 성공한 지역사회개발운동 모델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저개발국에서는 대한민국 발전의 기초가 되었던 새마을운동에 관심이 많고 벤치마킹에도 열중이다. 폐지법률안을 제출한 국회의원들이 이런 사정을 모를리 없을 것이다. 187억 원의 국민혈세 때문에 폐지하려는 것이 아니다. 새마을 조직이 시·도, 시·군·구 그리고 읍·면·동에 뿌리 깊이 자리하고 있는 '보수꼴통' 조직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들과는 코드가 맞지 않은 조직이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규모의 예비역 단체인 '대한민국재향군인회'가 '평군'이나 정치권의 압박에 위기감을 느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지난 7월 21일 표씨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여 '제명' 처분했고, 성우회와 육사총동창회도 같은 조치를 하여 회원 자격을 박탈했다. 또 향군은 8월부터는 사회 각계 전문인사들이 참여하는 '향군 혁신위원회'를 구성해 가동한다고 발표했다.
필자는 향군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향군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으며 그동안 향군이 주최한 각종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앞으로 향군이 '평군'의 움직임에 지혜롭게 대처하여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일사불란한 조직체계 하에서 '국가안보 지킴이' 역할을 다해 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필자의 마음과는 달리 재향군인회가 '평군'을 단순하게 표명렬씨 개인의 문제로만 인식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지 않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필자는 향군이 '평군은 또 하나의 노사모' 임을 간과하지 말아주길 바란다.
더불어, 향군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솔직히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평군' 출범의 빌미는 향군 스스로가 제공한 면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공산주의가 초기 자본주의 모순을 비판하면서 나타났던 것과 비유할 수 있다. 50여년 역사를 가진 향군이 그동안 젊은세대에 다가가지 못한 점이나 '제대군인가산점' 제도를 지켜내지 못해 회원들에게 메리트를 주지 못한 채 안주해왔던 점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가 망한 것은 또 자본주의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본주의가 스스로 모순을 인정하고 수정과 보완, 개혁을 거듭하면서 공산주의의 주장과 구호를 '헛소리'로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나았기 때문이다.
노사모의 영광이 영원할 수 없듯이 '평군'의 파고(波高)는 일시적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특정 정치세력과 결탁돼 있음이 곧 판명날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개혁하고 변신하면서 발전을 거듭하는 '대한민국재향군인회'를 기대한다.(konas)
전경웅/ 군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