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루카 2, 16-21)
"주님의 뜻인지, 내 욕심인지’"
2023년 새해 첫날입니다.
올 한해도 건강하시고, 하느님 은총을 받는 한 해가 되시길 빕니다.
제 기억으로는 4, 5년 전쯤인가, 아무튼 몇 년 전 우리나라 국립국어원에서 열 몇 개의 단어를 새로운 표준어로 인정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새로 표준어가 된 말 중에는 (딴지를 걸다..할 때의) ‘딴지’, ‘개기다’, ‘꼬시다’, ‘삐지다’란 말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평소 우리끼리 말로 할 때는 많이 쓰는 말들이면서도, 글을 쓸 때는 마치 비속어처럼 여겨져 사용할 수 없던 말이었는데, 비로소 ‘정식 표준어’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중에서 새해를 시작하면서 덕담처럼 여러분께 해드리고 싶은 말이... <올 한 해 잘 ‘개기십시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요즘 TV드라마 같은 데서도, 선배가 비정규직 후배 사원에게 “어떡하든 끝까지 잘 버텨라”라는 대사가 나오던데,
저는 이 ‘잘 버텨라’란 말이 ‘끝까지 개겨라’는 말로 들리던데, 여하튼 새롭게 시작된 2023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잘 버텨야 하고, 잘 개겨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잘 ‘개긴다’는 건, 무조건 ‘귀 닫고’ ‘눈 가리고’ 그냥 ‘내 고집대로’ 사는 게 ‘잘 개기는’ 게 아니라,
잘 버티려면 오히려 두 눈 똑바로 뜨고 옳게 판단하면서 “아닌 건 아니다!”라고 개겨야 하는 것이죠.
이 ‘개기다’란 말과 연결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라고 합니다.
한밤중에 우르르 찾아온 목동들의 (어떻게 보면) 상당히 무례하고 당황스런 상황도, 그리고 또 그들이 들려준 말들도 그냥 흘려듣거나, 당황하지 않고?? 모두 ‘마음속에 되새겼다’는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두 눈 감고, 귀를 막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남들 하는 대로 쫓아간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일을 곰곰이 마음속에 새겨두었다>는 것... 신앙인이 따라야 할 자세인 것입니다.
살면서 우리는 왜 그리 고민이 많을까를 생각합니다.
그것은 남 때문에, 혹은 하느님 때문에 생기는 고민이 아니라, 나 자신 때문에, 내가 예상한 대로(내 욕망대로) 일이 움직여 주질 않으니까, 그리고 끝까지 욕심을 내려놓질 못해서 생기는 고민하는 일이 더 많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찬찬히 묵상해 보면, 성경의 일관된 흐름은 인간의 코드와 하느님의 코드가 어긋나거나, 코드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생각대로는 이쪽 길이 분명히 맞는 것 같은데, 하느님의 뜻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당황하는 것이고, 그래서 하느님을 완전히 거부하는 것 까지는 아닐지라도, 어떤 때는 일부러 못 알아 들은 척, 슬쩍 하느님 뜻을 외면하고 그냥 고집스럽게 내 뜻대로 이쪽 길을 가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되 ‘마지못해 억지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결국엔 ‘아무리 그래봤자’ 하느님의 승리로(하느님의 뜻대로) 끝나는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새해, 새로운 계획과 결심을 세우는 건 좋은데...
다시 한번, 얼마만큼 주님 뜻을 헤아렸느냐... 혹 내 ‘욕심’과 내가 바라는 ‘소원’을 혼동해서 생각하는 건 아닌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올해는 특히 건강 유의하시면서 내가 노력한 만큼, 정당한 결과를 얻는 복된 한 해가 되었으면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