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삼국지 262
(소설삼국지)
제2권 군웅쟁패
제27장 원소와 조조의 대립
2) 원소의 분봉정책
이 때 원소는 기주를 중심으로 유주, 청주, 병주를 다 병합하여 세력이 네개 주에 떨치고 막강한 군대가 십만 명이나 되었다.
공손찬을 멸하기 전에 이미 원소는 장자 원담(遠譚)을 청주로 보내 자사의 역할을 맡겼다. 감군 저수(沮授)가 원소에게 간했다.
“세상에서 말하기를 한 마리 토끼가 네거리에서 달리면 만인이 그것을 뒤쫓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단 한 사람이 토끼를 잡고나면 탐을 내던 사람들이 다 쫓던 것을 중지하게 됩니다. 이미 토끼의 주인이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또 나이에 따라 현명함을 구별하고 점괘를 보고 복을 비교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방식입니다. 원컨대 주상께서는 오로지 선대의 성공과 실패를 교훈 삼고 아래로는 토끼를 좇아서 각자의 신분을 정하는 뜻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원소가 말했다.
“나는 네 자식들에게 각각 한개 주씩 맡겨볼 작정이오. 그들이 능력이 있는지 관찰해 보겠소.”
저수가 나가면서 말했다.
“화(禍)가 여기에서 시작되겠구나!”
원소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다. 첫째가 원담, 둘째가 원희, 셋째가 원상이었다. 원소는 막내 원상을 가장 사랑했다. 원담이 외방으로 나간다는 것은 세습과정에서 이점을 상실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때 원소는 사실상 군주였다. 군주의 자식들에게 각각 큰 영토를 맡겨 분봉하는 것은 봉건제로 이행하게 되거나 골육상쟁의 원인이 된다. 비록 한나라에서는 진나라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절충책으로 군국제를 시행하고 유씨의 후손들에 한하여 군왕에 임명하긴 했지만 갈수록 그 권한과 영토를 축소했다. 이것이 오초칠국의 난의 원인이었다. 후한대에 들어와서는 실질적으로 왕들은 수조권만 있지 통치권이 없었다. 따라서 각 국의 실권자는 국상이지 국왕이 아니었다.
저수는 장남을 밖으로 내보내는 원소의 처사에 다른 뜻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게다가 원소는 아들들 간에 상호경쟁을 시키겠다고 하지 않는가. 원소의 처사는 후계자 선정 과정에서 형제들 간의 분쟁을 야기할 가능성이 컸다. 빨리 후계자를 정하면 이러한 분쟁의 소지는 제거될 수 있었다. 저수는 강적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의 분봉은 골육상쟁을 일으켜 패망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보았기에 반대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