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절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믿음이 오기 전에는 율법이란 보호막 안에 매인 바 되었다고 말합니다.
계시 될 믿음의 때까지 보호를 위해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계시,
계시와 믿음은 불가불리의 관계입니다. 동전의 양면성과 같습니다.
따라서 말씀을 증거하는 자들은 말씀과 함께 계시의 영이 매우 중요합니다.
히11장의 믿음의 선진들은 멀리서 증거를 보고 믿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오심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과 하늘에 오르시는 그 역사 안에 포함이 된 것을
계시로 바라보고 믿었습니다. 이를 두고 안토니 후크마는 원근통시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시될 믿음이 아니라 새 언약 아래에서 성취된 약속을 믿습니다(갈1:16)
구약의 율법은 체내에 흡수가 안 되는 말씀입니다. 바깥에 있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그 동안 꽃가루가 좋다고 먹었으나 비닐 껍데기가
덮여 있어 체내에 흡수가 안 되고 설사가 난다고 하는 걸 발견했습니다.
율법은 육체의 예법일 뿐 심령에 흡수가 되는 생명의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아들의 말씀이므로 그 영과 생명이 함께 역사하여
우리의 영에 스며듭니다(요1:14, 20:31)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떡이 되십니다.
그래서 계시록은 이 작은 책을 갖다 먹어라 하십니다(계10:10)
이와 같이 아들의 말씀은 우리의 심령의 땅에 스며들어 오는 특징이 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이 자신에게 어떻게
적용이 되고 있는지 생각하고 이를 묵상하고 입으로 시인할 때에 성령의 기름부음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항상 살아있는 역동적인 믿음을 가지는 조건입니다.
24절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율법은 초등교사(몽학선생)와 같습니다. 성경의 기록 당시로는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가는 하인과 같은 역할입니다. 율법은 죄인임을 알게 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통해 죄 사함과 더불어 영생을 알게 하는 역할입니다.
곧 예수그리스도에게로 두들겨 패서라도 끌고 오는 몽학선생(초등교사)이란 말입니다.
결국 율법은 우리로 말미암아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의를 얻게 합니다.
25절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그리스도가 오셨으면 더 이상 몽학선생(율법) 곧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바울과 같이 그리스도 이전(BC)의 과거와 현재(AD)가 분명해야 합니다(히1:1-2)
바울은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는 그가 믿지 않았을 때라고 단언합니다(딤전1:13)
26절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이젠 바울은 율법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구원은 열심보다 소속이 중요한 겁니다.
아담 안에 속한 자가 율법에 대해서 아무리 열심을 내도 죄와 사망의 종일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산 자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이 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겁니다.
27절“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로마서 6장에서와 같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는
비결은 세례라는 독보적이며 기상천외한 방법입니다. 아담 안에서 죄와 사망의
종이 된 인간은 율법의 굴레에서 운명적으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천지가 바뀌지
않는 이상 결코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산 자들은 더 이상 율법 아래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를 옷 입은
의인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겁니다.
이 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에 연합이 되는 세례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를 받은 자(잠긴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고 선언합니다.
28절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모든 인간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라는 선포입니다. 그 나라 안에서는
인간적인 조건은 완전히 포맷(세례)이 되어 오직 예수그리스도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인간의 죄를 그때마다 한 건씩 용서하시는 분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다시 사심을 통해 일괄적으로 죄를 담당하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그와 함께 하늘로 오르시는 사실을 복음을 통해 알고 믿게 하시므로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하나님을 향하여는 산 자가 되었노라(롬6:11) 고백합니다.
29절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면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그리고 약속대로 유업(상속)을
이을 자입니다. 창1:27-28절의 복을 상속으로 받을 것입니다. 이는 세자책봉이며
왕위계승권자입니다. 신앙은 목표가 분명해야 인생의 형통이나 불통, 행이나
불행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서서 걸어갑니다. 모든 인간은 장래의 성공을
향해 현재를 성실하게 살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영원한 기업을 미리보고 현재를 삽니다.
그러나 누에가 입으로 실을 내어 고치를 만들고 난 뒤에 나방으로 훨훨 날 때를
기다림 같이 홀연히 순식간에 임하실 형체의 부활의 때를 기다리는 것과 같이
성도들도 성경의 말씀으로 자신의 옷(집)을 씨줄 날줄로 지어가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가는 베실로 보세요. 누에가 고치 집을 짓듯 신앙은 인내로서
자신의 세마포를 짜 가야 합니다. 고치 집은 공기도 잘 통하고 완벽하게
보호되어 누에가 살아있으며 안식하는 상태가 됩니다. 이와 같은 자연계시를
통해 우리가 어떠한 인내로서 소망을 이루어가야 할지 배우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생명보다 더 귀한 영원하신 기업을 주신 하나님께 찬양을....
첫댓글 요번주는 정말 마음이 훈훈한 한주였습니다. 저희 아는 지인은 한달에 책을 4-5권 읽는데 만나면 참 대화거리가 풍성합니다. 평소 책 읽는 사람을 좋아 했는데, 이제는 글을 쓰는 사람이 더 예뻐 보입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사도 바울이 한편의 서사적인 글로 남기지 않았다면 어찌 그 의미를 알수 있었을 까요? 또한 목사님께서 그 말씀의 의미를 풀어 주시지 않았다면 저 또한 참된 진리안에서 자유를 누리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의미에서 믿음의 선배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주께 감사!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