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6E-398B9
1. 교육
몸을 위한 교육으로는 체육이 있고, 혼을 위한 교육으로는 시가가 있다.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신체적인 운동보다 설화를 먼저 이용해 교육을 하는데, 설화는 대체적으로 말해서 허구이지만, 사실적인 것들도 어느 정도는 포함되어 있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시가에 포함시키기 때문에 체육보다는 시가를 먼저 교육하게 되며, 시가 중에서도 허구적인 것부터 교육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의 시작이 제일 중요한 만큼, 어린아이일 때는 제일 유연성이 있고, 누군가가 각자에게 새기어 주고 싶은 인상이 제일 잘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아무나 지어낸 아무 이야기든 닥치는 대로 듣게끔 경솔하게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그렇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설화 작가들을 감독해야만 하고, 그들이 짓는 것 중에 훌륭한 것들은 먼저 받아들여 보모들과 어머니들로 하여금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주어, 그들의 손으로 설화로써 아이들의 마음을 형성해 주도록 설득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은 거절해야만 한다.
2. 나쁜 것들 (거짓된 것들)
버려야 할 것들 중 가장 비난받을 경우는, 신들과 영웅들에 관해서 그들이 어떠한 존재들인지를 말로써 묘사함에 있어서 나쁘게 할 경우이다.
특히, 아이들에게 있어서, 영웅이나 신은, 완벽한 존재이며, 동경의 대상이며, 모방의 대상이기에 그 영향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누군가 신과 관련된 이야기를 지을 경우에는 어떠한 시로 짓든 간에, 언제나 신을 신인 그대로 묘사해야만 한다. (신은 선한 존재이기에 좋은 것들에 대한 원인이며, 모든 것의 원인이 아니다.)
또한 신과 신에 속하는 것들은 진정 모든 면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기에, 신이 스스로를 다른 모습으로 변모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신이 말로나 행동으로 우리한테 환상을 보임으로써 온갖 모습을 하고서 나타나는 것으로 믿게끔 만드는 일도 있을 수 없다. 신성과 거룩한 것은 모든 면에서 거짓됨이 없기 때문이다.
3. 용기 있고, 훌륭한 가르침
(용기)
아이들을 용감하게 하기 위해서는 저승의 일들을 무조건적으로 험하게 말하지 말고 오히려 찬양하도록 요구해야만 한다. 저승의 이야기들은 진실도 아니며, 장차 전사가 될 사람들을 위해 유익하지 않는 것이다. 자유인들이라면, 죽음보다는 노예의 신세를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승과 관련된 무섭고 두려운 이름들 (코키토스, 스틱스 등) 역시 거부되어야 한다.
(감정 통제)
이름난 인물들의 통곡이나 비탄 또한 지워야 할 것이다. 훌륭한 사람들은 스스로 가장 자족할 수 있으며, 남들과는 판이하게 타인이 가장 덜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신들이 통곡하거나 탄식하는 것처럼 묘사하는 일은 없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젊은이들은 사소한 고난에도 전혀 부끄러워함도 없고, 참는 법이 없이 애가를 부르며 통곡할 것이다.
젊은이들이 웃음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되어서도 안된다. 어떤사람이 심한 웃음에 자신을 내맡길 경우, 이런 것은 강한 변화를 유발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정직)
정직은 반드시 귀히 여겨야 한다. 단, 나라의 통치자들은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적이나 시민들 때문에 거짓말이 허용된다. 그러나 그 밖의 사람들로서는 누구든 거짓을 말해서는 안된다.
(절제)
젊은이들에게는 절제가 요구된다. 통치자들에 대해서는 순종하는 반면, 주색이나 먹는 것과 관련된 쾌락에 대해서는 다스려야 한다. 때문에 지휘자나 통치자들에게 순종하거나 이름난 사람들이 모든 일에 있어서 그들의 언행을 통해 인내를 보이는 시가의 경우는 존중받아야 하며 젊은이가 보고 들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욕정이나 허기나 물질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시가는 젊은이들이 듣기에 적합하지 않는 것이다.
(믿음)
또한 시인들이 우리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신들이 나쁜 일들을 생기게 하며, 영웅들도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다고 믿게끔 하려 드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는 경건하지도 않고, 진실 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나쁜 데 대해 관대해질 것이다.
4. 말투에 대한 고찰
(이야기와 모방)
설화나 시인들에 의해서 이야기되는 모든 것은 과거의 일들이거나 현재의 일들 또는 미래의 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들은 단순한 이야기 진행(이야기)에 의해서나 또는 모방을 통해 이루어지는 이야기 진행에 의해서 또는 이 양쪽 다를 통해서 수행된다.
먼저, 모방에서 대해서 말하자면, 시인이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자기 아닌 다른 사람 (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생각하도록 꾀하는 것. 즉, 자기가 시인이 아니라, 마치 그 이야기의 주인공인 것처럼(주인공이 직접 말하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
단순한 이야기 진행(이야기)은 시인이 자기 자신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 진행이 모방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모방의 필요성)
사람들은 한 가지의 일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지만, 많은 일을 시도하게 되면 결국엔 모든 것을 놓치게 되어 존중받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 모방의 경우에도 이치는 같아서 동일한 사람이 동시에 많은 것을 모방하며 또한 모방에 능한 사람으로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들이 모방을 할 경우에는 용감하고 절제 있고 경건하며 자유인다운 사람들을 어릴 때부터 모방해야하며, 다른 비굴하거나, 창피한 짓은 모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모방이 오래도록 계속되면, 몸가짐이나 목소리에서 있어서 또는 사고에 있어서 마침내 습관으로 굳어지기 때문에 모방에 능한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된다.
(이야기투와 이야기 진행)
이야기투와 이야기 진행의 한 종류로는 훌륭한 사람이 뭔가를 스스로 말해야만 될 때 그것에 따라서 이야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사람과는 성향이 반대되고 또 그런 식으로 양육된 사람이 언제나 의존하며 이야기 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그의 이야기 진행 중에 훌륭한 사람의 어떤 말투나 행동의 대목에 이르면, 마치 자신이 그사람이기라도 한 듯이, 그렇게 말하고 싶어 할 것이며, 이런 모방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자신보다도 못한 사람을 열의를 갖고 흉내 내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창피할 것인데, 이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모방에 있어서 미숙하기도 하고 또한 한결 나쁜 사람들의 틀을 본뜨고 거기에 맞추는 것을 못마땅해 하기도 해서이다. 또한 비천한 사람은 그만큼 더 온갖 것을 다 이야기하며, 모방하려 할 것이다.
이야기 투에다 적절한 선법과 리듬을 부여한다면, 옳게 이야기하는 사람의 경우에, 그는 거의 같은 이야기 투에 따라서 그리고 한 가지 선법으로 특히 리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거의 같은 리듬으로 이야기 한다. 그러나 이야기를 진행하게 되려면 그것과는 반대되는 것들이, 즉 모든 선법과 모든 리듬이 필요하다. 때문에 모든 시인은 그리고 뭔가 말을 하게 되는 모든 사람은 이 두 유형의 이야기 투 중의 이것이거나 저것 또는 양쪽을 혼합한 어떤 것을 만나게 된다.
595-608B10
1. 모방(자)
(침상과 식탁)
많은 침상과 식탁이 있을 때, 두 이데아 존재하는데 하나는 침상의 이데아이며, 다른 하나는 식탁의 이데아이다. 그런데 각 가국의 장인은 그 이데아를 보면서 저마다 우리가 사용하는 침상들이나 식탁들을 만들며, 또한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그 어떤 장인도 이데아 자체를 만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울을 통해서 모든 가구를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흙에서 나는 모든 것을 만들며, 모든 동물, 땅과 하늘, 저승까지도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보이는 것들을 만드는 것이지, 진실로 있는 것들은 만들 수 없다. 화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그가 침상을 제작할 수는 있지만, 침상으로 보이는 것을 제작하는 것이다.
세 가지 침상을 가정할 때, 그 하나는 그 본질에 있어서 침상인 것으로, 신이 만드는 것이다. 이는 침상인 것 그 자체이므로 오직 하나일 뿐이며, 그 이상은 만들 수 없는 필연성을 지닌다. 그렇기에 신을 본질 창조자로 부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목수가 만든 침상이다. 신은 오직 본질 자체를 만들었을 뿐이기에, 오직 하나의 본질을 제외한 침상은 목수가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침상의 장인이라 부를 수 있다.
나머지 하나는 화가가 만드는 침상이다. 화가는 장인이며, 제작자라고 부를 수 없다. 때문에 화가는 장인들이 만든 것의 모방자라고 부른다. 비극 작가도 마찬가지이며, 그는 본성상 왕과 진리로부터 세 번째인 자이며, 다른 모든 모방자도 그러하다.
(실재하는 것을 모방하는 것인가, 보이는 것을 모방하는 것인가)
침상은 그것을 옆쪽에서 보건 마주 또는 어디에서 보건 간에, 달리 보일 뿐이지, 전혀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림은 보이는 현상의 모방이다. 그림 뿐 만 아니라, 다른 모든 모방술은 보이는 현상의 모방이며, 그렇기에 진실 된 것에서 어쩌면 멀리 떨어져 있으며, 또한 이 때문에 모든 걸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진실 된 것을 잘 아는 것처럼 속아 넘어가게 할 수 있다.
(시작)
시인들은 위의 경우와 같아서 어떤 사람들한테서는 모든 기술과 모든 인간사, 그리고 신들의 일도 알고 있는 것처럼 들을 수 있다. 훌륭한 시인이 자신이 시를 지을 때, 정녕 훌륭하게 시작을 하게 되려면, 알고서 시작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것 같으면, 시작을 할 수가 없어야 하지만, 그들은 모방자로서 보이는 현상들을 시작할 뿐이다.
(모방자의 지식)
동일한 도구의 제작자는, 그것을 아는 자와 함께 있으면서 아는 자한테서 듣지 않을 수 없게 됨으로써, 그것의 훌륭함과 나쁨에 관한 옳은 믿음을 갖게 되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자는 그것에 관한 지식을 갖게 된다. 그런데 모방자는 둘 모두에 포함되지 않아 자기가 모방하는 것들에 대한 훌륭함 및 나쁨과 관련하여 알게 되지도 못하며, 옳게 판단하지도 못한다. 결국 모방은 일종의 놀이이지, 진지한 것이 못 된다.
(모방술)
회화와 일체 모방술은 진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 내며, 또한 우리 안에서 분별과는 멀리 떨어진 상태로 있는 부분이며, 건전하지도 진실 되지도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방술은 변변찮은 것과 어울리어 변변찮은 것들을 낳는 변변찮은 것이다.
(시인의 성격)
화를 잘 내는 성격은 많은 다채로운 모방을 수용하지만, 분별 있고 침착한 성격은 언제나 거의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는데, 모방하기가 쉽지 않고, 모방하더라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모방적인 시인은 그가 많은 사람 사이에서 명성을 얻게 하고자 화를 잘 내며 다채로운 성격을 향한다.
(시에 대한 최대 비난)
시는 선량한 사람들까지도, 아주 소수를 제외하고는, 수치스럽도록 능히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시에서 영웅들 중 누군가가 슬픔에 잠겨 있고 비탄에 잠겨 있는 모습과 몹시 익살스럽고 부끄러운 상황과 성욕이나 격정 그리고 모든 욕구적인 것들이 등장할 때, 그것들이 우리가 부끄러워하고 혐오해야할 것임에도 그것을 보며 즐거워하고, 칭찬하게 된다.
(마무리)
그러나 명예나 재물 또는 어떤 관직에 자극되어, 아니 적어도 시에 자극되어, 올바름과 그 밖에 다른 훌륭함에 무관심해질 만큼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