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정인>을 감상하다
어젯밤 뮤지컬 <정인>을 관람하고 왔다. 생각보다 관객들은 꽉 차는 듯 열기가 느껴졌다.
사실, 근래에 들어 딱히 공감의 재생산을 통해 가슴이 먹먹하여 극장을 떠날 수 없을 만큼 큰 감동과 여운을 느껴보지 못했던 게 또 내가 바라보는 연극에 관한 불편함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드라마작가로 알려진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나는 괜한 편견을 좀 가진 듯하다. 드라마 작가의 생리란 말 그대로 티브이 극을 통해 당대의 트라우마를 재구성하는 특장을 가진 이들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여기에 연극적 요소라는 것 또한 티브이 극의 연장선상에서 관객에 대한 호기심과 싼 눈물샘을 자극하는 상업성까지를 연극 무대를 통해 획책하려는 듯 보인다는 생각 말이다.
과연 나는 옳은가, 옳지 않은가? 이 물음을 정인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뮤지컬이 요즘의 대세라고 한다. 관람료도 비싸다. 무대는 정확하게 계산된 배우들의 동선을 따라 설치된 듯 허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작은 소도구조차 적절하게 보였다. 막이 오른다. 나는 늘 긴장한다. 침을 삼키거나 작은 기침소리를 내곤 한다. 충분한 긴장이 흐르고 정인이 등장하면서 약간의 부담스러운 긴장을 흩트려놓는다. 이어지는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언행은 개그우먼의 그것과 닮는다. 관객석에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흘렀다.
줄거리를 따라가면,
정인은 초등하교 교사다. 혁인이 상담을 위해 정인을 방문한다.
피자를 좋아하는 정인에게 순대를 권하는 혁인의 데이트 신청은 기괴한 이미지를 낳는다. 불화의 기제가 친화의 기제로 전환되면서 사랑은 시작된다. 사랑은 그러므로 예기치 않은 총알과 같이 날아와 박힌다는 현대인의 사랑법과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결혼, 무능한 남편인 혁인에게는 다소 불편한 결혼생활이지만 부부수칙은 신혼의 두 젊은 청춘에게 낭만과 순수, 그리고 재미와 함께 누구나 꿈꿀 만한 예쁜 사랑의 전형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혁인은 처가를 다녀오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듯 보이고 정인은 그를 위해 지나치게 흥분하기도 한다. 그 바탕에 깔린 지극한 사랑은 위대한 것이라고 말해 무엇하리!
그러나 그들의 아름답고 행복해보이기만 하는 결혼 생활, 천 일 동안의 사랑을 시기하는 어둠이 깃든다. 무릇 좋은 것 뒤에 오는 두려움의 실체에 인간은 너무나 무기력해보이기만 하다.
그러나 뚱딴지처럼 전개되는 죽음의 터닝 포인트는 억지스럽기만 하다. 결국 눈물 코드로 다가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흥행방식이 저지른 무대는 지금까지 전개돼 오면서 현대인들, 마이크로화(化)되어가는 군상들의 한 측면을 조심스럽게(약간의 상투성까지 포함하지만) 이끌어가던 무대는 순식간에 괴리의 공기만큼 급격한 온도 변화를 겪게 된다. 관객들의 숨소리가 한 매듭을 꺾는다. 그러나 무대는 지속된다. 아니 그래도 무대의 조명은 꺼지지 않아야 한다.
정인 역의 여배우는(미안하지만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무대 장악력이 뛰어나 보인다. 관객의 반응을 이끌기도 하고 전체적 극의 흐름, 완급을 조절하는 능력까지 엿보인다. 그래서 관객들은 그녀의 연기에 흡입되어 함께 숨을 쉰다. 나는 근래 보기 드문 동일체의 경험을 그녀로부터 한다. 다만 과도한 표현이나 동선이 거슬리기는 했으나 열심히 노력하려는 과정이라 생각하기로 한다. 그만큼 정인의 캐릭터는 현실 속에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일 터이다.
그에 반해, 혁인 역을 한 남자 배우는 너무 잘 생겼다. 질투까지 난다. 캐릭터를 잡는데 애를 먹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불분명한 현실이다. 직업이 없는 무능력자. 하다못해 운전면허조차 없는 인물이다. 그러니 그가 이 세상으로부터 획책할 수 있는 게 무엇이겠는가. 다만 정인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현실을 망각할 수도 있다. 그것은 도피일 수도 있으며 자기 부정을 기반으로 삼는다. 그만큼 혁인이라는 인물을 연기하기엔 남자배우가 지나치게 잘 생겼다.
혁인은 끊임없이 정인을 위한 인생을 살아내려는 듯 보인다. 커피조차 끓이지 못하는 정인이다. 그런 그녀를 위해 살아야 하는 혁인의 죽음은 누구나 쉽게 경험하지 못할 절망이다. 사랑의 좌절은 때때로 새로운 가능성이기도 하다. 그런 게 역시나 현실이므로.
연극은 끝났다. 누군가의 술주정을 듣고 난 후의 서늘함도 몰려왔고, 술 깬 아침에 듣는 참새소리도 들린다. 정인은 울었고 하늘을 바라봤고 나는 그녀의 눈길을 따라 저 허공의 간단없는 그리움에 목이 마르다. 그다지 위대할 필요가 없다. 고전의 시대는 교과서에서 끝났고 감동은 엄연한 현실일 뿐이다. 오늘도 나는 새로운 하루를 살고 희로애락애오욕의 끝없는 순환을 드라마나 소문으로 확인하면서 또 다른 무대를 기다리기로 한다.
한 가지, 연극은 연극이지만 필연과 우연은 현실의 간극을 메운다. 그 틈에서 우리가 만나고 싶은 게 있다면 진정성의 힘일 것이다.
글을 쓰는 작가도 무대 위의 배우도 조명, 미술, 음악, 스텝 모두의 소망일 것이다.
2011. 1. 7
나주에서
첫댓글 감사합니다 연출 김하정입니다.. 누구심지..꼭 술 한잔 걸치며 정인의 사랑이야기.. 공연예술에 대한 이야길 늘어놓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김하정 연출님께서 읽으셨군요. 감히 평문을 올린 점, 이해 바랍니다. 저의 졸렬한 감상에도 기꺼이 술 한 잔이 생각나셨다니 그저 감지덕지일 뿐입니다. ....저는 나주에 사는 조용환이라 합니다. 시를 씁니다만 최근에 희곡 몇 편을 끼적거리기도 합니다. ...[뮤지컬] <정인>은 연극인 윤희철과 김경곤 씨의 권유로 관람하게 됐습니다. ...모쪼록 연극과 예술의 초라한 뒷골목에서 마주치게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거기다가 김치쪼가리에 턱, 걸쳐질 술 한 잔으로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혁인이도 읽었습니다...김치쪼가리에 막걸리 한잔...거기에 저도 낑겼으면 좋겠는데...어떻게 안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