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조 참의가 문서를 뒤지며 열심히 공무를 보는데
사동이 오더니 웬 여인이 면회를 왔다고 전했다.
나가봤더니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이
묘한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나으리는 늙지도 않습니다요.
열두해 전 그 용안이 그대로시네.”
“누구시더라?”
낯선 여인이 풀어놓는 사연에
참의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여인 왈,
십이년 전 자신은 영춘정 기생이었는데
술 마시러 온 참의와 하룻밤 만리장성을 쌓고
배가 불러와 딸을 낳았고,
그 딸이 지금 열넷이라
참의 호적에 올려달라는 것이었다.
참의는 기억도 안 난다며 펄쩍 뛰었지만
그 여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판서를 만난다고 했다
. 몇번의 만남 끝에 결국 두사람은 타협을 봤다.
그 여인과 열네살 그녀의 딸은
몰락한 어느 양반집 족보에 직계 손으로 올려졌다.
사기꾼 여인과 얼떨결에 양반 가문 규수가 된 딸은
족보를 가슴에 품고 한 많은 한양을 등졌다.
이 기생의 내력은 이렇다.
얼굴은 피어나는 꽃이요
, 가슴이 동산처럼 솟아오르고
엉덩이가 두쪽으로 바라질 때
뭇 남정네들은 나비와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하지만 눈 밑에 잔주름이 자글자글해지고
가슴과 엉덩이가 내려앉으면서
하루아침에 시든 꽃이 되자
남정네들은 본체만체했다.
기생집에서 밀려난 퇴기는
아비가 누군지도 모르는 딸 하나를 데리고
이 남자 저 남자 찾아가 딸을 맡으라며 돈을 우려냈다.
마지막으로 참의를 만나
양반집 종부와 열네살 규수로 신분 세탁한 것이었다.
기생이 한양을 떠나 한달 만에 똬리를 튼 곳이
지리산 자락 산청이었다
. 잡인들이 들끓는 저잣거리를 피해
양민촌 귀퉁이에 아담한 기와집을 마련했다.
어미는 자신의 딸만은
절대 화류계에 빠뜨리지 않고
양반집으로 시집보내 아들딸 낳고
반듯하게 살도록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열네살 딸 시화는 꽃처럼 피어났다.
어미는 권번에서 배운 시조 짓기
, 사군자 치기를 딸에게 가르쳤다
. 양반집 요조숙녀 훈련을 엄하게 시킨 것이었다.
넓지 않은 고을에 천하일색 처녀가
한양에서 내려왔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기 시작했다
. 가끔 시화가 제 어미와 장터에라도 가는 날이면
총각뿐만이 아니라
처자식 있는 남정네들도 시화를 보려고 목을 뺐다.
오뚝한 콧날에 도톰한 입술의 시화가
사슴 같은 눈을 흘기면 남정네들은 입뚝 벌린 채 침을 흘렸다.
매파가 찾아왔다.
들이미는 신랑감은
우생원의 열여덟살 둘째 아들.
저잣거리에서 신발장사를 하는데
벌써 논을 다섯마지기나 사놓았다는 것이다
. 어미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아직 시화가 열네살이라서
이삼년 후에나 시집을 보내겠다며
매파를 돌려보냈다.
한달 후에
그 매파가 또다시 찾아와서 한다는 말이 이랬다.
두달 전에 시화가 우 생원의 둘째 아들 가게에
꽃신을 사러왔을 때
손수 꽃신을 신겨주고 나서는
혼이 빠진 듯 멍하니 중얼거리다가
드러누워 식음을 전폐한 채
상사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곤 ‘사람 하나 살려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시화 어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 며칠 후 그 매파와 상사병 앓는
우 총각의 어머니가 찾아와 울면서 애원해도
어미는 거절했다
. 우 총각은 사흘 후 숨을 거뒀다.
상여를 맨 친구들이
피가 끓는 상여곡을 토해내며
시화네 집앞을 지나가다 멈춰 섰다.
상여꾼들의 발이 땅에 붙어버렸기 때문이다.
무릎도 발목도 꼼짝할 수 없었다.
지나가던 노스님이
꼭 잠근 대문을 열게 하고 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보따리 하나를 들고 나왔다.
보따리를 풀어 시화의 치마를 꺼내 상여에 덮자
상여꾼들의 발이 조금 움직였다.
그리고 속치마와 고쟁이,
달거리 개짐을 상여에 걸자 “
워어워어 북망산천이 어디메냐~”며
상두꾼의 곡이 다시 터지면서 상여는 떠나갔다.
그 뒤 생기발랄하던 시화가 드러누웠다.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백약이 무효
, 얼굴을 못 알아보게 초췌해졌다.
그때 그 노스님이 다시 들렀다
. “이 집에 악기(惡氣)가 서렸네, 나무아미타불.”
“스님, 우리 시화를 좀 살려주십시오.”
어미가 울면서 매달렸다.
“소승의 비방을 듣겠는가?”
“목숨만 살려준다면 무엇이든지….”
“상사병에 걸린 사람이 우 총각뿐만이 아니네.
시화의 팔자는 만인의 여인이네.”
시화는 결국 기생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