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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조대언 제공 |
세월호 피케팅 1인 시위는 청와대가 매우 가까운 청운동 사거리에서 매주 월~토 11:30~12:30까지 진행 중이다. (피켓은 시간이 되면 준비되며, 청와대 분수 앞에는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다.) 이 피케팅은 2014년 11월 11일 정부가 수색 중단을 선언하자, 미수습자 가족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미수습자 가족들이 직접 피켓을 만들어 절박한 심정으로 이곳을 찾아온 것이다.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9명의 유가족들에 의해서 시작된 피케팅에 시민들이 동참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누가 말하지 않아도 11시 반이 되면 피켓을 들고 저마다 길목에서 피케팅을 시작한다. 말이 1인 시위이지 길목마다 같은 내용, 같은 마음으로 함께한다.
우리의 소리 없는 외침은 일관되게 미수습자 9명과 진실을 안은 채 아직 인양되지 않고 있는 세월호를 향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2014년 4월 16일에 머물러 있다. 바뀐 것도 규명된 것이 없는 만큼 피켓의 문구도 변함이 없다.
아직도 우리는, ‘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를 묻고 있다. 대부분 나같이 평범한 시민이다. 한 번은 다소 멀리서 오는 분에게 어떻게 1인 시위에 참여하게 되었냐고 여쭈었는데, 뜻밖의 심플한 답변을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어요.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는 없더라고요. 그냥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죠!”
‘낯섦’에 가려진 연대의 힘
낯선 사람들과의 교감은 언제나 내 삶의 큰 관심 분야(?)였다. 아내는 이런 나의 모습이 오지랖이 넓은 것으로 비칠까 늘 걱정하지만, 나는 상대에 대한 나의 관심이 상대방에게 위협이나 부담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면 괜찮다고 주장한다.
그래서일까. 피케팅을 하면서 나를 응시해주는 사람들의 눈을 나는 절대로 피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의 눈에서 응원의 감정이나 부담스러운 눈빛도 고스란히 읽게 된다. 버스나 택시 안에서 순식간에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서도 말이다. 종종 통행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내게 먼저 대화를 요청할 때도 있다.
“저기… 궁금한 게 있는데요. 세월호는 정말 왜 쓰러진 거요?”
“대통령은 그때 진짜 무엇을 하고 있었대요?”
“선체 인양을 하긴 하나요?”
난 이렇게 불쑥 내게 말을 걸어준 사람들이 그저 고맙다. 낯선 내게 먼저 말을 건네준 용기, 나는 여기서 낯섦이 감추고 있던 익숙함, 곧 연대의 힘을 느낀다. 세월호 사건이 터진 지 2년 반이 되어가면서 이제는 사람들이 꺼리는 주제가 될 수도 있지만, 아직도 지나치는 사람들에게서 세월호를 향한 의문과 안타까움이 공유된다는 것은 세월호가 지극히 생명에 대해서 말을 걸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는 특별히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우리와 먼 사람들의 이야기, 소중한 이를 잃어버린 어느 가족들의 잊힐 이야기가 아니다. 앞으로도 아무리 세월호가 ‘불편한 것’으로 만들어지고 포장되더라도 나는 이 불편하고 낯선 것을 기꺼이 익숙함으로 이해하며 받아들이려고 한다. 낯선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웃, 내 가족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잃은 교회, 세월호가 불편한 교회
모두가 목격해온 대로, 세월호를 대하는 정부기관 및 국회의 모습은 무책임하다. 언론 보도들은 또 어떠했는가? 몇몇 언론들은 오히려 목숨을 건 유가족들의 단식을 비판하고 있다.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유가족들과 세월호 봉사자들을 비방하고 음해하는 자들만큼이나 딱한 건 침묵하고 있는 교회이다.
눈물이 말랐거든 조용하게라도 있지, “세월호 참사 위로예배”라는 콘셉트로 예배를 ‘기획’해서서 대통령을 위로하는 예배를 하고, 세월호의 책임을 우리 모두의 책임으로 돌려버리는 야비한 목회자들의 메시지를 들을 땐 나도 모르게 욕이 터져 나왔다. 자식이 죽은 이유도 알 수 없는 부모들에게, 그리고 아직도 세월호 속에서 가족을 찾지 못한 이에게 ‘이제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는 말은 폭언이나 다름없다. 많은 교회가 이웃의 아픔을 보지 못하고 자기 위로나, 세상을 향한 쇼나 할 줄 아는 저급한 집단으로 변모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많은 교회가 세월호 관련 대화나 이야기를 정치적 좌파 성향의 이슈로만 이해하고 있다. 어이가 없다. 교회 안에서 세월호 같은 정치적 이슈를 언급하지 말자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정치적’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나는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이기 전에 정치적인 동물이라고 배웠다. 정치는 나와 네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지극히 당연한 인간 현상이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는 정치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백 번 양보해서 그게 정치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 이야기가 없어진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교회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초강력 무기로 상식적인 생각과 의견을 뭉개버린 그 자리에 전체주의가 싹트기 시작한다. 문제는 정치가 아니다. 교회의 생명 감수성 없음이 가장 큰 문제다. ‘생명’의 문제로 보지 않고, ‘가족’의 문제로 보지 않으니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세월호가 불편하다. 교회가 생명을 잃었기에 생명을 보면 불편한 것이다.
그날에, 우리 함께 보리라
20명의 학생을 밧줄로 구해 세월호 의인이라고 불리는 김동수 씨는 자해를 했고, 죄가 있다면 스스로 현장에 간 죄밖에 없었다고 말한 김관홍 잠수사는 죽음을 택했다. 이분들이 겪은 고통과 죽음 앞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 생명의 잃음 앞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하여야 할까.
나는 피케팅을 하면서 <보리라>라는 찬양을 자주 부른다. “우리 오늘 눈물로 한 알의 씨앗을 심는다~” 이 곡은 대학 시절에도 자주 불렀고, 교회에서도 예배 마지막에 부르고 있다. 그래서인지 피케팅을 할 때면 나도 모르게 이 노래가 입가에서 흘러나온다. 거리에 서서 희망과 소망을 노래한다. 내 눈물이 한 알의 씨앗이 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나는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는 어떻게든 그 긍휼을 타인에게 흘려보내게 되어 있다고 믿는다. 긍휼하신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 안에서 그렇게 하시기 때문이다. 타인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지 못하는 자가 어찌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타인이 없는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지 않은가!
마른 감성이라도,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려고 하다 보면 그 감성의 끝에서 낯설지 않은 타인의 마음이 읽히기 시작할 것이다. ‘가족’이라는 단어가 나를 붙잡았듯 말이다. 그리스도가 그러했던 것처럼 거리에 나왔으면 좋겠다. 너무 거창하고 비장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저 거리에 서 있기만이라도 해보라. 그곳에서 그리스도께서 귀 기울여 듣고 계신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조대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