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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일 열린 제4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 서울 공청회에 지역 주민들이 올라와 항의하고 있다. ⓒ프레시안(채은하) |
미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피하려는 두 번째 전략은 이름도 낯선 소듐냉각고속로이다. 이 시설의 원래 이름은 소듐고속증식로이다. 그러나 플루토늄이 많이 생산되는 '증식'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 이름을 고친 것이 바로 '소듐냉각고속로'인 것이다. 소듐냉각로는 핵반응로(원자로)의 냉각을 물(경수, 혹은 중수)를 사용하지 않고 액체 소듐(나트륨, Na)을 사용한다. 냉각제 역할과 감속재 역할을 하는 물을 사용하지 않고 감속재 역할이 없는 액체소듐을 사용함으로써 핵반응의 속도를 고속으로 높일 수 있다. 이런 고속로를 사용하면 플루토늄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국내 원자력계는 이 소듐냉각고속로를 이용하여 플루토늄을 생산하려는 것이 아니라 전기를 생산하려 한다고 항변하고 있으나 이는 명백한 거짓이다. 전기를 생산할 목적이라면 이런 소듐고속로를 만들 이유가 전혀 없다. 우선 핵연료만 해도 재처리된 핵연료는 천연연료보다 5배나 비싸고, 재처리의 위험 뿐 아니라 지구상에 있는 어떤 핵시설보다 더 위험하다고 알려진 소듐고속증식로의 위험까지 감수해야한다. 소듐고속증식로가 전기생산 목적이 아니라는 다른 증거는 이 계획서 자체에 기술되어있다. 이 계획서를 보면 소듐냉각고속로를 이용하여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시 최종 처분 폐기물의 방사성 독성감소기간을 30만년에서 300년으로 줄이고, 우라늄자원 이용률을 기존 경수로 대비 100배 향상 가능하다고 기술되어있다. 플루토늄의 증식 없이 어떻게 이론적으로라도 우라늄 이용률을 100배 향상시킨단 말인가?
파이로건식처리와 소듐냉각고속로는 그 이름을 아무리 바꾸고 전기생산이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해도 핵재처리시설, 즉, 플루토늄 생산이 목적인 시설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외교적 마찰 뿐 아니라 위험성을 감수해야할 계획인 것이다.
소듐고속증식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핵시설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고준위핵폐기물)에는 약 1% 정도의 플루토늄이 섞여있다. 이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과정을 핵재처리라고 한다. 핵재처리를 하면 사용후핵연료의 양이 줄어드는 것처럼 정부와 원자력학회는 선전하고 있으나 플루토늄을 추출한 뒤에도 약 98%의 사용후 핵연료는 남게 된다. (이 남은 것이 바로 열화우라늄이다.) 대부분의 핵재처리는 습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제4차원자력진흥계획안에 포함된 파이로건식처리는 핵재처리 방식 중 건식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말한다. 즉, 파이로건식처리는 플루토늄 추출방식의 하나인 핵재처리시설이고, 소듐고속증식로는 플루토늄 생산을 최대화 하기위한 시설이다.
또한 이 두가지 핵시설들은 서로 연관성이 있는데, 파이로건식처리 과정에서 생산된 금속성질의 플루토늄이 소듐고속증식로에 사용되는 이상적인 핵연료가 된다. 이런 핵재처리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우려를 자아내서 외교적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클 뿐 아니라 그 위험성 또한 크다. 1957년 구소련의 키시팀 사고는 핵재처리시설 사고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사고는 1957년 9월 29일 구소련의 마야크 재처리 공장에서 일어난 방사능 오염 사고로서 미국의 스리마일섬 사고보다 등급이 높은 6등급사고로 기록이 되어있다. 일본의 도카이 핵재처리시설에서도 1997년의 화재사고, 1999년의 방사능 피폭사고 등 많은 사고가 있었고, 주변 환경에 방사능을 오염시킨 일이 많았다. 핵재처리 시설의 위험성은 이렇게 핵발전소의 위험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핵재처리 시설도 위험하지만 소듐고속증식로는 이보다 더 위험한 핵시설이다.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소듐고속증식로는 사고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핵시설이다. 냉각재로 사용되는 액체소듐은 공기와 닿으면 화재를 일으키고 물과 닿으면 폭발을 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소듐이라는 냉각재가 누출되면 곧바로 대형사고로 이어지게 되어있는 것이다. 국내 원전에서 냉각재 누출사고는 수십 번에 달할 정도로 흔했는데, 냉각재가 누출될 때마다 이런 화재나 폭발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사고가 흔하고 규모도 클 것인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과 미국이 소듐고속증식로를 포기한 이유도 모두 이러한 위험성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경우 피닉스라는 소형원자로와 수퍼피닉스라는 상업용 규모의 대형원자로를 건설, 운영하였으나 수퍼피닉스의 경우 이용률이 고작 1% 정도에 그쳤고, 그나마 1998년에 폐쇄가 결정되었다. 최근인 1995년에 일본이 도전정신을 발휘하여 몬쥬라는 불교의 보살 이름이 별명으로 붙은 소듐고속증식로를 쯔루가 시에 건설하여 운영하였으나 역시나 소듐 누출에 의한 화재사고 등이 끊이지 않아서 정상적으로 가동되었던 시기보다 고장과 사고의 뒷수습하는 기간이 훨씬 더 길었다. 심지어는 십년 이상 걸려서 수리한 후 재가동한 지 한시간만에 다시 사고가 발생한 일도 있었고, 최근에는 핵연료 운송에 사용되는 몇 톤짜리 부품이 원자로 안에 떨어지는 사고도 겪었다. 이를 다시 수리하여 재가동을 시도하고 있으나 지금은 지방자치단체의 반대 때문에 가동을 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사태가 이정도이면 소듐고속증식로는 가히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핵시설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제4차 원자력진흥계획안에는 소듐냉각고속로를 이용하여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시 최종 처분 폐기물의 방사성 독성감소기간을 30만년에서 300년으로 줄이고, 우라늄자원 이용률을 기존 경수로 대비 100배 향상 가능하다고 기술되어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원자력유토피아를 꿈꾸는 비-현실적인 몽상가들의 상상력을 만족시킬 뿐이다. 이들의 몽상적 만족감을 위하여 미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일으키고, 우리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 옳은 일이 될 수 있겠는가?
위험한 모험주의…일본을 그대로 따라가고?
제4차 원자력진흥계획은 너무나도 현실과 동떨어진 위험한 계획들로 꽉 차있다. 국내 모든 핵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겠다는 계획도, 거의 모든 핵발전소의 출력을 증강시키겠다는 계획도, 핵재처리 계획도 모두 너무나 위험한 발상들이다. 한국이 핵사고로 인하여 국운이 기울게 된 일본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으려면 위험한 모험주의를 단호하게 배격하고 핵발전소의 안전성 확보에 더욱 많은 예산을 투여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핵발전소의 숫자를 줄이고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을 진지하게 계획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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