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代 : 唐太宗인 李世民의 世 자를 피휘(避諱) 한 것)에 필진도(衛夫人이 짓고 왕희지가 썼다고 함.) 7행의 그림 가운데 집필 법에 대한 3수가 있는데 그림의 모양이 괴천(어그러져 온당하지 않음) 하고, <글의>점획이 인화(빠지고 잘못됨) 되었다. 요즘 남북으로 유전(널리 전파됨) 되는 것을 보면 우군(왕희지)이 지은 것인 듯 하다. 비록 진위(진짜와 가짜)가 자세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동몽(初學者:처음 배우는 사람)을 계발 시키기는 적합하고 이미 세속(世俗)에 항상 소존(아직 남아있는 물건) 하니 <이>책(書譜:서보)에는 편록(편성하여 기록함) 하지 않는다. 제가(전대 여러 大家 들)의 세평(필세의 평론. 勢와 評으로 나누어진 서론)을 논한데 관해서는 대부분 부화(겉만 화려함)에만 이르러서 외면의 형상만 웅장하고 내면의 이치에는 헤매지 않은 것(잃지 않은 것)이 없어 지금 이곳<서보(書譜)>을 찬술(책이나 글을 씀) 하는 데는 역시 취할 것이 없다. <서보는 자신의 이론임을 밝히는 것> 이를테면 사의관(後漢의 서예가: 八分體(지금의 예서)에 뛰어남) 같은 고명(높이 알려진 이름)도 사첩(역사 책)에만 겨우 드러나 있고, 한단순(삼국 魏의 서예가)의 영범(아름다운 규범)도 한갓 겸상(비단에 쓴 글. 백서帛書)에만 드러날 뿐이다. <後漢의>최원(崔援), 두도(杜度) 이래로 <南北朝時代의>소자운(蕭子雲), 양흔(羊欣) 이전까지 대사(年代. 祀 자는 은나라 때 해의 뜻으로 씀)가 면원(오래도록 이어짐) 하면서 명씨(이름난 서예가들)는 자번(더욱 많아짐) 하기에 이르렀고, 어떤 사람은 자심(성대함. 평판이 좋음)이 변치 않아 사람은 죽어도 업적이 나타나고. 어떤 사람은 빙부(다른 사람 덕분에) 하여 증가(가치가 오름) 하나 신사(몸이 물러남. 죽음) 하면 도(書名: 서예로 얻은 명성)도 쇠락해진다. 게다가 미두(좀이 먹고 문드러짐) 하여 전해지지 않거나, 수비(개인이 소장하고 있는것을 찼아내어 秘藏 한다는 의미) 하여 거의 다 없어졌고, 우연히 감상할 기회를 만나도 봉해져서 이 또한 엿볼 일이 드물어 우열(나음과 못함. 평가)에 대해서도 분운(말이 많고 어지러움) 하여 대부분 나루(상세히 설명함) 하기 어렵다. 그것들은 당대(지금 시대)에 알려져 나타나고 유적(생전에 남긴 글씨)이 견존(보존되어 볼 수 있음) 하면 억양(칭찬과 헐뜬음. 평론)을 기다리지 않아도 자연히 선후(나음과 못함)를 표할 것이다. 또 육문(六書: 象形 指事 會意 形聲 轉注 假借)이 만들어진 것은 헌원(軒轅氏:글자를 만든 중국 고대 黃帝의 별칭. 헌원의 언덕에서 태어남)에서 비롯되었고, 팔체(大篆, 小篆, 刻符, 蟲書, 摹印, 署書, 殳書, 隸書)가 일어난 것은 영정(진시황의 이름)에서 시작되었다. 그 유래는 오래되었고 그 쓰임은 넓었으나 다만 옛날과 지금이 <시대마다 書體가> 같지 않아 연질(아름답게 쓰는 것과 질박하게 쓰는 것)이 현격(차이가 매우 동떨어져있음) 하여 이것은 <서예를 배우는 사람이> 소습(배워서 익힘) 할 것이 아니므로 또 역시 모두 생략하였다. <六書나 八體는 문자학에 해당되므로 서예를 배우는 사람에게는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 밖에 용서(龍書: 용 모양의 글자), 사서(蛇書: 뱀 모양의 글자), 운서(雲書: 구름 모양의 글자), 노서(垂露篆: 이슬이 떨어지는 모양의 글자) 종류나 귀서(龜書: 거북의 모양을 본뜬 글자), 학두서(鶴頭書: 학의 머리를 본단 글자), 화영서(花英書: 영지 모양의 글자) 따위가 있으나 <이것은> 짧은 시간에 솔이(갑작스럽게) 하게 도진(있는 그대로 그린 것) 하거나 혹은 당년(그 당시)의 상서로움을 묘사한 것이고, 단청(여러 가지 색깔로 그린 무늬나 그림)의 기교(技巧) 에 해당되므로 한묵(붓과 먹. 서예)의 공력(工力:기술) 이 줄어들고 <위에서 말한 문자학들은> 해식(楷模(해모) :서법의 모범) 과는 많이 다르므로 <서보 에서는> 상세하게 말할 것이 아니다. 대(代=世 :세상)에 희지(王羲之)가 자경(王獻之)에게 주었다는 필세론 10장이 전해지는데 문장이 비박(鄙薄:비열하고 천함)하고 문리(文理:글의 조리) 가 소략(疏略:대충대충)하며 의괴(뜻이 어긋남)하고 언졸(말이 졸열함)하다. 그 지취(要旨: 말이나 글의 핵심이 되는 중요한 뜻)를 자세히 따져보면 우군(왕희지) 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게다가 우군(왕희지)은 지휘가 높고 재주가 뛰어나 격조(格調=風格 글씨에서 풍겨 나오는 운치)는 깨끗하고 사장(詞章=文章)이 전아(典雅: 법도에 맞고 우아함) 하며, 성진(명성과 자취)은 없어지지 않고 한독(왕희지의 遺墨)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 사람(왕희지)은 하나의 글을 보내거나 하나의 일을 늘어놓는 것을 보면 조차(짧은 시간. 짦은 글) 속에서도 계고(옛 法道를 자세히 살핌)를 하고 있었다. 영사(당신의 代를 잇는 아들)에게 이모(자손에게 물려주는 계책. 서법 전수를 도모함) 하는데 의방(올바른 사람이 되는 바른길) 과 조화롭게 인도할 것인데, 문장의 규칙이 둔하고 이지러 졌는데 어찌 이와 같이 이를 수 있겠는가? 또 말하기를 <왕희지가> 장백영(장지)과 동학(함께 공부함)을 했다는데 이것은 허탄(터무니 없는 거짓)함을 다시 드러낸 것이다. 만약 한말(漢末: 한나라 말기)의 백영을 가리킨(말하는) 것이라면 시대가 완전히 상접(서로 닿거나 붙음)하지 않으니 필경 진(晉) 나라 사람의 같은 이름이 있어야 하는데 사전(역사 책)에는 어찌 그리도 적요(조용 함) 한가? <역사 기록에 없다는 뜻> <필세론은> 훈(訓戒: 훈계) 로 삼을 것이 아니고 경(典範: 법도) 으로 삼을 것도 아니니 마땅히 기택(버림)을 따라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