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 이야기, 롱 스토리>
오랜만에 그 '아이'다.
오늘 오후, 아이들 학교 학부모의 코로나 확진 소식에
부랴부랴 아이들이 학교로 다시 소집되었다. 보건소에서 와서 코로나 검사를 한다고 한다. 지혜를 반에 들여보내고 운동장 벤치에 앉아 있는데 그 아이를 만났다. 정말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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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보고 싶지 않고 알고 싶지 않은 장면들을 목격하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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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일에 그렇게 호기심을 갖는 편도 아니고 그 세세한 상황을 굳이 알려고 하는 편도 아닌데.. 그냥 우연히 몇몇 장면들을 보거나 들어서 알아버리게 되는 때가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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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가 그랬다.
몇 년 전 한 여섯 살쯤이었나, 동네에서 얼굴이 상처투성이인 아이를 만났다. 한겨울인데 얇은 옷을 입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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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고민 끝에 남편과 경찰에게 아동학대 신고를 했다. 그러고는 잊고 있었는데 그 아이를 우리 애들 학교에서 또 만났다. 그렇게 작고 왜소한 아이가 우리 셋째랑 동갑이라는 걸 알고는 놀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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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상태는 처음 아동학대 신고했을 때보다 더 심각해 보였다. 학교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부모를 어쩌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또 한동안 아이를 못 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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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년쯤 후, 요엘이가 2학년 때 내가 학교 도서관에서 사서 봉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아이를 또 만났다. 아이는 잠시 다른 학교에 다녔다가 다시 온 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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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이가 예전과 다르게 차분하고 깔끔하고 의젓해 보였다. 그래서 무척 반갑고 좋았는데 실은 부모가 아이를 시설로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모가 아이 양육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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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자기를 때리는 부모에게서 벗어난 건 반가운 일이나 갑자가 고아가 되어버린 상황이 너무 안쓰러웠다. 어쨌든 외관상으로 아이는 훨씬 좋아 보였다.
그러나 나는 너무 의젓해져 버린 아이가 걱정되었다. 차분해지고 조용해진 아이의 모습이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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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도서관에 자주 놀러왔다. 그러다가 아이 시설에서 매일 아이에게(같이 사는 모든 아이들에게) 약을 먹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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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친해지면서 우연히 약 이야기가 튀어나왔고 그때는 내가 좀 자세히 물어봤었다. 약을 안 먹으면 벌을 받는다는 소리를 듣고 너무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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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복지 선생님께 말씀도 드리고 그 말이 시설 쪽으로도 들어가서 약을 줄이겠다는 답변도 들었다. 우연인지 때마침 시설에서 아이들에게 약을 먹인다는 것이 드러나 뉴스화 되었던 것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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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은 아이가 나만 보면 뭘 사달라고 조르고 이것저것 요구를 해서 좀 고민이 되었다. 미니 선풍기, 지갑, 간식 등등 아이가 안쓰러워서 사주다 보니 이건 좀 아니다, 싶어 고민스럽기도 했다. 그러다가 도서관 사서를 그만두게 되었고 아이랑도 좀 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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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아이가 학교 스탠드 벤치에 앉아 같은 반 친구랑 마주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둘이 무슨 카드놀이 같은 거였나,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맞은편 남자아이가 책가방과 자기 물건을 놔두고 잠시 어디론가 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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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간 자리에는 그 남자아이의 것인 듯한 돈 3000원이 보였다. 그때 나는 그 아이가 얼른 남자아이의 돈을 자기 주머니에 넣는 것을 보았다. (왜 하필이면 내 눈이 그곳을 향하고 있었는지!) 내가 아이 이름을 채 부르기도 전에 아이는 벌떡 일어나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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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심란한 장면은 그 아이 친엄마, 그러니까 자기 아이를 학대하다 시설로 보내고 나 몰라라 하는 그 엄마와 마주칠 때이다. 그 엄마는 아이의 남동생을 왜 그 아이와 같은 학교에 보내는지, 자기 딸과 버젓이 마주치면서도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지, 무엇보다 그 아이는 엄마와 남동생을 만날 때마다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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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고 그 엄마와 대화를 나눠볼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뭘 어쩌겠나 싶고 괜히 그 엄마의 화만 돋우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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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따지고 싶었다. 왜 그 아이를 그렇게 미워하느냐고, 왜 동생만 예뻐하느냐고, 학교에서 그 아이를 만나도 정말 아무렇지도 않으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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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거의 2년 만인가..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제 4학년이 된 아이는 몰라보게 자랐다. 비쩍 마르고 작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또래에 비해 오히려 크고 통통하다 싶을 만큼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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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나를 금방 알아보았다. 나는 지혜를 기다리는 중이고 그 아이는 시설 차가 데리러 오길 기다리는 중이라 한참을 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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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서관 선생님 더 안 해요?"
"지혜 기다려요?"
"나랑 '참참참'할래요?"(이건 우리 아이들도 많이 하는 놀이. 상대방 손바닥 방향과 반대로 머리를 향해야 이기는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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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럼없이 내 손을 잡고 다가와서는 같이 놀자는 아이를 보고, 반가우면서도 '아차, 지갑을 안 가지고 왔는데 어쩌나? 문방구에서 뭘 사달라고 할 텐데..' 하는 생각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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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이는 사달라는 소리를 안 한다. 대신 손을 잡고 자기 머리끈이 어느 쪽 주먹에 있는지 맞춰보라며 깔깔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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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나도 못 맞추자 마지막에는 엄지 검지 사이로 머리끈이 살짝 보이게 내민다. 내가 맞추자 만족한 듯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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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찬찬히 보고 있는데 눈 옆에 상처가 보였다. 기억도 못하는 상처인 거 보니 부모가 아이에게 남긴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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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오히려 자기 엄지 손가락을 더 보여준다. 거기도 상처가 남아있다. 그것도 역시 엄마가 자기 손가락을 뜨거운 밥솥에 넣어 만든 것, 아이는 그걸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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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달라졌다.
아무리 물어도 엄마가 자기를 때렸다고 말하지 않던 아이였다. 아이는 자기 얼굴과 몸에 있는 모든 상처를 부인했었다. 아무도 안 믿었음에도 아이는 어린 동생이 그 상처를 만들었다고 우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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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은 보여주며 말한다. 엄마가 그런거라고.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
"엄마가 내 손가락을 그랬어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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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부부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의도하셨을 것이다. 그걸 의심하지는 않는다.그러나 그 의도에서 벗어나면, 너무나 멀리 벗어나면 다른 방법이라도 허용하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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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를 보니 부모를 떠난 것이 행운이다. 아이가 기관에서 자라는 것이 하나님의 원래 의도는 아니었을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더 낫기에 보내신 게 아닐까. 그렇게라도 아이를 보호하셔야 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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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만 그럴까, 교회도 우리의 사역지도 마땅히 해야 할 그 역할을 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취하시지 않을까? 그래 놓고 가정만이 최고라고 교회만이 성역인 것처럼 말할 수 있을까.
차라리 돌멩이를 갖다 쓰실지도 모르겠다.
'아이야. 미안하구나
나는 그냥 너에게 지나가는 아줌마일 뿐.
내게 너무 정을 주지 마렴. ㅠㅠㅠ'
*자기가 만들었다고 보여준 나무 토끼
내 손에 쥐어준 초콜릿
예뻐서 찍는다니까 웃음꽃이 활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