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쿤밍(昆明) 2 다운타운
다운타운의 중심지로 갔습니다. 여기에 두 큰 문이 있는데 하나는 금마(金馬)와 벽계(碧鷄)가 있습니다. 중국 서남쪽 변방에 위치하며 베트남,미안마,라오스 삼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운남성은 중국인들의 머리 속에 오색찬란한 화려한 성으로 각인될 만큼 아름다운 곳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직접 이곳을 방문하게되면 오히려 이곳의 순수하면서 소박한 매력에 더욱 이끌리게 됩니다
곤명한의대 다니는 유학생이 추천한 식당으로 이곳은 뼈속의 골수를 빨대로 빨아먹는 이곳의 유명한 식당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식사를 하며 이곳 문화를 즐겼습니다.
곤명은 면적이 21,111㎢입니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날씨가 온화하다. 연평균 일조시간이 2400여시간으로 일년 내내 꽃이 피어있고 초목이 사계절 푸릅니다. 곤명의 날씨는 사계절이 봄과 같은 특색으로 봄의 도시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동백꽃(茶花),백목련(玉蘭),진달래(杜鵑),보춘(報春),백합(百合),난초(蘭花),용담(龍膽), 녹계고(綠絨蒿) 등은 운남 8대 명화입니다. 현재 곤명의 화초는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태국, 일본 등으로 수출되고 동남아 지역의 주요한 화초 수출 생산지 중의 하나입니다. 또한 곤명은 관광, 역사 문화의 도시로 유명합니다.
곤명은 약 2,4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기원전 279년 초(楚)나라의 한 장수가 군대를 이끌고 와서 지배한 뒤 한(한)나라를 거쳐 원대(원대)에 곤명현이 설치 되었습니다. 이 곤명(昆明)이라는 이름은 이 일대에 살고 있던 부족의 이름입니다
금마(금빛 말)에서 사진을 찍을때 비가 보슬보슬 내립니다.
곤명은 한때 프랑스의 조차지로서 가톨릭 대성당,수녀원,프랑스인들이 출입하는 클럽등이 있었습니다. 하노이에서 시작되는 협괘열차는 1895년~1904년 프랑스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지끔까지도 운행이 되고 있습니다. 프랑스가 원한 것은 이 지방의 주석,텅스텐,아편 등이었습니다. 이 지방은 또 목재, 고무 쌀 등이 풍부하여 곤명은 태평양 전쟁에는 토호들의 수중에 있었으며 일본의 동남아 침략의 교두보로도 이용 되었습니다
벽계(푸른 닭)앞에서.
쿤밍의 유래는 쿤밍(곤명)은 고대에 이 지역에 있던 부족의 명칭으로 이족(彝族)의 고대 언어의 음역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1274년 원대에 곤명현이 생기면서 운남성의 성도역할을 하기 시작했고 1919년 중국 지역을 공식적으로 분할 정리하면서 운남시 정부가 생기고 1922년 정식으로 곤명시(쿤밍시)라 칭해졌습니다
곤명(昆明)은 해발 1,895m의 고도와 아열대 지역에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 가장 훌륭한 기후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시사철 봄처럼 따뜻하지만 지난91년에는 눈이 조금오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7월 중 최고 온도는 29도이며 1월 최저 온도는 영하 1도입니다. 대개는 5월부터 10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비가 오며 이 기간의 강수량은 약 1,500m 정도입니다. 동백꽃이 만발한 2월이 곤명을 여행하기에는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대추를 파는 아줌마.
운남 따이족의 전통축제 살수제가 있습니다. 매년 4월 보름에 운남성의 서쌍판납 따이족자치주의 경흥시에서 열리는 따이족의 전통축제로 재미있는 전설을 갖고 있습니다.
옛날 이곳에 한 폭군이 있었는데, 동네 7명의 처녀를
강제로 아내를 삼았습니다. 하루는 이 7명의 아내가 담합해 그 폭군을 죽였는데, 이 폭군의 머리가 굴러가는 곳마다 불이
났습니다. 이 불은 여자들이 끌어 안아야 끌수가 있어서 7명이 돌아가며 1년씩 그 머리를 안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동네사람들이
그녀들에게 물을 퍼부어 핏자국을 씻어주고 마침내 그 머리가 타고 재로 남았다고 합니다.
축제 중에는 용주경기, 자작 로케트 쏘아올리기, 상각고춤, 공작새춤, 공원놀이, 쇼핑, 살수축복 등의 행사가 벌어지고 또 이날 미혼 남녀들이 '염낭 선물하기'를 통해 사랑을 약속하기도 합니다.
한의사라 그런지 약재에 관심이 많습니다. 운남성에는 좋은 질의 약재들이 있는데 특히 천마 와 삼칠이 있는데 이곳은 천마와 삼칠을 주로 거래하는 한약재료상입니다. 운남성의 소통(昭通)에서 나는 천마(天麻)랑 문산(文山)에서 나는 삼칠(三七)이 유명한데 천마는 인공재배보다는 산에서 캐기에 원래 가격이 비쌉니다.삼칠은 전칠이라고 하는데 인삼보다 더 비싸게 팔리는 약재입니다. 유명한 간(肝)치료약인 편자황이 삼칠 주원료입니다.
이곳은 차를 파는 곳으로 쿤밍의 유명한 차는 보이차입니다. 정금원다장(鼎金源茶庄) 차를 파는곳입니다. 중국인들은 금(金)이 세개를 쓴 글자를 잘 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안쓰는 한자인데, 금이 세게 모인 금인데..ㅎㅎㅎ
보이(普洱) 중국어로 푸얼이라고 하는데 푸얼주요생산지가 운남성입니다. 그래서 차마고도의 종착지가 바로 운남 푸얼 입니다. 운남의 특산, 보이차(普洱茶, 푸얼차) 각 지방마다 특유의 차가 있는데, 운남을 대표하는 차는 바로 이 보이차 입니다.
이 밖에도 세계적인 차 생산지로서 많은 종류의 차가 있는데, 보이지방에서 생산되는 이 보이차는 특수한 제조법과 약효때문에 가장 유명합니다. 특유의 향과 맛 뿐만 아니라 알코올제거와 가래, 다이어트에 특히 효과가 있어서
현재 세계 50개국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중심지 뒤편에 상가들...
운남의 기후가 사계절 온난해서 그만큼 음식의 재료도 풍부하고 다양하며 또한 신선합니다.
운남의 음식은 비교적 시고 매운데, 그 맛이 깊고 풍부합니다.
유명한 요리로는 쌀국수인 미시엔(米線)이
있는데, 이것은 쌀을 발효시켜 희고 부드러우며 시원한 감촉을 주는 면발의 형태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미시엔을 먹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궈치아오미시엔으로 운남 음식을 대표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명한
전통음식입니다. 또 이 궈치아오미시엔은 세 가지 종류로 구성되어 나오는데, 면발과 닭기름국물, 음식재료가 따로 나와서 각각 그
것들을 기호에 맞게 첨가하여 먹을 수 있습니다.
먹는 방법은 날로 나오는 내용물을 먼저 닭기름에 넣고 익힌 다음에 이미 익힌 면발과 다른 재료를 넣고 먹으면 됩니다. 가격은 내용물에 따라 천차만별이며 보통 5원에서 100원 사이 입니다.백족의 전통차, 삼도차(三道茶, 산다오차)
삼도차(三道茶)는 대리에 살고 있는 백족(白族)의 전통 차로 대리고성의 남문쪽에 가면 맛볼 수 있습니다. 삼도차라는 이름은 녹차나 홍차처럼 맛을 내는 차의 이름이 아니라 차를 마시는 방법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백족이 손님을 접대하면서 마셨던 것인데, 지금도 백족의 혼례절차에 이 습관이 남아있으며 대리를 찾는 사람들이 꼭 찾는 유명한 지방특색이 되었습니다. 이 차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가지 방법에 따라 세가지의 맛을 내며,
또한 이 세가지 맛은 사람의 인생을 나타낸 것이기도 한다고 합니다.
1. 첫번째 차는 쓴맛을 냅니다. 운남의 녹차를 사용하는데, 인생으로 비유했을 때 소년기의 쓰라림과 고통을 뜻합니다.
2. 두번째 차는 달콤한 맛을 냅니다. 앞의 녹차에 치즈, 호두, 설탕 등을 넣는데, 중년기의 행복함과 인생의 즐거움을 나타냅니다.
3. 세번째 차는 달콤하면서도 쓴 맛을 냅니다. 녹차에 벌꿀, 들깨, 생강, 흑설탕 등을 넣는다. 추억의 차라고도 불리며 인생 말기에 지난 날의 즐거움과 고통을 회상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삼도차는 그 맛 뿐만 아니라 인생의 철학을 담고 있는 것이어서 대리를 찾는 관광객에게는 물론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식욕을 증진시키는 등의 건강에도 좋아 이곳 사람들도 많이 찾는 차입니다.
젊은이들과 같이 스타벅스(별다방)에 갔습니다. 벽에 원두커피 담는 자루를 장식하였는데 눈에 익은 중남미 코스타리카 엘살바도르 산 커피 자루가 벽에 붙어있더군요.
길바닥에 옛날 거리 지도가 있습니다.
유명한 꼬치구이를 길거리에서 팝니다. 머리 모자를 보니 이슬람교인것 같습니다.
이곳은 골목길 막다른 곳에서 하는 꼬치구이집인데 유명한 쿤밍의 명소로 태국왕도 이곳에 와서 꼬치를 사먹었다고 합니다. 막다른 골목에서 파는데 사람들이 알고 찾아와서 기다려 서서 먹고 있습니다.
막다른 골목들어가기전에 안내문인데, 아마도 아랍어로 써있는것을 보면 이곳에는 이슬람계통의 사람도 있는것 같아요
바로 이곳이 쿤밍의 옛거리(Old Street)입니다.
옛거리의 모습입니다. 지금은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 거리는 먹거리, 상점으로 즐비합니다.
앞으로 게획 건설되는 거리 조감도입니다.
섭이(聶耳)는 중국 인민공화국의 국가를 작곡한사람으로 바로 이곳 쿤밍태생입니다. 그의 생가가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섭이 의 생가
옛 거리라 그런지 옛날 건물들이 있습니다.
번화거리에 조류전선이라는 의류매점이 있는데 아마도 한국의 한류를 의식해서인지 한국말로 적어 있습니다. 이곳 쿤밍은 한국유학생이 1,000여명이 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