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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작품마당 원문보기 글쓴이: 일송정
*동작문협 시화전(詩畵展)에 선보인 20인 회원들의 詩와 약평(略評)
여운(餘韻)있는 詩,화답(和答)과 석평(釋評) <두드림과 울림의 詩>
글.김광한(소설가, 문학평론가)
"박근원,이숙진, 황영원,원춘옥,신의식, 김순, 윤제철,장승기,이명희, 이현실,이승영, 조형은,최영옥,김란희,김정화,최중재, 김영석, 곽광택,장정문,문희숙 (無順)의 시를 중심으로 살펴본 시인들의 내면의 울림들,그 강약(强弱)에 대하여...."
예로부터 선비의 덕목(德目)으로 가장 높게 치는 것이 학문(學文)과 더불어 시서화(詩書畵)였다.시와 글씨와 그림은 때로는 상대와 학문적 나눔뿐만이 아니라 의견의 소통을 잇게 해주는 가장 큰 요소이기도 했다.좋은 시와 좋은 글에 자신의 의견이랄 수 있는 평석(評釋)을 달아주는 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이고 선비들만이 갖는 형이상학적인 고급 즐거움이기도 했다. 한글이 있기전(한글 창제후에도 諺文이라 하여 아녀자들이나 썼다.그녀들이 쓴 글씨체를 宮體라함)이라 한문으로 시를 적고 그림까지 그린다는 것은 무리였다.그래서 한문자와 비슷한 획수(劃數)를 갖고 있는 사군자(四君子)를 치기도 했다.매(梅), 란(蘭),국(菊), 죽(竹)이 그것이었다.묵화(墨畵)로 그린 동양화를 일컬었다. 황진이 같은이는 여기에 가무(歌舞)와 곡(曲), 거문고 가야금과 같은 악기까지 다룰줄 알았으니 객적은 남정네의 상대가 아니었던 것은 사실이다.박연폭포·서경덕과 함께 송도3절(松都三絶)이라 일컫는황진이는 재색(才色)을 겸비한 조선조 최고의 명기(名妓)였다. 어디를 가든 선비들과 어깨를 겨누고 대화하며 뛰어난 한시나 시조를 지었다. 가곡에도 뛰어나 그 음색이 청아했으며, 당대 가야금의 묘수(妙手)라 불리는 이들까지도 그녀를 선녀(仙女)라고 칭찬했다.
백호 (白湖) 임제(林悌) 가 평안도사가 되어 부임하는 도중 황진이의 무덤에 제사를 지내면서 지었다는 "청초 우거진 골에…"로 시작되는 시조가 전한다. 그녀는 "동짓달 기나긴 밤을…"로 시작하는 시조를 포함해 모두 8수가량의 시조를 남겼고 〈별김경원 別金慶元〉·〈영반월 詠半月〉·〈송별소양곡〉·〈등만월대회고 登滿月臺懷古〉·〈박연 朴淵〉·〈송도 松都〉 등의 한시를 남겼다. 황진이가 후세에 아직도 많은 이야기꺼리를 남기고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와 연극같은 것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생전에 가졌던 육체적인 아름다움, 살결이 희거나 나긋나긋하거나 육체미가 남들보다 월등하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남긴 시와 시를 짓게된 배경의 이야기, 그리고 찰라적인 삶의 허망함과 남녀간의 진정한 사랑과 존경에 대한 의미가 남달랐기 때문이었다.황진이의 삶은 시가 밑바탕이 되었던 것이다.그런가 하면 중국 명말(明末) 청초(淸初)의 김성탄(金聖嘆)<1610~1661)과 같은 평론가는 평생에 남의 좋은 시가를 평석(評釋)한 사람으로 유명하다.그는 장자(莊子), 이소(離騷),사기(史記), 두시(杜詩), 수호전(水許傳), 서상기(西霜記) 등을 평석, 좋은 평론으로 지금까지 식자(識者)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특히 그가 평석한 서상기는 앵앵전(鶯鶯傳)이 원전으로 앵앵전은 중국판 춘향전으로 불리운다. 서상기를 평석할 때 스스로의 생각을 삽입시켜 그 나름대로 또다른 문학을 이뤘다는 것은 원전의 바탕이 단단하다는 것을 의미한다.이 김성탄의 평석을 인용한 사람이 임어당(林語堂)이었다.임어당은 그의 명저 <생활의 발견>에서 "우리 인생의 즐거움 33가지"란 김성탄의 글을 인용했다.친구 두사람이 먼길을가다가 장마철을 맞아 어느 중도 없는 폐사(廢寺) 골방에서 일주일간 머물면서 나눈 이야기가 인생의 즐거움 33가지인데 원전(源典)이 앵앵전에서 서상기로 그것을 김성탄의 평석으로 또다시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으로 이어지면서 점점 더 좋은 작품으로 승화시키게 되는 동력(動力), 그것은 한 시인이나 문학가가 좋은 작품을 내놓는데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시인이 시를 쓰게됨은 자신의 생각을 짧은 문구를 통해 나와 함께하는 이웃, 지역사회, 국가, 그리고 전세계에 알리는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시인이 쓰는 시는 울림이 커야하고 그 진동이 봉덕사의 종소리처럼 은은하면서도 넓게 오래동안 퍼져 나가야한다.
정지용선생이 쓴 "향수"는 훗날 또 다른 예술로 승화가 되었다.김희갑이란 작곡가에게는 노래가 하나 추가가 되었고 노래를 부른 이동원과 박인수에게는 생애를 살면서 대표곡으로 자리잡게 되었고,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잊혀졌던 과거의 부모,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을 보게 되는 향수를 느끼게 만들었다. 그것은 정지용 시에 담긴 울림이 컸기 때문이다. 30도 못살고 죽은 윤동주의 시 몇편이 수천편의 시를 쓴 요즘 인터넷에서 날리는 시인들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울림과 두드림이 크고 진동이 오래가기 때문일 것이다.일본의 하이꾸(俳句)*(短歌) 시인으로 유명한 "이시가와 다꾸보꾸(石川啄木)"의 단가(短歌), "한줌의 모래"에 나오는 한귀절,
" 내가 정신모르게 취했을때
내 곁에 와서 자신의 슬픈 과거를 이야기해주던 그 여자여...
이 귀절은 읽는이로 하여금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아! 어!하는 감탄과 함께 두드림이 있고 두드림은 곧 울림으로 연결이 된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도 한귀절을 읽으면 그만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본 모습을 보게하는 시,그 시는 시대를 불문케하고 연령을 초월하면서 인구에 회자(膾炙)가 된다. 일본의 천재 작가라고 일컫는 아쿠다카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는 35세에 자살해 죽었다.그가 생전에 쓴 나생문(羅生門)은 한 살인 사건을 다룬 단편인데 진실의 문제를 목격자 4인을 통해 추적하는 이야기이다.목격자이지만 각자 다른 이야기들을 통해서 오히려 진실이 멀찌감치 사라져 버리는 현실의 모순을 그린 이 단편은 후에 구로사와 아끼라(黑澤明) 감독에 의해서 영화 뿐만 아니라 원작 소설까지도 세계적으로 올려 놓는데 한몫을 했다. 그것은 그만큼 작품으로서 울림이 컸고 그 울림이 넓게 퍼져나갔기 때문이다.울림이란 감동이다.감동이란 잃어버린 인간을 되찾는 마음의 씨앗이다.
이런 씨앗을 여러 사람에게 심어주는 일 또한 사람이 할 일로서 가장 으뜸되는 일이 아닌가. 그것이 바로 시인의 고유한 몫인 것이다. 영국의 "프란치스 톰슨"은 시인으로서 평생 알코올 중독과 마약중독, 그래서 결국은 행려병자로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다.이 사람이 쓴 "하늘의 사냥꾼"은 작고하신 구상(具常)선생이 자주 인용하던 신앙시이다.
누군가 쫓아온다. 내가 숨어도 계속 따라붙는다. 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를 향해 내미는 손짓을 나는 거절 할 수가 없다 <하늘의 사냥꾼 일절>
그 하늘의 사냥꾼은 다름 아닌 하느님 그 자체를 말한다.이 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고 다른 종교에서 개종하는 "울림"을 갖게 되었다.생전의 구상 시인은 이 시를 종교강의를 할 때 항상 읊었다.프란시스 톰슨은 하느님의 쫓김을 평생동안 당햇고 그 쫓김을 거부하다가 행려병자로 길에서 숨졌던 비운의 시인이다.시안에 들어있는 메시지는 인간은 혼자가 아니라 그 누군가 곁에서 지켜보면서 때로는 친구가 되고 때로는 연인이 되고 절망할 때 손잡아 주는 그리스도가 반드시 있다는 확신을 갖게해준 것이다.
詩는 감정의 망치로 여망(餘望)이란 북을 두드리는 작업의 종결이다.그 북소리가 멀리 울리고 퍼질 수록 시인과 독자는 소통(疎通)이 되고 내가 갖는 즐거움과 억울함과 그리고 모든 서러움들을 함께하면서 나누는 정신의 작업이다.물건이란 시간이 지날 수록 낡고 헤어지고 볼품이 없지만 좋은 시는 세월이 갈 수록 많은이들에게 즐거움과 나눔이 메시지가 되어서 마음속안에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그래서 그 시의 재료는 백번 천번 정제된 양심과 사랑과 긍휼(矜恤)과 그리고 나눔과 정결과 같은 것이다.신앙인은 신앙으로 마음이 착하고 따뜻한 사람은 그 마음이 재료가 되어서 어디엔가 있을 독자에게 소리죽여 다가가 마침내 한송이 꽃이 되는 것이리라.
한국문인협회 동작지부의 회원들이 선보인 많은 시 가운데 무작위(無作爲)로 선별한 20인의 시,그 가운데 특별히 두드림과 울림이 큰 귀절들을 찾아 보았다.시 한편을 평하면서 시인의 지나간 삶까지 끌어들인다는 것은 너무 염치없는 것같아서 생략했다. . 박근원 시인의 담쟁이
여름철이면 흔히 볼 수 있는 담쟁이 넝쿨을 바라보면서 시인은 우리들의 삶을 대비, 관조한 시이다.넝쿨들은 담벼락에 붙어 온갖 비바람 험한 일을 당해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몸부림,바람은 온몸으로 막고 그 와중에서도 생존하기 위한 터잡이를 끈질기게 하는 담쟁이 넝쿨,그 넝쿨들은 늦가을이 되어 마침내 잎새가 바래 떨어질 때까지 줄기를 공간으로 이동한다.평범한 것에서 결코 평범치 않은 생존의 몸부림을 안타까운 눈으로 관찰하는 박근원 시인의 인간적인 모습이 무척 따뜻하게 다가오는 시이다.공학도 출신으로 문학으로의 귀향은 여러가지 시행착오가 있었겠으나 지금은 안착된 상태로서 더 큰 울림의 목소리를 내는 시인으로 발돋움 하고 있다. 이숙진 시인의 "톨레랑스"
이숙진 시인은 시도 영글었지만 수필 또한 이에 못지 않게 살아온 연륜속에서 얻어낸 보석같은 진리들을 담을 그릇이 항상 준비되어있고 이 그릇에 늘 현란한 문체의 옷들을 입힌 언어들이 소리없이 녹아내린다.시와 수필 가운데 선뜻 선택하라면 둘다 버릴 수 없는 장르라고 이야기 하는 시인은 그 이유를 수필은 지난 세월속에 간혹 있을법한 한과 분노를 용해시켜 사랑과 관용으로 정제시켰고 그 많은 언어들을 메시지화하는데 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이숙진 시인의 초창기때의 시는 마치 토속적이고도 실용적인 어휘로 채워졌지만 지금은 좀더 세련되고 잘 가꿔진 시어들이 열병하듯 늘어서있다.톨레랑스란 시가 그렇다.북구 노르웨이 테러 사건에 충격을 받은 시민들은 그 충격에도 장미를 들고나와 관용을 외쳤다는 것을 이숙진 시인은 감동으로 받아들였고 이를시로 만들었다.그리고 우리가 미처 대하지 못한 낯설지만 고금스런 시어들을 선보였다.귀살쩍다,히잡쓴, 맷가마리, 뚝발씨.용심,되술레 잡히다 등이 그것이다.연륜은 시간을 내다 버리지만 시를 채우는 곳간은 늘어나게 만든다.
황영원 시인의 "여름비"
수필가로 등단(문예춘추)을 하고 나중에 다시 시(아시아 문예)로 새로 등단한 황영원 시인은 수필과 시를 능란하게 다룰 줄 아는 재원이다. 흔히 말하는 늦깎이 문단 데뷔이지만 그만큼 살아오면서 저축한 많은 언어들이 곳간 가득히 채워져있어 항시라도 꺼내 오늘 맘상해 언짢은 얼굴울 하는 사람들,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줄 시와 수필이 준비되어있다.그의 시어들은 기독교 신앙이 저변에 깔려 웬지 범접치 못할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그렇다고 독자들이 읽기에 불편한 현학적(炫學的)인 용어들이 아닌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언어들이다."여름비"가 그것을 대변해준다. "태고로부터 있을법한 몰래 키워온 눈물" 쏘오아 탁탁탁... 의태어(擬態語)와 의성어(擬聲語)가 틈틈이 섞여있는 그의 시들은 이제 활짝 날개를 펴고 비상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더 큰 울림을 향해... 원춘옥 시인의 "애기 똥풀꽃"
작곡가 신귀복 선생의 "얼굴"에 나오는 가사처럼 동그란 얼굴에 악한기라곤 찾아볼래야 없고,자그마한 체구의 조선 여인을 쏙 빼다 박은 듯한 원춘옥 시인의 시는 읽는 그대로 정겹기만 하다.굳이 해설을 달지 않아도 읽어서 그저 좋은 시가 원춘옥 시인의 동요같은 시이다.길가에 흔하게 피어있는 애기똥풀꽃을 예사롭지 않게 보고 원춘옥 시인은 여기에 누구도 달지 않은 의미있는 시를 선사했다 "날마다 피는 흰 기저귀 애기 똥풀꽃아, 거뭇한 기억은 보송한 솜털깎고 선사했다까치발 시간은 치마자락 붙잡는데 앉은 뱅이 엄마를 위해 성큼 향기 꺾어오는 애기 똥풀꽃아....
여류 작가로서 드물게 시서화(詩書畵)에 능한 시인은 한문학에 조예가 깊어 한자(漢字)라면 남의 글로 여기는 젊은층들을 상대로 한문(漢文) 강의를 하면서 틈틈이 서예(書藝)를 통해 시적 완성을 연마하고 있는 아주 착한 시인이다.
松亭 신의식시인의 "꽃가지에 눈이 내리면"
송정(松亭) 신의식 시인은 남의 허물에는 관용을 베풀지만 자신의 우연치 않은 실수에도 결코 용서하지 않는 결백의 시인이다.일찍부터 마음속으로 받아드려 생활화,진리화 시킨 가톨릭 교리가 그의 행동규범을 옥조이고 있는듯,그의 모든 만남과 만남에서 비롯되는 행동에는 늘 보답을 원치 않는 봉사의 정신이 밑바침하고 있다.틈틈이 카메라를 메고 전국을 순례(?)하면서 찍은 사진속에는 그가 염원하는 기독교적 사랑과 희생이 깃들여져 있다.자연과 일체를 이루면서 역지사지(易地思之)식으로 생각하는 결과가 시로 만들어졌다. "꽃가지에 눈이 내리면" 나와 자연과, 내 생각과 자연의 생각이 일체가 되는 시속에 60년 넘게 살아온 발자취를 엿볼 수가 있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큰 울림이 있는 것이 아닐까.
김순 시인의 "라일락"
음유(吟遊)시인의 기질을 갖고 있는 김순 시인은 가락과 장단이 잘 조화가 되는 시를 썼을 때 큰 기쁨을 느낀다.그녀의 핸드백에는 詩스승으로부터 배운 시의 개론(槪論)을 적은 노트가 들어 있어서 이를 틈틈이 들여다 보면서 여기에 자신의 의견을 기술한다.그녀의 시 작업 공간은 집안의 서재가 아니라 행동하는 모든 장소이다.시와 생활과 합일을 이룸으로서 시를 친구처럼 동행한다.그녀의 시는 박목월 선생이나 미당 선생과 같은 짧지만 메시지가 강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시낭송회때 유일하게 원고를 보지 않고 낭송하는 시인,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몇백번씩 자신의 시를 외우고 사랑해야만 가능하다.하얗고 단아한 용모에 자그만한 체구,그러나 그 안에 내재된 시적인 에너지는 활화산(活火山)처럼 언제 분출할지 모르는 힘이 용솟음 치고 있다."라일락"에 들어있는 몇줄의 시어들은 금방이라도 시인과 함께 반가운 이웃이 되어 나타난다.그래서 그녀는 천상 시인이다.
윤제철 시인의 "별"
거목(巨木)을 들고 다니는 시인,그리고 스스로 거목이 되는 시인이 바로 윤제철 시인이다.거목에 적혀있는 시인의 시귀는 소인배들이 날리는 자잘구레한 내용이 아니다.삶의 연륜들이 받침이 되는 윤리적이면서 경세적(警世的)인 시귀로 가득차 있어서 인위적인 현란하고 난삽한 용어를 침묵시키게 만든다.그렇다고 난해한 것도 아닌, 읽기 편하고 읽고 나서 뭔가 한가지를 얻은 것같은 결코 손해를 보지 않을 정도의 메시지가 담긴 시의 창출(創出)이 윤제철 시인이 평생토록 한 시작업일 것이다.월간 <문학세계>의 주간을 맡고 있으면서 지면(紙面)을 후배들에게 양보하고 뒷짐짚고 웃음짓는 휴매니스트 시인, 그의 시는 언제나 큰 울림을 진동으로 연결 시켜주고 있다.
장승기 시인의 "절하고 싶다"
젊은 여성들이 배가 부른 것은 생명체를 잉태하고 있기 때문이다.생명이란 가족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일뿐 아니라 사회, 국가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들어 농촌에서는 아기 울음 소리가 들리지 않고 산모들이 끊이질 않았던 산부인과에 출산하기 위해 찾아오는 산모들의 발길이 뜸해졌다.그만큼 한 생명이 세상에 나와도 그 생명을 책임질 수 없는 부모들이 늘어났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엄청난 교육비와 생활비 등이 출산률을 저하시키는 요소이기도 하다. 장승기 시인은 이런 의미에서 차후 세대의 주인공들이 될 아기를 잉태하고 있는 산모들을 보면 그만 너무도 고마워서 절을 하고 싶다는 시를 썼다.시를 통해 생명의 외경감과 가정안의 평화,나아가서 지속적인 국가의 존속을 간절하게 기원하는 이 사회의 어른으로서의 소망이 담겨있다.출산을 꺼려하는 젊은 부부들에게 보내는 함축된 메시지가 어려있는 시,그것은 생명의 존엄성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명제인데 장 시인의 눈은 이를 눈여겨 보았다. 시인의 눈은 평범한 가운데 비범한 것을 고르는 안목에 있기때문이다.
이명희 시인의 "들꽃"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지나치게 되는 꽃, 그래서 야산(野山)이나 길가에 핀 꽃을 들꽃(野花)이라 한다. 관심을 갖고 집이나 화원에서 기른 꽃을 화초(花草)라고 한다면 이명희 시인의 "들꽃"은 시인의 입장에서 들꽃의 외로움과 무관심을 생각하는 시가 된다.화초가 사람이 가꾼 인공적인 아름다움에 비해 들꽃은 모진 비바람과 역경을 견뎌내고 마침내 한떨기 꽃으로 피어난 대단한 전사(戰士)가 아닐 수 없다.이명희 시인은 이런 들꽃에게 의미를 부여한다. 그녀의 따뜻하고 성실한 인간적 마음이 와닿아 들꽃은 이제 생기에 넘쳐있다.청노루처럼 눈이 아름답고 백옥같은 하얀 얼굴이 무척 고급스럽게 선뜻 눈에 뜨이는 용모의 이명희 시인의 시심은 끝간데 없이 슬픔과 고통이 있는 곳이라도 가 손길을 내민다.천사가 들꽃의 마음이 되어 쓴 자비의 시라면 어휘들이 너무 튀었을까.
이현실 시인의 "J에게"
어쩌면 詩보다 수필이 더 어울리는 이현실 시인에게 문학은 그의 생명을 지탱하게 만드는 보약이나 다름 없다.험란한 세상을 따뜻한 눈으로 보고 실행해가면서 살아온 이현실 시인은 모든 문학의 주제가 아름다운 마음을 선행으로 옮기는 작업 그 자체이기도 하다.그래서인지 그의 수필이나 시는 읽으면 읽을 수록 따뜻한 온기가 감지가 된다.처음에는 단순하고 다소 투박했던 시어들이 연륜이 들면서 점점 더 세련이 되고 날렵한 제비처럼 물길을 차며 비상하는 몸짓을 보이고있다.겸손하면서도 의지의 날개가 견고한 시인의 감성은 시와 수필로 나뉘어지는 두물머리와도 같다. "J에게" 어느 유명한 여가수의 노래 제목같기도 하지만 이현실 시인의 J에게는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통영 앞바다에서 본 통통배에 지난 날들의 모든 상념을 묶어두고 이를 반추해보는 능숙한, 시어들을 다룰줄 아는 시인만이 쓸 수 있는 시이기도하다.
이승영 시인의 "겨울 바다"
다소 문장을 이끄는 기교가 덜하지만 이승영의 솔직, 담백한 문장과 내용은 그가 얼마나 정직하게 살아왔는가를 읽을 수 있는 대목같아서 퍽 인간적인 사람냄새가 물씬 풍긴다.육신의 병고에 가끔씩 휘둘리지만 그의 곁에 떠나지 않고 있어주는 문학이란 친구,이승영은 그 친구에게 모든 하소연을 털어놓는다.그것이 시가 되고 수필이 되어서 그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그 글들은 같은 처지에 놓인 많은 육신과 물질의 약자들에게 다가가 삶의 에너지를 아낌 없이 전달해준다. "겨울바다" 흔한 시제(詩題)같지만 잘 들여다 보면 그것은 그냥 바다가 아니라 이승영이 처한 상념의 바다에 떠 있는 배 한척이고 그 배는 수없이 많은 세월을 담고 떠내려온 시인 자신이란 것을 알만한 사람은 알고 있다.시와 수필을 통해 동시대의 여러 사람들과 호흡을 같이하고 있는 시인의 모습이, 그 영혼이 무척 건강하다.
곽광택 시인의 "그리움"
연륜이 쌓일 수록 고정관념속에 정체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에서 곽광택 시인만큼 유연한 사고방식으로 젊은 의식을 받아드리고 그 의식속에 시의 맑은 샘물을 담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가 않다.오늘을 헛되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곽광택 시인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충효예(忠孝禮)의 질서를 전하려는 의지가 강하다.인간으로서 반드시 갖춰서 더 인간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모든 질서들,그것을 경세(警世)라고 했던가.박제(剝製)가 되다시피 만신창이가 된 윤리와 도덕을 시인은 애써 설파하고 있다.글로서, 시로서,이 시대의 불의를 보고서 무관심한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한 탁마(濯摩)의 의지,그것을 시로 쓰고 있는 시인은 결코 외롭지가 않다."그리움"은 언뜻 통속적인 의미로 다가오지만 그 안에는 형이상학적인 시대의 사명감을 통렬하게 반성하는 시어로 가득차 있다.그가 찾는 시어는 그래서 사랑과 관용이 아닐 수 없다.
조형은 시인의 "꽃비 주의보"
무르익은 봄날에 난분분(亂粉紛)하게 어지럽게 날리는 꽃 송이를 흔히 꽃비라고 하나.꽃송이들은 가지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딩굴고,봄날의 정취에 정신 뺏긴 사람들은 꽃비를 맞으면서 땅바닥에 떨어져 신음하는 꽃송이를 아무렇게나 밟고 지나치는데,머리에 꽃송이 떨어진줄 모르는 멧 종다리는 저희들끼리 사랑의 노래를 지저귀고 있다는 조형은의 "꽃비 주의보" ,詩語 하나하나에 탐미적인 색채가 강해 꽃송이에서 풍기는 향취로 눈을 못뜨게 하는 시,형용사를 선택하는 시인의 안목이 매우 고급스럽다.기상대의 태풍주의보는 사람들을 걱정으로 몰아넣으나 조형은 시인의 "꽃비 주의보"는 사람들을 달뜨게 하는 매력으로 넘쳐난다.적당한 기교는 오히려 시의 생명수가 된다고 한다. 조형은 시인의 시를 읽고나서 생각해본다.
최영옥 시인의 "파도"
갈망, 외침, 아픔, 허망,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같은 용어가 최영옥 시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좀더 인간적인, 그리하여 사람의 냄새가 풍기는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싶은 일념에서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멀리서부터 소리없이 밀려오다가 마침내 바위에 부딪쳐서 폭발하는 파도의 외침과 산산이 흩어지는 포말, 그속에 있을지도 모르는 과거의 잔영(盞影)들을 그리워하면서 사람아 사람아 하고 한숨짓는 최영옥 시인의 내면의 아픔은 남들에게 차마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유를 가슴에 안고 그 이유를 시에 되새긴다.구멍 숭숭 뚫린 그릇에 얼머나 많은 양의 아픔을 털어놓아야 그 그릇이 채워지는가, 그 무위(無爲)의 작업이 허망이란 것을 시인은 잘 알고 있다.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것들을 신앙으로 채우면서 늘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조그만 친절에도 감격하는 시인의 여린 마음은 오늘도 날개가 되어서 무한의 공간을 비상한다.하얀 얼굴에 까만 눈동자가 애잔해 보이는 시인의 가냘픈 손은 詩라는 친구를 향해 손짓을 거듭한다.맑고 청아한 조선 백자와 같은 시이다.
김란희 시인의 "낙엽"
빨갛게물든 낙엽을 보기 위한 관광 행렬이 절정에 이를 때 단풍을 보면서 상념에 젖는 시인의 마음이 있다.모진 추위를 견디고 나온 잎새가 울창한가 싶더니 어느듯 빨갛게 물든 단풍이 되고 단풍은 떨어져 거름이 되는 사계절의 변화속에 우리 인간들도 예외는 아닌 것같다.오랜 교사생활 속에서 얻은 체험과 삶의 연륜이 삶을 관조하는 반면교사가 되어서 이제는 생각이 깊고 행동에 잔가지가 처져 있는 것들은 수필로,그리고 짧은 상념은 시가되어 승화하는 오후의 삶을 살고있는 김란희 시인, 그의 시에는 범접치 못할 인생이 들어있다. 그리고 자연의 섭리와 질서,구원을 향해 갈망하는 몸부림이 들어있다.농축된 언어로 다듬어진 "낙엽"은 아직 철이 덜들어서 현상만을 쫓는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전해준다.그것은 자연의 순리이자 우리들 인생의 이정표같은 것들이 아닐 수 없다.
김정화 시인의 "고궁을 거닐며"
고궁(古宮)에는 역사가 존재한다.한양을 수도로 정한 조선조의 고궁은 서울에 밀집되어 있어 언제든지 쉽게 찾아갈 수가 있는 곳이 고궁이다.그런데 서울의 젊은이들은 고궁 보다 더 놀기 좋고 먹는 것이 유별한 곳을 고른다.강남이나 홍대 근처의 놀이터가 모여있는 곳, 그래서인지 덕수궁, 경복궁, 창덕궁 등 궁(宮)자가 붙은 커다란 옛날집은 썰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적어도 2백년전 사람들, 그것도 과거(科擧)에서 선발된 수재들이 벼슬살이 하던 고궁은 일반 서민들에게는 불가촉의 장소였다.고궁에는 임금이 있고, 신하가 있고 궁녀가 있고,드라마 대장금처럼 음식을 만드는 대규모 식당이 있었다.참 내시(內侍)도 있었지.해가 뜨면서 시작이 되는 고궁의 하루를 생각하면서 김정화 시인은 고궁의 뜰을 거닐다가 문득 그 시대의 어느날로 들어가보는 유체이탈(遺體離脫)을 경험해보는 착각을 일으킨다.왕의 여자가 되어보고,부귀영화속에 허물어지는 권력, 그 뒤안길에서 세월의 무상을 맛보기도 한다.생각이 깊은 시인의 상념(想念)은 오늘 내가 서있는 자리가 어디인가를 되묻게 한다. 그것은 어쩌면 선문답같은 것일지 모른다.이름있는 화가이기도 한 김정화 시인의 잘 정제된 시한편 읽는 재미도 고궁뜰을 거니는 멋과 비슷하리라 본다. 김영석 시인의 "그곳에 가고 싶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면서 행동하는 신앙인,김영석 시인의 시제(詩題)처럼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그곳은 어디일까? 성서속의 시온일까?시온의 영광이 빛나는아침 어둡던 이 땅이 밝아오네, 슬픔과 애통이 기쁨이되니 시온의 영광이 비춰오네. 경배하라 찬양하라 영원하신 우리 왕 존귀하신 영광의주 그의 백성 구하시리하는 찬송가 귀절처럼 김영석 시인이 갈구하는 곳은 현재 존재하는 어느 지점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 하나님의 영광이 태양처럼 빛나는 그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교육자로서 한국화 화가로서 사회사업가로서 일인 3역 4역을 맡아 바쁘게 하루를 보내는 그에게 사랑과 평화는 나누어 줄 수 있는 모든 것이 된다.하나님이 갖고 있는 끈에 연결이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면서 시서화(詩書畵)를 그분의 뜻에 따라 쓰고 짓고 그리고 하는 김영석 시인의 하루는 그분이 좋아하는 하루의 일과와 일치한다. 시온의 눈부신 아침처럼...
최중재 시인의 "밤"
시화전에서 남긴 시 한편을 상대로 작가의 인생까지 끌어들이기에는 너무나도 염치가 없는 일이다.특히 인생의 대선배로서 신앙인이면서 교육자이고 사회사업가이기도 한 최중재시인의 경우 더욱 그렇다. "밤" 개가 인기척을 알고 억척스럽게 짖어대는 밤에 홀로 떠나는 나그네의 발길이 두렵고 외롭다.다리가 아파 쉴곳을 찾지만 마땅한 자리가 없다.새벽이 오기에는 한참의 시간이 더 지나가야하는데,나그네는 아픈 다리를 절름거리면서 미명(未明)의 시간을 지나서 밝음을 찾아간다. 그러나 밤의 어둠이 가시기에는 아직 멀기만 할뿐이다.최중재의 밤에 내재되어있는 것은 그가 올곧은 신앙인으로보아서 구원받을 자가 애타게 찾는 그분의 손길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초년시절, 거의 독학으로 학비를 벌어가면서 학부를 졸업한 시인의 뼈저린 과거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은 구약(舊約) "이사야"서 어딘가에 있음직한 귀절, 내가 너와 함께하리니였을 것이다.시인은 과거의 경험을 살려 밤 한가운데서 길을 잃고 허둥대는 구원이 필요한 자들의 벗이 되어 그들의 손을 끌어주고 싶은 여념으로 이제까지의 삶을 지탱했다.최중재 시인의 밤은 잠을 자게 만드는 그런 안락한 밤이 아니라 욕심과 탐욕, 시기와 질시,분노와 원망과 같은 동일하지만 그 성격이 판이한 모든 것을 해방시켜주는 그런 밤을 일컫는 것이리라.그 가운데 시인이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珍松 문희숙 시인의 "인생(2)"
계약된 시간과 옥조이는 인간관계에서 벗어난 사람만이 진정한 자유를 느낀다고 한다면 진송 문희숙 시인은 그 가운데 선택받은 한 사람으로 남을 것같다.진송의 시는 점차 시간과 공간속에서 존재하면서 발버둥치고 살아가는 사람들 위에서 내려다보며 사람이 사는 방법을 한 수 가르쳐 주는 달관한 선사(仙士)가 되어가는 것같다.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고 방관자로 살아가는 모습은 계산과 이재에 능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통하지 않는 어리석음이다. 그 어리석음이 진리로 돌아 왔을 때 그가 쓴 시가 더욱 돋보이게 된다는 것을 예전에는 몰랐을 것이다.50년을 넘게 혼자 살아온 시인의 삶의 철학의 한귀절은 마침내 시가 되고 진도 아리랑의 또 다른 한맺힌 가락으로 남게 될 것이다.옛 선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진송 문희숙 시인도 법칙을 따라야하는 사바세계의 너울에서 자유로운 탈출을 기하고 있는 것이다.그것이 "인생2"에 조명이 되었다면 잘못 본 것인가. 향강 張貞文 시인의 "진초록 詩"
향강 장정문 시인의 그리움과 모든 색깔은 과거에 맞추어져있다.시인의 과거속에는 현재에 없는 것들이 들어있기 때문이고 시인은 이것들을 꺼내서 냄새도 맡고 입도 맞추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다.시인이며 소설가이며, 신학박사이며, 성공회 신부이면서 휴매니스트,이름위에 걸쳐진 옷들이 너무나도 두텁고 거창해서 때로는 이 옷들을 벗어버리고 한없이 달려가고 싶은 노시인의 마음은 그래서 소설이나 시, 문자로 된 모든 장르들을 고향 인 이북의 성천강 언저리에 두고 있다.그곳에는 정다운 얼굴둘, 때묻지 않고 소박한 사람들의 마음들이 남아있는 것같다. 남들이 바캉스를 떠난다고 부산을 떠는데 시인은 진초록 심산유곡을 찾아가 홀로 시를 쓴다, 그 시는 지나온 시인의 인생이다.주마등처럼 지나간 과거속의 그림들을 불러올 수 없지만 머리속에 남아있는 잔상(盞像)을 꺼내 투영해보는 작업, 그것은 시가 되고 그 시대를 살아온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꺼리로 남는다.때로는 삶이란 여럿이 함께 있다고 외로운 것도 아니고 홀로 있다고 고독한 것이 아니란 것을 이미 터득한 노시인의 노래,그것이 진초록 詩가 아닌가.
글 김광한 1944년 서울 용산 출생 중앙대학교 문리대 국문학과 69년 졸업 한국문인협회 회원<소설가 문학평론가> 저서 백두대간, 로만칼라, 소설 순교자 윤유일 등 30여권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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