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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기갑 하나 더 갑니다.
기갑장교 롤프 헤르텐스타인 :
폴란드. 프랑스
롤프 헤르텐스타인은 프랑크푸르트 태생으로
1937년 11월 독일군에 자원 입대했다. 부대는
제2 Panzer Division. 당시 구데리안 중장 지휘를
받는 히틀러의 가장 성공적인 기갑부대 중 하나였다.
1939년 9월 폴란드 국경을 넘어 공격한 사단이고,
헤르텐스타인은 4기갑연대 부사관으로 있다가
장교학교에 들어가 1940년 4월 소위로 임관,
사단으로 돌아와 프랑스 침공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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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War II: 1939년 9월 1일, 폴란드 침공이 생애 첫 전투셨죠? 전투 경험이 어떠셨습니까?
Hertenstein: 첫날 전투는 기억할 것이 별로 없어요. 당시 난 상병으로 4호전차 사수였어. 승무원은 5명으로, 우리 탱크장은 하인츠 메예르 소위였으며 소대장이었어.
첫 공격 때는 좀 웃겼어. 폴란드에서 꽃을 던지는 그런 건 없고 진지했어. 크라코프 남쪽에서 출발해 렘베르그로 진출했는데, 폴란드 도로가 독일보다 안 좋아. 포장도로가 좀 좁아. 그 시기 폴란드는 산업화보다는 좀 시골 같았어.
폴란드군 첫 대전차포를 만났을 때가 생생해. 위장이 괜찮아서 못 봤어. 숲 가장자리에서 거리 600~700m로 우릴 쐈는데 빗나갔어. 여기서 누가 맞췄냐 말이 많았는데, 내가 쏜 2탄이 대전차포를 맞췄어.
사단에서 3기갑연대가 우리 자매 연대인데, 3연대는 첫날 피해 엄청 났어. 둘째 날인가는 폴란드 장교학교 후보생들이 우리와 맞서 싸웠어. 폴란드 사람들 정말 목숨 걸고 나오더라고.
WWII: 이 당시 세계는 폴란드 침공에 충격도 받고, 독일군 기갑 전술도 정말 새로웠습니다. 기억나는 일 있습니까?
Hertenstein: 렘베르그 근처 어느 밤, 우리 중대가 정찰을 나갔어. 기갑부대 야간정찰은 아주 낯설어. 탱크 밖을 제대로 못 보니까. 왜 시켰나 몰라. 우리 앞에 3호 전차가 있었고, 전차장이 예비군에서 들어온 나이 많은 중위였어. 1차대전 참전자야.
정말 컴컴한 밤에 길을 따라 좀 가는데, 갑자기, 커다란 서치라이트가 우리에게 켜져. 눈이 멀 것 같았고, 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
(중대장) 스트라이글러 중위가 쏘라고 고함을 질렀는데, 난 메예르 소위에게 너무 컴컴해서 앞 전차에 오발할 수 있으니 못 쏘겠다고 했어. 소대장이 앞 전차장에게 길에서 벗어나 노변으로 대게 했어. 메예르 소위가 앞 탱크에게 “비켜!” 했고, 그들이 그렇게 하는데 도랑에 박으면서 궤도 한쪽이 이탈했어.
이제는 내가 잘 보여서 초탄 발사하고 기관총도 쐈어. 라이트가 꺼지고, 그게 끝이야. 더는 안 갔던 것으로 기억해. 사격도 안 받았어. 그 서치라이트는 폴란드군 대공포대 같아.
WWII: 어떤 위기 상황은 없었습니까?
Hertenstein: 날이 밝고 늦게 다른 방향으로 기동하는데, 좀 되는 폴란드군 병력이 남쪽으로 돌파하려고 해. 근처 마을에 우리 보급중대가 있었다가 그 폴란드군에게 공격당했어. 우리가 그리로 갔지. 마을 중심에 큰불이 나고 병사들이 사방에서 쏴. 우린 상황 잘 모르겠고.
마을에 말들이 정말 많이 죽었어. 나는 항상 가축들이 그렇게 불쌍하더라고. 말이 죽으면 잠깐 송장이 부풀어. 봐서 좋을 게 없는 그림이야.
우리 탱크는 도로 왼쪽에 있고 반대편에 3호 전차가 있었지. 우리 4호와 비슷하지만 3호는 좀 작아. 그 3호는 37mm 주포에 바이첼바움 소위가 전차장이었는데, 우린 같이 도로로 전진했어. 안개가 꼈고 초가지붕들에 불이 나서 연기도 꽉 찼어. 잘 안 보이니 살살 몰았어.
갑자기 안개와 연기 속 저 앞에 섬광이 번쩍! 폴란드군 포탄이 우리 두 탱크 사이로 날아갔어. 탄이 한 1.5m 차이로 빗겨갔어. 메예르 소위가 쏘라고 명령했는데 적이 뭐가 보여야지. 안 보여서 조준 못 한다고 대답했어. 포탑이 12시 정방향 상태에서 좌로 약간 틀었는데, 거기서 다시 섬광이 번쩍, 다른 포가 또 쏴. 그 포탄도 두 탱크 사이로 지나갔어.
나도 쐈어. 그리고 조용해져. 잠시 후 조심스레 다시 나가는데 걀가 37mm 대전차포를 둘러싸고 포반원들이 쓰러져 죽었어. 다음 탄을 포구에 넣는 중이었나 봐. 그 탄 쐈으면 우리가 끝이었을 거야. 폴란드 전투에서 기억나는 하나야.
WWII: 폴란드군은 3주 만에 붕괴했습니다. 끝은 어떠셨어요?
Hertenstein: 렘베르그 근처에서 전쟁이 끝났어. 우린 뒤로 돌아갔어. 폴란드는 우리와 러시아가 나누어 가지는 거였고. 폴란드에서 러시아군은 직접 못 봤어. 난 폴란드에서 공격 전투 6회 참가했고 전투는 짧았어. 2주 반 정도였나? 비엔나로 복귀했어.
WWII: 공세가 신속했는데 체험 상 어떠셨나요? 사기는 어땠습니까?
Hertenstein: 사기는 최고였어. 1차대전 영상 보면 어디 입성할 때 꽃 던지고 그렇잖아? 그런 거 없더라고. 우린 생각했지. ‘아, 이제 전쟁 맞구나. 우리가 바라던 것이 이제.’ 우리가 크게 흥분하진 않았고, 사실 전쟁을 진짜로 바란 것도 아냐. 누구나 사망자 중 하나가 될 수 있어. 전투를 길게 하면 할수록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걸 느껴.
WWII: 폴란드 침공은 두 세계대전 사이에서 독일군 기갑을 시험하고 발전한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전투 상황에서 1호 2호 3호 4호 전차들은 어땠습니까?
Hertenstein: 앞서 말했듯 난 4호를 탔어. 그 당시는 가장 무거웠지. 그 시기 다수 전차는 조그만 1호 전차야. 승무원 두 명, 하나는 조종수 하나는 사수. 포탑에 기관총이 2정 달렸어. 1호가 아마 6~7톤 될걸? 장갑도 얇아서 기관총과 소총탄을 간신히 막았어.
2호는 약간 나아. 10t에 3명이야. 무전병이 포탑 후방에 앉아서 추가된 거야. 20mm 자동 캐논포와 기관총이 포탑에 달렸지. 난 2호 안 좋아했어. 3호와 4호가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1938년 여름에 나왔는데, 당시는 우리 기갑중대가 3호 3대와 4호 3대로 구성했어. 난 5중대였는데, ‘heavy’ company라 불렸어.
3호는 37mm 포가 달리기 시작했고 나중에 50mm로 업그레이드되지. 2호가 한 20t. 일부 5호는 포탑에 여전히 기관총 2정이기도 했어. 하여간 3호는 무전병 승무원이 쓰는 기관총 하나가 더 늘어. 3호의 포는 거의 대전차포 구경과 같았어. 그걸로 기갑-관통탄을 쓰는 거야.
4호는 원래 전투지원용으로 나왔어. 75mm 주포는 구경이 큰 포와 상대하는 역할이지. 경 탱크들이 위험할 때 – 피할 때까지 4호가 엄호해 주는 거야. 포탄은 세 가지야. 1. 고폭탄 2. 장갑관통탄 3. 차장용 연막탄. 우리 3호와 4호를 대적할 건 폴란드에 없었지. 폴란드도 탱크가 좀 있긴 했는데, 8~10t에 37mm 포야. 영국 탱크 카피한 것 같았어.
WWII: 싸워보니 폴란드군이 어떤 것 같았습니까?
Hertenstein: 폴란드군은 평균적으로 잘 싸웠는데, 병기가 우리보다 떨어졌고 폴란드군은 기회가 없었어. 폴란드 공군은 개전 초반에 격파됐고, 폴란드군 전차는 우리 1호 전차보다 약간 나은 정도야. 우리 4호랑 붙으면 쓸모가 없지. 4호의 장갑이 두꺼운 건 아니고, 75mm 포가 있잖아. 직경이 거의 3인치 포탄이야. 폴란드 탱크 주포보다 훨씬 굵었지.
WWII: 당신의 지도자였던 아돌프 히틀러의 정부가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 시절 나치는 어땠습니까? 나치를 신봉하는 쪽이었나요?
Hertenstein: 그 당시 우리 대부분은 정치적인 것이 뭔지 몰라도 나치를 지원하는 쪽이었어. 우린 정치 외교 거 잘 몰랐어. 전쟁 전에는 군대가 2년 복무였는데 어마어마한 사람이 군대에 갔어. 분위기가 그러니 다 국가에 충성할라 그러지.
WWII: 침공 직전에 친위대가 폴란드 군복을 입고 라디오 방송국을 위장공격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폴란드 내) 어떤 수용소들은 감시병들에게 폴란드 군복을 입혀서 자기들이 안 그랬다고 그랬죠. 당시 군인으로 이런 거 진심으로 믿으셨나요?
Hertenstein: 그럼. 그 시절에는 다 그렇게 생각했어.
WWII: 폴란드 침공이 일어나자, 영국과 프랑스가 1939년 9월 3일 독일에 선전포고했습니다. 충격 같은 게 있었습니까?
Hertenstein: 우린 놀랐고 불편했지. 우린 지도자가 뭘 하려는 건지 정말로 몰랐어. 그 시절 독일은 확장하고 싶어서 전쟁을 바랐어. 게다가 폴란드 침공이 너무 빠르게 끝났고.
WWII: 2기갑사단이 비엔나도 돌아와서 얼마 있다가 프랑스 침공에 참가했습니까?
Hertenstein: 그때 난 소위로 임관했고, 4호 탱크 두 대로 편성된 소대장이 됐어. 당시 우리 중형탱크중대는 4개 소대에, 소대마다 탱크가 네 대였지. 폴란드 침공 당시 나의 메예르 소대장은 모병장교 출신이었어. 이제 소대장이 되니까 승무원이 한 명 빼고 바뀌었지. 시기는 기억이 잘 안 나고, 탱크를 몰고 서쪽 국경으로 갔어.
WWII: 2기갑사단도 구데리안의 19차량화군단 휘하였죠. 프랑스 침공이 시작된 1940년 4월 10일에 상대는 어땠나요?
Hertenstein: 침공 첫날 룩셈부르크를 지나 벨기에 남부로 갔고, 이어서 프랑스 세단으로 들어갔어. 뫼즈강이지. 강 도하 동안에서 기다렸어. 프랑스가 다리를 폭파해서 건널 수 없었거든. 그때까지 전투를 못 봤어. 세단의 고지에 앉아서 스투카가 프랑스군 요새를 무자비하게 폭격하는 걸 봤지. 한 비행단이 하고 재무장하러 갔다 오는 동안 비행단들이 연이어 폭격해. 온종일 폭격했어. 스투카가 급강하할 때 사이렌이 폴란드가 프랑스나 사람 긴장감을 긁지.
WWII: 프랑스 침공 시작에서 뫼즈강이 자연적 장애물이 되어 이틀을 허비했죠. 공격이 시작된 때를 묘사해 주시겠습니까?
Hertenstein: 보병이 만든 가교로 강을 건넌 후부터 거기 요새들과 싸우면서 전진했어. 그 유명한 마지노선 최북단 지역이야. 거기 온갖 종류의 프랑스군 벙커가 있어. 기관총좌 외에도 캐논포가 있는 벙커도 있어. 그게 좀 괴롭혔지. 얼마나 피해가 있었는진 기억이 안 나.
프랑스군이 우릴 잡을 정도 위협으로 쏜 건 75mm 외에 없는 것 같아. 우리도 주포로 벙커를 격파하고 통로를 열어서 지나가는 거야. 가다가 벙커가 우릴 쏜다고 돌아가서 뒤를 때릴 수가 없어. 딱 그렇게 못하는 곳에 벙커를 만드는 거야. 일대에서 딱 걸리는 곳, 그런 데마다 벙커가 있었어.
그런 벙커 격파 건투가 상당히 거칠어. 요새를 만나면 진행이 느려지고, 이게 간단하지가 않아. 벙커들과 마지노선, 두 가지가 섞여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 몇백 미터만 가면 또 벙커야. 어떤 건 100m 간격도 안 돼. 그런 게 우릴 쏘기 전에 모르는 거야. 어떤 건 위장이 너무 잘 돼서 정말 안 보여.
보병이 얼마나 가깝게 따라왔는진 모르겠고, 요새 공격에 얼마나 지원했는지도 모르겠는데, 직접 공격은 우리 전차들이었어. 벙커들이 정리되기 전엔 탱크 밖에 못 나가. 보병도 벙커를 격파했어. 내 탱크가 벙커를 얼마나 많이 깨트렸는지는 셀 수가 없어. 그냥 하루 종일 전투야. 프랑스 포병도 주야로 쏴. 결론은 마지노선이 1차대전 때나 효과적인 거야. 현대전이 되면서 가치를 잃었지. 우리 부대가 그걸 무너트린 존재였고.
WWII: 프랑스와 영국은 마지노선이 그렇게 빨리 무너지자 크게 당황했죠. 그런 콘크리트 방어선을 만났었나요? 아니면 비슷한 것이라도.
Hertenstein: 그 프랑스 방어지대를 통과하고 나서는 영국해협을 향해 그냥 달렸어. 큰 방어점도 없었어. 어쩌다 한번 우리가 나가서 뚫고, 나머지는 그냥 달리는 거야.
WWII: 그때 작전 템포는 각별했습니다. 독일군 속도는 더욱, 더, 더 빨라졌죠. 너무 빨라서 문제는 없었습니까?
Hertenstein: 5월 15일경에 멈춰야 했어. 우리 앞에 강한 영국군 탱크부대가 벨기에 쪽에서 나타나 내려왔어. 나중에 듣기론 히틀러가 정지하라고 했다네. 구데리안이 집단군 사령관한테 가서 물었지. 왜 멈추냐고. 그랬더니 ‘강한 정찰(전투정찰)’이 필요하다고 했어. 앞에 아무것도 없고 너무 빠르니까 혹시 뭐가 있나 불안했었나? 전혀 아닌데 멈춘 거지. 뭐야 그게. 무력정찰(heavy reconnaissance)?
우린 하도 빨리 진격해서 영국군 보급창도 손에 넣어 영국 담배 좋은 거 얻었지. 프랑스 담배는 구토 나와.
어느 마을로 들어가는데 영국군이 포탄 포장을 까놓지도 않았어. 사격 준비가 안 됐어. 그렇게 빨리 올 줄 모른 거지. 그렇게 돌파해서 5월 20일에 해안가 아베빌에 도달했어. 우리 중대는 그때 온종일 달렸어. 아베빌 15~20km 남기고 연료가 떨어졌고, 1대대가 우리 뒤에 따라오다가 선두로 나가서 아베빌에 입성했어. 그걸로 자기들이 유명해졌어. 기분 안 좋지. 가봤더니 아베빌에 뭐 아무것도 없어.
WWII: 아베빌 포위는 프랑스 1군과 7군을 덩케르크 근처 영국 원정군과 차단한 셈으로, 연합군이 프랑스에서 희망을 포기하는 데 꽤 기여했습니다. 그다음은 어디로 갔습니까?
Hertenstein: 거기서 북으로 들어서 뇌프샤텔로 갔어. 불로뉴쉬르메르 남쪽 도시야. (불로뉴쉬르메르 : 프랑스 북부 도버 해협에 접한 도시) 거기 전투가 살벌했다니까. 우리 7중대 3호 탱크들이 교차로에 도달했는데 양쪽에서 발포했어.
적이 우리 3호 전차 몇 대 격파했어. 우리 중대가 바로 뒤였는데, 왼쪽으로 기동해서 우회하란 명령을 받아. 우린 대전차포를 밀어내려 했어. 그때 내가 우리 중대 선두 전차였고, 왼쪽으로 틀어서 우회한 다음 원래 진입 방향으로 들어갔어.
프랑스군이 도심 입구를 자동차들로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길을 막아놨어. 뭐 그렇게 특징 있는 거리는 아니었는데, 바리케이드 앞에 탱크를 정차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난감했어. 그때 중대장이 무전기에 등장했어.
“뭘 기다려! 그냥 바리케이드를 타고 넘어가 버려!”
그래서 그냥 밟고 밀었지. 그렇게 바리케이드 위로 긁고 올라갔는데, 우리 탱크 20톤이 눌러버리더라고. 낮아졌어. 그렇게 지나갔어.
교차로를 만났는데, 조용한 거리에 우리 탱크 엔진 소리만 덜 덜 덜 덜 퍼져. 프랑스군이 어느 건물 모서리로 대전차포를 빠르게 끌고 왔어. 이게, 문제가 그 길 너비야. 난 그 대전차포가 쏘기 전에 탱크를 돌려야 했어. 안 돌리면 포탑이 그 대전차포를 조준할 수가 없어. 그러다 어느 틈에 내 주포가 어느 건물 안으로 들어가 있는 거야.
부릉부릉 탱크를 빼서 돌리려고 재차 시도하는데, 이젠 대전차포가 안 보이는 각으로 틀어졌어. 내 탱크를 본 거지. 탱크를 돌리다 돌리다 이제 아무것도 안 보여. 세 번을 시도했는데 탱크가 안 돌아가. 뭐에 걸렸는지 나가보기 전엔 몰라. 다른 탱크들은 바리케이드에 가려서 우리 탱크 상황이 안 보이고.
난 상황을 중대장에게 무전으로 보고했어. 그러니까 뒤로 빼서 왼쪽으로 멀리 빠져 있으라네. 불행히도, 길이 너무 좁아서 탱크를 돌릴 수가 없어. 그래서 후진으로 빠졌어. 그런데 가다가 또 막혀. 탱크 뒤에 바리케이드까지 온 거야.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네?! 그냥 그렇게 있을 수밖에 없어. 중대장에게 더는 못 움직인다고 보고했고, 그냥 여기 있겠다고 했어. 우리 중대가 앞으로 다 나갈 때까지 그렇게 기다렸어.
WWII: 선생님 탱크가 적 지역 깊숙이 홀로 고립됐고 외로웠겠습니다. 그다음은 어떻게 됐나요?
Hertenstein: 난 대체 어떤 상황인지 확실히 보기로 결정했고, 장전수와 사수에게 안에 머물라 하고, 내가 나갈 테니 엄호해달라고 했어. 탱크 안에는 기관단총 두 정이 있고, 모든 승무원이 루거 권총을 가지고 있지.
난 조종수와 무전병에게 날 따라 나오라 했고, 일단 가까운 건물을 수색해서 안전을 확보하려 했지.
우리가 탱크에서 뛰어내리자 사수도 포탑에서 따라 나왔고, 프랑스군 포로를 20명 잡았어. 학교에서 프랑스어 조금 배웠거든. 숨었던 곳에서 나오더라고. 그들은 전투에 가망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러면서 우리 탱크 뭐가 문제였는지 살피자! 후방 기동륜으로 갔어. 톱니바퀴처럼 생겨서 궤도를 밀어 보기륜에게 전달하는 축이지.
기동륜에, 커다랗고 동그란 금속 링이 끼어 있는 거야. 그게 기동륜 축에 걸려 있어. 그게 압착되어 완전히 잠근 것처럼 잡은 거야. 그러니 궤도가 안 걸리고 미끄러져. 왜 그렇게 됐겠어? 뭐에 맞은 거야. 기동륜 옆에 뭐가 터지지 않고는 그렇게 될 리가 없어. 우리가 망치로 쳐서 뺄 수준이 아니야. 그런데 후진으로 돌릴 때는 또 기동륜에 궤도가 걸려서 넘어간 거야. 말로 설명하기 뭐 하게 딱 그렇게 박힌 거야.
우린 거기 맞았던 걸 알지도 못했어. 탱크 안에서 기관총을 갈기고 있어서 못 느낀 거야. 원래 시끄러운데 해치 다 닫고 기관총까지 안에서 쏘면 정말 몰라. 탱크가 데미지 입은 걸 생각도 못 했지. 오후에 정비반이 와서 고쳐줬어.
(생뚱 주 : 앞에 나온 지명과 똑같은 조금 유명한 뇌프샤텔 치즈는 하얀색 케이크 같은 통치즈로 유명. 3년 전 농원 조성 노가다하면서 치즈 공방 때문에 치즈 서적 읽었는데, 치즈 종류가 너무 많으니 조심할 점 : 생김새와 색깔과 맛은 존나 다르다! “오빠 저 치즈 이쁘다, 사조.” 치즈 외모에 속으면 개난망. 어떤 건 모양 색깔 죽이는데 갱상도 말로 – 맛이 스거. 완전히 스근 맛. 한국인은 치즈 모양 때깔이 아니라 냄새부터 맡아보기 바람. 그런데 썩은 내 나는 치즈가 비쌈. 일종의 묵은지?ㅋㅋㅋ 쌍팔년 올림픽에서 2주간 서양인들과 부비부비하고 얻은 현실은 하나 : 안 씻으면 치즈 썩은내가 난다. 암내 심한 사람은 한국인 레벨 사건의 지평선 저 너머다. 물론, 준다면 그래도 받는다!)
WWII: 프랑스 침공 시점에는 프랑스군 기갑도 상당히 발달한 상태였습니다. 혹시 프랑크 탱크와 맞선 적 있으십니까? 또한 프랑스 보병과 대전차포는 어땠습니까?
Hertenstein: 프랑스군의 탱크전투 철학이 우리와 달랐어. 우리 철학은 공격이 최고의 방어다! 그런 방식으로 육성했어. 우리는 자력으로 지탱하는 사단이고, 적 방어를 돌파해 계속 가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러는 동안 남은 병력은 돌파부대 좌우 측면과 후방을 엄호해.
무거운 프랑스 중형 탱크를 한번 봤어. 아마 Char B.2, 거대한 괴물 같아. 그렇게 큰 탱크는 본 적이 없어. 장갑도 정말 두꺼워서 우리 포로 뚫을 수가 없어. 우린 르노 35B 비슷한 모델을 쏴봤어. 그 대형 괴물은 싸우면서 본 게 아냐. 하지만 프랑스 탱크는 우리 것보다 느렸고, 그거 너무 크게 만든 거 아냐?
WWII: 선생님 사단이 아베빌을 점령하면서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덩케르크 인근에서 덫에 갇히는 운명이 됐습니다. 그런데 왜 2기갑사단이 북쪽으로 올라간 겁니까?
Hertenstein: 블로뉴 방어가 상당히 강했거든. 멈췄던 직후에 계속 기동한 거야. 그때 강력한 독일군 포병을 처음으로 봤지. 프랑스군 성채에 쏘는 우리 박격포 구경이 장난 아냐. 그때도 산에 앉아서 구경했어.
내 기록에 따르면 거기서 전투가 좀 있었는데 자세한 건 기억이 안 나네. 포병이 성채에 퍼붓는 게 기억나. 도시가 그냥 무너졌지. 북으로 그렇게 멀리 간 건 아냐. 던케르크 전투도 점점 격앙되고 있었거든. 히틀러가 기갑 전력을 거기 쓰고 싶지 않았고, 우린 명령을 따르는 수밖에. 우리가 다른 데 간다고 놀 수 있던 때가 아니야!
샴페인 지역에서 뒤로 빠지란 지시를 받았어. 마지막으로 한번 밀어버리려는 것 같았고. 거기서 남으로 틀어 스위스 국경 근처까지 가. 거기서 하루 이틀 Weygand Line을 공격했는데, 이 전투도 아주 격렬했지. 프랑스군이 성채 같은 데 들어가 급편 방어를 편성했어. 마지노선하고는 또 전혀 다른 종류야. 강력한 포격도 몇 번 받았어. 전과 같이 결국 돌파했지. 열리니까 더 빠르게 달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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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ygand Line – 프랑스군이 1940년 5월에 형성한 솜(Somme) 남부에서 크로자 운하 - Ailette/Aisne 강을 연결한 방어선 개념. 던케르크에서 프랑스/영국군이 고립되자, 독일의 전격전 진격로 밑을 수평으로 그어 만든 방어선 혹은 방어선 개념. 작전 개념이라기보다 프랑스 신문이 헤드라인에 명칭을 만들면서 명명처럼 되었다. 오래 버티지 못하고 붕괴하며 파리까지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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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II: 5월 10일 이후로는 전투가 가차 없었는데, 부대 인원 장비에 피해는 어땠습니까?
Hertenstein: 내 탱크가 그 시점부터 기술적인 문제가 좀 생겨. 당시 사단은 브장송 도달 직전에 북동으로 틀어서, 결과적으로 마지노선 뒤쪽으로 가게 됐지. 이와 동시에 라인강을 건너서 독일군이 동쪽에서 프랑스를 공격해. 프랑스는 손 들었지 뭐. 6월 22일 항복했어. 그렇게 끝났지. 그렇게.
WWII: 전투 진행이 너무 빨라서 견고한 방어를 편성하기도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시기를 통해서 사기는 어땠습니까?
Hertenstein: 사기는 정말 최고였어. 1차대전 때는 양쪽에서 수십만 명씩 죽었잖아. 몇 km 때문에 엄청나게 죽었지. 영국해협을 향해 하루 100~150km 달리던 게 최고의 날들이었지.
WWII: 상대 프랑스군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폴란드와 비교한다면?
Hertenstein: 프랑스 병사들은 괜찮았어. 초반에 사기가 꺾인 게 문제야. 우리가 그들 방어선을 돌파하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시작이 그러니 해안까지 관통된 거지. Weygand Line도 뚫렸고. 프랑스군은 일관성을 잃어버리면서 초기에 상당했던 군기도 흩어졌지. 퇴각하던 프랑스군이 정지해서 우리와 대적하면 보통은 잘 싸웠어. 그런데 부대별로 연합하는 힘이 없어. 부대가 따로 놀아. 한번도 조직적으로 뭉쳐서 우릴 막지 못했어. 무기력해진 거지.
WWII: 최고사령부가 연합군 33만 명을 던케르크에서 탈출하게 허용한 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거대하게 모여서 고립된 상태를 놔뒀습니다. 덩케르크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Hertenstein: 그러니까 내 말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아직도 논쟁거리야. 히틀러가 스탈린그라드에서 6군을 소모시킨 것과 같은 수준의 미스터리야. 우린 믿을 수가 없었어. 고민해봤자 지금도 답이 안 나와. 그걸 알고 싶어서 내가 책, 보고서, 많이 읽었다니까. 오래도록 찜찜했거든.
던케르크에 큰 야포들까지 버리고 갔어. 괴링은 뭐한 거야? 그렇게 모여 있을 때 폭격하면 연합군은 지옥이 따로 없었을 텐데. 히틀러가 공격하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 정도 같아.
괴링이 그랬다지. “총통. 거기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괴링은 입만 살아 가지고. 그래 놓고 공군은 뭐한 거냐고. 그다음은 영국과의 히틀러 협상설이지. 난 모르겠어.
난 직접 봤지. 영국군은 거기서 방어진을 형성하지 않았어. 그럴 수도 없었을 거야. 기갑부대가 진입하기 힘든 지형이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가 거기서 탱크를 몰았잖아. 물론 앞에까지만 가고 해안에 들어가진 않았어. 그러니 의문이 남는 거야. 왜 도망가게 놔뒀지? 화내는 건 아니지만, 실망이야.
WWII: 연합군이 덩케르크 철수에 실패했다면, 독일군의 프랑스 승리는 최고의 결실이었을 겁니다. 1차대전 경험과 비교해서 성공에 너무 만족한 건 아닐까요?
Hertenstein: 몰라. 하지만 프랑스에 진입할 때 복수의 마음은 분명 있었지. 승리란 이름의 강한 만족감도 사실이야. 1차대전에 비하면 그런 큰 승리에서 우리 피해가 얼마 되지도 않았거든.
WWII: 폴란드와 프랑스 전선에 참가하고 철십자훈장도 받으셨습니다. 훈장 받은 기억이 많이 나십니까?
Hertenstein: 오늘날까지 처음 얘기하는 건데, 마지노선을 넘고 뫼즈강을 건널 때 난 남달랐어. 내 외할아버지가 1870-71년 프랑코-프러시아 전쟁 세단 전투에서 철십자훈장을 받으셨어.
나도 거기서의 공으로 받은 것이거든. 훈장을 받을 때 중대장은 이미 폴란드 전선에서 나에게 철십자훈장 상신이 있었는데, 취합하여 이렇게 수여하게 됐다고. 폴란드 전투 공으로 메예르 중위가 2급 철십자훈장을 받고, 또 1급까지 두 개 받았어.
2급 철십자훈장은 1급을 주기 전에 받는 게 통례야. 그러니 폴란드에서 1급 철십자훈장은 흔히 보기 힘들었는데 기갑부대는 1급 철십자훈장을 바로 주곤 했어. 메예르 중위 탱크의 포수는 2급을 받았어. 사실 전차장도 포수 없이는 아무 전과도 못 내거든? 어쩌면 탱크는 주포 사수가 모든 것이야.
나는 세 번의 탱크 돌격으로 기갑공격휘장을 받았지만 폴란드 돌격 경력이 빠졌어. 프랑스 전과만 훈장을 준 거지. 내 탱크 승무원들은 기갑돌격휘장 받았고 프랑스에선 탱크 돌격 6회였어.
WWII: 프랑스 전투가 끝나고 승리를 만끽할 기회가 있었습니까?
Hertenstein: 프랑스 전투 끝나고 비엔나로 복귀했어. 우리 탱크들로 2사단 전체가 참가하는 승리 퍼레이드를 했지. 사단장 루돌프 파이엘 소장을 위한 퍼레이드로 기억해. 비엔나 거리를 우리 탱크들이 울렸고, 사람들이 붐비며 환호했어. 그때까진 세상 다 가질 것 같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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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진국 군대의 특징이 경험많은 부사관들과 위관장교들의 숫자가 많은 것 같습니다. 창끝 전투력을 구성하는 인원들을 줄이지 않음으로서 객관적인 전력을 유지하는것 같네요
귀한 참전수기 달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