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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녹색평론》독자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이승용
(왼쪽 부터, 오남준, 이효성,이민철,조명섭, 사진밖 이승용)
[광주전남 녹평독자 모임의 탄생부터 지금의 모습]
오남준 :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보다는 사람들이 늦게 오고, 지난번 5번 모임은 책이야기도 잘 못했어요.
그래서 형님(이승용)이 지난번 오셔서 모임에 나온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제안했고, 그 기록된 것을 못 나온 사람도 볼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지난번에 제가 연락을 했는데, 민철씨가 계속 못하겠다해서 제가 했어요. 어떻게 보면 연락하는 것도 책임이라면 책임인데,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정했으면 좋겠다라고 했었고, 회장은 아니지만 모임에 대표도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라는 이야기가 되고 있어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죠.
이효성 : 그러면, 그러면..
오남준 : 이 이야기를 지금 해버리면 책이야기를 못 할 것 같고, 책이야기를 먼저하고 민철씨가 9시까지 온다고 했으니깐, 9시부터 이 이야기는 했으면 해요.
이효성 : 6월 3일날 김종철 선생님이 오시니깐, 그때 다 오면 되겠네.
오남준 : 일단 연락은 제가 다 하죠.
이효성 : 그때 되면, 안 나온 놈들도 다 나와. 그때 되면은
이승용 : 그때 이야기 하면 되겠네요.
이효성 : 난, 개인적으로 이 모임이, 나교수가,.. 광주전남권에서 이 모임이 없었어요. 녹색연합에서 자체적으로 스터디 정도로 녹평읽기 정도만 하다가, 녹평뒤에 광고내서 모인지는 100회 기념 김종철 선생 강연회, 광주전남 강연회가 끝나고 나서, 어 우리 여기가 쎈덴데, 우리가 지금까지 모임이 없었나, 우리가 모이자, 뜨겁게 모이자 했는데, 그 중심이 나교수가 조대에 오시면서, 기고하면서 되었어요. 열심히 했어요. 한 1년은.. 그런데 조선생님이 오시는 즈음에 시들해 지더니..이렇게 되었어요.
조명섭 : 그렇니까, 제가 나올때부터 시들해 졌군요.
이효성 : 그 이전까지는, 맹렬했어. 한 1년은. 우리 주 맴버가 김한진 선생, 김종부 선생님이 서너번, 나희덕 교수, 나, 그때는 젊은 친구들이 많이 왔다갔다 했었고, 유종현씨, 그리고 항상 남준이가 있었었고, 한번씩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 있었고, 어떨 때는 사람들이 많이 와서, 어머 이거 연말 결산하는 것 아니야 하다가, 하여간, 조선생님이 나타다실 때쯤 시들해 졌어요. (모두 웃음)
이승용 : 언제 나타나셨는데요.
조명섭 : 그때도 많았었은데요.
이효성 : 그때도 많았었지. 젊은 친구들이 많았으니깐. 방에 꽉찼었으니깐
조명섭 : 2009년 7월..쯤이죠.
이효성 : 우리가 2009년 1월부터 모이기 시작했어요.
이승용 : 2009년 1월부터....
이효성 : 그러니깐 2010년이 되면서, 망년회를 하고, 어떻게 이렇게 하다 보니깐, 그냥 안모여 지내요.
이승용 : 망년회, 너무 심하게 쫑파티를 해서,...
오남준 : 2009년 1월은 , 누나 내 생각에는, 지금 112호 니까, 100호 이후부터 모였으니깐 2008년부터 모였던 것 같아.
이효성 : 2008년 1월?
오남준 : 1월은 아니고, 여름 이였던 같은데
이승용 : 2008년 7월.
<오늘의 주제 지역화폐 이야기>
이효성 : 내가 3번째 모임부터 나왔거든. 그런데 지역화폐를 하자는 이야기가 저번 모임에 나왔었다고?
오남준 : 어떻게 진행되고 있냐면, 책이 홀수달 초순에 나오잖아요. 우리 모임은 매월 마지막 화요일인데, 책을 읽을 시간이 짧으니깐, 홀수 달에는 녹생평론 선집 3권을 가지고 이야기 하고, 짝수달에는 책으로 이야기하는 것이죠.
조명섭 : 저는 기본소득인지 알았어요. 그때 책을 들고 나왔었는데. 그때 이후로는 잘 안보게 되더라구요.
이효성 : 선생님이 바쁘셨나보네요.
조명섭 : 그런것도 있지만, 요즘 정권에서 하도 뭐 아니깐, 재미도 없고...
오남준 : 민철씨가 몇시에 올까 모르겠는데, 제 생각은 20명, 30명씩 북적북적하는 것도 좋지만, 두세명이 와도 책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9시까지만 이야기 해요. 한 40분 정도(실제로는 79분간 이야기 되었습니다)
오남준 : 그럼 세분 다 지역화폐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을 모르셨네,
이승용 : 아니, 다 문자를 받았으니까 알지.
조명섭 : 문자 받았는데, 기본소득이라고 착각을 한 것이죠. 아무생각 없이...
오남준 : 이것도 1년 정도 전에 했었죠. CD도 준비해가지고 와서 같이 봤죠. 그때 CD 가 대전 한밭 레츠였죠. TV에서 했었죠.
이효성 : 나는 그때는 안 왔었고, 그 다음 모임에 왔었는데, A4 용지에다가 자기가 할 수 있는것, 현금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종이에 써 갔고 나누자고 했지. 할 수 있는 것. 예를 나는 천연염색을 할 수 있으니깐, 니가 요구를 하면 내가 해줄 수 있어, 그러니깐 나교수는 그때 생각에 나는 밑반찬을 잘해. 뭐 이런 다든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과 자기가 갖고 싶은 것. 품앗이를 할 수 있는 것을 이렇게 적었던 기억이 나. 그래갔고 다 유시인에게 주었어. 그래서 인터넷에 카페에다 입력을 해서 원하는 사람에게 해주자 했는데,
이승용 : 육체노동이 되 든 뭐가 되 든,
이효성 : 나는 그때 받고 싶은 것에는 ‘술친구가 필요하다’라고 하니까, 서로 자기가 한다고, 그건 내가 해 줄 수 있다고 그런 기억이 나는데..
조명섭 : 하하하
오남준 : 그때는 안 계셨죠.
조명섭 : 예 그때는 안 왔었죠. 시장통의 병치회를 먹었던 기억이 나요. 지금은 ‘알콜충전’에서 먹지만.
이효성 : 그때 까지 화정에서 모이고, 그 이후로 여기서 모였죠. ‘알콜충전’이 우리의 주 무대지.
오남준 : 지난번에도 말씀 드렸지만, 이 모임이 좋은 이유가 뭐냐면, 책이 오면, 처음에 이삼십분 정도 보고 책꽂이에 놔요. 그러면 책이 안 나와요. 어찌되었던, 모임이 있다고 하면, 이삼일 전부터 아니면 당일 날이라도 책을 읽게 되는데, 다시 한번 꺼내 가지고 보게 되는, 그러면서 이렇게 좋은 이야기를 덮어 두었구나라는 후회가 되죠. 모임이 있으므로 해서 한 장이라도 더 읽게 되죠. 오늘 버스 속에서 잠깐 봤어요.
5개 단락인데, 저는 첫 번째 단락을 보았는데, 이렇게 단락이 나누어져 있으면, 다음에는 나누어서 5분에서 10분정도 각자 발표했으면 해요. 오늘 급하게 읽었던 ‘레츠 상호부양의 대안체계’ 대해서 이야기 해보죠.
오남준 : 레츠라고하면 ‘지역교환체계’라고 우리말로 할 수 있어요. 처음 시작은 1585년 정도에 영국, 호주에서부터 했고 지금은 영국에는 300곳 정도가 있고 전세계에 10만명 정도 회원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어요.
레츠는 부유층이나 상류층이 아니라, 실업자에게 도움이 되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왜냐하면 실업자는 돈은 없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나름대로의 능력들이 가치를 발휘 할 수 있으려면, 그것이 활용되고 교환이 되어야 했는데, 실제로 외국의 경우는 실업자나 빈민층에서 참여도가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는데요. 몇몇 레츠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자부심이라는든가 생각들이 나와 있는데요, 그것만 잠깐 읽어 드리면 “이런 상황에서 레츠가 가져다 주는 부양과 공동체 감각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이와 같은 사회적 개인적 면이 레츠가 가져다 주는 혜택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레츠로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경쟁적 생활 스타일에 대하여 더 이상 고민하지 않습니다. 나는 좀더 나은 좀 더 풍만한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다시 설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남준 : 어쩌면 이것은 저의 이야기 인거 같아요. 모든 한국 사람은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돈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저를 옭아 매고 있어요. 항상 돈에 대한 부담감이라는가 불편함으로 저에게 스트레스가 있는데, 어찌 보면 레츠가 완전하진 못하더라고 어느 정도 풀어 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어요. 제가 직장을 통해서 아니면 다른 방법을 통해서는 돈을 버는 데 있어서는 별로 재미가 없고, 또 능력도 안 되고 하는 것을 자주 느끼게 되는데, 오히려 제가 하는 일이 돈과 무관하면 더욱더 재미도 있고 열심히 하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런 모습을 종종 발견하게 되요. 돈에 대한 회피일수도 있겠지만, 이런 것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나에게 있어서는 정신적인 아니면 경제적으로도, 나에 삶에 도움이 될 수 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짧게나마 해보았어요.
이승용 : 레츠.. 지역적 한계가 있지 않나요? 레츠를 하려면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이 여럿이 해야 하는데, 의식 있는 사람들이 한곳에 모이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레츠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좀 전에 말씀하셨던 서로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라는 것도 대안으로 좋은 것 같은데. 요즘 아름다운 가게라든가 사회적 기업 운동이라든지, 정부가 하는 미소금융등도 레츠의 다른 모습이라고 표현하면 이상하겠지만, 아무튼 작은 것들 나누어 쓰거나 작게 가는 것이, 자본주의에 완전히 예속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완화시키는 그런 운동 중에 하나 인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 있는 한밭공동체는 거기에는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이니까, 광주에는 사람이 모이기가 아직은 좀 어려우니깐
이효성 : 레츠가 요즘은 먹거리에 한정적으로 되어 있는 것 같아. 생협운동 같은거. 주로 주부가 모인 것.. 그것은 현재 있는 화폐를 가지고 하는 것이고, 레츠는 만약 식쪽에 내가 많이 갖고 있고, 다른 사람이 주쪽에 재주가 있다면 서로 품앗이를 하는 것이지. 우선 우리가 그때 그래서 우리나마 우리 싸이트에 올려서, 누군가가 관리 하면서 서로 나누자 라고 했지. 그건 많은 한계가 있겠죠. 그러나 생각이 있으면 할 수 있는 작은 행동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하자라고 했었어요. 그때 우리가 모임이 있으면 나눌 수 있는 작은 것들을 갖고 와서 서로 나누었어요.
이승용 : 그것은 레츠란 무관하게?
이효성 : 예, 레츠란 무관하게 계속 나누었죠. 이 지역화폐라는 녹평이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 쉽게 말해서 공통체 삶을 영위하는 것이 잖아요. 누가 손으로 만든 비누를 갖고 오면, 나는 뜨개질로 할 수 있는 것을 갖고 왔고, 나교수는 다포를 갖고 왔고, 나는 칡을 갖고 왔고, 모임 때 내 놓으면 필요한 사람이 갖고 갔는데, 우선권은 물건을 갖고 온 사람이고, 만약 물건이 적을 때는 가장 필요한 사람이 가져갔어요.
이승용 : 아주 좋군요.
오남준 : 한밭레츠가 전에는 잘 되고 있었어요. 2008년 여름에 광주에 있는 시민단체 활동가 10여명이 전국을 돌 기회가 있어서, 한밭레츠를 가 보게 되었는데, 언론과 책을 통해서 본 것 보다는 못했지만 그래도 잘 되고 있었어요. 잠깐 30분 정도를 보았는데, EBS에서 보았듯이 의원과 한의원이, 의료기관 2~3개가 레츠로 활용을 할 수가 있어요. 아픈 사람이 가면, 레츠를 하는 것이죠. 대전쪽이 외국유학을 갔다 오신 분들, 열린 생각을 갖고 있는 어머니들이 있어서 대안 사회에 대한 열망이 있어서 잘 될 수 있겠구나라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저도 옆동네 사시는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광주로 외출하실 때 출근길에 제차로 모셔다 드려요. 그러면은 그 분들이 고마운 마음에 상추, 쑥갓을 잘 갖다 주세요. 그분들에게는 돈은 쉽게 구할 수 없게 지만, 상추라는지 작은 농산물은 쉽게 구할 수 있으니까요. 해남 문내면에서 형님(이승용)이 약국을 하시고 계시니깐, 약국에서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농산물을 받는 것을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 봤어요.
이승용 : 좋은 얘기죠. 지금 할머니들은 병원과 약국에 작은 돈을 내요. 병원에서는 1500원 정도 약국에서는 1000원 정도의 돈을 내고 계셔요. 병원에 가면 물리치료를 1시간에서 3시간 정도 받으시죠. 보호환자도 많고.. 돈 때문에 치료를 못 받는 분들은 큰병을 갖고 계신 분들, 감기라는가 물리치료 정도는 큰 돈이 들지 않죠. 지금의 의약분업제도를 그렇습니다. 현재의 보험제도가..
오남준 : 어찌되었던 간에. 병원이나 약국을 그 분들에 입장으로는 안 갈수는 없잖아요. 몸이 아픈데. 만약 1000원 정도의 돈이 없어서 병원과 약국을 갈 수 없다면 어찌 하겠어요. 몸이 아픈 것도 그렇지만,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 갔을 때는 여러 가지로 마음에 상처를 입을 수 있다고 생각 되는데, 그분들에게 돈이 없이도 갈 수 있다라고 하면, 만약 우리집이 농사를 짓는다면 쌀을 1000원 어치를 갖고 갈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가치로서 교환할 수 있다면, 그 분이 돈이 없다는 이유는 마음에 상처를 받은 경우는 해결이 되지 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승용 : 좋은 얘기예요. 그러나 근본적이 얘기는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은 사람이 없어야 겠어요. 이렇게 자꾸 지적을 해야 해요.
오남준 : 물론 실제로 적용되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수 있으나, 다양한 곳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조명섭 : 그런것 들이 실현이 되려면 적은 사람들이 모여서 마을공동체를 이루어서 자주 만나야 될텐데, 우리모임은 한 달에 한번이니깐 그런 의미가 많이 퇴색이 되는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지역화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남준 : 우리가 한 달에 한번 모이는 것이 형식적인 부분이 될 수 있겠죠. 대전의 한밭레츠도 한달에 천만원내외였던 것으로 기억이 나요.
이승용 : 몇 명에 천만원?
오남준 : 잘은 모르겠는데, 그 사람들의 경제 비율로 따지면 1~2%로 매우 미미 한 것 같아요. 2년 정도 지났으니깐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조명섭 : 지금도 실시가 되고 있나요? 대전 한밭레츠가?
오남준 : 2008년 여름에 갔었고, 여러 번 언론에 나왔었고, 잘 해서라기 보다는 실험적인 것이라 나오는 것 같아요.
<우리 모임 장소인 ‘청년글방’을 살려보자>
이승용 : 저는 아까 누님이 말씀하셨던, 바로 할 수 있는 것에 매우 흥미가 있어요. 우리가 모이는 곳이 “청년글방”이니깐, 저는 집에서 읽었던 책이라든가, 지금 청년글방이 안 돌아가고 있다고 하니깐, 청년글방 한쪽에 녹색평론 독자모임 칸을 만들어서 서로 나누고 싶었던 책을 두는 거죠. 레츠하고 다른 개념이지만, 일단 책부터 나누어서, 읽는 책들이 비슷할것 같지만, 그러나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것도 나눌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청년글방이라는 작은 공간이 있으니깐 한달에 한번씩 와서 이 곳을 이용 했으면 좋겠어요.
이효성 : 저는 그래요. 지금 내가 할수 있는 것을 직접하는 것, 이것이 나한테 좋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때, 남한테도 어 이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것을 말 할 수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말을 하지 않은면 절대 몰라요. 저 사람이 뭘 어떤것을 잘 할 수 있는지, 뭘 필요로 하는지, 나한테는 필요한데, 저 사람이 갖고 있는것, 그것을 잠깐 빌릴 수도 있는것이고, 빌려 줄수도 있는 것이고. 아까도 좋은 예지만, 저는 책같은 경우는, 제가 필요로 하는 책은 항상 이렇게 사서 봐요. 천천히 읽기 때문이죠. 내가 지금 칡을 많이 캤는데, 칡은 여름에 갈증해소에 너무 좋으니깐, 고기 삶을 때 넣으면 좋아요. 만약 칡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줄 수 있어요. 그러나 지금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그가 가지고 있지 않을 수 있어요, 나중에 돌아올수 있어요. 전 그래요. 내한테 가져 갔지만 나한테 다시 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로 도움이 되 돌아 갈 수 있다고 봐요. 복은 불교용어에서 보시라는 개념이 그런 것이예요.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는데, 내가 어떤사람 한데 많은 도움이 받았는데, 다른 사람한테 갚게 되었고 그 사람사람도 나한데 갚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 갚았어요.
이승용 : 저 칡 필요해요.(웃음). 저 달걀 갔다 드릴게. 닭키우니까(웃음)
오남준 : (전화 진동.. 전화통화를 하기 시작함)
이효성 :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해요. “신의 지문”이란 책을 갖고 싶어요.
이승용 : 그것 오래된 책이죠, 읽어 보았던 것 같은데, 못 찾을 것 같아요.
조명섭 : 그것도 재미 있겠는데요.
이효성 : 그거 재미 있어요. 쉽게 말하면 별자리를 알면, 우리조상이 어떻게 멸망했는가를 알 수 있다는것인데,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다 별자리를 나타내는 것이라는 군요. 멸망을 했지만, 그 중에서 살아 남은자가 있어서, 우리한테 뭔가를 예시해 주는 이야기예요.
이승용 : 저는 청년글방이 닫혀 있다는 것이 놀라와요.
조명섭 : 여기 임대료는 어떻게 해요?
이효성 : 문화연대에서 내고 있다고 해요. 회비로 내고 있었요.
이승용 : 얼마씩 내는 데요?
이효성 : 보통 만원, 이만원 정도
조명섭 : 여기 상주하는 간사분이 없는것 같아요.
이승용 : 행사계획표를 보면 2월로 끝이 나 있어요. 작년 2월인지 올해 2월인지도 모르겠고.
조명섭 : 대학교 근처에서 이런 공간이 남아 있는 곳이 없을 것 같아요.
이효성 : 나는 그래서 통탄할 일이. 이 광주, 전남 아랫녘에서, 그리고 전대라는 앞 마당에서 저 대학생들이 뭘 하나 모르겠어요.
이승용 : 연애하나보죠.(웃음) 저는 광주전남 녹색평론 독자모임에 나와서, 꼭 이것 하나 만큼은 했으면 해요. 청년글방을 같이 살려 갔으면 해요. 부산의 인디고서원이라는 곳 처럼 이곳도 발전했으면 해요.
조명섭 : 이 앞에 세미나 공간을 대여해 주는 그린비라는 카페가 있거든요. 이런 공간이 아까우니까, 학교뿐만 아니라, 여기서 세미나를 하면 어떨까 해요. 대여비를 받고 안 받고의 문제가 아니라, 세미나나 각종 공부의 모임들이 여기서 이루어 지면 좋겠어요. 작년에 보니까 여기서 모임이, 괴테모임이 있었는데.
이효성 : 올해 들어서 싸늘해 졌네.
오남준 : (전화 통화가 끝나고) 지금 이야기가 어떻게 되고 있죠.
이승용 : 지금 청년글방이야기를 하고 있지. 청년글방이 이렇게 방치되고 있으니깐, 우리모임과 청년글방이 같이 갔으면 좋겠다라는 라는 제안을 했는데,
조명섭 : 되게 어렵죠.
이승용 : 되게 어려운 일이죠.
오남준 : 여기가 방향성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앞에 있는 국제서점과 뿌리서점, 뿌리서점은 주로 중고등학생 참고서를 파는 곳이고, 국제서점도 벽 한쪽은 군데군데 비여 있어요.
문은 안 닫았지만, 포기한 것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다른 곳 같았으면, 하루에도 책이 수백권 나와서 꼽아 둘고이 없어서 그냥 나누는데, 여기도(청년글방) 악 순환이라고 볼 수 있어요. 우리처럼 모임이 있었서 열쇠라도 달라고 해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누군가가 옛날 생각이 나서 이곳에 와 봤을때 닫혀 있는 문을 보았때, 다음번에 오기가 더욱 어렵죠. 개인적으로 물어 보니까, 장기적으로 시내쪽으로 옮겨갈 구상이랍니다.
이승용 : 시내쪽으로 옮겨가면 대안이 있나?. 시내에 있는 삼복서점도 없어졌는데,
오남준 : 여기는 문을 닫고, 그런 생각도 갖고 있는데, 비용에 문제 때문에 쉽게 되지 못하고 있는데, 참 안타깝죠.
이효성 : 이게 그러니깐, 지금 대학이라는 곳이 무엇을 하고 있나에 대한 하나의 반증이라고 봐요. 이런게 자기의 전공이 라는게 사라진 요즘 대학 모습이라고 봐요. 하나의 자격시험을 위한 곳으로 되어 가지고, 대학이라는 것이 하나의 시험, 고시를 공부하는 것이 되어 가지고,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곳이 아니라. 공무원이나 고시 공부를 하는 곳이 대학이다라고 봐요. 그래서 소비하는 쪽은 자리가 없죠.
이승용 : 만약 이 곳이 옮기지 않는다면, 그리고 녹생평론 독자모임이 여기서 계속 이루어 진다면, 청년글방이 이런식으로 있는 것이 매우 미안하고 민망해요. 그래서 조금은 발전되고 조금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는 생각을 한 거죠. 일단 상근자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죠.
오남준 : 그런 부분은 내가 책임을 못 질 부분이라서 말을 하기 그렇지만, 아름다운 가게같은 곳은 상근자가 한분이 있지만은 주로 자원봉사자가 많아요. 오전 오후로 7일간 한다고 가정하면 약 30명 정도의 자원봉사자만 있으면 할 수 있어요. 여기서 가까운 곳에 아름다운 가게에서 헌책방은 열었어요. 가보면 괜찮게 되요. 경영적인 것이 가미가 된 것이죠.]
이승용 : 아름다운 가게, 사회적 기업 이런식의 방법이 우리나라 사회에 맞는 거라면 많이 생길 것이라 생각해요.
오남준 :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발굴해 내면 할수 있을 것이라 봐요.
이효성 : 우리가 달리 뭐를 새롭게 하는 것이라, 지금 여기가 문화연대의 공간이니까 장소가 바뀌여 지더라도 문화연대에 후원을 하면 될 것이예요.
이승용 : 후원은 하면은 되는 것이고.
조명섭 : 그래서 여기 모습이 너무 험하니까..
이승용 : 문화연대에서 꾸민것 같은데, 바깥에 보면 마을의 그림도 그려져 있고, 소개도 되어 있어요. 청년글방에 대한 이쁜 얘기들, 전설같은 얘기들은 어렴풋이 생각나는데, 지금 청년글방에 와서 보니깐, 너무나 안타까운 거예요.
오남준 : 계속해서 녹색평론 독자 모임에서 한번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죠.
이승용 : 시간이 나면, 남준이랑 제가 부산의 인디고 서원에 가보죠. 광주전남 녹색평론 독자모임에서 인디고서원에 가게 되는 거지.
오남준 : 그렇게 해 보죠. 우리가 작년 5월 전라 북도 완주 고산에 가볼 려고 하다가 말았었는데,
이효성 : 거기는 플라우드의 시작이라서 가 볼려고 했는데, 끝내는 방문은 못했어도, 선생님을 모셔다가 이야기를 했었죠. 저는 지금 저 개인적으로 제가 할 수 있는것은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녹평에 나와 있는 보이콧의 아름다움 김예슬양의 그거와, 가장 급박하고 도대체 가만히 있으면 죄스럽다는 생각에 독일교포가 쓴 4대강 그것을..저는 그래서 죄스러운 것예요. 김종철 선생님이나 고래가 그랬어의 김규항씨가 하는 소리가 지금 이런 대학을 그렇게 비싼 등록금을 주어가면서 다닐 필요가 있냐, 뭐 그런 얘기 잖아요. 너무나도 동감하죠. 지금 현재 초중고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을 도대체 믿을수 없으니까, 이런 살인적인 교육제도를, 그래서 우리딸을 대학을 그만 두라고 했어요. 등록금을 안 주었어요.
이승용 : 몇 학년 인데요? 본인의 의지는 어떤지?
이효성 : 사진을 공부하고 있는 친구데, 아이는 우물안 개구리라는 생각들어서, 끝내는 아이와 엄마의 말을 반을 받아 들이는 것으로 해서, 지금은 학교를 그만둔 상태입니다.
이승용 : 휴학이 아니라 자퇴를 한 것입니까?
이효성 : 휴학으로 되어 있죠.(54.15) 나중에 니가 정말 사진이 할 분야라면 ‘여기’에서 그 돈을 들이 필요가 없지 않냐, 차라리 지금 STA를 준비해서, 정말로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면, 지금 여기에서 드는 돈 보다도 더 적게 외국에 나가서 공부할 수 있다는, 그것을 기득권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위해서는 그것이 더 실질적이라는 생각에 자기 유학자금을 마련하고 있고, 제가 아이에게 너 이거 읽어봐라 하면, 아이는 싫다고 해요. 그래서 제가 계속하고 있는 작업이, 제가 계속 구독하고 있는 ‘작은책’에서 특집으로 다루고 있는 좋은 글들이 많아요. 지금 행동하는 지식이라는 분들은 ‘작은책’에서 특집으로 다루어져요. 정말 가서 듣고 싶지만, 그 부분을 복사해서 아이에게 준다든지, 제가 요번에 김예슬양이 쓴 글과 독일교포가 쓴 글을 복사해서 수련장에 돌렸어요. 다 읽어야 된다고 했어요. 가만히 있다는 것 자체가 죄 스러웠어요. 우리딸한테 먼저 읽히고, 니가 가장 친한 친구에게 주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우리 딸 한테 먹혔어요. ‘엄마, 내가 읽어 보니 친구들 한테도 줘야 겠어요“. 그 것을 준 친구가 누군가 하면, 지금 막 간호대를 졸업하고, 병원에 취업을 한 친구에요. 그러면 그 친구는 병원에서 가장 친한 동료들 한테 읽힐 것이다라는 생각이 저는 드는 것예요. 그래서 그것을 하고 왔다니 까요.
오남준 : 어디 수련원이요?
이효성 : 나, 국선도 수련원 다녀. 누군든지 생각이 미치면 행동에 옮기는 것이 진정성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이 머리로만 먹물로 들이고 행동을 하지 않으면, 모르고 가만히 있는 것 보다 나쁘다고 생각해요. 난 그런식의 행동을 실천해 봤으면 해요.
오남준 : 민철씨 가까이 왔는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할수 있는 일도 있고, 함께 할수 있는 일도 있고, 다른 분들과 함께 할수 있는 일들도 있는 것 같거든요. 지금 우리는 녹색평론을 가지고 공부하고 이야기하고 나누는 모임이라고 보면, 누님은 어찌됐던 녹색평론의 연장선장 이잖아요. 녹색평론에서 공통적으로 실천할수 있는 일들을 1년 한가지씩 정한다던가 , 그런것들을 정해 가지고 같이 해볼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의 얼른 든 생각은 이 고민은 오랬동안 해 봤지만, 깊이는 없었어요. 이 서점에 대한 것, 그런 생각들, 예전에는 여기 안 있었고, 저쪽 큰 도로가에 있었거든요. 제가 고등학교 다닐때, 대학교 초기 까지, 누구나 오면서 가면서 볼수 있었고, 국제서점 만큼은 안 됬었지만, 사회과학에 관심이 있는 다양한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부하던 공간인데, 자칫하면 이공간 마져도, 지키기가, 지킨다긴 보다는 지금은 방치하는 수준인데, 잘못하면 완전히 사라질 시간만 기다리고 있는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은 이 ‘청년글방’을 잘 되게, 이 녹평모임이 해봤으면 하는 생각인데, 제 개인적인 생각이고, 여기서 정하자는 것은 아니고,..
이승용 : 아까 말씀 하신거, 너무 동감을 해요. 그런데 지금 이시기가, 청년글방말고 다른이야기 인데, 옛날에는 서울 독자 모임, 한 8년전 인것 같은데, 그당시에는 녹생평론 독자모임에 가면 어떤 이야기를 했었야면은, 녹색평론이란 책을 알리기 위해 인터넷 주문을 안하고 서점에다가 주문을 한다는 거예요. 자기가 사는 동네서점에다가, 그러면 녹색평론을 갖다놓고 서점을 찾는 다른 사람들이 이 책이 뭐지 하는 그런 수준이였는데, 그런데 지금 와서는 녹평의 이야기들이 지금 당장의 일들이 나오 잖아요. 그런 식으로 녹색평론이 독자가 읽었을때 그 감각의 갭이 종전에는 2~3년 있었다면, 지금은 녹색평론의 이야기들이 지금 막 벌어 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인제 막 움직이면 안 될 정도까지 왔는데, 이것을 어떻게 움직여서, 바꾸어야 하는데, 결국 남 욕하는 일을 것이고, 그 남은 바로 정부를 욕하는 것이고, 정부를 바꾸여야 하는데, 그것이 한계가 있을 것 같아요. 정치는 누가 하든지 간에 그렇게 바뀔것 같지 않으니까. 그래서 우리가 할수 있는일, 내가 할 수 있는일, 내가 해서 남이 바뀌든 말든, 그들은 글이 하든, 우리는 우리끼리 하자, 우리끼리 해놓고, 그 다음부터 무엇이든지 할수 있는데, 그런데 그것이 레츠도 될수 있고 뭐든지 될수 있는데, 그런데 저는 이왕이면 지금 여기 이지역에서는 ‘청년글방’이라는 장소가 있었고, 이것은 우연만은 아니라고 생각 해요. 제안을 한 것이니까. 아까 나교수님이 대표를 한다고 하셨으니까, 조금은 모임을 하면서 생각을 했으면 해요. 안타까워요.
이효성 : 나교수님 조대교수니까, 법대 교수하고 국문과 교수하고 나오셔 가지고 활발하게 공부를 했었는데, 그분들은 그랬어요. ‘이번 시험에 점수를 김종철 선생강의로 대체 하겠다’라고 했었어요. 나교수가. 아주 적극적으로 학생들에게 알렸어요. 나교수가 직접 이야기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직접가서 들어보는 것이 더 좋기 때문에 그런 거고,
이승용 : 교수의 힘이죠.
이효성 : 정말, 그래요. 궁극적으로 우리가 공동체 삶을 살자는 것인데, 과도한 경쟁의 성장은 그만두고, 이게 잘못되었다면 바꾸는 힘이, 나는 이 공부모임도 무엇을 얻고자 하냐면은, 모이는 우리끼리 무슨 공동체를 만들자 이런것은 아니예요. 저는 이것이 ‘감각의 끈’이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놓지 않을려고, 예를 들자면은 작은 모임을 안 나오면은 자기의 기운이 사글어 들어요. 신경을 곤두세운 그런것이 느슨해 진다는 거죠. 그런데 내가 늘 살아 오면서 즉 쉽게 말하면 자기 의식을 일깨워 주는 거예요. 내 주변에, 내가 할수 있는 삶의 범주안에서 필요로 하는 공동체를 찾아 갈수 있는 그런 힘, 힘겨루기예요. 우리가 장성에 살고, 해남에 살고, 선생님은 선생님인데, 여기 저기서 모여 가지고 후닥딱 뭐 이렇게 합시다 하는 것, 이것은 안되는 거고, 각자 자기가, 아무튼 이것은 아니다라고 했을때 바로 자기가 실천할수 있는 것을 각자가 해야 한다고 봐요. 그것을 하고 함이지, 우리가 김종철 선생님 처럼 또하나 하겠습니까. 책장사 하겠습니까. 이책도 안 읽는 사람이 태반인데..
<독자 모임의 미래>
오남준 : 일단, 레츠, 책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죠. 6월 3일날 김종철 선생님 특강이 있어요. 주제가 “대학에 목매 는 사회를 벗어나 생각해보기”예요. 메시지 받으셨어요.
이승용, 조명섭 : 못 받았어요.
이효성 : 나는 메시지 잘 확인 안해요. 저는 컴맹입니다.
오남준 : 대학에 대한 비판적이 이야기로. 그러면 강의 끝나고 녹색평론 독자 번개 모임을 하죠. 그 자리에서 대표를 뽑아보죠.
이승용 : 나교수님이 계속해야죠.
오남준 : 나교수님의 시간이 되는지 확인해 봐야죠. 정 안되시면 1년만이라고 해 달라고, 그리고 우리 모임을 기록해서 인터넷 다음카페에 올리자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알아봤는데, 예전에는 지역별 모임방이 있었는데 지금 없고, 그래서 광주방을 카페지기에게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해서 거기에 우리소식을 올려서 오지 못한 사람들과 공유도 했으면 해요.
이효성: 거기에 자기가 나눌수 있는 것을 계속 나누기위해 공고를 했으면 해요.
이승용 : 일단 그것은 김종철 선생 모임 이후에 했으면 좋겠어요. 누구는 갖고 오고 누구는 안갖고 오고 그려면 모습이 안좋으니까
오남준 : 6월 3일 날 그것도 이야기 해 보죠.
이효성 : 그날은 공고만 하자고. 6월 정기 모임때 갖고 오자고.
오남준 : 민철씨하고 연락을 하죠. 김종철선생님 강의때 번개한다고 연락을 하죠. 저는 녹색평론 독자모임에 광주방을 만들어 달라고 하고, 나희덕 교수님이 대표로 하달라고 해 보죠.
조명섭 : 저는 김종철선생님의 강의가 대학교에서 했으면 해요.
이효성 : 지금 우리가 왜 주춤하게 되었지 생각해 보면, 나왔던 사람들이 시민단체에 속해서, 여기서 뭔가를 얻어 가지 못했던 것 같아요. 바쁜 시간을 쪼게 가지고 왔는데, 한 1년이 넘어 스니깐
이승용 : 그런 분들은 졸업한 것 같아요.
끝.
(이효성, 조명섭, 이민철, 오남준, 이승용이 ‘청년 글방’에 모여서 녹색평론에 대하여 이야기 하다. 2010년 5월 25일 늦은 7시 30분부터 79분간. 기록과 사진 : 이승용)
첫댓글 이승용 선생님, 이 곳으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