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C 성서연구 - 제21B강 역대기상하 메시야 왕국의 대망
(42) 하나님을 뵈옵기 위하여 대하 4:1-10
성전은 그 자체로 메시지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곳,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하고 정확하게 지켜지는 곳 말이지요. 특별히 하나님께서 임재하사 말씀하시는 곳이기에, 그곳은 영광과 찬양으로 채워져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또한 마무리까지 완벽해야 했지요? 다시한번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드리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을 담아 청동기둥 둘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렇게 성전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으로 들어가고 믿음의 고백으로 나오는 곳임을 살펴보셨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오직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신다고 말이지요(보아스와 야긴). 그러니, 성전에서 우리는 이삭을 줍고 맛보는 은혜에 머물지 말고, 이삭을 주실 수 있는 분, 하나님을 우리는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성전은 와서 구경하고 가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가야 하는 곳입니다. 이곳에 올라오실 때마다 하나님 만나시길 축복합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준비들을 해야 할까요? 오늘 솔로몬이 만들어 성전에 배치하고 있는 모든 기물들이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저 옛날 성막보다 훨씬 더 규모가 커지고 개수가 많아진 것에 시선을 빼앗기기가 쉽지만, 여전히 그 의미는 동일합니다. 자, 오늘 본문이 증언하고 있는 기물들을 살펴보시면서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만나뵈올 준비를 함께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솔로몬은 먼저 놋제단을 만듭니다. “솔로몬이 또 놋으로 제단을 만들었으니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가 이십 규빗이요 높이가 십 규빗이며”(1절)
번제단에서 희생제물을 드리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번제를 드리면서 자신의 죄를 용서받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첫걸음인 셈입니다. 실제로 희생제물을 드리는 과정에 대해서 레위기가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번제를 드릴 때, 먼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난 후에 직접 잡으면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그 피를 가져다가 제단 사방에 뿌리게 되어있습니다(레1:4-5). 이유는 이렇게 알려주셨습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17:11)
“피는 곧 생명이기에 피가 죄를 속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 정해두신 속죄의 방법입니다. 아벨이 양의 첫 새끼로 드린 제물을 눈여겨보셨습니다(창4:4). 그리고 아브라함이 그의 외아들 이삭을 바치는 순종의 제사를 보시면서,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를 이 세상을 구원할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내어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창22:14). ‘여호와 이레’, 즉 ‘그것까지 보시는 하나님’(God-Sees-To-It)께서 이집트에서 학대받던 히브리인을 구원하여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예배공동체로 세우시면서 ‘피로 죄를 속하는’ 번제단을 만들게 하셨고, 오늘 솔로몬은 놋으로된 제단을 만들었던 것이지요.
성전, 저 놋제단에서는 늘 연기가 피어올랐을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오늘도 또다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사해주시는 하나님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 모습을 보면서 다시금 죄악으로 달려가려던 마음을 멈추고 다시금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성전도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길 축복합니다.
또한 놋바다와 물두멍을 만들지요.
“또 물두멍 열 개를 만들어 다섯 개는 오른쪽에 두고 다섯 개는 왼쪽에 두어 씻게 하되 번제에 속한 물건을 거기서 씻게 하였으며 그 바다는 제사장들이 씻기 위한 것이더라”(6절)
물 두멍은 번제에 속한 것들을 정결하게 씻기 위하여, 그리고 바다는 제사장들이 씻기 위하여 준비되었습니다. 그래요. 제물이고 제사장이고, 정결해야 합니다. 특별히 세상에서 제일 정결하게 서 있어야 하는 곳이 있다면 성전입니다. 제사장이 물로 씻지 않고 성소로 들어가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죽지 않으려면 반드시 씻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서는, 제단에 올려지기 전에 씻어야 하고, 성전에 들어가기 전에 씻어야 합니다. 그렇게 번제단에서 죄 사함을 받아야 하고, 물두멍에서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단지 구약의 제사에서만 적용될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매우 중요한 상징입니다. 번제단은 ‘십자가 사건’을, 물두멍은 ‘세례’를 예표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십자가로 죄를 대속받은 우리가,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성소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정결이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서, 놋제단이, 놋바다와 놋물두멍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죄의 문제를, 구약 시대에는 희생제물의 피로 사함을 받았지만, 신약 시대에는 십자가의 보혈로 단번에, 영원하고 온전하게 해결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 죄 사함이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더욱 밀접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는 중생, 거듭남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지요. 영접하는자, 그 이름을 믿는 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전 뜰에서 몸을 정결케 하고, 이제 성소로 들어가게 되면, 그 곳에는 세 가지 기물이 있습니다. 그것이 진설병 떡상이요, 등잔대요, 분향단입니다.
먼저 진설병 떡상을 만듭니다. “또 상 열 개를 만들어 내전 안에 두었으니 왼쪽에 다섯 개요 오른쪽에 다섯 개이며 또 금으로 대접 백 개를 만들었고”(8절)
‘진설병’(陳設餠)이란 ‘진열해놓은 빵’이라는 뜻입니다. 진설병 상을 제작하는 재료는 증거궤와 다르지 않습니다. 빵을 올려놓도록 넓은 테이블 모양으로 만들면 됩니다. 진설병을 만드는 규례는 레위기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5너는 고운 가루를 가져다가 떡 열두 개를 굽되 각 덩이를 십분의 이 에바로 하여 6여호와 앞 순결한 상 위에 두 줄로 한 줄에 여섯씩 진설하고 … 8안식일마다 이 떡을 여호와 앞에 항상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레24:5-6,8)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개의 빵을 한 줄에 여섯 개씩 위로 쌓는 방식으로 상위에 두 줄로 펼쳐놓습니다. 안식일마다 매번 새로운 빵을 놓아야 하는데, 지난 빵들은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먹게 되어있습니다(레24:9). 아마도 진설병은 누룩이 포함되지 않은 무교병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금 등잔대를 만들지요 “또 규례대로 금으로 등잔대 열 개를 만들어 내전 안에 두었으니 왼쪽에 다섯 개요 오른쪽에 다섯 개이며”(7절)
성소는 출입문을 제외하고는 창문 하나 없이 꽉 막혀있는 구조라서 반드시 등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등잔대가 단지 조명의 용도로만 사용된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저녁부터 아침까지’ 등불을 보살피는 책임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들은 후에 제사장 직분을 받게 되지요. 그러니까 제사장들은 밤새도록 성소에서 지내면서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했던 것입니다. 매일 밤 그렇게 깨어 있으면서 등불을 관리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사무엘 당시의 제사장이었던 엘리와 아들들은 이 직무에 태만했습니다. 엘리는 나이가 많이 들었고(삼상3:2) 그 아들들은 제사장의 직분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악한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삼상2:12). 그래서 제사장들을 대신하여 소년 사무엘이 밤새도록 등잔대의 등불을 돌보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지요. 등불을 켜두고 있을 때, 말씀을 듣고, 부르심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하게 있었을 것이 바로 분향단입니다. 분향단을 만드는 규례도 함께 읽어보실까요? 출애굽기 30장 1-2절, 그리고 6-8절도 읽어보겠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분향단의 위치를 특별히 강조하십니다. ‘속죄소 맞은 편’ 휘장 밖에 분향단을 두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휘장을 사이에 두고 증거궤와 분향단이 서로 마주 보는 형국입니다. 성소의 오른쪽에 있는 ‘진설병 상’과 왼쪽에 있는 ‘등잔대’ 보다 ‘분향단’이 지성소에 더 가까이에 있는 셈입니다. 그러면서 속죄소를 ‘내가 너와 만날 곳’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이 분향하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을 만나는 일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일인 것입니다.
이것 분향하는 일 역시 제사장의 책임입니다. 매일 아침과 저녁에 향을 사르라고 합니다. 특히 저녁에는 ‘등불을 켤 때’ 분향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로 미루어서 낮에는 등불을 켜두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삼상3:3). 그러니까 제사장의 사역은 저녁에 등불을 켜면서 분향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아침에 등불을 끄면서 분향하는 것으로 마쳤던 것이지요. 이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번제를 드리는 일과도 연결된 것으로 보입니다(출29:39). 아무튼, 분향하는 일은 대대로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자, 그럼 왜 하나님은 이런 성물들을 성전 안과 밖에 두도록 하셨을까요? 떡도 놓아야하고, 불도 켜야하고 향도 살라야 합니다. 왜요? 처음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제사장 나라 삼으신 당신의 백성들이 모두, 하나님을 만나며 당신의 뜻을 펼쳐가길 원하시며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자 이렇게 완성된 성전에, 어떻게 나아와서 하나님을 만나며 예배드려야 할까요?
매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예배는 유일한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들어갑니다. 그리고 언제나 십자가의 사건, ‘죄씻음’의 감사로 시작됩니다(번제단). 하나님 앞에 산 제물이 되어야 함을 확인하며, 바다와 물두멍에서 다시한번 정결하게 세례와 거듭남을 확인하며 주님 만날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물두멍). 그렇게 보아스와 야긴, 두 기둥같은 믿음의 고백으로 주님 앞에 나아와, 오직 하나님만 받으실 향기로운 ‘기도’를 올려드리는 것이지요.(분향단). 그리고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의 빛을 받으며, ‘말씀의 등불’(시119:105)이 꺼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등잔대). 그리고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죄인된 우리를 위해 몸을 찢으시어 먹여주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떡을 먹으며 대대에 주신 언약의 주인공 답게 서는 것이지요. 더욱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아가고 있고 살아가야 함을 확인하는 것입니다(진설병상). 그렇게 우리의 예배는 온통 성전 문에 들어오면서부터 지성소, 속죄소 앞에 이르기까지, 나는 온데 간데 없고 온통 예수님으로 뒤덮여 하나님이 임하시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되고, 그러한 우리를 하나님 직접 만나 주시고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을 받은 우리는, 더이상 희생제물로 번제를 드리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예배할 때마다 손발을 씻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분향하지도 않고, 등잔대의 불을 밝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 주일 진설병을 만들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일들은 행하고 있지 않지만, 일상의 예배를 통해서 그 모든 것을 녹여냅니다. 약속된 시간에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갑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묵상하며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았음을 감사하고, 아침 저녁 향기로운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매 순간 말씀이 등이 되고 빛이 되어주시는 삶 속에 예수님으로 양식삼고, 예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약속을 붙들고 예수님과 한걸음 한걸음 동행하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분이 오늘도 우리를 강하게 하시는 분이요, 능력이심을 고백하면서 말입니다.
성전에 올라오실 때마다, 예배를 드리실 때마다, 그리고 성전된 나의 삶의 자리 자리마다, 이런 성전에 자리했던 여러 성물들의 의미를 떠올리시면서, 하나님을 늘 만나시고, 허락하신 은혜의 자리에서 놀라운 사랑과 긍휼을 은사와 복락을 누리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택하시고 구원해주셨음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매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시고,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을 맛볼 수 있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통로로 마음껏 쓰임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