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교회를 보면서 느낀 나의 생각은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된다. 이대로 가면 어떤 모습일까? 너무나 안타깝고 눈물이 납니다.
그 이유는 한국 교회의 기울어져가는 자화상을 보면서 너무나 슬프기때문입니다. 교회가 예수교가 아닌 목사고이고 유초등부가 죽어가고 성경이 아닌 예화나 가르치고 성경의 내용은 바로 가르치지 않고 자교회 이익주의로 빠져가고 거기에 거대 교회로 가는 것이 너무나 슬퍼서 이 글을 적습니다.
첫째, 교회에 예수님이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목사 중심입니다. 우리 목사님, 우리 목사님 하면서 교회는 목사님을 중접적으로 움직입니다. 물론 믿음과 신앙에 앞서 있어서서 존경을 해야 하지만 어느 순간인가 그 선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 하면 조용기 목사님, 사랑의 교회 옥한음 목사님, 삼일 교회 전병욱 목사님이 이렇게 목사님이 먼저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그 교회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역사하는 것이 아닌 그 목사님이 먼저 떠올리고 있습니다. 물론 훌륭하고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전에 과연 왜 이목사님을 하나님이 사용하실까를 고민해야 하는데, 옥한음 목사님이 최고다, 전병욱 목사님이 최고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우리 교회와라, 목사님이 좋다 이럽니다. 과연 예수님이 좋은 것이 아닌가요? 목사님이 좋은 건가요? 주객이 전도 되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두 번째, 목회 성공주의에 잡혀 살고 있습니다. 몇 명이 다니냐가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진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닌 몇 명이 다니는지가 중요합니다. 바로 첫 번째 이유로 인해 이 문제가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1000명이다. 우리는 10000명이다가 중요합니다. 그 중에 예수를 진정 주로 여기는 사람은 몇 명일까요? 과연 전부 성도인가요? 진정 예수님의 제자를 양육해야 하지 않나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개교회 중심입니다. 자기 교회만 잘 먹고 잘 사면 안됩니다. 마치 교회를 어떤 사정에 의해 옮기면 마친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추는 개교회 주의와 거대 교회로 자연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숫자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순간 양에 매달려서 안달을 합니다. 그리고 마치 바벨탑 쌓듯이 자교회 중심을 흩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하나님이 흩으시면 자연히 흩어지고 또 교회를 세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왜 자기 교인 수를 자랑하는 과연 그 많은 숫자의 교인들을 자랑하지만 술먹고 뇌물먹고 세금 탈루하는 교인들만 양성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전체 인구에 25%정도 되지만 사회의 부조리는 여전하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세번째, 복음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어는 순간 목적이 이끄는 힘, 긍정의 힘과 같은 것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의 힘은 어디로 갔습니까? 예수 구원 불신 지옥은 어디로 갔습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진리보다 긍정에 힘이라든간 목적이 이끄는 삶에 사로 잡혀있습니다. 이것은 두 번째 문제에서 양산된 결과가 아니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나 목회 성공주의에 물들다 보니 신비주의에 빠져 이상한 이단에 빠져 들어 갑니다. 증산교도 성령으로 치료한다고 떠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절도 긍정적으로 살라고 합니다. 언제까지 복음 버리려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네번째, 성경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만희에 사람들이 넘어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무료 성경 신학교입니다. 얼마나 교회가 성도들에 목마름을 채워주지 못하면 이렇게 신천지에 쉽게 넘어갑니까? 저는 유초등부 때 배운 동방 박사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세명이라고 분명히 배웠습니다. 세명이라고 성경은 어디에 이야기 합니까? 예물이 3개이지 사람이 세명입니까? 우리는 맨날 찬양도 동방박사 세사람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해하기 좋게 하기 위해 그냥 바꾸어서 이야기 합니다. 진실을 이야기 하지 않고 임으로 바꿉니다. 거기에 유초등부 6년, 중고등부 6년 총 12년의 주일학교를 하고 배운 것이 무엇입니까? 맨날 병거탄 엘리야 이야기,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 밖에 없지 않습니까? 기도온의 300 용사 이야기, 몇 가지 대표적인 이야기만 배웁니다. 성경을 선택해서 가르칩니다. 하나님이 66권을 선택해서 가르치라고 주셨습니까? 교회가 영적 비만과 당뇨병에 결렸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배우고 대학가서 교회 않옵니다. 결론은 제대로 실력을 가춘 사람이 아닌 이호성 같은 살인자만 만듭니다. 종말이 뭔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거기에 예화 설교만 합니다. 아이들이 잘 모르기에 예화를 하고 성도가 잘 모르기에 예화만 합니다. 성경 전체를 교회가 가르치는 곳은 없습니다. 10년을 다녀도 20년을 다녀도 교회에서 66권을 온저히 다 가르치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성경을 전체 다 가르치고 교회 교리를 제대로 가르쳐야 이단으로 가지 않을 겁니다. 법이 있는 이유가 뭔닙까? 이 것이 나쁜 것이니 다시는 범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바로 교리는 그런 이유를 통해 배우는 것입니다. 장로교에 몇 십년을 다녀도 웨스터민 신앙 고백이 무엇인지, 성부론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답답하지 않습니까? 서신서가 처음 쓰여졌을 때는 편지를 배달하는 사람이 읽어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사람과 지금 사람이 무엇이 다른가요? 상황이 다른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근데 서신서를 왜 그렇게 어렵게 이야기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교회가 예화만 찾고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듭니다.
여섯번째, 주일학교가 죽습니다. 바로 교회가 사단에 전략에 속기 때문입니다. 애들은 잘 모르니 예화나 가르치고 실력이 부족해도 교사로 세웁니다. 제대로 성경을 배우지 않고 교사로 섭니다. 네번째 문제의 결과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데 제대로 아이들이 변하겠습니까? 심지어 구원에 확신이 없는 사람이 교사로 세워집니다. 거기에 여름 성경학교는 성경학교가 아니라 율동학교입니다. 성경은 거의 가르치지 않고 그냥 율동만 가르칩니다. 완전히 율동학교죠. 거기의 교회는 재미 지상주의에 빠져 아이들에게 재미를 주려고 합니다. 유럽에서 스위스 교회가 바로 재미를 준 교회입니다. 결과요 완전히 망했죠. 한국 교회도 문 닫을 날이 멀지 않았다는 증거가 바로 이것입니다. 유럽에 교회가 모여 재미를 줄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당구장, 볼링장, 사교 댄스장까지 만들어 재미주었습니다. 결론은 어떻게 됐나요? 교회가 나이트 클럽에 팔리고, 성도가 줄었죠. 교회가 이런 것을 한다고 해서 세상보다 즐거움을 줄 수 있나요? 성경에도 나와 있는 진리를 교회는 모르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재미와 예화와 율동만 가르칠 것입니까? 차라리 여름 성경학교가 아니라 여름 율동학교로 바꾸고, PC방에서 성경학교 하시죠? 그것이 더 나을지 모르겠습니다. 거기에 교회 교육의 전문가도 아닌 이제 신학 시작하는 전도사를 교육전도사로 세웁니다. 목회의 연습장입니다. 아직 신앙적 기반과 토대가 이루지지 않은 수많은 교육전도사의 연습장입니다. 주일학교만 전문적으로 배우고 힘쓴 사람이 아닌 그냥 신학대 생입니다. 어른들 가르치기 위해 마루타로 아이들을 쓰고 있습니다. 심지어 아이들에 영성을 무시합니다. 애들이 알아야 얼마나 알아? 이렇게 무시합니다. 근데 아이들의 학습력은 빠릅니다. 한 번 생각해보세요. 엄마도 잘 다루지 못하는 핸드폰의 기능을 아이들은 잠깐 만져보고 압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릅니다. 아이들에 장점입니다.
일곱번째, 신모계 사회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필리핀이 게이와 트렌스젠더가 많습니다. 이유는 남자들이 여성화 돼서입니다. 왜입니까? 스페인 식민지 때 남자는 가르치지 않고 여자를 가르쳤습니다. 성경은 분명 가부장 중심입니다. 근데 교회는 여성 중심입니다. 물론 저도 교회의 현실과 환경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고 교회가 여성의 지위를 높여 주었죠. 특히 한국은 여성이 핍밥 받을 때, 성도로 불렀죠.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여성 인구가 많다 보니 율동 마져도 이쁩니다. 남자아이들한테도 이쁜 율동 가르칩니다. 여성화 시키고 있습니다. 남자 아이들은 실어합니다. 하기 싫어하는데 선생님들은 강재로 시킵니다. 남자 아이들은 활동성이 중요한데, 바로 그것을 버리고 아름다운 율동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교회 안나오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거기의 여성들의 목소리가 큽니다. 고린도 교회의 분열 좀 잘나가는 여자들 때문에 생겼습니다. 소위 커리우먼이라는 사람들때문에 생겼습니다. 여자들의 목소리를 작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심지어 남편의 허가 없이 서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 번 성경을 보세요. 과연 남편의 허락 없이 서원을 할 수 있나요. 남편이 믿지 않기 때문에 내 돈이기 때문에 건축 헌금 작정도 마음대로 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남편일지라고 헌금 문제까지 상의한다면 어떨까요?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고 남자 아이는 남자 아이 답게 성장시키는 것이 어떨까요?
여덜번째, 통일 교육을 시키지 않습니다. 독일이 통일 될때 얼마나 기도했습니까? 죽기로 기도했습니다. 아이들까지 기도했습니다. 근데 어느 순간 한국교회는 자기 교회의 부흥과 복 받는 것만 가르치고 있습니다. 비만합니다. 지만 잘 먹고 잘살고 복받으면 끝입니다. 정말 돈벌고 공부해서 남주는 사람이 만들어 졌으면 합니다.
아홉번째 한국교회는 개혁주의 신학의 개념과 신학이 제대로 교유되어 지지 않고 있습니다. 얼마전 신문을 보니 일부 교단 목사님들이 로마에 가서 카톨릭과 그리스정교도 같은 뿌리라고 했습니다. 근데 같은 교리와 같은 뿌리입니까? 카톨릭의 중심인 성모마리아 사상을 봅시다. 성모라는 단어가 맞나요? 진지하게 생각해봅시다. 그냥 예수님 어머니입니다. 여신 사상에 빠진 카톨릭이 맞나요. 여신 사상은 잘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우상을 섬기는 집단들의 공통적 사상입니다. 바벨탑을 쌓던 지도자(이름이 기억안나에요)의 부인이 남편이 죽고 3년뒤에 다른 사람과 관계를 가지고 아들 낳기 때문에 만들어낸 사상입니다. 남편의 영이 나에게 임했다. 이렇게 해서 시작한 사상과 뿌리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 여신 사상을 가진 카톨릭이 같은 뿌리입니까? 바로 우상에 뿌리를 두지 않았나요. 그리고 교단들은 신학교와 신대원들을 감찰하고 감리해야 하는데, 한국교단들은 어느 순간 이 기능들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신학교에서 성경보다는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이 강합니다. 말씀의 중심으로 돌아가도록 감리 감찰해야 하는데 어느 순가 그 것을 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열번째, 찬양을 단순히 음악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찬송은 바로 기도입니다. 이날은 주가 지은 날이라고 찬양을 하고 밖으로 나와 비가 오면 바로 애이 십팔 왜 비가 와 이렇게 합니다. 찬양은 바로 기도입니다. 근데 어느 순간 잊어 먹고 있습니다. 슬프고 애석합니다.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참으로 울분을 참지 못해 올립니다. 진정 하나니의 교회로 거듭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 필요할 때가 아닌가라고 생각이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