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국가하천 10대강은 낙동강 ,한강 ,금강,섬진강,영산강,형산강,만경강,동진강,삽교천,안성천이 있으며
그속으로 흐르는 작은 실핏줄 같은 모든강 길이는 대략 6만 4천km에 달한다.
길고 긴 강줄기를 모두 다 가볼 수 없는 노릇이나 100km이상의 지류(남강,황강,반변천,밀양강,위천.금호강,내성천,보성강,
달천,홍천강,섬강,평창강,북한강,소양강)들과 앞으로 남은 낙동강의 (영강78, 감천74)
금강의(보청천72, 미호천89) 섬진강(요천60) 영산강(황룡강52)그외 동해로 흐르는 남대천54(양양) 삼척 오십천(46)
울산의 태화강(46),제주도 한라산에서 북쪽 용두암까지 흐르는 22km의 한천까지 11개가 남아있다.
이 모두를 걸어본다해도 4천4백여 km에 지나지 않는다.실제 걷는 거리로 따진다면 약 5천 km정도 될듯하다
대구에서 첫 버스로 경북 영천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미리 마중 와주신 정다운님이 반겨주신다.날씨는 화창하니 좋고
정다운님의 트럭으로 형산강 발원지인 경주시 서면 도리마을 뒷산인 인내산으로 찾아간다.
가는길에 어느 깔끔한 기사 식당에 들러 아침식사를 하고, 차 창문을 열어보니 가을이 차 창문 밖까지 와 있음을 느낀다.
정다운님의 트럭은 경주시 서면 하리마을을 지나 좁은 시맨트 길을 굽이돌아 올라 간다.앞의 봉우리는 낙동정맥길
왕사봉에서 살짝 벗어난 인내산 동쪽 봉이며 저곳 어디선가 형산강 최장 발원지가 있는곳이다.
저곳에 올랐다가 다시 이곳으로 내려오게 된다.
영천에서 이곳 경주시 서면 도리마을 안쪽 오토 켐핑장까지 택배해 주신 정다운님
발원지 찾아가는길은 언제나 잡풀이 무성해 정다운님께서 하얀 장화 한켤레를 준비해 오셨다.
사이즈는 조금 작지만 대충 꾸겨 신고...
정다운님 감사드립니다.
도리마을 오토켐핑장 지금은 축사가 자리한다.이곳에서 부터 인내산 오르는길은 지난밤에 비가 왔는지 빗물 머금은 풀들이
허리까지 오는곳이 많아 길이던 아니던 산정상만 보고 무작정 올라간다.
발원지로 곧바로 가지않고 잠시 떨어져 있는 인내산을 찾아 본다.
작은 돌무더기가 정상임을 알리나 그외 다른 특별한것도 조망도 없는 곳이고
이곳 역시 낙동정맥 길 답게 크고 작은 상수리 나무만 무성하며 나무 아래로는 지난해 떨어진 빛바랜 낙옆만 쌓여있다
[인내] 참고 견딘다는 뜻이 아니라 어원은 인출산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아주 오랜 옛날에 해일이 밀려와 꼭대기가 도장 많큼 남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마도 印(도장인) 出(날출) 이렇게 불렀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상수리 나무를 배경으로 한장 담고
사철 푸르게 빠르게 크는 속빈 대나무보다 천천히 크더라도 겨울이면 모든걸 떨구고 겨울을 이기는
속이 꽉찬 상수리 나무를 닮고 싶은 산길에서
거미줄 제거하며 가다보니 바로 앞에서 묏선생들의 소리가 들려 헛기침 크게 몇번하고
나 여기 지나니 비키고 싶으면 니네들이 비켜라 하고
상수리나무 낙옆들 사이로 방금 지나간 묏선생들의 흔적이 보인다.
형산강 발원지 최고봉인 513m 한아름 크기의 상수리 나무가 잡목 사이에 우뚝하다.
이곳이 형산강 최고 빗물 꼭지점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형산강 하구인 송도 해수욕장까지 실거리 70km(도상거리 67km)
그리고 낙동정맥 백운산 삼강봉에서 송도 해수욕장까지 63km
형산강 본류인 호미지맥 치술령 북쪽에서 하구까지 61km다
포항으로 흐르는 형산강 이곳도 몇몇 강들처럼 발원지에 대해서 논란이 많은곳이다.
울주군 백운산 삼강봉이냐? 경주시 서면 인내산이냐? 아니면 강 본류인 치술령 북쪽이냐?
하천의 발원지는 본류와 대부분 일치 하는데 몇몇 강들은 그렇지 못하다 보니 논란이 되며
형산강의 본류는 치술령 북쪽 계곡이나, 낙동정맥 삼강봉에서 발원하는 북안천이 더길어 대부분 그곳을 형산강 발원지로
보고 있다.
하지만 경주시 서면 인내산에서 흐르는 물이 북안천에서 흘러온 물보다 대략 4km정도 더길다.
경주시 서악동 형산강 합수점까지 거리는 대천 29km이며 삼강봉에서 흘러온 북안천(형산강 본류) 25km다.
비교해봤을때 약 4km정도의 차이로 인내산에서 흐르는 대천이 더길다.
형산강의 유래는 포항시 관문격인 포항시 남구 연일의 제산(182)과 경주시 강동면의 형산을 유래로 한다
형산과 제산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후삼국시대의 경순왕때 전설이 있다.그당시에는 형산과 제산이 하나로 이어져 있었으며
기계천과 칠평천 그리고 형산강 본류에서 흐르는 물이 모두 모이는곳에 큰 호수가 있있는데 이때문에 장마철에는 물난리가
많아 농사 짓기가 어려워 누군가 용으로 승천해 형산과 제산을 두쪽으로 갈라 물이 그곳으로 빠져 동해로 가게 해야만 했다.
왕이 百日(백일) 정성으로 기도를 드려 승천을 하려 했지만, 용이되기 위해 누군가 이무기(뱀)가 아니 용(龍)으로 불러 주어
야만 했는데 하필이면 뱀으로 보여 모든사람들이 다 뱀으로 불러 주었지만, 유금이라는 어린 아이만 뱀이 아니라 용으로
불러주어 승천할 수 있었다고 한다.어린 유금이 때문에 승천한 용이 형산과 제산을 갈라놓아 물이 그곳으로 빠져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영천 할배 정다운님께서 주신 전천후 장화
사진 작업중 몇장이 지워져 글로써 대신 씁니다.
인내산 동쪽 계곡따라 내려와 조금전에 지났던 오토 켐핑장(지금은 개 몇마리와 축사가 있는곳)으로 내려와 시맨트 길따라 내려오게 된다.
좁은 시맨트 길가에 폐축사가 몇군데 보이며 사람들이 찾지 않은곳처럼 길가로는 칡덩쿨이 무성하다.
오래된듯한 폐축사를 지나 인내산지 저수지에 도착하니 몇몇 낚시꾼들이 보여 물고기는 좀 잡히나 엿쭈어 보니
저수지에 물이 적어 고기가 안잡힌다고 하신다.가물어 저수지의 물이 절반정도만 있다.
몇해전만 해도 비포장 길이던곳 경주시 서면과 영천시 고경면을 이어주던 "한무당재"는 이제는 아스팔트길로 곱게 포장되
어 있고, 하리마을과 보건소 앞을 지나 짧은 심곡천 길따라 진행하게 된다.
아스길따라 걷다보니 서울에서 ktx타고 신경주 역에 도착하신 노송님이 어디로 가면 되냐고 전화가 오시고 심곡지 저수지
둑에서 만나기로 한다.
하리마을에서 심곡지 저수지 둑까지 5km 뛰어 와서
심곡지 저수지 입구에서 노송님을 만나서 인사 드리고 이제부터 함께 걸어 간다.
백일홍 가득한 아스길따라
백일홍 이야기
옛날 어느 마을에 이무기가 나타나 재앙이 자주 일어나자 마을사람들은 궁리끝에 일년에 한번씩 처녀를 제물로 바치기로
하는데 제비 뽑기로 어느 처녀가 당첨되어 죽을날만 기다린다.
처녀에게는 사랑하는 총각이 있었는지 총각이 처녀에게 " 내가 바다 건너가서 이무기 콱 직이뿌고 올테니 걱정말고
기다리라! 그리고 내가 살아 돌아오면 흰돛단배로 돌아오고 ... 죽으면 붉은 돛단배가 ...아무튼 그리 알고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큰소리는 다치고 바다를 건너 이무기가 살고 있는 섬으로 간다.
총각이 이무기와 대판 싸워서 어찌 이기긴 했는데 이무기가 죽으면서 돛대에 피를 토하고 디진다.
그것도 모르는 총각은 신이나서 배타고 돌아오는데
처녀는 이제나 저제나 총각이 살아 돌아올까 목이 빠져라 절벽높은곳에 올라 보는데
어느날 멀리 붉은 돛대가 보이는 것이다. 처녀는 순간 어지럼증과 어이상실 절벽에 떨어져 죽는다.
그뒤에 처녀가 죽은 자리에 백일홍이 피었다는 전설...
심곡천 가까이로 온통 소 키우는 축사가 보인다.
축사가 많으면 물은 더러울텐데
심곡리 마을앞
형산강 발원지인 인내산(534) 주위로 보이는 산들은 대부분 낮은 산이며 비가 오지 않으면 강수량은 급격히 떨어지게
되어있다.그리고 주위로 논과, 소 키우는 축사가 많고 농업용 비료에서 나오는 질소와 인이 녹아 들며 어느한곳에
물의 흐름을 막는 수중보가 있다면 저수지에 사는 말풀이 이렇게 자라게 된다.
앞은 오봉산이고 그뒤로는 부산, 우측으로는 사룡산이 지척이다.
강에는 온통 마름 말풀 투성이니 강물이고 뭐고 흐른다는 느낌이 전혀 없는곳이다.
마름 말풀 아래로는 3급수에 산다는 붕어가 노닐고 있을지...
지난번에 다녀온 정읍의 동진강은 된장 한사발을 물에 풀어 휘저어 놓은색의 물이 였는데 이곳 형산강은 그정도는
아니라서 다행이란 생각도 해본다
멀리 낙동정맥길의 부산은 신라 효소왕때 지어진 죽지랑과 득오의 모죽지랑가로 알려진산이죠
모죽지랑가
"지나간 봄을 그리매 모든것을 시름하는 구나
아름다움을 나타내신 얼굴에 주름살이 지니려 하는구나
눈 돌이킬 사이에 만나 보게 되리
낭이여 그리워 하는 마음가는길 다북쑥 우거진 구렁에서 잠잘수 있는 밤 있으리"
신라 효소왕 때 죽지랑의 무리 가운데 "득오"라고 하는 급간[신라 관등제9위]이 있었다
화랑도 명부에 이름을 올려놓고 매일 출근하더니 한 열흘동안 보이지 않았다
이에 죽지랑이 그 어미를 불러 아들이 어디에 갔느냐고 묻자
"당전의 '익선'(모량리 사람)이 내 아들을 부산성의 창고지기로 임명하여 급히 가느라고 낭께 알리지 못했습니다." 라고했다
죽지랑은 '그대의 아들이 만일 사사로이 그곳에 갔다면 찾아볼 필요가 없겠지만. 공사로 갔다고
하니 마땅히 가서 위로하고 대접 하겠소."하고는 곧 떡 한 그릇과 술 한 항아리 가지고 하인을 데리고 가는데
화랑 137인이 역시 위의를 가지고 떠났다. 부산성에서 득오를 위문하고 휴가를 얻어 함께 돌아가려 하였다.
그러나 부대장인 익선이 휴가를 승낙하지 않아 실랑이가 벌어졌다. 때마침 이 모습을 지켜보던 추화군의 관리 간진과 진절
이 죽지랑의 부하를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을 찬미하는 한편 익선의 벽창호 같은 태도를 비루하게 여겨 가져가갔던 벼 30석
을 익선에게 주면서 청을 들어주라 권하였으나 그래도 승낙하지 않아 또다시 간절의 말안장 까지를 뇌물로 주고서야 승낙
받을 수 있었다. 조정의 화주가(화랑의 통솔자) 이소식을 듣고 사람을 보내 익선을 잡아다가 그 더럽고 추한 것을 씻어주려
고 하였으나 익선이 도망하여 숨어 버렷기 때문에 그의 큰 아들을 붙들어갔다.
그때가 동짓달 매우 추운 날이라 성 안 못가운데서 탐욕스러움을 씻어주기 위하여 목욕을 시켰더니 곧 얼어 죽었다.
이 이야기는 모죽지랑가라는 향가의 득오가 죽지랑을 그리워하여 지은 것이다.
녹조가 가득한 물
이런 녹조는 햇볕과 물, 영양분으로 생긴다.특히 올해처럼 가물고 비가 오지않으면 더 극성이다.
마을이 있고 논이 있고 축사가 있으면 어김없이 생기는 것들
이세상 어떠한것이라도 모두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할 순 있겠지만
정작 물은 물로서 씻을 수 없다.이물이 흘러 바다로 들어가 깨끗해 질 수 있겠지만
작은 수중보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물의 흐름이 전혀 없으니 강이라 하기에는 그렇고 작은 웅덩이에 지나지 않는 모습
바람이 불때마다 어디선가 소똥향이 발길을 잡는다.
고향의 향기라 하기에는 조금 역겹고...
소똥향도 오래 느껴보니 배가 고파진다.가는길에 어느 중국집 식당에 들러 짬봉으로 점심 해결하기로 하며 발길을
자장면집으로 향한다
경주시 서면 사라리
강가로 잡풀이 너무 무성해 어느 농가집으로 들어가니 주인 아저씨가 친절하게 복숭아 밭을 가로질러 가라며 하셨고
팔고 남은 빛갈쫗은 복숭아 몇개 따가라고 하신다.
주인 아저씨는 큰것만 골라서 몇개 따가라고 하셨지만 그럴 수 없고 그중 몇개따서 배낭에 넣고 인사드린다.
물의 흐름도 없고 온통 수초풀과 잡초만 무성한 강
강가로는 낚시꾼들이 제법 많이 보인다.
배스 잡는 젊은분들은 더워도 혈기왕성하게 돌아 다니시고
붕어 잡는 나이드신분들은 파라솔 아래 점잖게 앉아 계시고
우리는 이렇게 풀밭으로 돌아 다니고
서면 운대리 마을
가다가 길이 막히면 어김없이 이런 수중보을 찾아 지나야 한다.
가까이서 보니 물 참 더럽다 이곳에도 배스 잡는 분들이 보이고
형산강 발원지부터 30km구간까지 이런 수중보가 20개는 될듯 곳곳에 물을 가두거나 막아 두었다.
물은 깨끗하게 관리하지 못하면 결국은 그물을 우리가 마실수 밖에 없다.
이물을 정화해서 먹는다면...그 비용도 꽤 들텐데
몸에 좋을라나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누렇고 간장 풀어 놓은듯한 물
토종닭 키우는 양계장 모습
야외에 방사된 토종닭들이 하우스 마다 가득 하지만,날씨가 더워 그런지 몇마리만 일광욕 겸 햇볓 좋은 마당에
두러 누워있고, 그중 몇마리는 먹이찾아 힘겹게 돌아 다닌다 나머지는 모두 그늘속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비가 오면 닭똥은 모두 낮은곳인 형산강으로 여과없이 스며들것 같은데
이곳 강 옆으로 축사에 토종닭까지...드러운 강이다.
지나는길은 대부분 이렇지만 그나마 좋은길도 나온다.
지나가도 어딘지 모르는 사진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수중보에 막히는 강이지만 그래도 힘겹게 아래로 흘러가는 물
물은 아래로 흐르다가 인위적인것으로 의해 막히면 찰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넘처 흐른다.
기다림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그 기다림은 곧 익숙함이며 빠름이다.
경주시 건천읍의 청룡 골프랜드
날씨가 덥워 끈적하니 골프장 안으로 들어가 자판기에 든 음료수 두개 사서 마시며
잠시동안에어컨 바람 앞 의자에 앉아서 쉰다.
온통 갈대풀인 형산강길
물은 어디있나
더러운 물은 수중보에 막히고 또 흘러 흘러 이곳까지 함께 왔지만
물은 저곳 갈대속으로 흐르며 어느정도 정화되어 좀더 아래서 깨끗하게 다시 만날것 같다.
말풀 사이로 보이는 물은 탁해 보이지만 그나마 조금 깨끗해진 모습이다.
강가에 강태공분들이 낚시를 하는 모습이 여유로워 보이며
잡은 붕어는 이틀정도 깨끗한 물에 담궈 두었다가 찜으로 해서 드신단다
건천
자갈 하천을 지나며
이곳 경주시 건천읍은 낙동정맥에서 살짝 벗어난 단석산 서쪽 계곡에서 흐르는 건천에서 유래한다.
비오면 물이 흐르고 그렇지 못하면 바짝 마른 건천(乾川)하늘이 꼴리는대로 한다는 뜻
하늘이 내린다는 건천읍을 지나며 강가로 풀이 너무 자라 반바지 입고는 진행하기 힘들니 잠시 4번 국도따라 걸어가며 ...
비가 오려는지 멀리 안개처럼 비가 몰려오는 모습
몽둥이 들고 앞장서 가시는 가스통 할배의 신통력인듯
이슬비가 조금 내리더니 비구름은 방향을 틀러 경주방향으로 지나간다.
4번 국도에서 내려와 강가길로
오늘 개라도 한마리 때려 잡으시려나 몽둥이 들고 지나가시는 할배
이슬비가 조금 내릴무렵 건천읍 금척리 어느 축사 농가에 지어진 간이 원두막에서 비가 그치길 기다려 본다.
시간이 많으니 여유를 가지고 운기조식하며 땡자 땡자~
향긋한 소똥향기 속에 비는 두사람 머리위에서 퍼붓는다.
배방장 비오는날 먼지 나도록 좀 맞을래
여유를 가지다 해빠질까 농가 주인분께 비닐 조금 얻어 덮어쓰고 질퍽이는 비포장길로 향하다
허수네 식구들이 참새 사냥 겸,세상 구경하는지 사과 나무위에 올라간 허수네 식구들
얼마나 악취가 심했으면
지나는길에 온통 소똥냄새였으니...
우리도 그런길 걷고 왔쓰~~~
도로가에 바위를 깍아 쓴 府尹趙相公明....(부윤조상공명...)나머지 글짜는 알았지만 지금보니 나무잎 때문에 뭐가 뭔지
모르겠음 (부윤 조상공명조 영세 불망비인가)
비는 그칠줄 모르고
신라 제23대 법흥왕릉 가는길
아름드리 소나무가 많은곳에 자리 잡은 법흥왕릉
평소 같으면 관광객분들이 보이겠지만 비가와서 그런지 관광객들이 한분도 안보인다.
법흥왕은 지증왕의 맏아들이다.
병부를 두고 율령을 반포 하였으며 상대등을 설치하는 등, 신라의 국가 체제를 정비하는 기초를 세웠으며,
금관가야를 합병하여 낙동강 유역으로 신라의 영토를 넓힌 왕이다.
법흥왕 15년 불교를 공인하여 국교를 정하고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를 짓기 시작하셨던분
법흥왕때 순교하신 이차돈 아시죠
이차돈은(경주5악인 소금강산 아래 백률사) 신라 불교 첫 순교자이며,불교를 국법으로 허용해줄것을 주장하다 스스로 목을
내놓죠 그래서 목에서 하얀 피가 나면 국법으로 허용해 달라고...
진짜로 목에서 하얀피가 나서 이때부터 불교가 국법으로 허용된다.
법흥왕은 신라 최초의 불교를 국법으로 만는 분이시며 이차돈과 법흥왕 둘사이의 관계가 특별해 보이죠
비오는날의 왕릉은 생각외로 조용하고 아담한 모습
형산강 넘어로 벽도산(424)이 지척이나 지금은 그저 그림의 떡일뿐이다.
그리고 김유신의 전설이 깃든 단석산이나 오봉산에서 흘러온 물이 많아 지면서
강은 세력을 조금 더 크게 키워 흐르는 모습이며 고여만 있던 물도 한층 깨끗해졌다.
물은 씻을 수 없지만 서로가 만나면서 스스로 깨끗해진다
경주의 관문격인 선도산과 벽도산 그리고 남산과 망산
벽도산(424)과 마주보며 서있는 선도산(350)은 둘다 남자(男子)산 이며
그 사이에 아리따운 미인(美人)의 산인 망산(望山230)을 사랑 하였지만, 망산은 언제나 한결같이 경주의 남산을 사랑해서
벽도산과 선도산 그리고 남산은 서로 싸웠다고 전한다.
망산은 멀리서 보면 신라의 거대한 고분군 같은 산이고,스스로 애틋한 감정을 지닌 산답게 홀로 서있는 모습이 멋스런
산이다.
멀리 경주 남산이 보인다.
경주에는 5악이라는 산이 있다.
통일신라 이전의 5악은 경주 남산을 남악으로,선도산을 서악,소금강산을 북악,낭산을 중악,토함산을 동악이라 불렀으며
이중에 이름도 생소한 소금강산은 이차돈이 순교한 백률사란 절이 있고 신라 제 4대왕인 탈해 이사금의 왕릉이 있는 산,
낭산은 선덕여왕께서 잠들어 계신 낮은 산이며,대부분 서라벌 경주를 중심으로 가까이 있는 산들로 구성되어 있다
통일 신라 이후의 5악은 그세력이 커져 토함산(서억).지리산(남악),계룡산(서악),태백산(북악),팔공산(중악)으로 커졌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세종때는 북진정책으로 금강산,묘향산,지리산,백두산,중앙으로 삼각산이 자리하게 된다.
망산이 짝사랑한 남산이 지척이나 지금 저곳으로 가지는 못한다.
멀리 오봉산과 부산이 보인다.
낙동정맥길의 부산은 아시죠
도로 건너와
도로따라 좌측으로 진행하게 되면 경주 서악리 고분과 태종 무열왕릉을 구경하게 되지만
오늘은 수학여행이 아니기에 지나 가다가 있으면 보고 없으면 말고 지난다
기차 철길을 건너고
경주시 서악도 장애안길을 지나며
남산과 고위봉이 지척이다 천년의 향기가 전해지는 경주의 금오산
천년 불사를 이루며 보다 더 살기 좋은 세상을 꿈꿨던 서라벌 사람들
산을 산으로 보지않고, 흰 피가 솟구치던날 불교를 신라의 국법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이땅은 불국정토였고 왕권 강화를 위해 불교는 떠받들어 지게된다. 소나무와 화강암이 자리하는 남산으로
정과 망치를 들고 부처를 세기는 모습 그러나 석불을 세기면서도 정작 자신의 이름 석자를 세기는 일은 없었다.
무수히 많은 바위들을 정과 망치로 쪼개면서,쪼개내야 할 부분과 남겨야 할부분들 그리고 돌 축대를 올려야 할부분까지
세심하게 작업하며 천년을 이어간 신라인들, 먼훗날 나정 포석정에서 술판이 나라를 망하게 했다는 사실을 알까
남산에는 지정 문화재 45개,석조불상 118개,석탑 97개, 흔적만 남은 절터 150개등 유적만 686개가 자리한다
저곳 경주 남산은 낙동 정맥길 삼강봉에서 동쪽으로 이어져 오다 신라의 충신 박제상과 부인의 애틋한 전설을 간직한
치술령을 조심스레 지나, 신라 천년에서 100년 정도 더 이어졌더라면 마석산 정상의 맷돌바위에도 미소가 가득한 부처님의
모습을 간직했을법한곳을 지나고 고위봉을 지나 남산(금오산)으로 이르게 된다.
금오산은 조선초 희대의 문장가인 김시습이 세조의 왕위 찬탈에 세상을 등지고 전국 방방곡곡을 9년간 돌아 다니다가
남산 아래의 용장골의 용장사에 머물며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를 쓰게된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이곳 경상북도 경주땅 한번 안와본 사람이 있을까?
없을것 같다.무조건이라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경주땅
그리고 경주땅을 다돌아 보았다고 해서 남산(금오산)을 올라보지 않았다면 경주를 다 봤다고 말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경주를 하루,이틀 만에 수박 겉 핧기 식으로 다닐 수 있겠지만 세심하게 본다면 몇달은 걸릴듯하다
인내천에서 흘러온 대천과 낙동정맥길의 삼강봉에서 발원해 이곳까지 흘러온 형산강
서로 다른곳에서 흘러왔지만 이제부터 서로 부둥켜 안고 흘러야 할지점에 도착한것이다.
신라 천년을 지켜본 형산강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서악리 고분군이 내려다 보이는곳은 망산을 너무도 짝사랑했던 선도산이다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태종 무열 왕과 그의 아들인 김인문 릉이 보이며
오래전 죽은 왕보다 오늘 소고기 사주러 오시는 포항 할배 이글스님이 기다리는 곳
산은 크다고 해서 그리고 작다고 해서 서로 싸우지 않는다.
그리고 서로 어른이라고 해서 불필요하게 싸우지도 않고
물처럼 닯아가는 시간이 필요할것 같다.
산도 쉼 없이 흐르고, 물도 쉼 없이 흐른다.
막히면 순리대로 기다렸다가 흐른다.
두 물줄기가 합수되니 수량은 많아졌고 깨끗해졌다.
일 마치시고 소고기 사주러 오신 이글스님
이글스님 차타고 울주군 두동면 봉계리 한우 단지로 갑니다.
오늘 마을마다 지나는 길에 소똥향기 실컷 맡아 보고 결국 소고기 맛보러
아직 초반전이라 이렇습니다.
소고기 라면이라도 좋다고 했는데 진짜 소고기로
이글스님 잘 먹었구요 야간에 합류하시면 좋겠습니다.
경주
우리는 흔히 갱주라고 부르는곳
이곳 경주는 오래전 사람으로 태어 났으되 알에서 태어난 사내아이를 왕으로 모신 곳이다.
신라 제 1대왕인 朴赫居世(박혁거세)
세상을 밝게 하다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며 경주 평야을 서라벌이란 나라이름으로 사용하고 금성을 쌓으신분
좌측으로 신라 제4대왕인 탈해왕릉이 있고 순교한 이차돈의 백률사가 자리하는 소금강산이며,
멀리 동해 일출의 명소인 토함산이 보인다.
소고기의 힘으로 진행하며 80년은 족히 될듯한 아름드리 벗나무 길을 지나니
지난날 벚꽃 흐드러 지게 피던날이 생각난다.
조금만 더가면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 장군의 묘가 있으나 몇번 찾았던 곳 이기에 생략하고
예전에 담은 사진인데 조금 바뀐듯
형산강 길을 걸으며 멀리 곤제봉과 무릉산이 보이고
저곳은 6,25 전쟁때 북한군과 치열하게 싸운곳이죠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전쟁터이며 많은 학도병이 숨져간 기계면의 어래산이 저곳 넘어에 있는곳이다.
가는길에 뭔가 아쉬웠나 선도산이 고개를 빼꼼히 내민다.
선도산이여 망산만 바라 보시라
한눈 팔지 마시고
경주 남산과 고위봉 그리고 마석산이 보인다.
이제 몇 모퉁이만 더돌면 천년고도 경주땅을 벗어날것 같다
경주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형산강가에 자리잡고있다.
금장대 부연 설명은 읽어 보시고
금장대에서 본 경주 시내
앞은 북천(北川)이며 억새로 유명한 무장산 서쪽에서 흘러온 물이 덕동호 그리고 보문단지에 한번 들어 갔다가
25km를 흘러 형산강으로 합수되는 지점
가운데 토함산이며 멀리 뿌연곳은 동대산 방향
현곡면 금장리에 와서
마트에 들러 아이스크림과 물몇병 보충하고
이제부터 야간 준비하기로 한다.
늘 편하게 즐기시는 노송님
발바닥에 물방울 큰것 두개 만들며 진행중
금장마을 아파트와 공원길
보름날이라 달은 밝고
운치가 있으며 걷기 좋은날이다.
경주에서 안강으로 지나가는 2차선 도로
좁아터진 아스길 위험한 길이다.
갓길은 없고 대형차들이 지날때마다 랜턴으로 여기 사람 걷고 있네라고 불빛으로 확인해준다.
소형 자가용들은 사람이 가건 말건 그저 달리기에 바쁘고
대형차들은 속도를 줄여 준다.반대편으로 차가올때는 서서 기다릴줄도 알고
도로의 무법자는 쌩쌩 달리는 소형 차들이다.
약 3km 가량 살떨리게 진행하며 국제 정비공장 이후로 형산강가로 진행하다.
차가올때마다 서서 기다리다가
경주시 용광동 아파트
지나온곳으로
야간에는 낚시꾼들이 가득하다.
이글스님이 합류해서 이제 3명이 보기좋게
두분 할배님 하고 길찾기 놀음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때로는 빗물 머금은 풀밭으로 때로는 잡풀 무성한곳으로 오르며
경주시 안강읍 사방리의 대동과선교 아래로 지나며
이제는 빗물 머금은 풀밭은 끝나고 자전거길로 진행하게 된다.
가을을 알리는 귀뚜라미 소리를 벗삼아 달빛은 좋고
한발 한발 졸면서 걷는 기분
어디가서 조금 누웠으면 좋으련만
경주시 강동면 호명리에 자리잡은 안강 하수 처리장
하수 처리장이지만 더러운 냄새는 전혀 안나는곳이다.
제 2강동 대교를 지나며
멀리 형산강 북쪽의 제산이 보이고 그 남쪽에는 형산인데 그림에는 보이지 않는다.
양동 마을 삼거리에서
양동 마을은 가지않고 강동면으로 컵라면 사먹으러 갑니다.
늦은시간 라면이 더 중요하죠
강동면 이글스님 사무실 근처 편의점에 들러 몇가지 사고 강동면 사무소 정자에 누워 본다.
바람불지 않은 정자에 누워 동네 모기들 밥 주고 나니, 포항 할배 이글스님이 그만 가잔다.
좌측에 보이는 산은 형산 우측으로는 제산이 보인다.
형산강 이름의 유래인 형산과 제산을 모두 지나고
매화누님이 주무실것 같아 연락 못드리고 지나는 유강
누님 깨울까 했는데...
이제 다와 가는군요
새벽 3시 넘은 시간인데 우리도 우리지만 새벽에 돌아 다니시는 포항분들이 더러 있더군요
끝날 무렵 남쪽 하늘은 온통 비구름으로 검으며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진다.
우리가 새벽까지 돌아다니는 모습이 애처로웠나 형산강 하구까지 빨리 가기만 기다렸다는듯
차가운 바람을 불어 주었다
울산의 태화강과 더불어 명당터로 만들어 놓은 포스코의 형산강
경상북도에서 유일하게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곳으로 포스코가 있으므로 유명한곳이다
전라남도의 유달산이 자리하는 목포의 영산강을 거대한 용으로 비유 한다면
이곳 형산강은 이승이 좋아 승천하기 싫어한 이무기가 포항 형산강을 지배하는 모습이다.
포항 할배 서울 할배 두분 모습
같이 고생 해주셨어 감사 드리고 함께 나눈 슬때없는 이야기는 언제나 웃음입니다.
발원지 부터 이곳까지 72 KM를 내려와
형산강이 바다의 품에 안기는곳에서
강따라 누적거리: 3천 8백 60KM
그렇게 길지 않으나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강으로써 흘러온 물은 이곳에서 대해(大海)의 품에 안긴다.
그동안 지나온 우리나라의 하천들 몇곳빼고 대부분 물이 더러우며
수년후 물은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
물론!지금 이대로 간다면 불보듯 뻔하겠지만
철지난 송도 해수욕장
빗방울은 점차 많이 땅을 향해서 내리며 우리는 각자의 집을향해 포항 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버스 터미널에 도착할무렵 비는 더 많이 내렸으며 대구에 도착하니 거의 폭우 수준이다
이 비와 함께 형산강도 좀 시원해 졌으려나...
첫댓글 며칠동안 수도권에 특히 내가 살고 있는 도봉구에 폭우가 쏟아졌지요.
중랑천이 물이 얼마나 많이 불었는지 많은 피해가 있어서 복구하려면 시간이 좀 걸려야 될 듯 하더군요.
강도 비가 적당히 와야 깨끗해지고 할텐데 올해는 그렇지 못해 더 지저분하지 싶습니다.
지원하신 정다운님, 함께 걸으신 노송님, 이글스님 모두 수고많이하셨습니다.
9월에는 클럽 관련해서 찾아 다니다 보니 한달간 푹쉬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몇개남은 강 시작해야 할듯하네요.
글 감사드립니다.
할배사진도 찍어드렸군요~
환상의 짝꿍ㅋ
대간 끝나면 내도함 낑겨주세요~~^^
안성천 걸을때 함게 하시지요ㅇㅅ 老 松
화성이라는 아름다운
누님 대간 졸업 축하드리구요
강길 찾아 오시려면 이번주에 오셔야 하는데
시간 안되시겠죠
두분이 함께 그리고 찬조 출연도있어 보기는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한달간 쉬고 다시 강길 이어갈까 합니다.
한구간 오시죠 오시면 라면 사드립니다.
파도리때 다친 목숭아뼈가 등산화 신기가 불편해서 목없는신 신고 갔더니아주고 이글스님과 함게 걷는후 부터는 걷기가 엄청 불편했는데...겁게 걸은것 같습니다.ㅇㅅ 老 松
발바닥에 훈장
뒷 덜어져서 따라가니, 그래도 좋아습니다, 함게 비도 맞고
안성천은 언제 걷는지요... 화성이라는 아름다운
이번주 삽교와 안성 두곳인데 실거리가 꽤 나올듯 하며
저녁에는 추울듷하니 준비해서 천안역으로 오시면 될듯합니다.
형산강을 소동향기와 함게 하셨네요 ^^
그덕에 소고기 맛도 보시고~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번주부터 다시 강길 이어가는데
조심스레 이어 가도록하겠습니다.
휴~~긴산행기 간신히 다 읽었네요
이글스님 노송님 밤새 걸으시면서 방장님과 23차대간 잘가고 있는지 걱정하시면서 문자 주시고 배방장님과 이글스님과 노송님 형산강 비맞으시며 수고 많으셨어요~~~
대간길 졸업 축하드리구요
이번주 지맥길 가시죠 잘 다녀 오시기 바랍니다.
형산강은 늘 눈으로만 보고 지나가는데 발품팔아 걸으신 형산강길
잘 보고갑니다. 노송 선배님 이번에도 함께 하시고
이글스 선배님 또한 많은 도움 주셨네요.
영천의 정다운 선배님 또한 들머리 택배까지
수시로 고향집 들리면서 지나가는 금장교
그런데 가까운 곳이라서 그랬던것인지는 몰라도
금장대는 눈으로만 보고 직접 들러보지를 못하였는데
조만간 촌에 갈때 한번 들러보아야겠습니다.
금장대는 경주시가지가 잘 내려다 보이는곳에 자리하구요
한번 정도는 찾아봐도 좋을곳입니다.
가끔 대뽀님의 발걸음이 부러울때도 있는데
억새가 만발하는 영알에서 지나가다가 우연히 만났으면 좋겠네요
사진 한장이 나를 이렇게 까지 댓글 달게 하시네요 방장님 !!!
이제까지 눈팅으로 산행기만 감상했는데 이제야 한 댓글 달아봅니다 ~~~<사진 한장의 마을은 운대리 마을입니다...울 고향이라 >
널 행복 하시고 안전산행 이어 가시길 기원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