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11주일 마르코 4,26-34
찬미예수님, 한 주일동안 잘 지내셨나요? 한 달에 한 번 봉사자들과 환자영성체를 하러갑니다. 그때마다 구역의 식구들이 함께 모여와 성가도 불러주고, 기도해줍니다. 그 때 환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기뻐하는 모습을 봅니다. 환자들이 함께 한 신자들의 따스한 손길을 느끼는 것을 종종 봅니다. 그 손길이 바로 하느님의 손길이요. 그 순간이 바로 하느님 나라라는 것을 느껴봅니다. 지금도 하느님의 손길을 우리는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제1독서에서 하느님은 에제키엘 예언자를 통해, 지금은 유배지에서 좌절하고, 고통속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희망을 줍니다.
어떻게 희망을 주고 있나요?
22절을 보면, "내가 손수 높은 향백나무의 꼭대기 순을 따서 심으리라. 가장 높은 가지들에서 연한 것을 하나 꺾어, 내가 손수 높고 우뚝한 산 위에 심으리라.(22절) “이스라엘의 드높은 산 위에 그것을 심어 놓으면, 햇가지가 나고 열매를 맺으며 훌륭한 향백나무가 되리라. 온갖 새들이 그 아래 깃들이고, 온갖 날짐승이 그 가지 그늘에 깃들이리라.”(23절) 그제야 들의 모든 나무가 알게 되리라.....나 주님임을 알게 되리라.(24절)고 말씀하십니다.
이 얼마나 그들에게 희망을 주시는 말씀일까요?
여기서 하느님은 향백나무의 순을 따서 심는데, 꼭대기 연한 순을 따서 심는다고 했습니다. 좋은 가지를 잘라 심으면 될텐데, 하필이면 연한 순을 따서 심는다고 하실까요? 연한 순은 유배지에 있는 초라하고, 보잘 것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합니다. 결국 지금은 유배지에서 너희들이 초라하고, 보잘 것이 없는 연한 가지이지만, 앞으로 나무중에서 가장 위엄있는 향백나무가 되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당신을 믿고 희망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는 힘이 당신께 있다는 것을 말해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에제키엘 예언자의 말을 듣고, 하느님의 손길과 하느님의 섭리를 느꼈을 것입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손길을 오늘 복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땅에 뿌려진 씨앗으로 비유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았는데,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 씨뿌린 사람은 모르지만 그 씨는 자란다고 했습니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한다는 것이죠.(26-28절)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한다. "이런 힘이 뭘까요?" 일반인은 "자연의 힘이지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의 손길”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손길로 우리를 이끌고 계십니다. 우리가 겪는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희망으로 이끌고 계시고, 나약함에서 강함으로 이끌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하느님의 손길을 우리가 느끼고 있나요?"
가끔 신자분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인생의 뒤안길을 이야기할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결혼했고,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어떻게 살아왔고.... 어느새 그분들의 눈간에 눈물이 맺힐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공통적인 말은 삶의 여러가지 고비들이 많았는데,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하느님의 손길때문입니다."라는 고백을 합니다. 그 말을 곰곰히 묵상해보면, 그냥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그런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느껴집니다. 인생의 고난이나 역경때 부단히 하느님의 손길을 찾으려고 했고, 하느님께 의택했던 사람만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손길때문에 여기까지 왔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나요? “하느님이 나를 이끌어주고 계시다는 것을 믿습니까?” 하느님은 나를 이끌어주십니다. 아멘!!!
구약의 인물중에서 하느님의 손길과 하느님의 섭리를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는 인물이 요셉입니다. 요셉의 인생을 보면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입니다. 어쩌면 우리들의 인생과 비숫합니다.
요셉은 일찍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형들을 무시한 대가로 형들의 시기로 미디안 장사꾼의 노예로 팔려갑니다. 그럭저럭 주인을 잘 만나 인생이 좀 풀리는 것같았는데, 요셉에게 반한 안주인이 성적인 유혹을 합니다. 그 유혹을 뿌리치는 바람에 요셉은 감옥에 갇히게 되지요. 그러다 감옥에서 파라오의 꿈 해몽때문에 그는 높은 벼슬을 갖게 됩니다. 나중에 기근이 들어 형들이 이집트에 곡식을 사러왔을 때, 형들에게 하느님의 손길과 섭리를 고백합니다.
하느님의 손길과 섭리를 믿는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이러한 믿음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지요. 믿음은 아주 작은 믿음으로 출발해서 큰 믿음으로 성장합니다. 이 작은 믿음은 바로 “겨자씨”와 같습니다. 처음에는 보잘 것없는 믿음이지만, 하느님은 당신의 손길로 그 믿음을 성장시켜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려고 노력할때, 큰 믿음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믿음이 성장하고 싶다면? 하느님의 손길을 많이 느껴야 합니다.
사실 요셉도 처음부터 하느님의 손길을 느낀 것이 아닐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느님을 원망하고,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고... 하지만 요셉은 죽음의 순간을 여러 차례를 넘기면서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깨달아 갔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요셉은 고통과 시련 속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절망적인 순간에 하느님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이시대가 살아가는 우리가 그러합니다. 하지만 바오로사도는 제2독서에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라’고 말합니다.(2코린 5,7) 우리가 하느님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에도 그분의 손길이 나를 이끌고 있다는 믿음으로 살아가길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렇게 노해해봅시다. 고백해봅시다.
“나는 어떤 시련이 와도 능히 이겨낼 강한 팔이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나와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나는 하느님의 사랑, 아름다운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아멘.”
첫댓글 감사합니다.
오랫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직장에서 짤렸지만 돌아보니 제게 쉼이 필요해서 하느님의 손길로 그리된것 같습니다.신부님의 말씀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