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가타 요네자와 2 - 요네자와에 도착해 역사를 되돌아 보고는 호텔을 찾아가다!
2022년 11월 2일 야마가타(山形)현 긴잔온센 銀山溫泉(은산온천) 을 보고 버스와 기차로 신죠(新庄)
에 돌아와 1박 하고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텔레비전 뉴스를 보니... 북한이 동해(일본해)
상으로 미사일을 발사 했으니 니가타현과 야마가타현에 미야기현에는 비상사태 경고가 내려졌습니다.
신죠역으로 가서 기계에서 카드를 사용해서 요네자와 까지 기차표를 끊는데 이 기차는 도쿄
까지 가는 신칸센 쯔바키 열차로 지유세키(자유석) 가 없으니 좌석 요금까지
합쳐서 1인당 4,090엔씩에 표 2장을 끊는데 나중에 보니 미도리노 마도구치 에 여직원이 있네요?
신칸센 쯔바키호는 신죠에서 9시 16분에 출발해 야마가타현을 남으로 종단해서 12시 15분에 최남단인
요네자와 よねざわ 米沢(미택) 역에 도착하기로 나오니.... 역에는 요네자와소(米沢牛) 그림이
보이는데.... 오늘 저 일본소 와규(和牛) 를 맛볼 수 있을지 기대를 하지만 워낙 비쌀테니 망설여 집니다.
인포메이션 센타 에 들어가 시내 지도를 받고 요네자와성과 우에스기 신사 및 우에스기가 묘소 관광지 위치며
가는 방법등을 확인하고는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한 토요코인 요네자와 에키마에로 찾아가서 체크인을
하는데, 2인 1실 아침 제공에 신죠의 루트인이 13,230엔 이었던데 비해 도요코인은 8,265엔 에 불과합니다.
요네자와시 (米沢市) 는 야마가타현의 남동부 오키타마의 도시로 예전에 미나미오키타마군
및 히가시오키타마군에 속했는데..... 가마쿠라 시대에는 나가이 씨의 영지였으나
무로마치 시대 초기 다테씨의 영지 가 되었고 센고쿠 시대에 다테 씨의 본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다테 마사무네는 요네자와 성 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후일 권력을 잡은 후에는 이와데야마
(미야기현 오사키시) 로 본거지를 옮겼으며 훗날 센다이 를 거점으로 삼게 되며.... 요네자와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우에스기 씨 에게 주어졌으니 저 우에스기씨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일본이 倭(왜) 라는 국호를 사용할때는 야마가타현 이나 아키타현에 미야기현, 모리오카현과 아오모리현은
일본 영토가 아니라 일본 원주민인 신석기시대를 살았던 조몬인 으로 에미시(蝦夷) 또는 에조(えぞ) 라고
부르던 사람들의 땅이었는데, 왜인들은 저들을 '毛人(모인)' 으로 표기하고 '에미시(えみし)' 로 읽었습니다.
그런데 왜국이 나라현 남부에 아스카(飛鳥 비조) 를 도읍으로 하던 시절인 660년에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망하고 복신등의 부흥운동이 일어나자 왜국의 사이메이 여왕(천황) 은 일본에서 수십년째 살고(인질?)
있던 의자왕의 동생(아들?) 풍왕자에게 왜군 5천 을 주어 한반도로 나가 중국에 잡혀간 의자왕을
대신해 백제 왕 에 오르게 한 후에 수도를 후쿠오카로 옮기고는 663년 3만 대군을 1천척 배 에 태워 보냅니다.
하지만 왜군 함대가 백강(금강) 하구에서 당나라 수군에 화공 을 당해 대패해 철수하니 백제 중산층은 왜군을
따라 일본으로 망명 하는데, 그 전에 사비성과 웅진성이 함락돼 의자왕등 왕족과 귀족에 부유층 1만 2천 이
당나라에 잡혀갔고 중산층이 왜국으로 도주했으니 한반도에 백제인은 서민층만 남아 신라의 지배를 받습니다.
이런 이유로 한국인의 성씨 중에서 백제인을 시조로 하는 성씨 는 20위 남평문씨 45만 외에는
찾아보기가 힘든데.... 260만명으로 국내 3위인 이성계의 성씨인 전주이씨 시조 는 통일신라
말기 사공(司空) 벼슬을 지낸 이한(李翰) 으로 신라 경주 이씨 에서 분적(分籍) 했다고 여겨집니다.
백제 8대성등 성씨는 귀족만 가졌으니 백제 말기 충신 성충과 흥수, 신라 대야성을 함락한 윤충과 계백장군 등
은 평민 출신이라 모두 성씨가 없이 이름 뿐 인데.... 훗날 관리와 부자들도 성씨를 가지게 되지만 백제땅을
다스린 관리들은 모두 신라인 들이었고 순수 백제인은 서민들이라 성씨를 남긴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며,
고구려도 비슷하니 유일하게 강만식 장군의 진주 강씨 가 있지만 그들도 원 조상은 중국인이라고 주장합니다.
일본인들의 성씨가 110,000 개 인데 비해 한국인의 성씨는 5,000개 로 그중 1위~30위, 30개 성씨는 2,640만
으로 전체 인구의 51% 를 차지하며 나머지 4,970개 성씨가 49% 를 차지하니 편중이 심하며, 30개 대성
중에도 1위 김해 김씨가 446만인데 비해 30위 김녕김씨는 29만에 불과한데.... 성이 없던 조선인들이
남의 성씨 를 쓴데 비해 일본은 메이지유신후 친척들이 모여 새로운 성씨를 만들었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새로 일본 왕위에 오른 천지왕 은 신라와 당나라의 보복을 두려워해 규슈와 서부 일본에 망명한 백제인들을
동원해 산성 을 쌓았으나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자 수도를 내륙인 비와호 로 옮겼으며 그후 왜국은 한반도
와의 탯줄을 끊고는 국호도 “해 뜨는 땅” 이라는 뜻에서 日本(일본) 으로 바꾼 다음 나라(奈良)로 천도합니다.
70년후인 794년에 간무왕(桓武天皇 환무천황) 은 수도를 평안경(京都 교토) 으로 옮긴후 정이대장군
(征夷大將軍) 을 임명해서는 오래 전에 규슈에서 부터 달아난 조몬인, 에미시(에조) 들이 거주
하는 동북 일본을 침략해 일본 영토를 확장하니.... 여기 야마가타현도 비로소 일본 영토 에 편입됩니다.
헤이안(교토) 시절 평화시대가 계속되자 백제계인 소가(蘇我) 씨의 후손인 후지와라(藤原) 씨가 대
귀족으로 성장해 왕실의 외척이 되어 정권을 농단 하다가 자기들 끼리 분열 했으며.... 무사계급인
타이라씨와 미나모토씨 도 분열해서 두 진영으로 갈라져 싸우다가 타이라(平)씨 가 정권을 잡습니다.
후지와라씨는 세력이 약화되었고 멸문지화를 당한 미나모토(源)씨 는 대부분 죽임 을 당했으나 어린
아들 둘은 멀리 동북쪽에 유배를 당했으니 그중에 미나모토 요리토모 는 에도(도쿄)
입구 가마쿠라에서 호족인 호조씨의 사위 가 되어 궐기해 교토를 장악하고 가마쿠라 막부 를 세웁니다.
이후 가마쿠라 막부는 몽골군과 그 앞잡이 고려군의 침공 을 받으니 2차례에 걸쳐 태풍의 도움 도 있고
해서 물리쳤지만..... 승리했다고 해도 땅을 얻거나 재물등 전리품 을 얻은게 아니니 전쟁에
참가한 무사들에게 보상을 하지 못하자 빚을 내어 무장을 갖추어 전쟁에 참가한 무사들이 파산 합니다.
이런 흉흉한 사태 에 이르자 실권을 잃고 허수아비 신세이던 고다이고천황(일왕) 은 실권을
되찾고자 전국의 무사들에게 궐기를 호소 하자..... 불만이 많던 무사들이 궐기해
가마쿠라 막부가 망했지만, 고다이고왕은 새로 들어선 아시카가 막부 에 권력을 빼깁니다.
아시카가(足利) 막부는 230년간 일본을 다스리지만 쇼군(장군) 후계자 자리를 두고 삼촌과 조카가 다툰 1467년
오닌의 난 (応仁の乱) 이 일어나 내란으로 10년간 교토가 불바다 가 되었지만 한쪽이 승리하지 못하니 전쟁
경비 조달로 파산한 무장들이 지방 으로 내려가 자립하니..... 센고쿠 시대로 일본은 200개 나라 로 분열 됩니다.
저 200여개 나라는 자기 영토를 넓히기 위해서 이웃 나라를 침략하니 전투로 날을 새는 내란 이
120년을 계속하며 전국이 황폐화 되던 중에.... 오다 노부나가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
130년간 계속된 전란을 수습해 통일 했으나 임진왜란을 일으켜 전쟁 중이던 1588년에 죽습니다.
요네자와 는 다테 마사무네의 할아버지인 하루무네씨 의 영지가 되었고 1566년에 센다이번을
세우는 다테 마사무네가 태어난 곳 이지만..... 후일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다테씨는
이와데야마(미야기현) 으로 옮겨가고 가모 우지사토를 거쳐 에치고(니이가타)
의 우에스기씨 가 옮겨오니 이 도시에는 온통 우에스기씨의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다테 마사무네 (伊達政宗)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정종(正宗)이 마사무네의 이름을 딴 술 이라고 잘못 알려
지기도 했는데..... 오슈 후지와라의 후예로서 1584년 18세에 다테 家(가) 의 17대 당주로 취임하였고
당주가 된 후, 이웃 나라와의 전쟁에서 거듭된 승리로 불과 5년만에 오슈 최대의 다이묘 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당주가 되기 불과 2년 전인 1582년에 혼노지의 변이 일어났고, 도호쿠 지방의 패자 가 되었을 땐 이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거의 통일한 뒤였기 때문에 상대가 되지 않았으니, 일본에서는 그를 두고
'10년만 일찍 태어났더라면 천하를 잡을 수 있었다.' 고도 평하는데 눈을 다쳐 독안룡(獨眼龍) 으로 불렸습니다.
이 도시 요네지와 에서는 해마다 옛 번주를 기리는 요네자와 우에스기 마쓰리 米沢上杉まつり 축제가
열린다고 하는데.... 에치고국(니가타) 영주였던 우에스기 가게카쓰 는 히데요시 치세에 아이즈번
120만석 번주 로 전봉되었고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 때 서군에 섰다가 도쿠가와에게 문책 을 당합니다.
아이즈번 120만석을 대부분 몰수 당하고 가신 가네쓰구에게 맡겼던 이곳 요네자와번 24만석(30만석?)
만 간신히 건져 부임을 하는데..... 15~16세기 전국시대에 다이묘 들은 사실상 독립된
국가의 군주로 왕 과 같으니 혼인동맹 외교와 전쟁을 통해 이웃번을 침략해 영지를 늘릴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쿠가와 막부 가 들어선후 260명 번주 들은 외교와 전쟁은 물론이고 성을 수축하는 것도 에도 막부
의 허락을 받아야하니 영지를 늘릴수 없었는데, 그래도 번주는 번에서는 사실상 군주라 그 직위는
자식에게 세습 되며.... 번주를 모시는 가신과 무사들도 세습직이니 매년 세금을 거두어 연봉 을 지급합니다.
또 번주는 재판을 주재하니 백성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지며 무사나 백성들이 이웃번에 갈때도 사전에 허락 을
받아 여권을 지참해야 했으며..... NHK 에서 방영하는 시대극 중에 요네자와가 무대로 2009년에 방영된
드라마인 “天地人” 에 츠마부키 사토시가 주인공 나오에 가네쓰구 역을 맡았으니 성 안에 전시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