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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문화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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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스크랩 보은단/서생은 부족여모라/소대성이 모양 잠만 자나/제호탕
강나루 추천 0 조회 39 12.01.29 19:3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보은단(報恩緞)

 홍순언(洪純彦)은 조선 중엽의 역관으로, 그 공에 의해 당릉군(唐陵君)까지 봉한 분이다. 그가 중국에 들어가 남자의 호기로 기관(妓館)엘 들렸는데 매파의 말이 신기하다. 

 "귀한 댁 출신의 처녀가 있는데 하루 저녁 해우채(解憂債)가 자그마치 천량이요 하루 저녁 모신 뒤로는 일생을 받들겠다 합니다." 

 일종의 객기랄까 남자다운 성격의 그는 성큼 천금을 던지고 그 여성을 만났다. 그러나 너무나 정숙하고 나긋나긋하여 손 한 번 안 만지고 내력을 물으니, 아버지를 고향으로 반장(返葬)해 모실 비용이 없어 몸을 팔아 감당하겠노라는 끔찍한 얘기다.

 효심에 감동되어 그냥 돌쳐서려니, 여인은 울며 아버지로 모시겠노라고 하여 부녀로서의 인연을 맺고 헤어져 왔다.

 그 뒤 홍순언은 공금 포탈로 옥에 갇혔다가 임진왜란이 터지자 다시 사신을 따라 중국엘 들어갔는데, 의부녀관계를 맺은 그의 딸이 병부상서 석성(石星)의 후취부인으로 들어앉아 있지 않은가?

 석성도 그를 장인으로 대하고 극진히 굴었다. 그리고 구원병 파견에 대하여도 남달리 주선하여 이여송의 군대를 파견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석성 부인은 재생의 은혜를 잊지 못해 '報恩' 두 자를 무늬로 넣어 손수 비단을 짜서 선물로 하였으며, 이것은 조선 5백 년에 가장 인정미 있는 얘깃거리로 널리 알려져 왔다.

 그런데 그 홍순원이 서울 복판의 다방골에 살았는데, 그의 동네를 보은단 미담의 고장이라 하여 '보은단골' 또는 담을 곱게 꾸미고 살았다고 하여 '고운담골'이라고 하였다.

 한때 정객들의 사교장이던 '미장(美墻)그릴'은 이 '고운담골'에 있었기 때문에 이름 지은 것이라고 들었었다.

 

          # 서생(書生)은 부족여모(不足與謀)라

 단종을 복위하려다 참혹한 죽음을 당한 늙은 장군 유응부(劉應孚)가 한 말이다.

 애당초 단종의 복위를 논의했을 때 육신(六臣) 외에 김질이라는 사람까지 끼어 있었고 김질의 장인 정창손(鄭昌孫)은 사업이 성공하는 날 영의정 재목으로 지목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거사의 기회로 노렸던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날, 전각이 비좁다고 한명회 등의 꾀로 운검(雲劍)을 폐하라는 명이 났을 때, 군사는 신속을 존중하니 그냥 들이치자고 했던 것이 유응부의 주장이었다.

 본래 임금 계신 전각에는 아무도 칼을 차고 오르질 못하고 운검이라는 직책을 맡은 분이 운검이라는 긴 칼을 메고 전각 네 귀에서 호위해 섰게 마련이라 그냥 들이친 대도 상당한 가능성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일은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성삼문 등이 주장하는 바람에, 일이 연기가 되고 시일을 천연하다 보면 성공할 가망이 적다고 본 김질이 자기 장인에게 얘기하고 장인 정창손은 다시 이것을 고변해서 참극이 벌어졌던 것이다.

 참혹한 형벌이야 이루 말할 수 없겠거니와, 유응부는 '書生은 不足與謀라'면서 문관출신 동지들을 꾸짖고 단근질하는 쇠꼬치를 집어던지며,

 "이 쇠가 식었으니 다시 달궈오라(此鐵이 冷하니 更灼來하라)"

고 외쳐 꿋꿋한 기상을 보인 것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 소대성(蘇大成)이 모양 자만 자나?

 소대성이란, 소설의 주인공인 가공의 인물이다. 조선 후기에 나왔으리랄 뿐 달리 해명할 길이 없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계모의 참소질로 자기 신변을 해명할 길이 없어 울울한 나날을 보낸다.

 그렇다고 친구들을 만나면 더욱 의심을 받겠고 달리 소일할 거리가 없다.

 그래 날마다 잠만 자는 것으로 소설에 그려져 있다. 

 물론 그 뒤 주인공은 누명을 벗고 임금과 주위 사람들의 신임을 회복하여 전쟁에 나아가 공을 세우고 하는 정해진 코스로 이야기는 진전된다.

 이 소설은 상당히 널리 읽혔던 듯하여 제자(題字)에서 내세운 바의 표현이 경향 없이 널리 통용되고 있다. 

 

 이와 같이 소설에서 연유된 용어로는 

 "유현덕이 모양 울기만 하느냐?"

 "장비의 군령인가?"

 "조자룡이 헌 창 쓰듯 한다."

 "돈이 제갈량이지."

 "조조는 웃다 망한다."

 하는 유(類)의 삼국지연의에서 나온 것이 가장 많고,

 "야단 장도감(張都監)을 친다."

 같은 수호지에서 온 것도 본래의 의미는 잊어버린 채 널리 사용되고 있다. 

 

          # 제호탕(醍호湯)

 제호탕은 여러가지 향기로운 재료를 넣어서 대려 식히고, 거기에 꿀을 타 얼음에 채웠다 먹는 극히 고급에 속하는 청량음료요 약이다.

 임진왜란 때 외교 수완으로 공헌이 컸던 한음 이덕형은 이항복과의 해학으로 유명하거니와, 장난은 오성의 짓이 많지 그는 좋은 상대였을 뿐인 것 같다.

 한음 이덕형이 임금을 모시고 피난길에서 돌아와 영의정으로서 창덕궁 중수의 도제조(都提調)를 겸해 주야로 분주했을 때 일이다.

 때마침 복중(伏中)이요, 집에서 들여오는 공고상(公故床)으로는 식사가 도무지 마땅하질 않아, 대궐 가까이다 조그만 집을 마련하고 소실을 하나 두었다. 여색을 탐해서가 아니라 잠깐잠깐 들려 쉬기도 하고 때를 놓쳤을 때 식사도 하기 위하여서다.

 하루는 한여름 더위에 허덕이며 제호탕이나 한그릇 먹었으면 하고 소실 집에 들어서는 즉시로 손을 쑥 내밀었는데 선뜻 갖다 바치는 것이 어느 결에 마련해 두었는지 자기가 찾는 제호탕이다. 그는 한참 여인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그 길로 돌아서 나와 그 길로 발을 끊었다. 여인을 영영 버린 것이다.

 얼마 뒤 오성이 찾아갔다가 그 사실을 알고 한음을 붙잡고 물었다. 그 계집을 버렸다니 어쩐 일이냐고.

 "그 날 목이 무척 타서 제호탕을 생각하며 손을 내밀었더니 선뜻 내어주는 게 어떻게나 영리하고 귀여운지...... 그러기로 지금 이 시국에 명색이 대신으로서 한 계집에 혹해 있게 됐습니까? 그래서 딱 그만 끊어버린 것이죠."

 이 말에는 오성도 그만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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